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September 17, 2017

2017-09-17 (주일예배, 정의호목사님) 무슨 권위인가? (마21:23~27)

시대가 갈수록 악해진다. 절대진리와 절대권위가 무너지는 사회이다. 개인, 집단, 계층간에 많은 충돌이 일어난다. 서로 다른 상극관계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물과 기름이 같이할 수 없는 것처럼 배타적인 상극관계이다. 빛에 속한 하나님나라와 어둠에 속한 사단의 나라이다. 자신이 순종하는 권위에 모든 사람이 속한다. 중간지대는 없다. 의에 순종하는 사람은 하나님나라에 속하게 되고, 죄에 순종하면 사단에 속한다. 항상 둘은 대적관계, 긴장관계이다. 오늘 본문도 성전에 예수님이 들어갈 때마다 충돌사건이 일어난다. 예수님 자신이 성전이다. 성전의 권위를 가진 예수님이 성전에 들어갈 때마다 종교의 권위를 가진 종교인들과 충돌이 일어난다.

1. 권위의 근원


예수님이 사역하실 때마다 종교인들이 항상 고소꺼리를 찾는다. 이 사건에서도 종교인들이 "무슨 권위로 이 일을 하고, 누구로부터 받은 권위냐?"고 물었다. 자신들은 권위를 주신 적이 없는데 무슨 권위로 하냐?고 묻는 것이다. 이 질문에 역으로 물어보신다. 내가 묻는 말에 대답하면 나도 대답하겠고, 대답하지 않으면 나도 대답하지 않겠다고 했다. 종교인들은 세례요한을 인정하지 않았다. 세례요한은 주의길을 예비하기 위해 예수님을 증거하고 간 사람이다. 이들은 세례요한을 인정하면 예수님을 인정하는 것이고, 인정하지 않으면 많은 사람들이 세례요한으로 회개를 받았기 때문에 사람이 무서워서 인정하지 못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않아도, 사람은 두려워한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권세나 능력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게 권위의 차이다. 목사, 장로, 권사의 지위는 기관에서 줄 수 있다. 세례요한은 공적인 지위를 받은 적이 없지만, 하나님이 직접 부르셔서 광야에서 훈련시키셨다. & 요단강에서 회개의 말씀을 전하고 많은 사람들을 회개시켰다. 하지만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공적인 직분은 있었지만 아무 일이나 능력도 일어나지 않았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능력이 놀랍게 나타난 것이다. 이게 제도권의 권위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권위의 차이이다. 예수님의 말씀의 권위를 알고 기관에서 받은 권위와 다르다는 것은 사람들이 다 알고 있었다. (막1:22) 서람들이 서기관들이 권위가 없음을 알았던 것이다. 서가관들은 백성들도 받던 말씀과 회개를 정작 받지 못한다. 2천년전이나 지금이나 같은 것이다. (요일4:5~6) 강단에서도 세상적인 말, 인간적인 말을 전하면 그 말에 은혜받는 사람들이 몰려들고 은혜 받겠지만, 반면에 영적인 사람들은 떠나갈 것이다. 세상에 속한 자는 세상의 말은 듣지만 하나님 말씀은 듣지 못한다. 영의 세상에는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 밖에 없다. 무슨 말을 듣고 무슨 말을 못알아듣는지를 통해 어디에 속했는지 알 수 있는 것이다.  영의 문제이다. 세상에 속한 사람은 세상의 말에 감동을 받는다. 하나님에 속한 사람은 영이요 진리이신 하나님의 말씀에만 은혜받는 것이다. 스데반이 죽기 전에 명설교를 했다. 종교인들은 그 말을 듣기 싫어서 귀를 막고 이를 갈며 결국 스데반을 죽인 것이다. 내가 어떤 말이 좋고 어떤 말에 은혜 받는지를 체크해야 한다. 말씀의 문제가 아니라 듣는 사람의 자세의 문제이다. 사람의 감동의 말씀을 전하면 회개가 일어나지 않는다. 전국 대부분의 사람들이 회개하는데, 바리세인들과 서기관들은 회개하지 않고 세례받지 않는다. 종교가 얼마나 무서운지 나타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은혜받고 회개하는 자리에서 회개하지 못하고 은혜받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가요? 다 은혜받는 그 곳에서 왜 은혜를 못받겠어요? (요8:43~45) 사단의 목적은 사람을 죽이기 위해 거짓을 말하는 자이다. 진리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속에는 악한 마귀의 영이 있었던 것이다. 2천년 전에 하나님의 성전 안에서 일어났던 일이 지금은 교회 안에서 일어난다. 같은 말씀을 듣고도 반응은 다 다르다. 항상 있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곳은 항상 알곡만 있는게 아니고 쭉정이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죄를 지으면 어둠의 권세에 속하게 된다. 은밀하게 죄를 지으면 하나님의 권세에 속하지 못하는 것이다. 왜 성전 안에 있으면서 영적으로 충돌하고 권위에 들어오지 못하겠습니까? (요3:19~21) 자기 행위가 악하기 때문에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빛가운데 드러내지 못해서 교제를 못하고 항상 베일에 가려져있는 것이다. 빛 가운데 있는 사람은 사귐이 있고 교제가 된다. 죄를 가진 자는 감추기 위해서 교제를 두려워한다. 십자가의 권세를 받은 사람은 자신의 죄를 항상 드러내려고 한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백성들은 바벨론에 항복하라고 전하라고 하셨다. 힘들었지만 전했다. 하지만 거짓선지자인 하나냐는 하나님이 돕는다고 거짓을 말했다. & 예레미야를 핍박하고 돌을 던졌다. 영적 전투의 실태이다. (고후11:14~15) 어느시대나 그 시대에 기득권을 가진 의의 옷을 입은 사단의 세력의 반복이 역사다. 내가 어디서 나온 권위로 하는지 체크해볼 필요가 있다. 하나님 말씀을 듣는 권위에 속했는지, 세상의 말을 듣는지 체크해봐야 한다. 하나님의 권위 안에서 하나님의 권위에 속해야 한다.

2. 권위의 시행


하나님이 권위를 나타내는 방법이 말씀이다. 하지만 제도권에서도 권위를 만든다. 그들은 자기들이 세운 율법으로 권위를 만든다.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도 자기들이 세운 권위와 다르기 때문에 핍박한 것이다. 사람이 만든 율법과 권위만 가질 수 밖에 없어서 부딪칠 수 밖에 없다. 말씀, 진리를 던져보면 그 사람이 어디에 속했는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지금도 어둠에 속한 사람과 빛에 속한 사람이 항상 충돌한다. (갈4:29~30) 늘 남을 정죄하고 판단하는 사람은 같이 유업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내어 쫒으라고 했다. 교회는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유일한 기관이다. 교회만이 예수님의 핏값으로 산 예수님의 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음부의 권세를 막는 곳이다. & 회개를 거부하고 변화되지 않으면 그 곳에 있을수가 없는 것이다. 강력하게 성령이 역사하면 그것을 견디지 못하게 하는 사람들은 다 떠나게 되어있다. 세례요한이 오기 전 400여년동안은 선지자가 없는 시대였다. 하지만 그 후 세례요한과 예수님이 나타나서 성령의 역사가 임하니 종교인들은 대적하는 것이다. (요일2:18~19) 성전 안에 있다고 다 거룩한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께 속한 자와 교제가 된다. 빛에 속하지 않는 자는 결국 우리를 떠난다. 우리가 교회로 불러주신 것이다. 처음부터 빛에 속한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자기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하면 빛에 속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장로들은 먼저 불러주셨지만 끝까지 회개하지 않기 때문에 속하지 못하는 것이다. (엡5:7~8) 누구든지 교회 안에 들어온 이상 빛가운데 나와서 자기 죄를 회개하고 나오길 바래요. 예수님은 모든 사람의 죄를 받으시고 용서해주시는 분임을 믿으시길 바래요. 빛의 자녀로 하나님 안에서 살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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