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October 9, 2016

2016-10-09 (주일예배, 정의호목사님) 변형되신 예수님 (마17:1~8)

어린아이는 태어나서 단계가 있고, 그 단계만큼 할 수 있다. 그 단계를 넘어서 하면 넘어지가 된다. 신앙도 비슷하다. 신앙의 단계를 넘어서면 넘어지게 된다. 아무리 좋은 말씀도 단계에 맞는 말씀은 은혜가 되지만 자기 영성이 따라가지 않으면 오히려 시험꺼리가 되는 것이다. 감당할 믿음이 있는 사람이 은혜가 되는 것이지, 믿음이 따라가지 못하면 은혜가 되지 않는다. 각자에게 좋게 되는 것을 좋게 하시는 것이다. 모든 것이 좋게 안되는 사람이 있다. 각 사람에게 유익한 한도에서 주시고 기다리게 하신다. so 예수님도 성경에서 있는자는 더 받아서 풍성하게 되지만 없는자는 있는것도 빼앗기게 된다. 주님은 주님을 위해 살려고 하는 사람에게 좋은 것을 예비하신다. 그래서 더 좋은것을 받기위한 준비가 되면 주님은 주실 것이다. 주님이 주시는 것을 다 받을 수 있는 성숙한 신앙이 되길 바래요.

1. 세 제자와 함께 산에 오르신 예수님


베드로, 요한, 야고보만 산에 데리고 가셨다. 올라가고자 하는 목적이 기도하려는 것이었다. 기도하러 가시는데 아홉 제자는 데리고 가지 않으셨다. 모든 제자가 같은 훈련을 받았지만, 아홉 제자는 산 아래에서 기다리라 하셨다. 각자에게 믿음의 분량으로 하신 것이다. 같은 훈련을 받았지만 12제자 모두 믿음이 달랐다. 평시에는 같이 사역하고 했지만, 결정적일 때는 세 제자만 데리고 가셨다. 이번 뿐만 아니라 야이로의 집 등 한두번이 아니다. 겟세마네에서 기도하러 가실 때도 마찬가지였다. 예수님 편에서는 사람차별이 아니고 영적인 차별이다. 하지만 이 상황 가운데서도 아홉제자들은 예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예수님을 떠나지 않았다. 사람은 왜 자신은 산에 올라가지 못하는지 자신의 믿음 상태는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베드로와 같이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못하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면 실족하고 시험에 들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의 영적인 생각은 사람의 생각과는 다르다. 예수님 편에서는 걸르는 기회가 되는 것이다. 교회는 계속 걸르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어떤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라도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면 남아있을 수 있다. so 인간적인 생각을 하면 하나님의 일을 따라갈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의 생각은 무조건 좋은 것을 가지고 하면 변화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주님의 생각은 오히려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산 밑에 있게 하는 것이다. 믿음의 상태를 알수 없기 때문에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수련회 가서도 산에 올라가는 사람이 있고 산 아래 있는 사람이 있다. 세 제자는 믿음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데리고 가셨고, 아홉제자는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아래 두신 하나님의 주권이다. 그래서 믿음을 키워야 한다. 예수님과 함께 산 위에 올라가는 신앙 하시길 바래요.

2. 예수님의 영적 변화


예수님이 산 위에서 기도하는 중에 변화되신 것이다. 예수님이 기도하실 때 세 제자는 깊이 졸고 있었다. 이 제자들은 산 위에 따라갈 수 있었지만, 기도는 따라가지 못했다. 예수님은 기도 중에 하나님과의 교제가 있었기에 기도를 하면 힘이 나고 시간가는지 모르고 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기도가 힘이 나는 시간 이었지만, 제자들은 힘든 시간 중에 하나였다. 그나마 세 제자였기 때문에 예수님이 변화되는 그 순간에는 깨어서 볼 수 있었다. 모세와 엘리아는 몇백년 전에 죽은 사람이었지만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한 것이다. (눅9:31, 32) 모세는 하나님의 율법을 받은 대표적인 인물이고, 엘리야는 하나님의 선지자의 대표격인 인물이다. 이는 율법과 선지자의 예언으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실 것을 예언하신 것이다. (4) 베드로가 너무 황홀경에 빠져서 엉뚱한 얘기를 하신 것이다. (막9:6) 무슨 말씀을 할지 모르면 가만히 있는게 나을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나기 때문에 몹시 두려웠던 것이다. 말씀을 들으면 두려움으로 나타나는 것이지, 듣지 못하면 아무 생각이 없는 것이다. 세 제자는 그나마 감당할 믿음이 되어서 데리고 갔지만, 이런 말을 한 것이다. 주님이 우리를 아시고 영광의 단계에 초대하시는 것이다. 산 아래서 초라하게 있지 말고 산 위에 올라가는 신앙 하세요. 산 위로 가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

3. 예수님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


구름은 하나님 임재의 상징이다. (5) 구름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린 것이다.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은 것이다.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으면 인생이 바뀐다.

1)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


예수님에 대해서 하나님이 증거하는 말이 가장 확실한 말이다. 이슬람에서 예수님을 못믿는 것 중에 영이신 하나님에게 아들의 존재가 믿어지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하늘에서 직접 예수님을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증거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으시길 바래요. 믿지 못하는 영적으로 무지한 바리새인이 잘못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말씀 하셨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이기 때문에 우리도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은 사랑하는데,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은 미워한다.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신다. 우리가 세상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그 안에 없는 것이다. 내가 살아온 한주간 예수를 사랑했는지 한번 바라보세요. 자기 취미, 즐기는 것을 사랑했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가 하나님의 형통함을 받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으니 인생이 형통하지 않는 것이다.

2) 하나님의 기뻐하는 자


예수님도 아버지를 기뻐하게 하는데 최선을 다했다. (요8:29)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라는 것이 어떤 뜻입니까? 예수님이 하신 모든 사역, 행동들을 하나님인 기뻐하신다. 그래서 우리도 예수님이 하시는 모든 것을 기뻐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항상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을 하니까 하나님이 항상 그와 함께 하신다고 하셨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하는 모든 일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예수님이 하신 모든 행동, 말씀을 기뻐하셨다고 했다. 자기를 기쁘게 하기 위해 사는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 수 없고, 하나님을 위해 희생하라는 말이 제일 싫다. 신앙이 어려운 이유와 부담이 되는 이유는 여기 있다. 신앙을 하면서도 얼굴이 펴지지 않고 불만이 많습니까?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일을 한가지만 해보세요. 그러면 그 문제는 금방 없어집니다. 내 영이 하나님께 속했는데 어케 기뻐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항상 하나님을 기쁘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3) 예수님의 말을 들으라


하나님께 속한 말을 예수님께 듣는다. (요8:46, 47) 예수님이 진리를 말하는데 왜 책망하냐? 하나님께 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귀가 없어서 못듣는게 아니고, 하나님께 속하지 않았는데 어케 예수님 말씀을 들을 수 있나요? 마귀에게 속하니 하나님 말씀이 기쁘지 않는 것이다. 세상이론, 세상 말, 세상 가치관을 들을 때 판단하고 듣지 않고, 오히려 솔깃하게 듣는다. 자기가 속한 말을 듣게 되는 것이다. 말씀이 영으로 들려야 그때부터 예수님이 주시는 생명을 받을 수 있다. 교회를 다닌다고 생명을 얻는게 아니다. so 예수님은 변화산에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세 사람만 데리고 가서 예수님의 영광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이다. 나중에 보면 알겠지만 산 아래 있는 제자들은 바리새인이 데리고 온 병자를 고치지 못해서 무기력한 신앙을 하고 있었다. 산에 올라가는 신앙을 하길 바래요. 이런 놀라운 광경을 보니 심히 두려워서 얼굴을 땅에 엎드렸다. 세 제자들은 엄청난 경험을 한 것이다. 베드로서에서 베드로는 이 광경을 간증한다.

오늘 말씀은 더 높은 영적 세계를 체험하기 위해서 우리의 믿음의 분량을 준비해야 한다. 예수님은 믿음의 분량대로 우리를 인도해주신다. 산위에 올라가는 것을 목표로 한 신앙을 하길 바래요. 산 아래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없다. 한주간 하나님을 기뻐하는 삶, 하나님이 기뻐하는 삶을 통해 산 위로 올라가는 신앙하길 바래요. 이게 내 삶에 힘을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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