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May 27, 2018

2018-05-27 (창림22주년기념예배, 정의호목사님) 주여,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요6:60~71)

22주년 기념예배입니다. 기쁨의교회를 22년 전에 세우신 것은 성령으로 세우셨습니다. 모든 이 땅에 교회는 성령으로 세워졌다. 우리 교회도 성령으로 세워졌고, 앞으로도 말씀과 성령으로 이어나가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를 하라고 하신 것이 기쁨의교회를 시작한 동기이다. 교회는 하나님나라를 선포하는 곳이기 때문에 하나님 원하시는대로 운영이 되어야 한다. & 교회를 이끄시는 유일한 방법이 말씀이다. 주일예배 때마다 빠지면 안되는 것이 말씀이기 때문이다. 말씀을 통해 인생이 변화된 체험은 우리가 가지고 있다. 몸은 교회를 다녀도 교회에 선포되는 말씀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신앙의 변화가 없고 인생의 변화, 소망이 없게 된다. 즉, 교회를 다니나 생명력 없이 다니는 이유는 말씀이 없이 다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핵심사역은 다니는 곳마다 말씀을 선포하셨다. SO 말씀을 듣고 따른 사람은 끝까지 예수님을 따랐지만, 그러지 못한 사람은 예수님에게 중간에는 나갔다. 교회는 인간적인 유익, 시설을 제공하지만 사실 그것들이 영혼을 구하는 것은 아니다. 오직 하나님 말씀만이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다. 우리 인생은 두가지 인생이 있다. 떡으로 사는 인생이 있고, 말씀으로 사는 인생이 있다. 떡으로 사는 사람은 사단의 시험을 받기 때문이다. 하나님 말씀을 받은 사람은 더이상 떡으로 살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은 간데없고 떡에 굶주린 사람은 교회를 다니지만, 결국은 지치고 힘들게 여겨진다. 떡을 위해 다니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결국은 교회를 떠나서 세상으로 나가게 된다. so 세상에 속한 사람은 떡을 위해 교회를 나오지만, 말씀을 위해 교회 나오는 사람은 끝까지 남게 된다. 끝까지 남는 신앙 하길 바래요.

1. 예수님을 떠나는 사람들: 떡을 위해 살아감

(요6:26) 예수님을 따르는 이유와 동기도 다 다르다. 육신을 위한 떡을 바라고 예수님을 따랐다고 했다. 그 이유는 말씀을 듣지 못하기 때문이다.

1) 말씀을 영으로 듣지 못함

말씀을 들을 때 걸린다. 그 말씀이 내 마음을 상하게 해서 예수님을 떠나게 한다. 그 말씀을 부정하고싶고 대적하게 하고 싶다. 이는 사단이 그 사람을 실족하게 하려고 마음을 걍퍅하게 해서이다. 물질, 가정 등에 대한 말씀을 들으면 더 화가나고 대적하는 사람이 나타나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 겸손하지 않고 완고하기 때문이다. 군중으로 다니는 사람은 교회에 오면 떡을 생각한다. 교회 건물이 얼마나 편한지, 점심메뉴는 좋은지, 비즈니스에 도움이 될 사람이 있는지 등 떡을 바라고 나오는 사람이 있다. 교회 말씀보다 떡이 좋은 교회가 좋은 교회고, 떡이 좋지 않으면 좋지 않은 교회라고 한다. 이런 사람은 말씀을 받지 못하는 증거이다. 이런 사람은 언제든지 떡이 있는 곳으로 떠나게 된다.  말씀 듣고 남는것이 아니고, 말씀 듣고 떠나게 된다. 말씀을 듣지 못하는 사람의 대표적인 케이스이다. 끝까지 해야할 것은 말씀 받는데 생명을 드리길 바래요.

2) 예수를 믿지 못함

말씀을 통해서 믿게 되는데,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서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녔다. 그러나 이런 사람의 특징은 예수님을 믿지 못하면서 목적이 있어서 따른 것이다. 이는 다른 목적이 있기 때문이고, 사건이 있으면 예수님을 떠나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을 떠나기 전에 예수님을 믿게 하기위해서 교회에 남겨둔 거이다.

2. 영생을 위해 따르는 사람들

이들은 떡을 위해서 따르는 사람들이 아니다. 말씀을 위해 직장,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이다.

1) 말씀을 영으로 받음

분명히 살리는 것은 영이라고 하셨고, 육은 무익하다고 하셨다. 교회에서까지 와서 무익한 것을 따를 필요는 없죠? (63) 예수님의 말씀과 세상 사람의 말의 차이는 세상 사람의 말은 지식이요 육을 위한 것이다. but 예수님의 말씀은 자체가 영이요 생명이 있다. 그래서 그것을 들을 때 예수님의 생명이 주어지는 것이다. 단지 말씀만 주는데 영혼이 변화되는 것을 보는 이유는 말씀이 단순한 문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떡을 먹으면 우리 몸 안에서 썩게 되지만, 말씀을 먹으면 생명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육신을 채우면 채울수록 우리 영을 방해하고 거스르게 된다. 계속 무익한 육신, 세상적인 이론, 오락, 미디어를 즐기면서 채우는 사람이 말씀이 들리겠어요? 육신을 채우는 사람에게는 영의 말씀이 들리지 않는다. 육신을 채우는 모임에는 생명력, 사람이 변화되는 역사, 일꾼이 세워지지도 않는다. 무익한 사람의 일 밖에 없는 것이다. 셀의 목적은 교제가 아니다. 셀은 영혼을 구원하고 전도해서 말씀으로 양육해서 제자를 세우는 것이 셀의 목적이다. 왜 셀에 전도가 일어나지 않고 일꾼이 세워지지 않을까요? 자기 자신에게 말씀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데, 어떻게 셀원들이 변화되겠어요? 그냥 떠나지 않게 하기위한 정거장 역할 밖에 되지 않는다. 예수님에게는 한마디로 떡이 없다. so 떡을 위해서는 예수님을 따라갈 수 없다. 예수님을 따르면 굶을 각오를 해야한다. 베드로는 "예수님에게는 영생의 말씀이 있기 때문에 떠날 수 없습니다"고 고백했다. 먹을 것 없을 때 떠나는 것은 군중의 신앙이다. 이렇게 예수님의 말씀으로 변화된 사람만이 떠나지 않을 수 있다. 교회는 끊임없이 걸러지는 역사가 있는 곳이다. 결국 걸러지는 곳이 교회이다. 말씀을 받는 사람만이 남아있고, 받지 못하면 언젠가는 떠나게 된다. 우리 교회는 22년 동안 말씀을 듣는 사람만 남은 것이로 앞으로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2) 하나님꼐 속한 자 (65)

하나님꼐 속한 사람은 말씀이 양식이 되지만, 세상에 속한 사람은 떡이 양식이다. QT가 없이도 하루를 살 수 있는 사람, 기도를 못해도 한주를 살 수 있는 사람, 그것을 통해서 내가 어디에 속한 사람인지를 알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 없이 일하는 것은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기도 하는 사람은 기도가 마려워서 견딜 수가 없다. 기도에 갈증이 생겨서 살 수가 없는 것이다. 내가 벌써 말씀 없이 살고 기도 없이도 거뜬히 산다는 것은 이미 죽은 것이다. (요8:47) 하나님꼐 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말씀 없이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교회는 줄 떡이 별로 없는 교회이고, 떡을 주지 말라고도 합니다. 우리 교회는 말씀으로 시작한 교회이지, 떡은 없다. 한번의 예배로 인생이 바뀌게 한 것은 하나님이 하신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변화되서 남아있는 것은 자신이 받은 그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 증거하라고 말씀의 능력을 주신 것이다. so 그 말씀을 증거하는 일을 해야한다. 나는 말씀으로 변화됐는데, 왜 남에게는 떡을 줍니까? 말씀으로 영혼을 구원하고, 말씀으로 세워서 말씀으로 제자를 세우는 교회가 되길 원합니다. 22주년을 맞이해서 처음 이 교회를 어떠헤 시작해서 무엇으로 이 교회를 이끌었는지는 하나님 말씀 한가지이다. 그럼 하나님이 하신 일을 인정해야 한다. 그런데 말씀이 아닌 다른 것으로 한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을 것이다. 매주 주시는 말씀으로 전도하고 말씀으로 양육해서 내 신앙이 내 대에 끊어지는게 아니고, 말씀으로 제자를 세우는 제자훈련의 교회가 되길 원합니다. 그것이 다음 세대를 세우는 유일한 방편이 될 것입니다.

Friday, May 25, 2018

2018-05-25 (금요철야, 김용식전도사) 실패를 이기고 승리하라 (수7:1~15)

사람들이 말하는 많은 징크스가 있다. 소포모어징크스라고 있다. 소포모어는 2학년이라는 뜻인데, 1년차에는 굉장한 활약을 거두지만, 2년차에서는 잘 못하고 급격하게 몰락하는 경우이다. 우리가 삶을 살아갈 때도 승리와 성공을 하는 것도 어렵지만, 그것을 이어가는 것은 더 어렵다. 고난을 이겨내고 역경을 이겨내고, 성공을 거두는 것도 무척 힘들다. 하지만 성공을 이어나가는 것은 너무 어렵다. 애플이라는 기업은 스티브잡스가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서 아이폰을 나와서 애플은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이것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발전해나가는 것을 통해 성공을 유지하는 것이다. 한때 성공했던 기업일지라도 그것에서 머물과 신기루와 같이 사라지는 기업은 너무 많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이다. 은혜를 받고 놀라운 변화가 되는 것도 너무 어렵다. 하지만 받은 은혜를 유지하고 성장해나가고 발전해나가기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한 것이다. 가장 위험한 시기는 내가 훈련받는 시기가 아니다. 오히려 고난받고 훈련받는 그때는 안전한 시즌이다. 우리의 신앙에 있어서 훈련받는 시즌은 가장 안전한 시즌이기도 하다. 하지만 고난이 없는 시기, 더이상 훈련이 없어지는 시기가 내 삶을 더 위험하게 하는 시즌인 것이다. 고난이 없는 시기는 굉장히 위험한 시기인 것이다. (고전10:12) 자신이 서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승리했다고 생각하는 사람, 내가 신앙의 어느정도의 궤도에 올랐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넘어질까 조심해야 하는 것이다. 사도바울이 왜 이런 말을 했을까요? 이런 사람을 많이 봤기 때문일 것이다. 자기가 선줄로 생각하는 사람은 넘어지기 쉬운 것이다. 제자들에게 직접적으로 예수님이 "사탄아"라고 말한 것은 베드로밖에 없다. 뭔가 다 이룬 것 같을 때가 가장 위한한 것이다. (왕상15:5) 다윗을 표현할 때 여호와 보시기에 가장 합당하고 하나님의 말을 잘 들었다고 생각하지만, 성경에서도 "우리아의 일 외에는"이라고 단서를 달았다. 그때가 가장 위험한 것이다. 여리고성 전투는 1장이 나오지만, 아이성 전투는 2장이 나온다. 성경이 이야기해주고자 하는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다. 성공의 순간에도 실패를 이기고 승리하는 우리가 될 줄 믿습니다.

1. 아이성 실패의 원인

아간의 범죄로 실패한 것을 잘 알고 있다.

1) 하나님께 묻지 않음

난공불락의 여리고성을 무찔렀으니 승승장구해서 나가면 이길 것 같은 시즌이다. 좋은 때이다. 여리고성 가서 다 무찌르자 하는 좋은 시즌이다. (1)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진노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진도하고 계신 상태이다. 이런 상태에 계셨지만, 여호수아는 어떻게 했나요? (2) 여호수아의 사명은 가나안땅을 정복하고 여리고를 정복하는 것이다. So 정탐꾼을 보낸 것이다. 여호수아는 자기 사명을 적극적으로 한 것이자만, 이 일을 하나님꼐 물어보지 않았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에 순종할 때 여리고성을 정복한 경험이 있는데, 이상하게 아이성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정탐꾼을 보내는데 최선을 다했다. 물론 여리고성을 정복할 때 정탐꾼을 보내서 성공했던 경험도 있다. 이것이 여호수아의 성공의 루트이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하는데, 자기가 잘하는 것에 최우선권을 두었다. 우리의 삶에서도 이런 경우가 많다. 나에게 주신 강점, 은사, 남들보다 잘하는 것이 있다. 이렇게 살 때 열매가 나타나지만, 이런 기억들(성공의 패턴)들을 의지하게 된다. 승리를 성취하고 성취를 경험하게 되면 자신의 승리를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게 된다. 하나님이 주신 은사가 있다. 여호수아는 전략적으로 정탐꾼을 보내는 은사가 있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은사를 다 주신 줄 믿습니다. 찬양, 악기, 공부, 사람과의 관계성을 맺는 은사 등 여러 은사를 주셨다. 하나님의 뜻에 제한받지 않고 얼마든지 잘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마7:22) 귀신도 내쫒고 주의 권능을 행하는데 이것이 어떻게 잘못된 것일까요? 하나님의 인도함이나 은혜, 감동 없이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때가 가장 위험한 때이다. 내가 해왔던 것, 잘할 수 있었던 것을 이전과 같이 매너리즘처럼 하고 있는 것이다. 여호수아가 아이성점령이라는 것을 사명처럼 했겠지만, 하나님의 진노를 샀던 것이다. 아이성 실패의 원인은 하나님꼐 묻지 않는 것이다. 우리 삶에 실패를 가져다 주는 결정적인 원인이었던 것이다.

2) 자신을 의지하는 마음

하나님꼐 묻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하나님께 묻지 않는다. (3) 이렇게 정탐꾼이 여호수아에게 고백했다. 이 정탐꾼은 여호수아와 같은 마음이었다. 3000명만 보내는 것이 좋겠다고 여호수아에게 제안했다. 굉장히 좋은 의견이었다 .이 작은 성을 점령하는데 모두 움직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지휘관이 봤을때도 좋은 의견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다 올라가지 마소서, 수고롭게 하지 마소서"라는 생각이 정탐꾼의 마음이었다. 마치 자신들이 숫자가 많아서 정령했던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여리고성을 점령한 것이 마치 자기가 한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엄청난 은혜를 받고, 기적적인 능력을 받고도 이것이 더이상 나에게 은혜가 되지 않고 마치 자기가 한 것처럼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이것이 내가 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은혜가 은혜되지 않는 것이다. (고전15:10) 사도바울이 놀라운 사역을 많이 했지만 사도바울이 위대한 것은 엄청난 사역을 해서 위대한 것이 아니라 "이것은 내가 한게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이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인격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사도바울보다 위대한 사역을 한 사람들이 더 많았을 수도 있지만, 은혜를 은혜로 감당할 수 있는 겸손한 인격을 가졌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의의 면류관을 바라보며 달릴 수 있었다. 내가 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하나님의 은혜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는 분명한 인생관이 있다. 은혜를 은혜로 유지하지 못하면 자기 공로가 된다. 하나님께 묻지 않고 나를 의지하는 사람은 작은 실패 앞에서도 금방 좌절하게 된다. (6) 이럴 때 이스라엘 장로들은 이런 모습이 되는 것이다. But 아이성에서 3,000명 중에서 36명만 죽었다. 하지만 이스라엘에서는 큰 좌절을 겪은 것이다. 자신을 의지하면 작은 실패에도 낙담하게 되는 것이다.

3) 세상을 사랑하는 탐심 (11~15)

(수6:18) 바친 물건을 손대지 말라고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다. 이런 경고를 어기고 누군가가 바친 물건을 가지고 간 것이다. 여호수아는 제비뽑기로 누가 그랬는지 찾고 있다. 유다지파에서 아간이라는 사람이 바친 물건을 가져갔다고 걸렸다. 하나님이 "아간이 가져갔다"고 말씀 하시면 금방 잡혔을텐데 4번의 제비뽑기를 통해서 잡은 것이다. 하나님은 아간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셨던 것이다. 하지만 아간은 그동안 가만히 있다가 자신이 제비를 뽑은 후에야 죄를 고백했다. (21) 아간의 마음에 그것을 가지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것이 어떻게 시날산의 아름다운 외투이고 좋은 것을 알았을까요? 그런 탐심이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이 분명히 하지말라고 했는데 탐심이 들어오니 그 말씀이 아무것도 아닌게 되었다. 탐심은 영적인 세력이다. (골3:5) 바울은 땅의 지체를 죽이라고 했는데, 그것이 음란, 부정, 사욕, 정역, 탐심이라고 했는데 특별히 탐심에 대해서는우상숭배라고  부연설명까지 말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력화 할 수 있는 세력이 탐심이다.

2. 아이성 정복 방법

굉장히 간단하다. 실패 방법 반대로 하면 승리할 수 있다.

1) 기도하라

하나님꼐 묻지 않았기 때문에 실패했다. 그 반대로 기도하면 승리한다. (6) 실패와 좌절을 맞본 사람이 자기 문제를 향해서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주저앉은 것이 아니고 간절하고 애통한 심령으로 여호수아가 기도하고 있는 모습니다. 눈물로 기도하는 리더를 통해서 하나님은 돌파를 열어주신다. & 역사하신다. 여호수아가 자기 문제로 옷을 찟는게 아니고, 하나님나라의 문제로 인해서 하나님 앞에 애통한 심령으로 문제의식을 가지고 기도한 것이다. 하나님은 문제를 분석하고 책임을 묻는 사람이 아니고, 애통한 심령으로 부르짓는 사람을 보신다. 공통체의 문제를 가지고 기도하는 사람이 리더십이고 리더이다. 느헤미아도 영적 리더의 표본이다. (느1:1~4) 느헤미야는 술맡은 관원이었다. 지금으로 따지만 청와대 비서관이다. 자신의 민족의 안타까운 형편, 어쩔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 실패한 공동체를 향해서 마음을 다해서 금식하면서 기도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통해서 인도해주시는 것이다. 이런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은 인도해주시는 것이다.

2) 죄를 멸하라

리더를 통해서 공동체의 문제를 알려주셨다. (16) 하나님이 말씀 하신 것을 미뤄둔 것이 아니고 그 즉시로 주저하지 않고 순종하는 여호수아를 통해 죄를 멸하시는 것이다. (24~25) 아간에게 밝혀진 죄에 대해서 명확하고 단호하게 죄를 멸하는 일이 일어났다. 강력한 리더십 가운데 단호하게 죄를 대했다. 인간적인 것으로 대하지 않았다. 회개가 성령이 역사하는 곳인지 아닌지 결정짓는 것이 죄에대한 단호한 결단인 것이다. 아간을 비인간적인 것으로 대했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겠지만, 여호수아는 하나님이 하라고 하신것 그대로 한 것이다.
초대교회 또한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통해 똑같은 일이 일어났다. 모든 사람들이 은혜 받고 자신의 소유를 모두 교회에 드리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행5:3~4) 아나니아의 마음에 이 땅을 팔아서 사람들을 도우면 인정받겠다는 마음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 성령을 속이면서까지 행한 것이다. 하나님은 이런 아나니아의 마음을 그냥 두지 않고 그 자리에서 바로 이야기하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공동체에서 이런 죄를 반드시 멸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성령께서는 단호하게 이 일을 다루신다.
평양의 부흥이 된 것은 길선주장로가 자신의 죄를 고백한 것과 회개를 통해 부흥이 된 것이다. 자신의 형제를 질시하고 동역자인 선교사를 미워했다는 것을 고백하고 회개한 것이다. 길선주 장로가 큰 죄를 지었나요? 오늘날로 보면 별거아닌 죄이지만, 성령이 역사하시는 공동체가 되니 작은 죄라도 하나님께서 들추시고 회개하는 역사가 성령을 통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3) 순종하라

기도하는 리더가 일어나고, 공동체에 기도의 역사가 일어나고 죄를 제거하는 회개의 역사가 일어난다. 순종하는 리더를 통해 일어난다. 여호수아는 3,000명만 데리고 갔는데 다 데리고 갔고 탈취할 물건을 가지라고 했고, 아이성 뒤에 복병을 두라고 했다. 철저하게 작전을 통해 아이성을 점령하게 됐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우리의 실패에 연연하지 않는 분이다. 우리가 실패해도 전혀 문제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이다. 아이성의 실패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그게 문제가 아니라 회개하고 순종하지  않는 것이 문제이다. 네가 낙담했던 아이성으로 다시 가라고 하신다 너는 더이상 실패에 연연하지 말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실패한 그곳에서 다시 일어나느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10)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성공 후에 가져온 실패라 할지라도 그것에 머무리즈 말고 다시 일어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Sunday, May 20, 2018

2018-05-18 (금요철야, 손인규목사님) 나의 하나님을 만나라 (창17:1~8)

우리의 삶은 누구를 만나느냐? 무엇을 의지하느냐? 누구를 의지하느냐가 매우 중요한 것이다. & 나의 삶이 아무 문제 없을 때는 누구를 의지하고 있는지 차이가 없다. 하지만 사건을 만날 , 기회를 만날 나의 기초가 어디에 있는지 드러나게 된다. 어떤 사람은 사건이 하나님 앞에 믿음을 보이는 것이 되고, 어떤 사람은 믿음없음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의지해야 하는지 고백한다. (146:3~5)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소망을 두는 사람은 복이 있다고 하신다. 세상에 가진것이 없더라도 하나님을 진정한 의지를 한다면 우리가 복있는 삶이 된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 경건한 사람은 고난 가운데서도 견고하다.  so 하나님 앞에서 경건한 삶을 살아야 한다.

1. 아브람의 하나님


아직 아브라함으로 이름이 바뀌기 전에 사건을 말하고 있다

1)말씀이신 하나님
아브라함이 갑자기 부자가 되거나 하는 등의 환경이 바뀐게 아니다. 아브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기 때문이었음을 믿으시길 바래요. (12:1~2) 75세가 때까지 아무 소망 없었던 아브람에게 변화를 것이 이때의 말씀을 믿고 순종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진정으로 믿었기 때문에 본토친척아비의 집을 떠났다. & 그만 가라고 때까지 계속 갔다. 놀라운 일이다. 당시에는 전쟁이 나지 않는 이상, 동네에서 죄를 지어서 떠나야 할만큼의 이유가 아닌 이상 낮선 땅으로 아무 이유가 없다. but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너의 민족을 창성하게 것이고 너를 복이 되기 하겠다는 말씀을 스쳐지난게 아니고 믿은 것이다. 자녀도 없는 노부부가 여기 왔을까? 하는 생각을 동네사람들은 생각했을 것이다. 전에 살던 지역에서 죄를 지어서 쫒겨왔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브람은 평범하지 않는 삶을 살아왔던 것이다. 우리가 생각해봐야 것은 하나님은 소망없는 75세된 노부부를 불렀을까요? 아브람이 대단한 사람이어서 그랬던게 아니고, 반대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에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님이 보실 상태가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보여주기에 좋은 조건이었을 것이다. 이것이 인간적인 눈과 하나님의 눈의 차이이다. 믿음이란 것은 이렇게 모험적이고 도전적인 것이다. 믿음이 없으면 예측가능한 것만 생각하고 행하면서 사는 것이다. 믿음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니까 믿어지는 것이지, 내가 바라는 것이 이뤄지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75세에 부르심을 받았는데 99세면 24년이 흐른 것이다. & 아내 사래는 89세이다. 아브람은 중간에 기다리지 못하고 인간적인 생각으로 여종을 통해서 이스마엘을 낳은 것이다. 아브람이 육신의 방법, 인간적인 지혜와 꾀를 것을 막지는 않았지만 육신의 자녀인 이스마엘을 낳아서 문제가 것이다. 99세가 됐을 하나님은 찾아오셨을까요?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 찾아오신 것이다. 아브람 편에서는 갑자기 하나님이 찾아오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는 우연이 아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약속의 말씀을 주시고 믿음으로 순종하고 있는지를 보고 계셨다. & 말씀을 이룰 때가 되었기 때문에 지금 오신 것이다. 우리 편에서는 너무 늦어서 소망이 지난 것처럼 보인다. but 하나님의 때에 반드시 응답하신다. 카이로스의 때가 되었으니 찾아오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알고 계시고 보고 계신 것이다.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기다리고 있기를 하나님은 기대하고 계신다. 우리 안에서 말씀이 떠내려가면 안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이 있다면 말씀을 붙잡으시길 바래요.

2)전능한 하나님

하나님의 이름을 말하는데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고 하셨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히브리어로 "El Shadai(엘샤다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공급자가 되신 하나님이시다. 전능한 하나님, 엘샤다이라는 말은 영어성경으로는 God Almghty라고 한다. "나는 너의 모든 것을 공급하기에 충분한 하나님이시다"라는 것을 아브람에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아브람이 있는게 이제는 정말 아무것도 없다. but 하나님은 때를 기다리신 것이다. & "나의 이름은 전능한 하나님이다" 말씀하신다. 우리편에서 아무것도 없는 때가 바로 하나님꼐서 일하신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의 삶에 모든 것을 행하시기에 충분하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부르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창조는 없는 가운데 유를 창조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아무 것도 없는 가운데 창조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창조의 하나님이시죠? so 없는 것을 있게 하신다. 하나님은 성경에 이스라엘에 전느하신 하나님으로 나타나신다. (81:10)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기대하길 원하신다. 예배 나오실 , 기도하러 나오실 정말 하나님을 기대하십니까? 하나님은 물을 포도주로 바꾸시고, 말씀으로 세포와 조직을 만드셔서 걷게하시고 뛰게하시는 분이시다.

3)믿음을 요구하심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하시고 "너는 앞에 완전하라" 하신다. 이것은 도덕적인 완전함, 인간적인 착함을 말하는게 아니다. 하나님 앞에 신뢰를 지키고 관계에 있어서 완전함을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말씀에 신실하시다. but 아브람은 자신의 생각대로 행했다. (2~4) 아브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금까지 왔는데, 아내의 말을 듣고 흔들렸다. & 여종인 하갈과 동침해서 아이를 낳았다. 결과 또다른 고통이 생겼다. (하갈의 주인 무시) 믿음으로 시작했다 할지라도 믿음이 흔들리면 세상의 방법대로 결정하게 된다. 우리 육신이 강하기 때문에 이론과 주장이 강한 사람은 뜻대로 했다가 오히려 고통을 당하게 된다. but 하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람과 사래를 다시 찾아오셨다. 아브람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신 것이다. &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시 돌아오라는 것이다. 이제 다시 하나님 앞에서 믿음을 보이라는 것이다. 본토친척아비의 집을 떠나서 다시 신실함, 믿음을 요구하시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일을 믿음으로 바라보길 바래요. 불가능한 그것을 하나님의 이르실 것으로 보는 것이 믿음이다. (11:1)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고백한다. 하나님이 무엇을 행하길 원하시는지 말씀이 귀로 들리면 영의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게 된다.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영적인 귀와 눈이 있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나의 귀에 누구의 말이 크게 들리느냐, 나의 눈에 무엇이 보이느냐가 중요하다. (왕하6:16~17) 사람이 하는 일은 눈에 보이는 상황이나 사람들의 말에 두려움을 떨게 만든다. 우리의 상황을 것이 아니고, 다른사람의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볼수만 있다면 우리의 마음이 달라질 것이다. so 믿음이 있기를 구해야 한다. 영적인 변화를 주고, 낙담과 슬픔을 주고 사람을 통해 오는 부정적은 , 불신앙을 이길 있는 것이 믿음이다. 하나님은 악조건 가운데 찾아오셔서 "나는 샤다이의 하나님, 전능한 하나님이다" 말씀하고 계신다. 하나님 편에서는 지금 하나님을 드러내시기에 충분한 조건이 되신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불가능한 상황을 통해서 창조적인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이시다. (4:17, 19~21) 아브람은 하나님이 죽은자를 살리시고 없는 것을 이기시는 분임을 믿었다. 우리 편에서 중요한 것은 믿음으로 시작한 것이라면 끝까지 믿음을 붙잡길 바래요. & 일이 이뤄지기까지는 수많은 불신앙과 방해가 오기 마련이지만, 우리편에서는 그것들이 믿음을 붙잡길 바래요. 인간적으로 모든 소망이 끊어졌지만 지금이라도 나를 지키실 것이라고 끝까지 믿었다. 그것이 아브람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할만한 것이었다. & 100세에 하나님이 주신 믿음의 자녀를 주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태도가 중요한 것이다. 우리가운데 과거에 어떤 말씀이 믿어지고 능력이 경험이 있다면 10, 20년이 지났더라도 말씀이 기억이 것이다. 신앙을 하긴 하지만 말씀을 가볍게 여기는 사람은 말씀의 권능을 아직 알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말씀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도 믿길 바래요. 의사의 매스가 사람을 살릴수도 있고 죽일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면 의사가 매스를 아무렇게나 사용할 없을 것이다

  1. 확증을 주시는 하나님

말씀으로 찾아오시고 믿음으로 다가오셔서 확증을 주신다

1)언약의 말씀(2)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너와 사이에 언약을 두겠다" 말씀하신다. , 하나님꼐서는 아브람을 때마다 언약을 기억하시겠다고 하신 것이다. & (7) 아브람의 후손들과도 언약을 맺겠다고 하신 것이다. 99세의 아브람은 아직 자녀가 있는것도 아니다. 하나님은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아브람의 자녀에게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오늘 내용은 전혀 새로운 내용도 아니다. 전에 하신 말씀을 다시 기억하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시다

2)이름을 바꾸심

믿음으로 선포하신 것이다. (5) 아브라함은 많은 민족, 열국의 아버지라는 뜻이다. & 사래는 사라 (열국의 어미) 바꾸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선포하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이 있다면 자신에게 선포해야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이것을 듣게 되겠죠? 나를 알고있는 선입견, 불신앙과 가치관에 도전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이제 믿음의 행위를 하길 원하시는 것이다. 먼저 우리 안에 믿음으로 심겨져야 한다.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믿어지고 선포할 능력이 생기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 어떤 행하실 일에 대해서 기도하고 선포될 놀라운 능력이 있다. 중요한 것은 의사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꼐서 계획하시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날 것을 믿길 바래요. 믿음으로 취하게 말씀이 일어나는 것이다. (10:17) 말씀을 들을 말씀에 생명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믿어질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을 통해 중요한 것은 아브라함이 만난 하나님을 우리도 만나야 것이다. (144:15) 아브라함만 이런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이 만난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셔야 것이다. 지금도 우리에게 "나는 너의 하나님이 되길 원한다." 말씀하신다. "엘샤다이" 하나님으로 우릴 만나길 원하신다. 나의 하나님이 되어주실 것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