Return to the father
내가 정말 아끼는 물건을 잃어버려서 곤란을 겪은 경우가 있나요? 아니면 애완동물을 잃은 경우 있나요? 우리에게는 그냥 동물인데, 주인에게는 아주 소중한 동물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고 얼마나 기다리시느냐이다. 잃어버린 그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을 보내주신 줄 믿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예수님은 의인을 위해 오신게 아니고 죄인을 위해 오셨다. so 내 죄를 인정할 뿐만 아니라 깊이 깨닫고 나오는 사람에게는 복이 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떠난 그 사람이 하나님께 돌아오길 원하신다. 바로 그 사람을 위해서 예수님이 오신 것이다. "나는 아무 죄가 없습니다."고 말하는 사람은 복없는 사람이다. 모든 일에 내가 흠이 없고 아무 문제가 없어야만 하나님을 만나는게 아니다. 우리가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비유를 통해 말씀하고 계신다. 아버지를 오해해서 고통받고 있는 아들에 대해서 말하고 있고,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 말씀을 통해 죄인을 기다리고 계신 하나님을 만나길 바래요.
1. 아버지를 떠나는 아들 The son who leaves his father
오랫동안 기다리다가 어느날 내 몫을 달라고 요구한다. 어차피 물려받을거니 미리 달라고 요구한다. 이것은 아버지가 돌아가고 난 후에 받는건데 미리 달라는 것은 매우 무례한 행동이다. 기본적으로 이 아들은 무례한 아들이다. 아들이 가진 생각은 그동안 아버지로 인해 엄청난 헌신을 하고 있고, 그것은 부당하다는 생각인 것이다. 이 아들은 내가 아버지로 인해서 많은 헌신과 봉사를 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정반대이다. 오히려 아버지는 오랫동안 이 아들을 알고 오랫동안 기다려온 것이다. 이 아들은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에 자기를 잘 모른다. 특히 아버지의 마음을 잘 모른다. 아버지의 마음을 모르는 아들이 어떻게 일을 했을건지 눈에 보인다. 나름대로 열심히 뭔가를 하기는 하는데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는 일들을 많이 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아들은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버지는 아들이 어렸기 때문에 감당하고 받아줬던 것인데, 아들은 '아버지는 나를 인정하지 않는구나', '아버지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구나'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so 아들은 당당히 아버지에게 내 분깃을 달라고 당당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이것이 이 아들의 인생의 고통의 시작인 것이다. 아들은 아버지와 상관없이 나만의 인생, 나만의 꿈, 나만의 계획을 갖게 된 것이다. 아버지와의 관계에 문을 닫은 것이고, 지금까지 남아있었던 것도 아버지를 위해서가 아니고, 아버지의 소유, 도움을 원했던 것이다. & 때가 되니까 헌신한 댓가를 요구했다. 이 아들은 아들의 마음이 아니고 품꾼의 마음으로 있었던 것이다. 아들로써의 정체성이 있다면 아버지께 다 내것인데 그러지 않았다. 하나님의 교회에 대해서 내 몴을 요구하고, 내 자리를 요구한다. 아버지의 돌봄을 받고는 있지만, 아들로써의 정체성은 없다. 죄가 들어오니까 아버지와의 관계가 막히는 것이다. (딤후4:3) 내가 원하는 욕심이 있는데, 내가 원하는 것을 옳다고 말하는 사람을 둔다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을 진리의 말씀을 다 받아들이는게 아니고, 내가 알아서 내가 원하는 말씀만 찾아서 듣는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이런 아들의 계획을 구지 거절하지 않는다. 분깃을 받아서 뭣하려느냐고 묻지도 않으신다. 하나님은 내가 원하는 계획을 한다고 구지 막지는 않으신다. 구약에 요나라는 선지자가 있는데, 니느웨에 가서 말씀을 전하라고 했다. 당시 니느웨는 유대인을 괴롭히는 원수였고, 니느웨로 가는게 너무 싫어서 니느웨랑 반대인 다시스로 도망갔다.
2) 먼 나라로 떠남 Sets off for a Distance country
아들이 원하는 것은 아버지를 떠나는 것이 목적이다. 내가 원하는 삶을 자유롭게 살아야 겠다는게 아들의 생각이다. 아들이 먼 나라로 간다는 것은 아버지의 권위를 거부하는 것이다. & 아버지로부터 벗어나길 원하는 것이다. 아들은 그동안 아버지의 집에 있기는 하지만 아버지의 권위 안에 있지는 않았다. 나만의 인생을 갖길 원했다. 아들이 먼나라로 떠날 때 콧노래를 부르며 갔을 것이다. & 아버지가 하지말라는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는 곳으로 떠나게 된다. 아버지로부터 벗어나길 원하는 것이다. 아들의 문제는 아버지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한 것이다. 아버지의 아들이 자신을 위로하지 못한 것이다. 이 아들에게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보시는지가 중요한게 아니다. 나의 꿈과 비전, 내가 원하는 일이 있기에 아버지가 뭘 원하시는지는 중요치 않다. 아들은 세상이 더 크고 가치있게 보인다. 말씀이 지루하기만 하다. 아무리 아버지가 아들에게 "너는 사랑하는 아들/딸이다."라고 하면 듣지 않는다. 하나님의 권위를 듣지 않으면 세상의 것들과 말들이 더 잘 들리고 세상의 기준으로 살게 된다. 마음은 이미 아버지를 떠난 것이다. 결국 아들이 아버지를 떠나게 되면 세상에 나가서 죄와 유혹에 무기력하게 무너질 수 밖에 없다. 죄와 육신의 세력에 거하기 어렵다.
먼나라로 가서 아버지의 좋은 재산을 탕진하게 된다. 시간, 젊음, 재능을 낭비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이 아들의 삶이었다.
3) 고통을 당함 Suffers Greatly
아들이 할수 있는 일은 돼지를 치는 일 뿐이다. 당시 유대인들은 돼지치는 일은 하지 않는다. 율법에 돼지는 부정한 동물인데 왜 돼지를 치겠습니까? 내가 부끄럽게 여겼던 그 일을 아버지를 떠날 때 하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아들이 고통을 당할 때 주변에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는 것이다. 인생에 모든 길이 막히기 시작하고 이 아들의 마음이 낮아지고 깨어지는 과정이다. 이 과정이 아버지께로 돌아가기 위한 과정임을 믿습니다. 아들은 죽을것 같은 고통이 오게 된다. 아버지의 집에 나올때는 자유를 바라며 나왔는데, 나오고 나니 영적으로 죽게 되겠구나 하게 되는 것이다. (요10:10) 예수님은 우리 인생을 풍성하게 만들어 주시기 때문이다.
3) 회개와 결단 Repentance and Decision
그때서야 아버지를 찾게 된다. 죽을것 같은 고통이 오기 전에는 아버지를 생각하지도 않고 돌아갈 생각도 안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그제야 깨닫게 된다. 아버지가 그 전에 하신 말씀이 갑자기 깨달아지게 된다. (욥36:15) 아들이 왜 아버지가 한 그 말이 깨달아지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겠습니까? 많은 사람은 하나님이 닫은거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내 육신이 너무 완곡해서 안들리는 것이다. 하지만 상황이 어려운 상황에 부딪치니 들리기 시작하고 하나님께서 고통 가운데서 건지시는 것이다. 말씀이 깨달아질 떄 그것이 우리 인생에 은혜의 기회인 것이다. & 죄가 깨달아져서 회개할 수 있다면 그것이 복인 것이다. 우리 스스로 죄를 회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나님이 우리가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들려주셔야 한다. 말씀이 깨달아지지 않을 때 우리 스스로 그것을 빨리 알아야 한다. 나의 마음을 하나님이 낮추시더라도 우리 인생에 어떤 싸인을 주시는 것이다. 그제서야 끝까지 버티더라도 아버지의 사랑이 깨달아지면 그 자리에서 일어나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아버지 앞에 가서 부끄러움을 당하더라도 아버지께 돌아가서 용서를 구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했는데, 아버지 중심으로 생각이 바뀐 것이고 그래서 아버지께 돌아가게 된 것이다.
2. 기다리시는 아버지 The father who is waiting
아버지는 아들이 외국에서 성공한 모습으로 늠름하게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는 이 아들이 집을 떠나는 그 순간부터 아들을 기다린다. 아버지는 아들이 회개함으로 가난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돌아오길 원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다면서 생명력이 역사하지 않고 내 가치관이 그대로이면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다. 10년전, 20년전에 만났던 예수님, 옛날에 있었던 일, 은혜에 머물러 있다면 하나님은 우리가 새롭게 변화되길 원하신다.
1) 멀리서 아들을 알아봄 Recognizes his son a long way off
동네사람들은 허름한 아들을 몰라보는데, 아버지는 금방 그 아들을 알아봤다. 고통 가운데 아들이 있는 것을 아버지는 알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인된 모습을 보고 놀라시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죄인을 긍휼이 여기시는 분이다.
2) 달려와 입을 맞춤 Runs and kisses him
아버지가 집 앞에 나온 순간 아들은 두려운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혼나면 어떻게 하나, 동네사라들 앞에서 혼내면 어떻게 하나 하는 오해의 마음을 가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아버지는 죄를 추궁하지 않고 더럽고 부끄러운 아들을 안고 입맞춘다. 과거의 것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들을 위로해준다. 아버지가 입을 맞춘다는 것은 사랑과 용서의 표현인 것이다. 아버지는 죄인된 우리를 훈련하지만, 무조건적을 우리를 사랑하신다. 하나님은 율법을 행할 수 없는 우리를 위해 구원의 길을 예비하신다. 자기 죄를 깊이 깨닫는 사람에게 그만큼 큰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있는 것이다.
3) 아들의 지위를 회복시킴 Restores status of his son
가락지를 가져와서 손에 끼우고, 신을 가져와서 신을 신킨다. 아들로써의 지위를 다시 회복시키신다. 아버지 아들로써의 권세와 지위를 다 회복시켜주신다. 우리가 회개로 돌아갈 때 회개의 값지불이 있는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영적 지위를 회복시키신다. 우리에게 진정한 회개가 있을 떄 영적인 권세가 회복되어지고 하나님의 자녀로써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아들은 아버지가 주신 재산을 다 탕진했는데, 회개로 돌아올 때 아버지는 이 ㅇ들을 맞아주신다. 아버지는 아들과 인격적인 관계를 원하시는 것이다. 아들은 아버지아 상관없이 삶을 살았는데, 이제 진정한 자신의 아버지의 아들로써의 정체성을 회복한 것이다. 아버지의 아들로써의 정체성이 없는 사람은 내 인생이 좀 잘 되면 "하나님이 잘 해주시나보다", 내 인생이 잘 안되면 "하나님의 왜 이러시지?"라고 하나님의 일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러한 죄와 상처, 굳어진 마음, 교만이 깨어져야 내 안에 아들로써의 정체성을 가지고 어떤 형편이 있어도 나의 믿음이 요동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내 인생의 목적을 알게될 때 우리 인생이 달라진다. 이버지의 뜻을 모르니 아버지의 뜻과 반대로 하는 것이다. so 아버지를 만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잔치를 열어주는 것을 우리는 느낄 수 있다. 내가 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내 영혼에 기쁨과 위로와 소망이 있다. 천국은 지루한 곳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천국잔치를 예비하시고 기다리고 계신다. 천국의 기쁨을 맛볼 필요가 있다.
하나님께서 천국잔치를 예비하고 계신다. 내 영혼에 만족이 없고 열심히 수고는 하지만 곤고하고 기쁨이 없는 우리들에게 죄인이 돌아오는 것을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길 바래요. 하나님의 아버지 안에서 내가 누구인지, 내가 어디에 와 있는지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을 위해 하나님은 기다리고 있다. (이사야55:7)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알지 못하는 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회복하는 인생의 기회가 되길 바래요. 하나님은 상한 갈대도 끄지 않으시고 죄인을 기다리고 계신다. 우리를 위해 자신의 가장 귀한 것을 아끼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경험하는 우리가 되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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