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March 3, 2019

2019-03-03 (주일예배, 정의호목사님) 마지막 때 사람들의 관계 (마24:10)

우리는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관계적인 사람이다. 가족, 학교, 직장, 교회 등 어느곳에 있든지 다른 사람과 함께 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존재이다. so 다른 사람과 좋은 관계를 가지는 능력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혼자는 능력, 훌륭하다고 하더라도 다른사람과 좋은 관계를 가지지 못하면 쓸데없는 것이다. but 관계의 어려움은 가까운 사람과의 문제가 대부분이다. 가족, 친구, 동역자들끼리 관계의 어려움이 많이 생긴다. 이것은 이상한게 아니고 가까운데더 자주 부딪치기 때문이다. 마지막 때가 될수록 모든 사람들과 관계가 어려울 수 밖에 없다는 것인데, 가장 가까운 식구들과 원수가 되는 것이 가장 어려운 것이다. (마10:21) 끔찍한 일이지만, 가장 어려운 관계는 가족들 사이에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는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이 가족을 때 주로 나타나는데, 믿지 않는 가족이 믿는 가족을 핍박하는 것이다. 이는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라 영적인 싸움이다. 이슬람에서는 배교하면 사랑하는 가족인 부모, 오빠, 동생이 믿는 사람을 죽인다. 이것이 마지막 때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10) 그때에 많은 사람이라는 것은 믿는 사람이라는 것이기에 더 어려운 것이다. 믿음의 공동체 안에 있는 사람들끼리 잡아주고 고소하고 실족케 된다는 것이다. so 사람을 분별하고 주의하라고 한 이유가 이것 때문이다. 마지막 때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한 신앙 하길 바래요. 

1. 실족함 Turn away from faith


실족케 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실족하는 것이다. 마지막 때는 믿음을 실족케 하는 거짓선지자 등이 많이 생기기 때문이다. 마지막 때의 특징 중 하나는 이런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특정 사람이 아니고 대다수의 많은 사람이 실족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 실족하는 많은 사람이 교회 안에 사람이라는 것이 큰 문제인 것이다. 평소에는 많은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신앙 잘 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모두가 다 그정도면 천국가는 것은 별 문제가 안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평안할 때 믿음은 장담할 수 없다. 조금 어려움이 있으면 지푸라기 같은 작은 것에도 믿음을 배반할 정도면 그 신앙은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so 교회로 청함받은 것 자체로 만족하지 말라고 하셨다.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택함 받는 것이 중요하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고 십자가 짐을 택함 받는 사람은 적다고 하셨다. (마13:21) 잠시 견디는 신앙으로는 장담할 수 없다. 사람들이 주로 말씀 들을 때 시험에 든다. 어떤 사람은 말씀 듣고 은혜 받고 인생이 변화되지만, 같은 말씀을 듣고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넘어지는 것이다. 잠시 주어진 환란에 넘어지면 그동안 해온 신앙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한때의 은혜, 직분, 믿음은 아무것도 아니고, 마지막 때에 견디는 믿음과 신앙이 중요한 것이다. 한때의 믿음은 하루 아침에 없어지는 것이다. 마지막까지 주님 앞에 설 수 있는 믿음이 중요한 것이다. 평안할 때에 믿음을 지킬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마지막 때에 구원받을 신앙을 해야지, 교회만 다니는 신앙을 하면 넘어지기 쉽다. 마지막 때에 우리의 신앙을 그대로 받는게 아니고, 불에 넣어서 남는 것만 받으신다. (고전3:12~13) 우린 이 때를 생각해야지, 보이는 것에 속으면 안된다. 지금 내 신앙이 불시험을 통과하는 신앙인지, 불에 타버리는 신앙인지는 내 선택에 달려있다. 십자가에 내 죄가 죽어지는 십자가의 신앙만이 육체의 고난을 이길 수 있다. so  우리도 불에 타지 않는 신앙은 내 죄가 죽어지는 고난받는 신앙만이 마지막 때에 불을 통과하는 신앙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 때에 받을 고난은 육체를 즐기는 것보다 어려운 것이다. 나무멍에를 피하면 그 후에 쇠멍에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훈련없는 사람의 특징은 죄의 문제를 벗어나지 못한다. 훈련 안받는 사람의 특징은 죄문제에 허덕이고 있는 것이다. 내 육체를 십자가에 못박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욥은 사람이 겪을 수 있는 최고의 고난을 받은 사람 중 하나이다. (욥23:10) 욥은 자신의 고난이 너무 극심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고난을 하나님이 아신다는 것이다. & 주님 앞에 순금과 같이 나올 것을 알기에 고난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욥처럼 고난 당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고난 있는 것이 꼭 나쁜것은 아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데, 죄의 지기들을 모두 제거해서 순금같은 믿음이 되어서 마지막 때에 타지 않는 믿음을 주기 위해서라는 것을 안다면 고난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고, 감당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벧전1:7) 우리의 믿음이 어느정도로 연단되어야 한다고 했습니까? 현재 주어지는 고난을 잘 감당하는 것이 마지막 때를 잘 감당하는 실제적인 준비이다. 마지막 때를 위해 내 죄를 위해 날마다 죽는 믿음의 훈련을 감당하길 바래요.

2. 서로 잡아줌 Betray each other


잡아준다는 의미는 히브리어로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잡아주는 상황에서 같은 단어를 사용했다.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집에 알곡만 있는것은 아니라고 하셨다. 가라지도 마지막 때까지 뽑지 말라고 하셨다. 마지막 때에는 가라지는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게 된다. 예수님을 누가 잡아주는 일을 했습니까? 외부에 불량배나 강도가 예수님을 잡은게 아니다. 예수님을 가장 잘 아는 가룟유다가 대제사장에게 예수님을 넘기는 일을 하는 것이다. 마지막 때에 리더나 목회자를 가장 잘 아는 그 사람들이 이와 같은 일을 하는 것이다. 가룟유다는 마귀에게 속해있기 때문에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 많은 기적과 변화를 봐왔으면서도 자신은 변화되지 않은 것이다. (이사야26:10) 악인들은 하나님의 많은 은혜가 쏟아짐에도 그 가운데에서도 불의를 행한다는 것이다. 다 웃는데 웃지 않는 사람은 무섭다. 다 은혜 받는데 은혜 받지 못하는 것은 무서운 것이다. 신앙 공동체 안에서도 좋은 은혜의 섬김도 받고 많은 도움도 받으면서도 아무 변화도 없고 그 사랑을 배우지도 않고 그 하나님의 권위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가장 무서운 것이다. 에굽의 바로왕은 모세에게 행한 많은 기적을 봤지만, 마음은 강퍅했다. 이는 심판받을 징조이다. 이런 가룟유다를 보고 예수님은 그가 태어나지 않은 것이 나을 뻔했다고 하셨다. (시41:9) 가장 믿고 신뢰하고 좋은 것을 다 나눈 친구 조차도 나를 대적하고 내 발꿈치를 들었다고 했는데, 이런 것이 마지막 때에는 많이 일어난다고 했다. 마지막 때에는 믿음을 배반하고 떠나는 사람을 주의하고 조심해야 한다. 내 안에 미혹의 영이 있으면 그런 사람과 함께 있으면 나도 미혹되게 되는 것이다. 공동체 안에 잘 따라가고 남는 사람이 건강한 신앙이다. 믿음의 반석도 예수님 안에 서는 신앙 되길 바래요.

3. 서로 미워함 Hate each other

서로 미워하고 나누는 것이 사단의 속성이다. 교회 안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난다. 내 안에 악한 영을 따라서 하나님의 영과 대적하는 일을 하게 된다. 마지막 때에는 이런 일이 심각하게 일어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을 사랑하고 반면 악한 자에게 속한 사람을 미워한다. 반면에 악한 자에게 속한 사람은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 밉고, 악한 자에 속한 사람이 좋아진다. 이는 영적 상태에 따라서 결정되게 된다. 자기 자신이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잠29:27) 불의한 자는 의인에게 미움을 받고, 바르게 행하는 자는 악인에게 미움 받는 것이다. 자신이 어떤 사람과 불편하고 어떤 사람과 잘 맞는지는 자기의 영적 상태인 것이다. 까닥없는 일은 일어나지 않고,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자기 영혼의 영적 상태가 결국 자신의 영혼을 결정한다. 결국 마지막 때는 무섭고 두려운 세상이 된다. 서로 죽이고 배반하고 이간질하는 세상이다. 세상이 그런다 할지라도, 예수님의 십자가의 권세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아무 문제가 안된다. (롬8:35~37) 우리가 마지막 때에 모든 민족으로부터 미움 받고 환란과 핍박이 있겠지만, 믿는 우리는 겨우 이기는게 아니고 넉넉히 이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게 이미 이기셨기 때문이다. 문제는 내 믿음인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 안에 있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주어지는 시간을 아끼고 마지막 때를 준비하는 시간 보내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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