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March 30, 2018

2018-03-30 (금요철야, 김용식전도사)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끝없는 사랑 (요13:1~14)

고난주간을 통해 예수님과 십자가를 묵상하는 시간을 주신 것 감사합니다. 이 시간이 오늘 고난주간 마지막 시간인데 십자가의 사랑, 예수님이 우리를 향한 사랑을 깨닫는 오늘 밤이 될 줄 믿습니다. 본문말씀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준비하는 이 땅에서 제자들과의 마지막 밤이다. & 최후의 만찬을 하는 모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결정적인 사건을 통해 나타난다.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슨 마음으로 살아가는지 결정적인 사건을 만나고 겪게될 때 그 사람 마음 중심이 나타난다. 평소에는 도무지 알 수 없다. 좋을 때는 다 좋다. 지난주까지 컴 할때는 새가족이 많이 온다. 그러다 훈련시작하면 또 안나오다가 떠났다가 다음 컴때 다시 온다. 모든 사람들이 기뻐하고 즐거워한다. 하지만 자기가 값지불을 해야할 때 또는 극심한 고난이 올 때, 십자가를 지어야 하는 순간이 올 때 그 사람의 중심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을 가시는 곳마다 그 사람의 중심을 나타내는 것을 계속 보이셨다. 오늘 십자가라는 결정적인 사건을 통해서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있었던 중심들이 더 깊이 드러나게 된 것이다. 평소에는 알 수 없었던 군중들의 마음이 다 드러났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들어올 때는 종려나무를 들고 환영을 했는데, 십자가를 지니 그 사람들이 다 나오지 않았다. 십자가를 앞두고 종교인들의 속사정이 드러나게 됐다. 제자들 중 베드로 또한 십자가를 앞두고 자기도 알 수 없었던 예수님을 배반하고 예수님을 저주했다. 십자가 앞에서는 어떤 가면도 쓸 수 없는 것이다. 십자가는 감춰진 것들 드러나게 하는 하나님의 방법인 것이다. but 예수님 십자가 앞에 선한 것이 드러나는 사건도 있었다. 예수님의 장례를 예비하는 향유옥합을 붓는 여인도 있었다. 이것처럼 십자가는 육신에 속한 마음과 육에 속한 마음을 여실히 드러내는 사건인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가 점점 다가올수록 고통과 아픔의 시간이 오게 되지만, 제자들에 대한 사람의 마음은 점점 높아지셨다. 보통 사람들은 내게 고통이 오면 자기에게 더 민감해지고 사랑하게 된다. 오늘 말씀을 통해 십자가 앞에서 제자들을 더욱 사랑한 예수님의 열정을 깨닫는 시간 되길 바래요.

1. 자기를 사랑하는 제자들


십자가가 가까이 올수록 제자들은 자기를 더 사랑했다.

1) 스승을 파는 제자


예수님 주위에는 여러부류의 사람들이 있었다. 첫번째 그룹은 군중들 그룹이다. 두번째 그룹은 70명의 제자들이다. 군중들과는 별개로 훈련받게 하고 전도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그룹이다. 세번째 그룹은 12제자들 그룹이다. 이들은 하나님이 이름을 부르면서까지 특별히 세우셨다. (막3:14~15) 예수님과 함께 지내고 같이 있도록 이들과 함께 하게 하려고 세우신 것이다. 그 중에 가룟유다가 있었다. 하나님의 은혜로 12명의 그룹에 있었다. & 예수님 사역에 재정을 관리하는 중요한 직분을 또 맡았다. 굉장히 중요한 사역을 맡게된게 가룟유다이다. 지난주 말씀처럼 다른 사람은 지붕까지 뜯어야 겨우 만날수 있는 예수님인데 가룟유다는 그렇지 않았다. 항상 예수님 옆에서 먹고 마시며 항상 함께 할 수 있었다. 일반 사람들은 갸룟유다가 부러웠다. 우리의 일반적인 생각이라면 예수님의 사랑을 깊이 받은 사람이라면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 사역에 적극적으로 도와야 하지 않을까요? but 유다는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아주 가차없이 내던졌다. 돈괘를 맡고있는 유다가 스승을 배반하고 팔아먹은 것이다. 은혜를 은혜로 여기지 않을 때 사단이 역사하는 것이다. (2) 스승을 팔아버리겠다는 생각을 가진 것이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그 시작은 돈을 사랑하고 물질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인 것이다. 죄악된 육신의 생각을 오랫동안 가지게 된다면 마귀가 우리의 생각을 가득 채우게 되는 것이다. 죄악의 생각을 누리고 거부하지 않을 때 마귀가 그 안에 팔려는 생각을 확 부어버리는 것이다. 거침없이 밀려오게 되는 것이다. 새가 공중에서 날라다니는 것은 막을 수 없지만, 새가 내 머리에 둥지를 틀지 못하도록은 막을 수 있다. 유다는 새가 머리 위에 둥지를 틀도록 내버려둔 것이다. (약1:15) 욕심이 한 순간에 죄를 낮는 것이 아니고, 오랫동안 거부하지 않고 내것을 받아들을 때 죄를 짓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왜 위험하냐면, 이게 결국 사단이 나를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 (요13:27) 생각을 대적하지 않고 받아들일 때 사단이 그 속에 들어와서 엄청난 일을 하는 것이다. 스승을 어떻게 은 30에 팔아버릴까? 그 금액은 소 한마리 정도, 노예 한명 정도의 값어치 밖에 안된다. 인간이 생각으로는 도저히 하지 못할 일들을 하게 되는 것이다.

2) 섬기지 못하는 제자들


유대인들은 전통적으로 자기 집에 들어오는 손님들에게 발 씻는 물을 준비하는 전통이 있다. 구약에는 발을 씻는 말이 많이 나온다. (삼상25:41) 발 씻는 종은 굉장히 자신을 낮추는 것이다. (눅7:44) 발 씻을 물도 안 준다는 것은 상대방을 무시하고 결례이고 하찮게 여기는 것이다. (3) 제자들은 먹으면서도 발을 씻어야 하는데 하면서 만찬을 먹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가 물을 떠왔으면 하는데 눈치 보면서 있는 것이다. 누군가는 해야 하지만 나는 못하겠다는 마음이다. 제자들을 위해서 물 하나 갖다놓을 능력 없는게 제자들의 상태인 것이다. 자기들 끼리는 아니더라도 예수님에게는 해줘야 하지 않을까요? 낮아지기 싫어하는 시기심, 자존심, 낮아짐을 용납하지 못하는 마음이 제자들의 상황이었다.

3) 다투는 제자들


심지어 서로에 대한 경쟁, 시기의 마음이 폭발해서 싸웠다. 누가복음에서는 성만찬을 하신다. 하지만 성만찬 후 다음 구절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눅22:24) 다툼의 마음이 생긴 것이다. 다툼의 헬라어는 "싸움을 사랑"한다는 뜻이고, 성경에서 딱 한번 여기에 나온다. 제자들의 마음에는 성공, 잘되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더 출세하고, 나는 더 잘되고 하는 비교의 마음이 있었다. 자기를 극렬히 사랑하는 마음을 제자들이 가진 것이다. 시가와 다툼, 경쟁의 마음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우상을 숭배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시기와 경쟁의 마음을 우숩게 여기지 마세요. 예수님의 사역을 무효화하고 판단력을 흐리게 하고, 이성을 마비시키는 것이다. 오늘날 살아가는 우리의 마음이 아닌가 생각한다. 십자가 앞에서 우리가 이런 삶을 살고있지 않을까 한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들을 포기하지 않았고, 이들을 오히려 더 사랑하고 섬기셨다. 십자가가 다가올수록 더 사랑으로 섬겼다. 이게 예수님의 마음이다.

2. 제자들을 사랑하시는 예수님


(1) (3) (11) "이시고"라는 구절이 나온다. 즉, 예수님은 모든 것을 아셨던 것이다. 수치와 조롱을 받을 것을 예수님은 다 알고 계셨다. 앞으로 어떤 고통을 당하고 어떤 일을 당해야 할지 다 아신 것이다. 십자가가 점점 다가오고, 수치와 조롱이 더 가까이 오는데 예수님은 제자들을 더 깊이 사랑하기로 결단하신 것이다. 이것이 이해할 수 없는 예수님의 마음이다.

1) 자기 사람들에 대한 사랑 (1)


이런 때가 가까이 오실 것을 이미 아시고 사람들을 사랑하기로 하신 것이다. 자기의 사람들을 사랑한 것이다. 제자가 아니라 자기 사람들이다. 즉, 제자이기 이전에 내 것이다는 것이다. 이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제자들을 자기 사람들이라고 표현하신 것이다. 이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예수님의 우리를 향한 마지막 마음이다. (요17:6) 예수님의 제자들을 향한 마음이 잘 나타났다. 이들이 잘 섬기고 한 것이 아니라 지금 정말 형편없는 모습들이 문제가 없는 것이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도 정말 소중한 관계이다. 하지만 십자가 앞에서 내 소유, 주님이 주신 내 사람이라고 예수님은 선포하신 것이다. 제자의 관계에서 예수님의 소유의 관계로 바뀌는 것이 십자가 앞이다. 소유의 관계가 된 사람이 바로 우리들이다. 우리는 주님의 소유가 된 관계임을 믿습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희생제물로 드릴 때까지 정말 깊이 끝까지 사랑하는 것이 예수님의 마음인 것을 믿습니다. & 지금 이 순간에도 이 마음으로 우리를 사랑하신 줄 믿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너는 내 소유다"고 불러주시는 것을 믿습니다.

2) 발을 씻기시는 예수님


식사 전에 아무도 발을 안씻었다. (4~5) 종의 흉내를 낸 것이 아니고, 실제 종의 모습으로 낮아진 것이다. 발을 씻기면 종이 되는 것인데, 실제로 그렇게 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직접 우리의 발을 씻겨주시는 분이다. 우리는 종이 되어야 다른 사람의 발을 씻길 수 있다. 종으로 낮아져야 다른 사람의 발을 씻길 수 있는 것이다. 누구도 구역질 나는 발을 예수님은 씻겨주시는 분이다. 예수님은 제자들 한사람 한사람의 발을 다 붙잡고 그 앞에 무릎을 꿇고 발을 씻어주셨다. 오늘 이 밤에 우리의 발을 씻겨주시는 주님의 사랑을 만나는 밤이 될 줄 믿습니다.

3) 본을 보여주시는 예수님


제자들의 발을 다 씻으시고 결론적으로 (14) 말씀을 하셨다. 발을 한사람 한사람의 발을 씻어주시고 닦아주시고 하시면서 마지막으로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시는 것이 옳으니라"고 하셨다. 스스로 발을 씻어라고 하지 않으시고 서로 발을 씻어주라고 하신 것이다. 직장동료, 가족, 친척의 발을 씻어주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우리는 교회 공동체의 수 많은 사람들을 통해 우리의 발이 씻겨진 것이다. 나는 알지 못하지만 누군가에 의해 내 발이 씻겨지는것이다. 내 발만 잘 씻는게 아니고 서로의 발을 씻어주라는 것이다. 그리고 두번째로는 "이것이 옳다"고 하셨다. 해주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발을 씻겨야 할 의무가 내게 있다는 것이다. 옆 사람의 발을 씻길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감정적으로 예수님을 생각하고 가슴아파하고 주님 앞에 나가는 것도 중요하긴 하지만, 내 발만 씻는 것에 머추는게 아니라 서로의 발을 씻겨야 한다. 이것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의미있게 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일으키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인 것이다. 

그동안 수많고 고통 중에 나를 사랑하는 예수님을 더 깊이 만나는 고난주간이 될 줄 믿습니다. (이사야 53:5) 예수님은 자신이 찔리는 것보다, 자신이 상하는 것보다, 채찍을 맞으시는 것보다 나를 더 사랑하시는 분이다. 놀라운 주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경험하는 밤이 될 줄 믿습니다.

Sunday, March 25, 2018

2018-03-25 (주일예배, 강국정목사님) 사망에서 영원한 생명의 길로 (ㅎㅇ16:30~34)

모든 사망이 떠나가고 생명의 길로 가길 소망합니다. 유아부터 성인까지 최고가 되기위한 목표를 가지고 오랫동안 공부하고 수 많은 사건들을 만나고 겪는다. 이런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아야하는지 몰라서 노아시대처럼 노세 노세 놀면서 살아가게 된다. &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사건을 만나게 되고, 이 사건을 이용해서 사단은 우리를 멸망의 길로 보내버리게 된다. (요3:16)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을 따라 살며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주심으로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천국을 우리에게 주셨다. 많은 사람들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인도하는 우리가 되길 바래요.

1. 구원의 갈망(30)


바울과 실라는 복음을 전하다가 억울하게 감옥에 갇히게 됐다. 그때 갑자기 감옥문이 열리고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간줄 알고 두려워했다. 당시 로마법에는 간수가 죄수를 놓치면 큰 벌을 받게 된다. (30) 구원의 갈망을 가지길 바래요. 우리들의 고백이 되길 바래요. 간수는 조금 전까지도 바울과 실라가 도망간줄 알고 스스로 죽으려고 했었는데, 뛰어들어가보니 바울과 실라의 담대하고 평안한 믿음으로 있는 것을 보게 된 것이다. "나도 어떻게하면 당신들처럼 사망에서 생명으로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라고 물어본 것이다. 간수는 이 상황에서 여러가지를 물어볼 수 있었다. but 간수는 "내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라고 물은 것이다. 영원한 생명에 관심 가지는 지혜로운 삶을 살길 바래요.

2. 주 예수를 믿음 (31) Believe in the Lord Jesus


이 질문에 바울의 대답은 (31)이다.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이다. 생명의 말씀을 간수에게 선포한 것이다. 그 부활생명을 주신 예수님을 믿는 것이 주 예수를 믿는 것이다. (요1:12)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내 마음에 모셔두는 것이 믿는다는 표현이다. & 인격적으로 모시는 것이다. 믿는 것은 전적으로 말씀을 믿고 그대로 순종해서 하나님께 열매 맺는 것이 믿는 것이다. (행4:12) 주변에서 "왜 예수님만 믿어야 천국가냐?"고 얘기하지만, 성경은 분명히 얘기한다. 주 예수만 믿으면 영생을 얻게되는 것을 믿길 바래요. 예수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임을 믿길 바래요. 영적인 감옥의 삶이 계속 될 때 우리는 얼마나 힘듭니까? 오늘 말씀처럼 주 예수를 믿길 바래요.

3. 크게 기뻐함 (32~34) Filled with joy


간수는 그 후 집에 데려와서 온 가족이 세례를 받고 예수를 믿었다. (롬6:4)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우리의 죄를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한 것을 믿은 징표로 세례를 받는 것이다. 주 예수를 믿으면 우리 집에서 어둠이 떠나가고 크게 기뻐하게 될 것을 선포합니다. (31) 이 말씀대로 간수와 간수가족이 구원을 받고 고린도교회를 개척하게 된 개척멤버가 된 것이다. (고후5:17) 어떠한 죄인이라 할지라도 배움이 있던지 없던지, 지위가 있던지 없던지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곳으로 인도하는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는 것이다. 얼굴에 근심 걱정이 가득했는데, 예수님을 영접하는 순간 얼굴이 해와같이 변한 것을 봤을 것이다. 우리 가정에 "00은 못 믿을거야. 안돼"라고 하지만, 그게 아니라 다 믿게 될 것을 선포합니다. 이 세상에서의 큰 기쁨은 어떤것이겠습니까? 솔로몬은 사는 동안 그리 풍족하게 살면서도 죽기 전에 "헛되고 헛되도다"라고 했다. 오늘 간수는 세상에서 취한 것도 없고 목숨을 끊으려 했고 기쁨이 없었는데 예수님을 영접하고 크게 기뻐하게 됐다. 우리가 먼저 주 예수를 믿음으로 가족들을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Sunday, March 18, 2018

2018-03-18 (주일예배, 손인규목사님) 전도자의 믿음을 보신 예수님 (막2:1~12)

하나님이 이 땅에서 일하시는 것을 보면 다양한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다. & 원하시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but 우리를 통해 일하길 원하신다. 힘든일, 고생스런 일을 우리에게 맡기고, 하나님은 중요한 일을하고 그러지 않으신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직접 나타나셔서 "넌 기쁨의교회에 가야한다."고 하지 않고, 대부분 우리 스스로 온 것이 아니라 주위의 다른 누군가의 권면으로 오고 예수님을 만난 것이다. 이게 하나님이 하시는 방법이다. (고전1:21) 우리 하나님을 우리가 스스로 연구하고 해서는 도저히 하나님을 알 수 없다. so 전도의 방법으로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우리들을 구원하신다. 그런데 하나님이 직접 하시는게 가장 좋고 손쉬운 방법인데, 하나님은 부족하고 연약하고 실수가 많은 우리를 통해 일하시고 하나님을 알길 원하신다. 아니 우리가 어떻게 완전하시고 실수없고 완벽하신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겠습니까? but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일하시는 것을 기뻐하신다. 나를 통해 일하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깨달아져서 하나님을 알게하는 구원의 역사가 있을 줄 믿습니다.

1. 다시 찾아오신 예수님 Jesus who came to see again

성경에서 가버나움을 찾아오면 구약의 역사에 보면 소외되어 있는 어두운 지역이다. 하나님의 선한 역사에 전혀 쓰임받지 못한 지역이다. & 가버나움은 베드로의 집이 있는 곳이다. 예수님은 은혜를 베푸시지만 그 은혜를 무한정 베푸시지 않는다. 사람들의 때를 따라서 움직이지 않고, 하나님의 때를 따라 움직이신다. 은혜의 때를 주실 때 이것을 놓치지 않길 바래요. 은혜받을 준비가 안되면 하나님이 은혜를 주실 때 이것을 가볍게 여긴다. 오래전에 예수님이 오셔서 은혜 주실 때 은혜받으러 나오지 못했던 사람들을 위해 또 다시 오신 것이다. 내가 다음 주일에 건강한 모습으로 교회에 나와서 또다서 은혜를 받을 수 있을지 누가 장담합니까? 다시 기회를 주셨을 때 은혜를 받을 준비가 된 사람들에게 은혜를 다시 주신다. (고후6:1~2) 하나님이 지금 나에게 주시는 은혜의 때를 놓치면 안된다. 지금 나에게 기도할 수 있는 기회, 죄에서 돌이킬 수 있는 기회, 새로운 단계로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주실 때 이것을 놓치면 안된다. 은혜를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은 것을 요구하신다. (눅10:15) 예수님을 목수의 아들이라고 배척하고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은 것을 예수님은 책망하셨다. 지나간 기회는 새롭게 하는 기회를 주셨을 때 이것을 붙잡길 바래요. & 과거에 은혜의 기회를 주셨지만, 이것을 부르짓을 때 하나님께 나오는 놀라운 역사가 있을 줄 믿습니다.

2. 믿음을 보신 예수님 Jesus who saw their faith

1) 친구들이 믿음 Faith of the prayed man's friends.

성경에서는 이 4명의 친구들의 착한 행동을 봤다고 얘기하지 않습니다. 침대채로 들고나오는 행위도 좋은 행동이다. 하지만 이 친구를 예수님에게 데리고 가기만 하면 낳을 것으라는 것을 4명의 친구들은 믿었다는 것이다. 우리 스스로는 예수님을 만날 믿음이나 소원이 없었겠지만, 나를 위해 돕는 사람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주변의 사람들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전4:12) 우리 주변 사람들 안에 있는 불신앙의 세력을 깨뜨려서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 되길 바래요.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계속해서 잔소리를 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자녀가 변화될 것이라는 믿음이 없으면 불안하니까 계속해서 잔소리한다. 믿음이 없는 말은 그 말이 옳은 말이라 하더라도 좋은 말이 아니다. 불안한 마음에 잔소리를 하면 자녀도 불안할 수 밖에 없다. 예수님이 주시는 하나님의 뜻,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마음을 전하시길 바래요.

2) 지붕을 뜯는 믿음 Faith to make an opening in the root

예수님께 온 것만으로 인간적으로 보면 4명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것이다. 상황과 형편만 보면 포기해야겠지만, 지붕을 뚫는 믿음을 가지길 바래요. 물론 남의 집 지붕을 뚫는 일은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다. 예수님이 말씀을 전하는데 방해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혹시 예수님이 싫어하시는거 아닌까? 또는 동네 주민들에게 방해갸 됐을 것이다. 예수님이 우리를 받아주실 것이라는 믿음과 신뢰가 있어야 할 것이다. 지붕을 뜯는 정도까지의 단계에 나가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나오겠다는 불신의 벽을 넘어야 지붕을 뜯을 수 있는 것이다. 지붕을 뜯는 것은 예수님이 나를 낫게 해주실것이라는 적극적인 믿음이다. 예수님이 반드시 만나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들어올 때 환경의 장애를 뛰어넘어야 한 영혼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이다. 4명의 귀한 것은 더이상 나가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인 지붕을 뜯은 것이다. 기도하다가 조금만 힘들면 기도 못하게 하는게 있다. 즉, 나아가기만 하고 지붕을 뜯지 못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입으로 말씀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을 보면서 "고맙다. 내가 사랑하는 그 영혼을 돌보고 믿음으로 내 앞에 나왔구나"라고 대답하셨을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3. 구원을 주시는 예수님 Jesus who saves

예수님은 단지 치료만 하시는 분이 아니다. (5) 예수님은 단지 내 문제, 질병, 어려운 문제들만 해결해주길 원치 않으신다. 내 죄의 문제를 해결해서 온전하게 내 인생의 구원을 주시길 원하신다.  (렘5:25) 우리 주변의 영혼들이 예수님꼐 나올 때 인생을 땀을 흘리며 열심히 살아도 분노와 아픔이 있는 영혼들을 믿음으로 바라보길 바래요. 죄사함을 선포하고 나서 일어나서 걸어가라고 말씀하신다. (11~12) 주변이 예수님꼐 나올 때 하나님 앞에 변화가 될 줄 믿습니다. 본문을 통해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있는 사람을 찾아가서 직접 일으킬 수 있지는 않지만, 예수님 앞에 나갈 때 해결해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예수님이 그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믿음으로 순종하는 사람, 전도자를 세우는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신다. 성경은 이러한 전도자로 사는 사람들에게 놀라운 상급을 예배하고 계시다. (다니엘12:3) 오늘 성경말씀은 이 4명의 이름은 기록하지 않지만, 이 4명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눈이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붕을 뜯을 수 있는 믿음의 순종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복이 있다. 성경 곳곳에 이들이 했던 행동을 기록하고 있다. 지붕을 뚫고 행동하는 믿음의 사람을 찾고 있다. 한 사람을 위해 전도자로 살아가는 한 사람을 하나님은 찾고 계신다.

(롬10:15) 세상의 많은 소유를 가져야 하나님의 축복이 아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갈 때 주님이 축복하신다. 내가 원하는 것에만 촛점을 맞춰 신앙하면 내가 어렵다. 나를 근심하게 만드는 또다른 문제들이 나를 계속 기다린다. 내 주위에 하나님이 관심을 가지는 또다른 한사람을 품고 기도하면 하나님은 놀랍게 우리를 사용하신다. 우리 주변에 하나님을 만나야 하는 사람들에게 믿음의 친구가 되길 바래요. & 그들을 하나님 앞에 데리고 오는 복음의 축복이 임하길 바래요.

Friday, March 16, 2018

(2018-03-16( (금요철야, 강국정목사님) 마른 뼈들아 큰 군대로 서라! (겔37:1~10)

본문은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말씀이다. 에스겔의 환상이다. 마른 뼈들이 가득한 골짜기에 대한 환상이다. 이것은 바벨론에 포로잡힌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른뼈와 같은 모습니다. 세상에 잡혀있는 우리들도 비슷한 모습이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소망을 주시는 것이다. 우리가 먼지에서 사람의 모양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 상태가 골짜기의 마른뼈와 같은 모습일지라도 일어나서 큰 군대가 되게 하실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1. 권능으로 임하심 (1~3)


권능은 여호와께서 사명을 감당시키기 위해 하나님께서 갑자기 임하는 것이다. 권능을 우리를 통해 주셨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임을 믿길 바래요. 성령의 능력으로만이 가능하기 때문에 에스겔선지자에게 권능을 주신 것을 믿으시길 바래요. (롬8:11) 성령의 권능을 받아야 지역과 학교와 캠퍼스, 가는 곳마다 마른뼈같은 세상의 영혼들을 살릴 수 있다. 골짜기의 마른 뼈들의 상태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태이다. 이런가운데 하나님께서 성령의 권능을 주셨다면 힘을 우리에게 주신 것을 믿으시길 바래요. 다시 하나님의 손을 잡을 때 회복이 있을 것입니다. 골짜기에 마른뼈들과 같은 모습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살릴 수 없다. 하지만 여호와께서 권능을 주셨다면 살릴 수 있을 것을 선포합니다.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거스르는 모습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다. 이런 마른뼈들이 하나님 앞에서 살아나는 것을 믿고 한다. 마른 뼈들이 가득한 골짜기로 하나님께서 인도하셨다면 그런 영혼들을 많이 상급쌓을 장소인 것이다. 살 수 있다. (3) 이 나라가 능히 살 수 있겠습니까? 능히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다. 나는 할 수 없지만 성령님은 살 수 있다. 이렇게 대답하는 우리가 될 줄 믿습니다.

2. 말씀을 들음 (4~6)


하나님의 말씀은 가감하면 안된다. (겔37:4~5)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 때 생기가 들어가고 살아난다는 아주 간단한 원리이다. so 말씀을 잘 들어야 그 말씀을 선포할 수 있는 것이다. 첫째 "마른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어라"고 한 것이다. 하나님 말씀을 들으면 살아나는 것을 선포하는 것이다. (요5:25) 생기는 영어로 breath이다. 셋째는 "내가 여호와인줄 너희가 알라" 한 것이다. 아무리 마른뼈일지라도 레마의 말씀을 들으면 능력이 임한다.

3. 명령을 따라서 대언함 (7~8)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대언할 때 물도 변화가 있다. (겔37:8) 영적으로 생기가 들어가지 않으면 죽은 상태이다. (겔37:10) 선포하는 즉시 마른뼈가 군대가 된다. 주변 커머들 놓지 마시길 바래요.

Sunday, March 11, 2018

2018-03-11 (주일예배, 손인규목사님) 큰 비를 내리시는 기도 (왕상18:40~45)

기도에 대해서 함께 보길 원합니다. 누구나 기도해야 하는 것은 다 알고 부담을 가지고 있다. 어떤 사람은 기쁨의교회 성도니까... 등등의 동기로 기도할 것이다. 시간을 두고 기도할 수도 있고, 정말 어려운 문제를 만나서 기도할 수도 있다. 과연 우리가 하는 기도가 언제 가장 영향력 있고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요? 그건 하나님이 기도하라고 해서 기도할 때, 내게 하실 일이 있어서 순종함으로 기도할 때이다. but 어떤 일을 하실 것이라는 믿음이 들어올 때이다. 말씀이 믿음이 들어올 때 이루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 일을 행하실 것이구나 하는 믿음이 들어오는 사람은 기도를 할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은 우리를 기도의 자리로 나오길 원하신다. 하나님의 일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하지만 믿음이 있다고 해서 모두가 열매를 맺는건 아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을 주셨는데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변수가 생기는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에 우리가 동역하길 원하신다. 기도의 값지불을 해야한다. 오늘 말씀의 부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기도"이다.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비를 줄 것이다"라고 하면 "네"라고 하면 바로 비가 올 것 같은데, 엘리야는 가만히 있지 않았고 기도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기도의 값지불을 하는 우리가 되길 바래요.

1. 우상을 제거함(40) Removed the idol


(왕상18:1) 하나님께서 비를 줄 것이라는 약속을 주셨다. (왕상18:18) 엘리야는 아합왕과 이스라엘이 바알을 섬기기 때문에 비가 내리지 않는다고 했다. 이스라엘은 솔로몬 이후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나눠졌다. 북이스라엘 여로보암왕이 제사를 지내려면 남유다로 와야하는데, 이것으로 백성들의 마음을 빼앗기기 싫어서 제단을 만들었는데 거기에 바알을 상징하는 우상을 새겨서 그것이 계기가 되었다. 즉,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세상의 신(바알과 아세라)을 섬겼다. 유목민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땅에 정착하면서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기 시작한 것이다. 바알은 풍요의 신이고, 아세라는 다산의 신이다. (아세라는 그리스로 가면서 큐피트, 로마로 가면서 비너스가 된 것이다.) 엘리야는 이 땅에 비가 내리기 위해서는 회개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한 가정이 변화되려면 그 가정에 우상을 제거해야 한다. 변화는 저절로 일어나는게 아니다. 내 삶에 우상도 제거하지 못하면서 지역, 캠퍼스, 나라, 열방을 변화시키는 것은 힘들 일이 될 수 있다. 농사를 지으면 세상사람들과 타협하고 일하고 있는 세상 악한 문화를 제거해야 한다. 저녁이 되서 하늘에서 불이 내리고 바알을 섬기는 제사장들에게 모두 불이 내렸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막고 있는 죄의 세력, 우상을 모두 제거하길 바래요. 죄는 둔채로 봉사, 기도, 구제를 한다고 효과가 있지 않다. 하나님은 깨끗한 그릇을 원하신다. 우리 인생이 특별해지길 원하시면 우리가 정결해지는 과정을 반드시 넘어야 한다. (삿6:25, 27)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쓰시기 시작할 때 가장먼저 우상을 깨뜨린 것이다. 기드온이 밤에 몰래 행할만큼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중히 대했던 것이다. 엘리야도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역사를 보기 위해서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제사장들을 먼저 제거한 것이다. 진정한 변화를 위해,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위해서 이 제단들을 파하길 바래요. 계시록에도 사단은 음녀를 통해 일한다고 했다. 마지막 때가 되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신랑되신 예수님을 위해 우리는 준비되고 기다려야 할 것이다. 하나님 앞에 우상의 세력을 제거하고 기다릴 때 우리를 통해 일하실 것이다.

2. 믿음을 선포함(41) Proclaimed believe


엘리야는 큰비 내릴 것을 믿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알을 섬겼고, 바알을 섬기면 섬길수록 비는 안왔다. but 엘리야가 선포할 때 비가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스가랴10:1) 하나님께서 큰 비를 주실 것이라고 엘리야는 선포한 것이다. 내게 믿음이 있다면 이것을 담대하게 선포하길 바래요. 하나님께서 나에게 좋은 것을 주셨으면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써야 할 것이다. 엘리야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그냥 혼자 가지지 않고 왕에게 가서 선포한 것이다. 선포할 때 어둠이 떠나가는 것이다. 우리도 신앙할 때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를 살릴 것을 알고 있었다. (요11:42~43) 예수님이 "나사로야 일어날" 선포할 때 나사로가 나온 것이다. 불신 앞에서 큰소리로 선포할 때 나사로가 나올 것을 믿길 바래요. 우리가 불신 가운데 살아갈 때 예수님이 우리가 어케 살아야 하는지 알려주시기 위해 큰소리로 선포하신 것을 믿길 바래요. 하나님께서 말씀이나 기도 중에 주신 것을 믿음으로 들어오면 그것을 선포하길 바래요. 우리가 만나는 자들 중에 믿음으로 간증하고 선포할 때 그것이 이뤄질 것이다.

3. 간절히 기도함 (42, 43) Earnestly prayed


엘리야는 선포하고 난 후에 갈멜산으로 가서 기도한다. (42, 43) 엘리야는 7번까지 확인하면서 하나님이 확증을 주실 때까지 확인했다. 하나님이 일하기 위해 엘리야와 같이 엎드려야 한다. 구원을 원하신다고 해서 그것이 저절로 이뤄지지 않는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에게 값지불을 시키신 것이다. 우리가 낮아지기는 싫어하면서 하나님의 큰 일을 하길 원한다면 그것은 모순이다. 하나님의 큰 비는 가장 낮아질 수 있는 사람을 통해 이루시는 것이다. (고후4:7) 예수님의 귀한 생명을 깨지기 쉬운 질그릇에 담는 것이지, 보배함에 넣지 않으시는 것이다. 그 그릇이 깨져야 하나님의 귀한 것이 보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영광받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길 원하신다면 이런 값지불이 필요한 것이다. 하나님의 눈은 이 땅의 영광에 향하지 않는다. 우리가 신앙하면서 무명한 사람들, 주목하지 않았던 사람이 하늘에서 유명해 있을 것이다. 그게 공평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땅에서 유명하고 하늘나라에서도 유명하면 공평하지 않는것 아닌가요. (고후4:11~12) 바울의 고백이다. 바울이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우리에게 생명이 나타나기 위해서이다. 이것을 모르면 십자가를 작게 여기는 것이다. 십자가의 값지불이 있었으니까 그 은혜가 우리에게 온 것이다. 그 일이 속히 이뤄지도록 땅바닥에 얼굴을 묻고 간절히 기도한다. 그러나 정말 그것이 이뤄지도록 값지불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정말 그것이 이뤄지도록 낮아져서 값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성령충만한 지도자를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의 비가 내리도록 값지불 하고 십자가를 져야겠다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 은혜의 비가 내릴 수 있도록 값지불할 수 있는 사람은 적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눈은 그곳에 있지 않는 것이다. 값지불, 낮아지고 부르짓어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을 하나님은 찾고 계시는 것이다. 믿음없이 헌신하고 낮아지려면 자존심 상하고 못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엘리야처럼 믿음있으면 그 일이 힘들지만 기쁘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내려올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내려오지 않으시고 십자가를 지신 것이다. 지금 이 시대에서 사람들이 보지 않는 곳에 가면 아직도 놀라운 하나님의 기적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리더들은 사람들에게 주목받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일주일 단위가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것이다. 엘리야는 기도의 값지불을 이룰 때까지, 기도의 분량, 값지불을 채우겠다고 무릎 꿇은 것이다.

4. 조각구름을 봄 (44) Saw a cloud as small as a man's hand

엘리야기 이제 7번째 내려갔을 때 조각구름을 본 후에 기도에서 일어났다. 하나님이 이제 놀라운 일을 행하겠구나 하는 하나님과 나만의 영적인 확증이다. (히11:1) 믿음없는 사람은 조각구름을 봐도 별 감흥이 없다. 하지만 믿음의 사람은 그것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보는 것이다. 억지로 끌려다니는 신앙, 우연히 응답받는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이 얼마나 신실하게 응답하시는지 알길 원하신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일하길 원하시는 것이다. 평소처럼 똑같이 먹고 일하는데 몸에 근육이 생기겠습니까? 우연히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다.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홀로 일하지 않고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우리와 함께 일하길 원하신다. 하나님의 은혜의 비를 위해 우상의 세력을 무너뜨리고, 하나님이 주신 믿음을 선포하길 바래요. & 낮아져서 기도의 값지불을 할 때 하나님께서 일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큰비 내리는 역사를 경험하길 바래요.

Sunday, March 4, 2018

2018-03-04 (주일예배, 손인규목사님) 변화를 위한 준비 (눅5:37~39)

하나님의 나라에는 폭발적인 생명력이 있다. 말씀을 받고 이 생명력을 받고나면 우리 인생에 아무런 변화가 없는게 이상한거다. 여기서 말하는 변화라는 것은 나쁜 습관을 고치는게 아니고, 내 삶을 개혁하는 것이다. 캄캄한 방에 작은 촛불 하나 켜면 방이 밝이진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평범한 삶을 거부하는 것이다. 우리 인생을 변화시키는 주체는 하나님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새포도주는 예수님이다. 이 새 포도주를 받아들으기만 하면 되는데, 세상과 종교적인 틀이 있으면 받아들이기 힘들다. 예수님의 새로운 역사에 따라가기 위해서 어떻게 준비되어야 하는지 알아보고자 합니다. 훈련은 영적인 변화를 위한 훈련이다. 이 세상에 안주하지 않고 변화가 있는 교회를 하나님이 사랑하실 것이다. 정말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면 조금 더 안정적인 차원이 되는게 아니다. 이 시대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일을 예수님은 하길 원하신다. 그런 부르심, DNA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오늘 말씀은 쉬운 말씀이고 다 아는 말씀이지만, 쉽게 행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1. 낡은 것을 인정, 결단하라 Recognize the old and make a decision


하나님이 원하시는 변화의 때를 깨달을 필요가 있다. 나의 한계를 직면할 필요가 있다. 오래된 화석이나 골동품같은 존재가 아니다. 이 시대를 이끌어가는 하나님 나라의 선도주자, 개척자로 우리를 부르신 것이다. 창조의 하나님은 변화가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신다. 하나님의 변화는 급진적이고 과격한 것이다. 평범하게 살길 원하는 분은 하나님 믿기 어렵다. 예수님은 소망없고 구제불능처럼 보이는 사람을 불러서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셨다. 문제는 우리가 그런 믿음을 갖지 못한 것이다. 내 삶에 변화를 주실 것을 믿지 못하고 그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낡은 부대로는 하나님의 변화를 받아들일 수 없다. 낡은부대는 변화를 받아들일 수 없는 특징이 있다. 새 포도주에서 발생하는 발효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터져버리는 것이다. 내 안에 오래된 낡은 가죽부대가 있다는 것이다. 조선시대에 우리나라는 쇄국정책으로 문을 닫고 있을 때, 일본은 메이지유신으로 근대화를 준비하고 세계에 사절단을 파견해서 배워온 것이다. 그 후 강제적으로 한일합방이 되고 식민지시대를 겪은 것이다. but 변화의 능력이 없는 그 때 하나님은 선교사들을 보내서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셨다. 선교사들이 이 땅에 와서 목숨을 바치고 순교했다. 그들이 와서 한 일이 의사나 교육자들이었다. 병원을 세우고, 대학을 세웠다. 자기나라에서 편안하게 살 수 있었는데 자기만 그리 산게 아니라 이방인으로 살면서 몇대에 거쳐서 그리 살았다. so 우리나라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고 부흥이 있었던 것임을 믿습니다. but 낡은 부대를 가진 사람은 현재의 신앙, 사역, 지위, 명예를 지키려고 합니다. 이 땅에서 조금 더 잘되는 것 이상을 원하지 않는다. 변화를 받아들일 능력이 없다. 하나님은 여러가지의 방법으로 높아진 우리의 마음을 낮아지게 만드신다 수제자인 베드로가 사실 먼저 예수님께 가지 않으셨다. 베드로를 부르기 위해 밑바닥으로 낮추셨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베드로를 부르실 때 베드로의 마음은 바닥을 치고 있었다. 우리가 낡은부대의 상태였다면 우리를 사용하기 어렵다. 우리 마음이 부요하고 높아져 있다면 변화가 쉽지 않다. 니고데모도 마찬가지이다. 바리새파 출신이고 존경받는 정치 지도자였는데 영생받는 방법을 몰라서 예수님을 찾아온 것이다. 마음이 낮아져 있기 때문이다. 낡은부대가 되면 더이상의 새로운 변화는 없다. (행11:7~9) 하나님은 베드로에게 과거에 베드로가 해보지 않은 일을 행하기 위해서 이러한 환상을 보여주셨다.

2. 낡은 부대를 버려라 Get rid of the old wineskins


이방인선교를 하시는데 베드로가 따라가지 못했을 때 바울을 부르신다. 바울은 더 변화가 힘든 사람이었다. (빌3:8)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고난 후에 변화가 일어났다. 과거 자신의 지식을 배설물로 여기게 된 것이다. so 바울을 통해 소아시아에 많은 교회를 세우고 제자를 세울 수 있었다. 내가 지금까지 의지하고 있는 것이 하나님이 나에게 변화를 일으키실 때 방해가 되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꼐 와서 왜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을 하지 않냐고 묻는다. 율법과 지식에 메여있는 것이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길 바래요. 그러기 위해서는 겸손해야 한다. 목사님도 18년동안 캠퍼스선교를 하다가 작년에 교회사역으로 바꼈는데 18년 동안의 지식과 경험을 의지하지 말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담임목사님께서 지나가는 말로 설교에서 변화가 없다고 하셨다. 그 후에 성경을 한번도 읽어보지 않은 것처럼 새로 읽어야 겠고, 사역을 한번도 해보지 않은 것처럼 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마음자세가 바뀌지 않으면 변화가 없는 것이다. 아무리 많은 것을 가져도 변화가 없는 사람은 불쌍한 사람이다.우리가운데 변화를 두려워하고 막고있는 낡은 것을 하나님 앞에 내어놓길 바래요. 예수님을 믿는 과정 가운데도 신아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회개의 역사가 있길 바래요. 정말 변화를 원한다면 내가 가진 지혜를 버릴 필요가 있다. 우리가 알고 경험한 것이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실수이다. 하나님이 모세를 쓰고자 할때도 왕궁에서 배운 것을 버리고 광야에서 훈련시킨다. 하나님은 변화를 경험한 새 사람을 통해 새 일을 행하신다. 나의 것을 지키는데 관심이 있는 사람은 예수님이 내가 가진 것을 빼앗아가는 사람으로 생각한다. 우리는 전통을 지키고 고수하는 사람이 아니라 변화를 원하는 하나님의 동역자의 삶을 살길 바래요. (39) 오래된 묵은 포도주를 맛보고 좋아하는 사람은 계속 새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것이 무엇이든지 변화되길 바래요. 우리의 삶에 있어서 버려야할 것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정리해서 버리는 결단이 있길 바래요.

3. 새 부대를 준비하라 Prepare the new wineskins


새 포도주는 발효를 한다. 이 발효를 버틸 수 있는 신축성이 필요하다. 새부대를 갖는다는 것은 새 마음을 갖는 것이다. 내 신앙이 나를 위한 신앙, 나와 내 가족을 위한 신앙에 머물러 있다면 하나님 중심의 신앙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하나님 하시는 일을 보고 따라갈 수 있도록 깨어있어야 한다. 새부대로 준비되어야만 하나님의 역사에 따라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하나님이 주시는 좋은 것을 좋게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당시에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을 알지 못했는데, 하나님 앞에 깨어있는 한 사람인 세례요한만이 깨닫고 알 수 있었던 것이다. 바울은 예수님을 만난 후에 "나는 이제 사람의 종이 아니다"고 고백한다. (갈1:10) 바울은 하나님의 사람이고 새 인생을 살겠다는 새로운 정체성을 갖게 된 것이다. 우리가 새 가죽부대로 준비된다면 하나님의 새 역사에 쓰임받을 수 있는 것이다.(빌3:12) 바울이 자신의 사역을 마친 후에 감옥에 갖친 후에 고백한다. 낡은 것을 기꺼이 버릴 수 있는 결단을 하길 바래요.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변화를 원하시고 일하신다. 변화만 되면 새 일을 행하실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들의 마음을 낮추시기 위해 바닥을 치는 사건을 행하신다면 새 가죽부대를 취하길 바래요. 하나님의 일꾼들을 찾을 때 변화의 생명력을 가지고 변화되는 삶 살길 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