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기를 사랑하는 제자들
십자가가 가까이 올수록 제자들은 자기를 더 사랑했다.
1) 스승을 파는 제자
예수님 주위에는 여러부류의 사람들이 있었다. 첫번째 그룹은 군중들 그룹이다. 두번째 그룹은 70명의 제자들이다. 군중들과는 별개로 훈련받게 하고 전도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그룹이다. 세번째 그룹은 12제자들 그룹이다. 이들은 하나님이 이름을 부르면서까지 특별히 세우셨다. (막3:14~15) 예수님과 함께 지내고 같이 있도록 이들과 함께 하게 하려고 세우신 것이다. 그 중에 가룟유다가 있었다. 하나님의 은혜로 12명의 그룹에 있었다. & 예수님 사역에 재정을 관리하는 중요한 직분을 또 맡았다. 굉장히 중요한 사역을 맡게된게 가룟유다이다. 지난주 말씀처럼 다른 사람은 지붕까지 뜯어야 겨우 만날수 있는 예수님인데 가룟유다는 그렇지 않았다. 항상 예수님 옆에서 먹고 마시며 항상 함께 할 수 있었다. 일반 사람들은 갸룟유다가 부러웠다. 우리의 일반적인 생각이라면 예수님의 사랑을 깊이 받은 사람이라면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 사역에 적극적으로 도와야 하지 않을까요? but 유다는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아주 가차없이 내던졌다. 돈괘를 맡고있는 유다가 스승을 배반하고 팔아먹은 것이다. 은혜를 은혜로 여기지 않을 때 사단이 역사하는 것이다. (2) 스승을 팔아버리겠다는 생각을 가진 것이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그 시작은 돈을 사랑하고 물질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인 것이다. 죄악된 육신의 생각을 오랫동안 가지게 된다면 마귀가 우리의 생각을 가득 채우게 되는 것이다. 죄악의 생각을 누리고 거부하지 않을 때 마귀가 그 안에 팔려는 생각을 확 부어버리는 것이다. 거침없이 밀려오게 되는 것이다. 새가 공중에서 날라다니는 것은 막을 수 없지만, 새가 내 머리에 둥지를 틀지 못하도록은 막을 수 있다. 유다는 새가 머리 위에 둥지를 틀도록 내버려둔 것이다. (약1:15) 욕심이 한 순간에 죄를 낮는 것이 아니고, 오랫동안 거부하지 않고 내것을 받아들을 때 죄를 짓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왜 위험하냐면, 이게 결국 사단이 나를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 (요13:27) 생각을 대적하지 않고 받아들일 때 사단이 그 속에 들어와서 엄청난 일을 하는 것이다. 스승을 어떻게 은 30에 팔아버릴까? 그 금액은 소 한마리 정도, 노예 한명 정도의 값어치 밖에 안된다. 인간이 생각으로는 도저히 하지 못할 일들을 하게 되는 것이다.
2) 섬기지 못하는 제자들
유대인들은 전통적으로 자기 집에 들어오는 손님들에게 발 씻는 물을 준비하는 전통이 있다. 구약에는 발을 씻는 말이 많이 나온다. (삼상25:41) 발 씻는 종은 굉장히 자신을 낮추는 것이다. (눅7:44) 발 씻을 물도 안 준다는 것은 상대방을 무시하고 결례이고 하찮게 여기는 것이다. (3) 제자들은 먹으면서도 발을 씻어야 하는데 하면서 만찬을 먹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가 물을 떠왔으면 하는데 눈치 보면서 있는 것이다. 누군가는 해야 하지만 나는 못하겠다는 마음이다. 제자들을 위해서 물 하나 갖다놓을 능력 없는게 제자들의 상태인 것이다. 자기들 끼리는 아니더라도 예수님에게는 해줘야 하지 않을까요? 낮아지기 싫어하는 시기심, 자존심, 낮아짐을 용납하지 못하는 마음이 제자들의 상황이었다.
3) 다투는 제자들
심지어 서로에 대한 경쟁, 시기의 마음이 폭발해서 싸웠다. 누가복음에서는 성만찬을 하신다. 하지만 성만찬 후 다음 구절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눅22:24) 다툼의 마음이 생긴 것이다. 다툼의 헬라어는 "싸움을 사랑"한다는 뜻이고, 성경에서 딱 한번 여기에 나온다. 제자들의 마음에는 성공, 잘되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더 출세하고, 나는 더 잘되고 하는 비교의 마음이 있었다. 자기를 극렬히 사랑하는 마음을 제자들이 가진 것이다. 시가와 다툼, 경쟁의 마음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우상을 숭배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시기와 경쟁의 마음을 우숩게 여기지 마세요. 예수님의 사역을 무효화하고 판단력을 흐리게 하고, 이성을 마비시키는 것이다. 오늘날 살아가는 우리의 마음이 아닌가 생각한다. 십자가 앞에서 우리가 이런 삶을 살고있지 않을까 한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들을 포기하지 않았고, 이들을 오히려 더 사랑하고 섬기셨다. 십자가가 다가올수록 더 사랑으로 섬겼다. 이게 예수님의 마음이다.
2. 제자들을 사랑하시는 예수님
(1) (3) (11) "이시고"라는 구절이 나온다. 즉, 예수님은 모든 것을 아셨던 것이다. 수치와 조롱을 받을 것을 예수님은 다 알고 계셨다. 앞으로 어떤 고통을 당하고 어떤 일을 당해야 할지 다 아신 것이다. 십자가가 점점 다가오고, 수치와 조롱이 더 가까이 오는데 예수님은 제자들을 더 깊이 사랑하기로 결단하신 것이다. 이것이 이해할 수 없는 예수님의 마음이다.
1) 자기 사람들에 대한 사랑 (1)
이런 때가 가까이 오실 것을 이미 아시고 사람들을 사랑하기로 하신 것이다. 자기의 사람들을 사랑한 것이다. 제자가 아니라 자기 사람들이다. 즉, 제자이기 이전에 내 것이다는 것이다. 이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제자들을 자기 사람들이라고 표현하신 것이다. 이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예수님의 우리를 향한 마지막 마음이다. (요17:6) 예수님의 제자들을 향한 마음이 잘 나타났다. 이들이 잘 섬기고 한 것이 아니라 지금 정말 형편없는 모습들이 문제가 없는 것이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도 정말 소중한 관계이다. 하지만 십자가 앞에서 내 소유, 주님이 주신 내 사람이라고 예수님은 선포하신 것이다. 제자의 관계에서 예수님의 소유의 관계로 바뀌는 것이 십자가 앞이다. 소유의 관계가 된 사람이 바로 우리들이다. 우리는 주님의 소유가 된 관계임을 믿습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희생제물로 드릴 때까지 정말 깊이 끝까지 사랑하는 것이 예수님의 마음인 것을 믿습니다. & 지금 이 순간에도 이 마음으로 우리를 사랑하신 줄 믿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너는 내 소유다"고 불러주시는 것을 믿습니다.
2) 발을 씻기시는 예수님
식사 전에 아무도 발을 안씻었다. (4~5) 종의 흉내를 낸 것이 아니고, 실제 종의 모습으로 낮아진 것이다. 발을 씻기면 종이 되는 것인데, 실제로 그렇게 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직접 우리의 발을 씻겨주시는 분이다. 우리는 종이 되어야 다른 사람의 발을 씻길 수 있다. 종으로 낮아져야 다른 사람의 발을 씻길 수 있는 것이다. 누구도 구역질 나는 발을 예수님은 씻겨주시는 분이다. 예수님은 제자들 한사람 한사람의 발을 다 붙잡고 그 앞에 무릎을 꿇고 발을 씻어주셨다. 오늘 이 밤에 우리의 발을 씻겨주시는 주님의 사랑을 만나는 밤이 될 줄 믿습니다.
3) 본을 보여주시는 예수님
제자들의 발을 다 씻으시고 결론적으로 (14) 말씀을 하셨다. 발을 한사람 한사람의 발을 씻어주시고 닦아주시고 하시면서 마지막으로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시는 것이 옳으니라"고 하셨다. 스스로 발을 씻어라고 하지 않으시고 서로 발을 씻어주라고 하신 것이다. 직장동료, 가족, 친척의 발을 씻어주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우리는 교회 공동체의 수 많은 사람들을 통해 우리의 발이 씻겨진 것이다. 나는 알지 못하지만 누군가에 의해 내 발이 씻겨지는것이다. 내 발만 잘 씻는게 아니고 서로의 발을 씻어주라는 것이다. 그리고 두번째로는 "이것이 옳다"고 하셨다. 해주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발을 씻겨야 할 의무가 내게 있다는 것이다. 옆 사람의 발을 씻길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감정적으로 예수님을 생각하고 가슴아파하고 주님 앞에 나가는 것도 중요하긴 하지만, 내 발만 씻는 것에 머추는게 아니라 서로의 발을 씻겨야 한다. 이것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의미있게 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일으키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인 것이다.
그동안 수많고 고통 중에 나를 사랑하는 예수님을 더 깊이 만나는 고난주간이 될 줄 믿습니다. (이사야 53:5) 예수님은 자신이 찔리는 것보다, 자신이 상하는 것보다, 채찍을 맞으시는 것보다 나를 더 사랑하시는 분이다. 놀라운 주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경험하는 밤이 될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