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April 13, 2018

2018-04-14(금요철야, 강국정목사님) 마라를 지나 엘림에 거하라

우리를 구원하셔서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해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 신앙생활도 롤러코스터와 같지 않은가 반복해서 이뤄지는 것 같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마찬가지였다. 하나님을 찬양하다가 먹을거 없으면 불평하고 한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비슷한 것을 볼 수 있다. 마치 우리도 세상의 불과 물 가운데서 구원해주셔서 얼마나 구원의 은혜가 감사한지 하지만 사건을 만나게 되면 다운되고, 예배에서 은혜 받으면 업되고, 가정에서 사건 생기면 또 다운되고 한다.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인 것이다. 업&다운을 멈추고 천국을 갈 수 있는 것은 아래것을 생각하지 않고 위의 것을 생각하고 말씀을 따라 나아간다면 "이 산지를 내게 주시옵소서"라고 선포하는 것이다. 천국을 소망하면서 신앙생활 한다면 이 땅에서의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면서 마음 천국이 이뤄질 것이다. 

1. 마라로 인도하신 하나님(22~24)


홍해를 가르시고 약속의 땅인 가나안땅으로 인도하고 계신다. 천국의 지름길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을 믿길 바래요. 또다른 표적으로 인도하시는게 아니라 완전히 업&다운되는 마라의 길로 인도하시는데, 그 길은 홍해바다에서의 엄청난 기적이 아닌 스루광야인 것이다. 

1) 수르광야를 걷게 하심(22~23)


생각만 해도 너무 싫을 것이다. 땡볕에 먼지나는 곳이 얼마나 고난의 길이겠습니까? 사흘길을 걸어갔다고 말하고 있다. 사흘길은 육신이 죽어지는 기간이 사흘길이다.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에서 사흘동안 계셨다. 사흘동안 모든 어둠을 짊어지시고 무덤에서 육신이 완전히 죽어주신 것이다. 수르광야는 홍해바다를 건너자마자 시작되는 광야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사흘길을 가는 가운데 불평을 할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육신의 모습을 보면 이해가 될 수 있다. 사흘길을 걸을 때에 계곡을 걷다가 계천을 걷고 하면 걸을만하다. 하지만 여기는 그런 곳이 아니다. 가는 중에 드디어 마라에 도착했는데, 그 곳은 물이 있는 곳이다. 드디어 찾게 된 것이다. but 물이 써서 먹지를 못헀다. 마라는 원어로 쓰다, 괴롭다는 뜻이 있다. 표적이나 은혜의 길로만 인도하지 않으신다. 수르광야 또는 마라와 같은 쓴물을 먹을 때도 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길도 걷지만, 고통의 길을 걸을 때도 있다. 쓴물과 같은 물질, 관계, 진로, 결혼 문제로 어려움을 겪을 때도 있는 것이다. 가는 길에 수르광야도 있고, 쓴물도 있고 광야가 있더라도 반드시 그 길을 통과해서 엘림, 천국,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주심을 믿으시길 바래요. so 처한 장소에서 불평할게 아니라 "쓴물도 주시는구나, 아시기 때문에 광야에 거하게 하시는구나" 하는 것을 믿길 바래요. (행17:26)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바다를 건너서 젓과 꿀이 흐르는 길을 갈 수도 있는 길이지만, 자기 마음대로 들어갈 수 없는 곳이다. 하나님의 뜻이 있기에 백성들을 훈련시키면서 거주의 경계를 정하시면서 가나안 땅으로 가게 하시는 것을 믿어야 할 것이다. 이것을 우리가 분명히 믿게 될 때 하나님이 이 장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나에게 필요하기 때문에 주시는 구나, 때로는 수르광야를 걷게 하시는구나, 나를 향한 분명한 계획이 있구나 하면 불평은 떠나게 될 것을 믿길 바래요.  하나님이 거하라는 곳에 거하고, 이동하라는 곳에 이동하고 주권을 인정하게 되면 서론 말씀과 같이 기쁘게 가나안땅으로 들어갈 줄 믿습니다.

2) 모세를 원망함(24)


사흘길을 가서 쓴물을 먹게 되었을 때 자신들을 이끈 모세를 원망하게 됐다. 홍해바다의 기적을 경험한 후 몇달이 아닌 겨우 3일(사흘길)이 지나고 나서 고작 쓴물을 먹었다고 해서 자신의 생명의 은인인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는 백성들의 안타까운 모습을 볼 수 있다. 고집을 피우면서 "불평할꺼야" 하면서 고집을 꺽지 못한다. 말씀을 통해 고집의 세력들은 떠나간 것을 선포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평과 원망을 쉽게 터뜨리는 모습을 자주 보인다. 인간의 속성이고, 배은망덕이라고 한다. 생명을 구원해줬는데 3일 간다. 예배를 통해 엄청난 은혜를 주셨는데 사건을 만나면 또 불평하고 한다. 육신의 죄성을 잘 보여준다. 뙤앙볕에서 밤넝쿨이 머리에 붙어서 기뻐했는데, 그 밤넝쿨에 벌레가 먹고 땅에 떨어지자 죽기를 구하면서 불평을 구한다. 이것이 전형적인 육신, 인간, 죄의 속성인 것이다. 조금 살만하면 감사하다고 하다가 고난이 생기면 죽기를 구하고 불평한다. 그럼에도 인격적인 하나님은 쓴물을 단물로 바꾸신 사랑의 근원이신 하나님이시다.

2. 쓴물을 단물 되게 하신 하나님(25)


쓴물을 단물로 바꿔주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1) 모세의 부르짖음(25a) 


우리가 뭘 마실까 하며 모세에게 원망, 불평을 했다. 하나님께서는 홍해 앞에서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냥 버리지 않으셨다. 홍해바다를 가르셨다. (출14:31) 모세는 "너희는 언제까지 불평할거냐? 너희들하고 같이 못다니겠다"라고 할만도 할것 같은데, 그러지 않고 여호와께 부르짓었다고 했다. (렘33:3) 내가 부르짖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응답하심으로 쓴물을 단물로 바꿔주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2) 나무를 던짐(25b)


하나님꼐서는 놋뱀을 쳐다보면 살것이라는 놋뱀사건이 나온다. 백성들은 하나님과 모세에게 범죄하게 했다고 했고, 모세는 그때도 기도했다고 한다. 내 인생에도 광야의 고난이 찾아올 수 있지만, 하나님 앞에 부르짓어 기도하길 바래요. 그러면 하나님꼐서 쓴물을 단물로 바꿔주실 것이다. 개인, 직장 가정의 문제에 직면할 수도 있다. 신앙의 여정 가운데 너무 써서 마주친다면 기도한다면 크고 은밀한 일을 행하실 것이다. 나무를 쓴물에 던져 넣을 때 쓰서 먹지 못했던 물이 단물로 바껴서 먹게 될 것이다. 나무를 던지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나무를 던질 때 그 순종을 보시고 쓴물을 단물되게 하신 것이다. 쓴물이 있을 때 말씀에 단순하게 순종할 때 기적이 있다. 나무를 던지는 것과 같이 "빛이 있으라"고 선포할 때 어둠이 떠나가는 것이다. 소금을 던지라 할때 던지면 물근원이 치유되는 것이다. 물이 어떻게 포도주가 되겠습니까? 순종의 능력인 것이다. 말씀을 순종할 때 살아나게 되는 것이다. 나무를 던지라고 하면 그냥 던지길 바래요. 그러면 쓴물이 단물로 되는 기적을 경험할 것이다. 때로는 신앙하다보면 이해못하는 순종을 요구하실 때가 있다. 기도하다가 카톡으로 미안하다고 보내라는 음성을 들을 때가 있다.이해도 안되고 순종도 어렵지만 그것을 순종할 때 생수가 터져나오면서 눈물이 터져나오는 것이다.

3. 마라의 시험 후, 엘림으로 인도하심(25b~27)


1) 마라의 시험(25b)


하나님은 가나안을 정복할 수 있는 자질을 준비하신다. 불의는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이지만, 의는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시길 바래요. 세상 돌아가는 것에 관심갖지 마세요. 하나님의 미련한 것 같은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지 보시는 것이다. 홍해의 기적을 되뇌이는가? 하나님이 가라고 하는곳에 가는가?를 보신다는 것이다. 법도를 통과할 때 하나님은 다음단계, 다음단계로 가신다는 것이다. (잠3:6) 모든 일에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인도하신다, 하나님을 인정하길 바래요.

2) 엘림으로 인도하심(27)


엘림은 원어로는 큰나무라는 뜻이 있다. 종려나무 70그루가 있는 곳이다. 생각만 해도 시원할 것이다. 완전한 휴식처이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곳이다. 우리를 그러한 시험에 pass하면 그런 곳으로 인도해주신다는 것이다. & 생수가 12곳에서 펑펑 솟아나는 그곳으로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신 것이다. 그 물을 마시면서 생각만해도 완전한 휴식처로 인도해주셨다는 것이다. 마라에서 엘림까지 약 10km정도 되는 가까운 거리를 마라를 거치지 않고 바로 엘림으로 인도해주실 수도 있다. 하지만 쓴물을 거친 후에 엘림으로 가게 하시는 것이다. 사막의 작은 천국이 엘림인 줄 믿습니다. 12샘과 같은 기쁨이 넘치는 열매를 먹게 해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가 거하는 이 장소가 엘림인 것을 믿습니다. 셀, 예배, 심방 등에 가도 샘이 터져나오는 것을 믿습니다. 이 곳에서 천국을 먼저 맛보시고 안식하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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