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삶의 기준은 우리가 알다시피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예언하신 말씀에 따라서만 행하시는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월절 명절이기 때문에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것이다. (요5:19)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신 것이다. 예수님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이런 관계이다. 이것은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떠해야할지를 예표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말아야 하고, 하라는 것만 해야한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so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은 과거에는 내 마음대로 살 수 있어도, 이제는 그렇게 살면 안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만 살아야 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이 가나안 혼인잔치 사건을 기억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머니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의무가 없었다. 물을 포도주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었지만 그러지 않으셨다. (요7:6) 우리는 항상 내 때를 따라 산다. 감정적인 사람은 자신이 느끼는대로 하는 자유가 있고, 이성적인 사람은 내가 옳다고 하는 때에 하는 자유가 있다. 오늘날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 중에서도 자기가 느끼는대로 옳다고 생각하는대로 말하는 사람이 많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없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살 수가 없다는 의미이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해보길 바래요. 나와 하나님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깨닫길 바래요. 나의 자유는 영적인 자유가 아니고 육적인 자유이다. 이런 자유는 없어야 한다. 진리를 따라 살면 죄를 지을 수 있는 자유로부터 이제는 떠나는 것이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을 떠나는 목적은 죽으려고 가시는 것이다. 사람이라면 늦게 가거나 해서 내 때를 따라서 올라갈 것이다. 지금 하라고 하는데 지금 하지 않는다. 죽는 것, 죽는 방법도 자기 뜻대로 할 수 없는 것이다. 자기 하고싶은대로 해서 어떻게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을까요?
이 과정에서 예수님은 다시 3번째로 십자가와 부활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의 의미는 예수님은 자신이 왜 올라가고 앞으로의 삶이 어떨지 미리 알고 계시는 것이다. 이는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아시는 것이다. 이게 예수님만 아는게 아니고 우리도 우리가 가야될 인생의 마지막을 성경에 다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제자들은 예수님과 같이 다니고 훈련도 받지만 아무런 예언적인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 제자들은 자기가 가야할 길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감람산에서 예수님이 잡히셨을 때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이다. (요6:38) 예수님이 이 땅에 자기 일을 하려고 온 것이 아니고,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신 뜻을 행하기 위해 오신 것이다. 내가 놀고싶고 내가 원하는 것을 하려고 우리도 이 땅에 온게 아니라는 뜻이다. 내 의지로 태어난게 아니잖아요. 만세전에 나를 통해 하나님이 해야 하실 것을 행하고 그 삶을 살게 하려고 이 땅에 태어난 것을 믿어야 한다. 내가 우연히 태어나서 내 마음대로 사는게 아니다. 어떻게 예수님이 예언저인 삶을 살았는지 잠깐 보고자 합니다.
1. 예수님의 탄생
(마1:21~22)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 처녀의 몸에서 초라한 말구유에서 오신 이유이다. 우리는 예수님 우리 집에서 모셔야 할텐데 라고 하지만 그건 잘못된 생각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파하려는 것이다. 이미 몇천년 전에 예수님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다. 높게 오실 능력이 없어서 그렇게 오신게 아니라, 하나님 말씀을 이루는게 의미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언적인 뜻이 그게 아니라면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는 것이다. 형편없어보이는 가정, 초라한 상황 이런 것을 예언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의 아들조차 말구유에 보내시는 하나님이 나를 초라한 가정에 초라한 직업을 주는게 뭐가 문제가 되나요? 이런것을 원망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모라는 것이다.
2. 애굽의 피난
2세 이한의 아들은 헤롯이 다 죽이기 때문에 에굽으로 도망갔다. 헤롯이 무서워서 헤롯을 이길 힘이 없어서 자신의 아들을 야밤도주하듯이 도망갔나요? (마2:15) 불쌍한게 아니다. 예수님이 힘이 없어서 에굽으로 가신게 아니다. 하나님이 자신에게 하신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 에굽으로 내려가신 것이다. 자신의 아들도 그렇게 하시는 하나님이다. 나에게 두신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는게 더 중요한 것이다. 내가 고생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입니까? 내가 고생으로부터 피하는게 더 중요한가요? 아니면 그 고생으로부터 피하는게 더 중요한 건가요? 그것을 값지불 해서까지 하나님의 말씀이 이뤄지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3. 나사렛에 사심
이스라엘에 좋은 지역 많다. 아름답고 성스러운 도시를 놔두고, 촌동네인 나사렛에서 사신 이유가 있나요. 내 태생과 삶에 불만 많은 사람도 많을 것이다. 예수님이야말로 하나님의 아들로서 선택권이 없었을까요? (마2:23) 이유는 한가지다. 하나님이 선지자에게 주신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 나사렛에서 살게 하신 것이다. 또 더 나아가서는 이 국가, 직장, 가정에서 사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말씀을 이루는 것 뿐이다. 왜 여기서 태어나서 여기서 있고 여기서 일하고 있는 것을 물어불 필요가 없다. 자신의 주어진 형편에 감사하길 바래요.
4. 예수님의 말씀
예수님 조차 자신의 말을 할 권리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꼐서 주신 말씀만 전해야 한다. (요12:49, 14:10) 내가 내 마음대로 말한게 아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고, 말씀이신 예수님 조차 말씀을 제대로 하지 않으셨다. 왜냐면 아버지께서 하라는 대로 하지 못해서이다.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은 자기의 말을 하면 안된다. 자기의 말을 하면 사람들은 좋아할지 몰라도, 자기의 때를 따라 자기 하고싶은 말을 하며 사는 것이다. 사람의 말은 혼은 자극시킬지 몰라도 영혼의 울림이 없다. 그래서 열매가 없다. 하지만 예수님은 자신의 말을 하지 않는다. so 예수님은 새벽에 기도하신 것이다.
5. 치유 사역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많은 사역이 치유사역이었다. 귀신을 내쫒고 연약한 자를 치유하는 것을 치유사역이라 한다.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이 하라는 것만 하는 것이다. (마8:16~17) "이루려"고 하시는 것이다. 예수님도 병을 고치는게 목적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는게 목적인 것이다.
6. 예수님의 비유
중요한 말씀은 예수님은 비유로 말씀하신 것이다. (마13:34~35) 예수님은 설교하고 말씀을 전하는 방법 조차도 성경이 이루려 하는 것이다. 아무렇게나 하시는 일이 없어 작은거 하나도 말씀을 이루려는 것이다. 성령의 인도하심이 없으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바울도 아시아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싶었다. 성령이 막힌 사람은 그게 아닌데 자기 뜻대로 막 한다. 내 주장대로 하면 안되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이 어렵게 들리는 사람만이 어려운거지, 쉽게 듣는 사람은 쉽게 듣는다. 들을귀 있는 자가 되길 바래요.
7. 나귀를 타신 예수님
(마21:2, 4) 자기 인위적으로 겸손한 것은 오만이다. 예수님이 백마를 타지 못해서 안타셨을까요? 무슨 말을 타는지가 중요한게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 말씀을 드러내는 것이냐가 중요한 것이다. 언제든지 자기 영광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겸손한 자만이 말씀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티코를 타라고 할 때 티코를 타고, 그렌저를 타라고 할 때 그렌저를 타는 것이 겸손이다. 그렌저를 타라고 하는데 티코를 타는 것은 오만이다.
8. 군병에게 잡히심
예수님은 군병에게 잡히지 않을 수 있는 충분한 힘과 능력이 있었다. (마26:53~54) "내가 힘이 없어서 저 군병들에게 잡히는줄 아느냐?"고 하시며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냐?"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내가 편하고 내가 이기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하지만 예수님은 내맘대로 하면 어떻게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지겠냐고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우리들의 기쁨이 되시길 바래요. 내 힘으로는 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해 하지 않는 것이 능력이다.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신앙 하길 바래요.
9. 십자가와 부활
(고후15:3~4) 예수님은 성경대로 죽으시고,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신 것이다. 예수님은 성경대로 삶을 사셨던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 앞에서도 당당하게 살 수 있었던 이유는 부활이 있었던 것을 알고 계셨다. 그래서 십자가에 죽는 것이 원통한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 말씀을 이루는 예언적인 삶 만이 우리가 이땅에서 사는 완전한 삶이다. 예수님은 자신의 삶이 어떻게 사는지 아셨기에 단순하게 사셨다. 제자들 역시 단순한 삶을 사셨다. 다른 일로 쓸데없는데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다. 이것이 예언적인 삶의 중요한 특징이다. 현대인의 삶의 특징은 바쁘다는 것이다. 매일 인터넷, 게임, 영화 등을 보는데 바쁠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건 삶이 아니라 쓰레기더미에 눌리는 것이다. 자기 삶을 사는 사람은 인생이 복잡할 수 밖에 없다. 사단이 내 삶과 시간을 도둑질해가는 것이다. 다른 일로 인생이 지친다. 속지 마세요. 하나님이 하라는 일은 하지 않고 자기 일만 아니까 피곤한 것이다. 하나님 하라는 일만 하면 하나님 편에서는 충분하다. 이런 인생은 단순하고 낭비하는 것이 없다. 하나님 말씀이 이뤄지는 예언적인 삶 살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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