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October 30, 2016

2016-10-23 (주일예배, 정의호목사님) 성전세를 내시는 예수님 (마17:22~27)

성숙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첫 단계의 인간의 성숙도는 어린아이의 단계를 생각하면 된다. 어린아이는 아직 어려서 생각도 어리고 육체도 어리다. 그래서 자기 엄마가 힘들고 지쳐도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해달라고 떼를 쓴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원하는 단계이다. 자기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단계이다. 다른 사람의 입장을 전혀 생각을 못한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감사할 줄 모른다. 결국은 사람과의 관계가 어려워지고 왕따 당하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왜 그러는지 모르고 오히려 상처가 되는 것이다. 물질을 오직 자신만을 위해 사용한다. 모든 것이 자기만을 위해서 산다. 이런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아무 영향력을 줄 수 없는 있으나 마나 한 사람이다. 우린 이런 존재가 되면 안된다.
두번째 단계는 가족 정도는 생각하는 단계이다. 가족을 위해서는 희생하고 봉사하고 그들을 위해 살려고 노력한다. 모든 시간과 물질을 가족을 위해 사용하지만, 그 외의 사람을 위해서는 시간을 내어주거나 물질을 사용하고 하지 않는다. 혈육 외에 다른 사람에게 영향력을 줄 수 없는 소극적인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가족에 머무르는 좁은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이런 인생을 사는 것은 인생을 낭비하는 것이다.
세번째 단계는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단계이다. 친구, 직장동료 등을 배려하고 도와주는 것이다. 다른 사람과의 좋은 관계를 위해서 도와주고 희생할 수 있는 성숙한 사람이다. 물질을 다른 사람을 위해 쓸 줄 아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사람과의 관계도 좋고 영향력을 줄 수 있는 리더십을 발휘할 수도 있다. 사람이 영향력을 주고 리더십을 줄 수 있는 사람에게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겨우 자기만을 위한 삶은 결국 있으나 마나 한 인생일 수 있다.
네번째 단계는 자기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할 수 있는 사람이다. 애국자, 충성된 사람을 사는 사람이다. 개인 차원이 아니기 때문에 마음이 큰 사람이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큰 사람이다.
마지막 단계는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위해 자신을 드리는 사람이다. 이는 사람의 차원이 아니다.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원수를 위해 자신의 몸을 드리는 예수님의 인격이다. 보통의 사람은 하기 힘든 단계이다. 이런 인격은 십자가의 용서를 받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단계이다.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최고의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 하나님 나라와 일을 위해 자신의 삶을 드리는 것을 기뻐하는 사람이다. 가족, 직장, 자신이 먼저가 하나님은 나중에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자신을 위해 쓸 것을 쓰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위해서는 기뻐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물질이 자기를 위해서는 그리 기쁘지 않지만, 하나님을 위해서는 기뻐하는 사람이 있다. 신앙의 과정은 마지막이 예수그리스도의 형상을 닮기까지 가는 성화의 과정이다. 자기, 가족 문제 해결하기 위해 교회 나오고 기도하는 것보다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기 위한 기도를 하는 신앙의 성장이 있어야 한다. 오늘은 예수님의 삶의 인격이 어떤가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십자가 말씀을 반복하시는 예수님


계속 자신에게 반복해서 말씀하시는 것이 있다. 성격책 보는데 십자가 얘기하고, 주일예배에서 십자가 말씀이 선포되고, 극동방송에서 십자가 말씀이 나오고, 아이가 십자가를 얘기한다. 이렇게 반복해서 말씀이 들리면 무시하면 안된다. 제자들도 이런 말씀이 부담스럽다. 그래서 심히 근심했다고 했다. 하지만 십자가에 죽는 것은 제자들이 아니고 예수님이다. 그러나 제자들은 아직 자신이 따르는 예수님에 대한 마음을 이해하는데 약한다. 아직 자기의 생각만 하는 것이다. 제자들은 자기 생각에 빠져서 근심하는 것이다. 믿음이 성숙하지 않은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근심, 부담, 걱정꺼리가 되면 안된다. 그러면 두려워하는 그것이 이뤄진다. 두려움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중에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릴 때 제자는 없었다. 두려움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말씀을 들을 때 부담있는 말씀이라도 믿음과 기쁨으로 들으시길 바래요.

2. 성전세를 내시는 이유

사건이 있는게 좋다. 사건을 통해 예수님은 가르치신다. 성전세는 성경에 나오는 세금으로 예수님이 안낸다는 것은 큰 문제가 될 수 있었다. 이 말을 듣고 온걸 알고 베드로에게 예수님이 물으셨다. 아들에게 받을지 타인에게 세금을 받을지 물으셨다. 하지만 그들이 실족하지 않기 위해서 세금을 낸다고 하시면서 밖으로 가서 고기를 잡으면 입을 벌리면 한세겔이 있는데, 그것을 반세겔은 예수님, 반세겔은 베드로의 것으로 내라고 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안내도 되지만,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이 실족 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낸다고 하신 것이다. 돈 반세겔 때문에 예수님의 사역 전체를 공격하고 있다. 하나님의 성전을 위해 내는 세금을 안내기 때문에 사역예수님의을 공격하고 하는 것이다. 본질적인 것을 공격하기 위해 비 본질적인 것을 사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항상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와 같이 순결 하라고 하신 것이다. 내가 아무리 옳다고 하더라도 초신자들이나 믿음없는 사람이나 종교인, 세상적인 사람에게 공격꺼리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정당한 권리만 가지고 신앙한다면 그것을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실족꺼리가 되고 공격하는 빌미가 되는 것이다. 작은 것 때문에 사단의 공격꺼리가 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는 것이다. (롬15:1) 믿음이 약한 자는 작은 문제에도 넘어진다. 어린 아이는 길을 가다가 작은 돌 뿌리면 있어도 잘 넘어진다. 그런데 자기가 약해서 넘어졌다고 얘기하지 않고 돌 뿌리 때문에 넘어졌다고 한다. 다른 사람의 허물이 어떻게 없을 수 있을까요? 그러나 안넘어질 사람은 안넘어지고, 넘어질 사람만 넘어진다. 약한 사람의 특징은 다른 사람의 약함을 포용할 능력이 없는 것이다. 약자의 변명이다. 그러나 어른들은 그정도의 둘뿌리로는 안넘어진다. 다른 사람의 허물을 그럴 수 있다고 인정하기 때문에 이해하고 감당하는 것이다. 예수님도 그들을 용서하고 사랑으로 감당하셨기 때문에 걸림이 없었던 것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정당한 권리를 포기할 줄 알아야 예수님을 따를 수 있다. 예수님이 그랬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하나님을 위해서는 접을 수 있어야 한다. 꼭 내가 옳은대로 행하는 사람은 인간관계가 좋은 사람이 없다. 맑은 물에는 고기가 살지 않는다. 사도바울도 과거에는 꼬장꼬장한 사람이었다. (롬14:20~21) 내 자존심, 내 정당성 별거아닌 그거가지고 많은 사람을 넘어뜨리고 실족하게 할 필요가 있냐? 고기 먹는 사람이 고기 먹는건 아무 문제가 없지만 고기 못먹는 사람과 같이 먹을 때는 고기를 먹음으로써 고기 못먹는 사람에게 꺼리낌을 주고 실족케 하는게 좋은 것인가? 항상 믿음이 약한 사람이 믿음이 강한 사람을 판단한다. 우리가 죄를 지으면서 까지 그럴 필요는 없지만 그렇지 않은 이상 자기 권리를 포기하면서 덕을 세우는 것이 영혼을 도울 수 있는 것이다. 고기를 먹을 때는 산 아래 9명이 있을 때 먹지 말고, 세사람이 모여서 산 위에 올라가서 먹으라고 하신 것이다. 믿음이 약한 사람은 항상 궁색한 삶을 사는 것이다. 내 믿음을 주장하지 말고, 한 영혼을 위해 믿음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면 선한 도구로 쓰임받게 되는 것이다. 자기 권리를 포기할수록 자신의 영향력이 더 커지는 것을 알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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