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들을 향한 어머니의 간구
예수님이 지금 십자가에 죽으러 가시는데, 제자들은 예수님의 심정이나 뜻에 상관없이 나름대로의 꿍꿍이를 가지고 예수님을 따르고 있다.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에게 "뭘 원하냐?"고 물으니 "내 아들이 보좌 좌우편에 앉히는 것"이라고 했다. 제자들 앞에서 말하니 정말 믿음이 좋았다. 제자들은 두 형제에게 화를 냈다. 그동안 누가 더 크냐고 싸웠는데, 어머니까지 동원해서 그러니 제자들은 화가 났을 것이다 두 아들이 잘 되게 하려는 어머니 때문에 두 아들은 제자들로부터 왕따당할 위기인 것이다. 사람이 욕심에 사로잡히면 자기밖에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게 초라한 인격인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는 말씀을 했는데 이 어머니는 예수님은 온데간데 없고 두 아들밖에 없다. 이는 열정이 아니고 인간적인 욕심이다. 모든 어머니가 이런 모성애가 있는건 사실이지만, 부모의 욕심으로 자란 아들은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다. 지금 이 어머니는 예수님의 좌/우편 자리에 자신의 아들을 찜해놓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는 통할지 몰라도, 하나님 앞에선 통하지 않는다. 주일학교 교사들이 아이들 돌보는 것도 어렵지만, 사실 부모가 더 어렵다. 자기 아이밖에 안보인다. 모성애도 인정하지만 그 열매도 봐야 한다. 문제있는 아이는 자기잘못은 알더라도 얘기하지 않는다. 부모는 문제있는 아이 얘기만 듣는다. 문제있는 부모 아래 문제있는 아이가 나오는 것이다. 부모가 아이의 양육을 막는 1순위이다. 교사는 아이를 위해 먹을거 사주고 기도해준다. 객관성 없는 부모 아래서 객관성 없는 자녀가 자라는 것이다. (롬8:5~7) 육신적인 사람은 육신을 따르기 때문에 육신적인 일을 생각하지만,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은 영의 일을 생각하는 것이다. 육신의 생각은 당시는 좋아보여도 결과가 안좋지만, 영의 생각은 힘들어보여도 결과가 좋고 생명과 평안이 있다. 예수님은 심각한 생각으로 올라가고 있는데, 제자들의 생각은 달랐다. 예수님의 마음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다. 3년을 같이 있어도 알지 못한다. 예수님을 따르면서도 동기와 목적이 다르면 3년을 같이 있어도 한 영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예수님을 따르긴 따라도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르는 동기와 목적이 달랐다. 사람들 속에 있는 인간적인 욕심이 다 드러나게 되어있다. 이게 십자가의 능력이다. 교회에서도 십자가를 져야할 문제, 사역, 사건이 있다면 평소에 드러나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이 나타난다. 십자가를 감당할 것인지, 육신의 욕심이 나타나든지 하는 것이다. 다니엘 기도 기간 가운데도 어떤 사람은 더 육신적인 소욕이 드러나는 반면, 어떤 사람은 수련회의 역사를 위한 기대로 금식도 하고 기도도 하고 한다. 중심이 다 나타나는 것이다. 중심을 보기위한 기회이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게 나쁜게 아니다. 나를 잡고있는 그동안 나타나지 않는 문제를 해결하고 넘어갈 수 있는 은혜의 기회이다. 중심을 보이는데는 중심을 보일만한 사건에서 중심을 보이는 것이다. 내가 항상 뭘 하려면 어려움이 있다. 이런데서 중심을 보여야 하는 것이다. 매번 신앙을 할 때마다 사건이 없으면 신앙이 죽은 것이다. 일이 꼭 일어난다. 아무 일 없을 때 예배 나오는것과 일 있을 때 예배 나오는 것은 값지불이 다른 것이다. 이 사건을 통해 내 신앙이 한단계 돌파되는 것이다. 이번 수련회 준비하면서 그 문제에서 탈출하길 바래요.
2. 하나님을 향한 예수님의 간구 (22)
예수님 좌/우편에 앉는 것이 어떻게 앉을 수 있는건지 너희는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욕심은 하나님 영광보다 자신의 것을 구하는 것이다. (요일5:14)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모르고 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22b) 예수님이 마시려는 잔은 십자가에 죽으려는 잔이다. 그러자 무슨 잔인지도 모르고 마시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적인 것은 인간적인 열심, 헌신, 노력으로 되는게 아니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위한 특별한 열심을 구한 것이다. 하나님이 구할 것을 인간적은 욕심, 노력으로 구한 것이다. 이걸 모르면 세상에서 열심히 공부, 노력해서 성공하듯이 신앙도 성경 열심히 보고 기도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바리새인이 이렇게 열심히 한다고 신앙이 생기나요? 오히려 자신보다 열심히 하지 않는 사람을 멸시, 판단, 비판을 하는 것이다. (23) 예수님이 받을 잔은 십자가의 잔, 값지불의 잔인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 예수님도 그냥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게 아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의 잔을 마셨기 때문에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것이다. 예수님도 십자가를 지는게 절대로 쉬운게 아니었다. 그 잔을 마시기 위해 예수님이 갯세마네에 올라가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될때까지 기도하신 것이다. 그것도 같은 기도를 3번씩이나 했다. 그 시간에 야고보, 요한, 베드로는 기도하라고 했는데 깊이 잤다. 하나님 우편에 앉는 것이 어떤건지 아시기 때문에 예수님은 하나님 우편에 앉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고, 그 잔을 먹을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한 것이다. 십자가 없는 신앙을 구하니까 기복신앙이라는 좋지 않는 단어가 생긴 것이다. 우리는 구할 것은 알지 못하고 십자가는 피하고 달라는 것만 달라고 기도한다. 구할 것만 구하면 나머지는 그냥 덤으로 주시는 것을 믿으셔야 한다. 착각하면 안된다. & 하나님을 위한 헌신과 나를 위한 욕심을 구분해야 한다. 모든 것이 하나님을 위한 헌신이 아닐 수도 있다.
수련회를 통해 신앙의 한단계 돌파를 위한 기대와 사모함으로 돌파하시길 바래요. 그러기 위해서는 차던지 뜨겁던지 하는 열정이 있어야 한다. 어떻게 변화될 것을 기대하며 바라볼 것이 믿음이다. 놀라운 믿음의 기대가 증거로 나타나는 믿음의 수련회가 되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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