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July 23, 2017

20017-07-23 (주일예배, 정의호) 지위와 권세 (마20:24~28)

다른 나라에서 이민가서 사는것은 쉬운건 아니다. 관습, 삶의 방식 등이 다르다. 여행할때와 그 나라에서 사는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언어습득, 문화적응 등의 문제가 만만치 않다. 하지만 어린아이들은 언어, 문화 등에 상대적으로 쉽게 적응한다. 아이들에게는 자기 나라에서 살던 기존 관습이나 제도에 베인것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들수록 그런것들이 깊이 베여있다. 알아도 자기 생각을 바꾸는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30년 전에 이민을 가면 30년 전 한국 스타일 그대로 사는 사람도 있다. 좋은면도 있지만 매우 불편하겠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기보다 자기 생활을 지키기 위해 변화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변화하지 않으려는 자기의 삶은 생각하지 않고 그 나라 사람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어려워한다. 옛날의 삶과 하나님나라로 온 이후의 삶을 비교해볼 수 있다. 이제는 하나님나라의 삶을 살 때 습득해야 할 언어, 풍습 등이 있다. 어떤 사람은 빨리 적응해서 사는 반면, 어떤 사람은 힘들어하는 사람도 있다. 예전의 취미,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새로운 말씀을 어려워하고 버거워하는 사람이 신앙을 왜 이렇게 해야하는가 하면서 불평하게 된다. 예수님을 따르는 신앙은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져야한다고 했다. 신앙의 어려움은 그것을 안하려고 하면 신앙이 어려워진다. 변화될수록 신앙은 더 쉬워진다. 변화되지 않는만큼 신앙은 더욱 버거워지는 것이다. 옛것을 지키려는 자세로는 변화가 어렵다. 예수님 자신은 영원한 미래를 위해 예언적은 삶을 사셨는데, 예수님 자신도 날마다 자신을 부인하는 삶을 살았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면 예수님 자신도 자신을 부인해야 했다. 제자들 속에는 30년동안 세상의 가치관이 있었기 때문에 변화가 쉽게 되지 않았다. 세상의 가치관이 안바뀌는만큼 내가 변화되지 않는 것이다. 제자들의 실수들을 통해 예수님은 하나님나라를 가르쳤다. 세상에 나가서나 교회 안에서까지도 자기에게 주어진 지위나 직분, 권세에 대해서 세상에서 살아오는 개념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많다. 하나님 나라에 속한 성도로써 하나님나라의 새로운 지위와 권세의 개념을 바로알길 바래요.

1. 세상에서 큰 자


요한과 야곱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나와서 자녀에게 하나님 좌우편에 앉게 부탁했다. 그때 다른 제자들은 화를 냈다. 모두 똑같은 욕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공동체는 욕심을 가진 자로 인해 분리가 된다. 옛사람의 가치관을 하나님나라의 가치관으로 바꾸는 것이 예수님 훈련의 촛점이다. 제자들은 3년동안 예수님을 따랐으면서도 세상의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25) 이방인은 예수님을 안믿는 사람이다. 이방인들의 권세자들이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 마음대로 권세를 쓰기를 원한다. 제자들은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게되는 것이다. 자기 유익을 위해 남을 희생시키고 하는 것이다. 세상 권세자들은 자기를 위해 남을 희생시키는 것이 권세의 목적이다. 특별히 권위에 대한 상처, 열등감이 있는 사람은 이런 사람에게 권위를 주면 권위를 남을 부리는데 사용한다. 교회에서 집사, 장로, 셀직분을 가진 것을 감투로 생각하면 남을 시키고 조정하고 가르치려고 하고 자기 뜻에 무조건 따르길 하는 사람이 되면 안된다. 교회에 주어진 직분은 감투가 아니다. 직분자가 되기 전에는 그렇게 잘 섬기던 사람이 직분을 주면 다른 사람이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런 사람은 차라리 그 직분을 갖지 않는 것이 하나님 앞에 나은 것이다. 바리새인과 서기관에게 그런 모습이 많이 보여진다. (잠26:8) 남을 괴롭게 할 뿐더라 자기 자신의 인생에도 재앙인 것이다. 얼마 가지 못하고 스스로 무너진다. 직분을 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주어진 만큼 받는 것이 안전하다. 내 믿음의 분량, 인격의 분량을 넘어서 주장해서 직분을 받으면 내 수명을 단축하고 재앙을 불러드리는 것이다. 사울이 왕이 되기 전에는 그의 겸손함을 보시고 사무엘을 통해 왕으로 세웠다. 하지만 왕이 된 후의 모습은 너무 많이 달랐다. 왕이 된 후 얼마되지 않아서 자신을 왕으로 세운 선지자인 사무엘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 결과는 하나님이 버리시고, 하나님이 버리시니까 악신이 들어서 평생 다윗을 죽이려고 했다. 하나님의 권세를 빼앗기면 그 자리에 악신이 들어간다. 악한 권세로 이용한다. 하나님은 사울의 권세를 바로 빼앗지 않고 그를 다윗을 훈련시키는 악한 도구로 쓰신 것이다. 직분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으로 상급쌓는 직분으로 쓰는 반면, 악한 도구로 쓰이는 권세도 있다. 내게 주어진 권세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쓰이고 있는지 하나님 말씀을 거스리는 권세로 쓰이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교회에서 직분으로 세워진 것은 좋은 것이지만, 그 권세를 의의 권세로 쓰느냐 악한 권세로 쓰느냐가 중요하다. 왜 그렇게 직분에 연연하나요? 자신에게 작은 지위나 직분이나 권세가 주어졌을 때 두렵고 떨림으로 감당해야 한다.

2. 천국에서 큰 자

너희는 세상 사람들이 가진 권세의 개념을 가지면 안된다. 하나님 나라의 제자들이라는 것을 강조하신다. (26, 27) 세상의 개념과는 반대이다. 자기를 낮추려는 자가 천국에서는 큰 자라는 것이 천국의 원리이다. 지식으로는 매번 말씀을 듣지만, 말씀을 지식으로 듣는 사람은 삶에서는 말씀과 전혀 다른 삶을 산다. 말씀과 다른 행동을 아무 꺼리낌 없이 한다. 이것은 아무런 도움이 안된다. 매주 말씀을 영으로 듣지 못하면 말씀과 다른 부끄러운 행동을 한다. 이것이 종교인이다. 예배 때 주어지는 말씀이 자기 삶에 적용될 수 있는 신앙이 실제적인 천국으로 갈 수 있는 신앙이다. 그냥 섬기면 되는 것이다. 이것을 알았으면 살로매 어머니는 예수님께 구하지 않았어도 됐다. 그냥 아들에게 가서 "제자들을 섬겨라"고 하면 되는 것이다. 자녀들에게 열심히 하는 것보다, 진정으로 자녀가 잘 되는 방법을 알려줘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을 깨달으면 욕심을 낼 필요가 없다. 종이 되는 것은 쉬운건 아니다. 모르는건 아니다. 이런 자에게 하나님이 예비하시는 것이다. 남을 위해 낮아지지 못하고 자존심 하나 꺽지 못하면서 좋은 지위와 영광을 바라고 잘되는 것만 바라는 것이 자신의 신앙을 어렵게 하는 것이다. 내가 남에게 섬기고 낮아져서 남의 종처럼 되는것이 싫다는 것이고, 그래서 낮아지는게 싫다는 것이다. 이런 마인드와 개념을 가지고 어떻게 예수님 말씀대로 살 수 있나요? 남을 섬길 인격, 부인할 인격이 안되니까 자꾸 지위를 탐하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리더의 개념은 남을 섬기고 종이 되는 것이 리더인 것이다. 하지만 제자들의 리더의 개념은 부리려고 하고 높아지려고 하는 것이 리더의 개념인 것이다. 종이 되어 섬길 수 있는 사람이 하나님 나라의 권세를 가진 사람이다. 세상은 반대이다. 세상에서는 지위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섬기는게 더 어려워지는 것이고, 낮아지는게 더 어려운 것이다. 섬기고 낮아지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더 높여주시는 것이다. (28) 이런 권세자의 복음을 전해주는 분이 예수님이고, 자기 자신이 하나님 나라에 가장 큰 권세자가 누구이고 그런 분이 여기서는 어떤 삶을 사는지를 보여준다. 이 말씀보다 더 대단한 말씀은 없다. 이 말씀을 하신 분이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권세를 가진 분이다. 그런데 이 세상을 창조하신 왕중의 왕인 분이 섬김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의 권세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는 개념이다. & 결국 자신의 목숨을 대속물로 주려는 것이다. 이것은 섬김의 극치이다. 하나님으로 부터 받은 권세가 있는 사람만이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이 지위를 받아도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권세라면 낮아지고 섬길 수 있지만, 내가 섬기고 낮아질 수 없는 권세라면 그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권세는 아닌 것이다. 하나님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종이 하는 발씻기는 일을 예수님이 직접 하신 것이다. 모범으로 하늘나라의 권세를 보여주신 것이다. 제자들의 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이것은 능력이 없으면 하지 못하는 일이다. 권세가 없으면 종이되어 낮아질 수 없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권세가 없는 자는 자존심 쎄고 고집 쎈 것이다. 이런 것이 하나님 나라를 무기력하게 하는 것이다. 보통의 사람은 가치있는 것에 목숨을 걸지만, 예수님은 아무 가치 없다고 생각한 세리와 창귀, 죄인들을 위해 세상에서 가장 가치있고 보배로운 것을 위해 희생하고 목숨을 건 것이다. 하나님나라의 권세와 능력을 가진 자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가장 가치없는 것은 자기를 위해, 가족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것이다. 욕심, 이기적인 사람일수록 이렇게 잘 한다. 예수님은 자기를 얻고자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라고 하셨다.이 세상은 이런 개념이 전혀 없는데, 하나님 나라에 획기적이고 창조적인 개념을 예수님은 보여주신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권세있는 자의 모습이고, 이런 권세는 하나님 나라의 생명을 가진 자만이 할 수 있다. (빌2:7~11) 자기 비전, 뜻을 버리는거 어렵다. 권세가 없어서 어려운 것이다. 능력이 없어서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피조물인 사람처럼 되었다는 것은 쉬운게 아니다. 교회, 셀에서 자존심 조금만 내려놔도 인생이 달라질텐데 능력을 가지길 바래요. 하나님나라는 말이 아니라 능력이다. 죽으면 모든게 끝난다. 죽을 수 있으면 신앙이 완성되는 것이다. 예수님이라 할지라도 자기를 부인할 수 있어야 되는 것이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는 것이다. 이런 예수님에게 하나님은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으로 주셨다. 예수님이 달라고 한게 아니라 이 땅에서 종처럼 자신을 낮추고 종처럼 죽어진 것이다. 종된 삶을 살았더니 예수님의 좋은 자리를 예비하신 것이다. 내가 욕심부린다고 되는게 아니기 때문에 욕심부릴 필요가 없는 것이다. 작은 직분, 지위가 있더라도 그것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 그 직분을 세상사람처럼 나를 위해 쓰지말고 낮아져서 종처럼 섬기는 자세로 한다면 직분 때문에 큰 상급자리를 예비하신 것을 믿으시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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