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October 1, 2017

2017-10-01 (추수감사주일 정의호목사님)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누가복음17:11~19)

우리는 추석이 낀 주일을 추수감사예배로 드리고 있다. 우리는 주님을 의식하고 감사하는 마음이 많이 없다. 공기, 햇빛, 물이 없으면 생존할 수 없는데 그걸 당연시한다. 당연한게 아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입을것, 먹을것을 주신 것이다. 뉴스의 절반 이상이 나쁜 소식이다. 이런 많은 사건들 사이에 우리는 여기 앉아있을 수 있는 것은 당연한 것도, 우연되 아니라 하나님이 지키지 않으시면 이 자리에 앉아있을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해봐야 한다. 받고있는 은혜에 감사하지 못하면 모든 것을 당연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왜 우리가 불평하고 은혜없는 얼굴을 하고 다닐까요? 똑같이 살면서도 당연시하지 못하고 감사하지 못하면 어떤 표정이 나올까요? 은혜누리는 방법은 감사하는 것이다. 감사하는 것이 은혜의 지혜이다. 은혜받은 성도가 은혜를 잊어버리면 불신자보다 더 악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벧후2:20) 예수님의 은혜를 받고 좋은 상황이 되었는데 그 은혜를 저버리면 불신자보다 더 나쁘고 악하다. 안티기독교모임의 80%~90%가 이전에 교회 다녔던 사람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게 중요한게 아니고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살지 않으면 안된다. 은혜를 관리하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봐야 한다. 많은 사람이 받는 것에 관심이 많다. 하지만 그것에 문제가 많다.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더 은혜있다는게 영적인 원리이다. 이미 받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지 받은 것에 감사하는 추수감사주일 되길 바래요.

1. 예수님이 베푸신 은혜


그 마을은 나병환자들이 모여사는 촌이 있었는데, 나병환자아기 때문에 멀리 서서 예수님을 바라본 것이다. 우리가 죄를 지으면 가족이라도 다른 사람과 격리되어 살아야 하는 것이다. 죄는 거룩한 것과 분리되는 것이다. 절박함이 그 사람의 목소리에서 나타난다. 예수 선생이시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하면서 부르짓었다. 누구나 기도할 때 나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기도합니까? 나의 의가 살아있으면 불쌍히 여겨달라는 것은 자존심 상한 말이고, 아무나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그 사람이 부르짓는 마음을 보는 것이다. 자신이 불쌍하다는 것이 깨달아지는건 큰 축복이다. 예수님은 그들의 간절한 기도를 보시고 "가서 너희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고 한다. 이 시대에는 나병환자들은 병이 나아도 제사장에게 나았다는 확인증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예수님도 가서 보이라고 한 것이다. 사실 그 당시에는 나은 상태가 아니다. 이런때는 가면 안된다. 예수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사람만이 갈 수 있는 것이다. 여기 10명은 믿음으로 제사장에게 간 것이다. 그것을 보고 예수님은 가는 도중에 고쳐주신 것이다. 물이 포도주가 되는 사건도 마찬가지이다. 믿고 가는 도중에 그 믿음을 보고 고치시는 것이다. 순종이 먼저이다. 아무런 값지불 없이 믿음으로 순종하는 것으로 깨끗히 나았다. 이것을 은혜라고 한다. 죄로 인해 고통받는 우리를 구원해주신 예수님의 은혜인 것이다. 이런 은혜를 기억하길 바래요. 은혜는 당연한 것, 마땅히 받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 사랑의 은혜임을 믿길 바래요. & 은혜받으면 반응해야 하는 것이다. 감사가 없으면 이전보다 더 못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2. 예수님의 은혜에 대한 반응


나은 후 1명은 가던 길을 돌아서서 하나님께 영광돌렸다. 나머지 9명은 은혜만 받고 그냥 갔다. 영광돌린 1명은 자기를 고쳐주신 예수님께 돌아왔다. 자기를 고쳐주시고 은혜주신 주인을 찾아서 다시 돌아왔다. & 예수님 발아래서 발을 붙잡고 감사해했다. 더 아이러니한 것은 이 1명은 이방인(사마리아인)이었고, 그냥 간 9명은 유대인이었다. 물론 모두 기뻤지만 예수님 마음은 착찹했다. (17) 그 아홉명은 어디 가있느냐고 하신 것이다. 그 9명은 너무 기뻤지만 그 표현 대상이 달랐다. 예수님은 10명 모두 나병을 고쳐주시는 것에 끝나지 않은 것이다. 고치신 후 예루살렘으로 내려가지 않으시고 예수님은 그 자리에 계셨다.  병 고치신게 끝난게 아니다. 나머지 9명은 병 고친게 끝난게 아니다. 치유에 마무리를 하셔야 했기 때문에 그 자리에 계셨던 것이다. 예수님은 그들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었다. (18) 이방인을 강조했다. 사실 이방인은 하나님을 믿지도 않아서 안돌아와도 되는데, 꼭 돌아와야 하는 유대인 9명은 어디 갔느냐고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으면 돌아와서 감사를 해야한다는 것을 가르치시는 것이다. 사람을 대할 때 가장 괘씸한 사람이 은혜를 베풀었는데 배반하는 사람이다. 그 아홉명은 가족에게, 친구에게 온갖 사방에 가서 병 나았다고 자랑하며 다닐 것이다. 영광을 다 자기가 취하는 것이다. 주님은 우리의 병만 고쳐주시는 것에서 끝내지 않으신다. 나병은 죄의 상징이다. 그래서 나병 걸린 사람은 다른 사람과 격리시킨다. 나병이 나았다는 것은 죄가 없어진 것을 의미한다. 기도할 때는 생명을 다해서 기도하다가 병이 나으면 하나님을 떠나거나 주님과의 관계를 끊어버리는 것이다. 예수님께 감사하지 않는 9명의 유대인들은 그 은혜를 달갑게 생각하지 않고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 더 나아가서 사마리아인은 고쳐줄 필요 없을 것이라고 생각도 했을 것이다. 자기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하나님이고 뭐고 없다. 9명의 나병환자들은 자신의 나병 때문에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그것이 기쁨이고 감사함임을 생각하면 더 감사할 것이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임을 믿고 반대로 해보세요. 나에게 있는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의 문제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기에 그것조차 선하게 사용하시는 분이다.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더 많다. (19) 이것을 믿음이라고 하셨다. 고침받는 것만이 믿음이 아니고, 감사하는 것도 믿음이라고 하셨다. & 그 믿음이 구원이라고 하셨다. 구원이라는 단어는 성경에 많이 나온다. 그 중에 유지하고 지킨다는 의미도 있다. 한번 은혜받았다고 해서 그 은혜가 유지되는게 아니다. 즉, 고침 받는 것에서 끝이 아니라는 뜻이다. 계속되는 치유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서 유지된다. 그것을 유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유지가 쉬운게 아니다. 한번 은혜 받고 병이 나았다고 저절로 유지되는게 아니다. 하나님 은혜를 배반하는건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어버리는 것이다. (요5:14) 나은 것으로 끝나는게 아니다. 다시 죄를 지으면 더 심해질 것이라고 하셨다.

이렇게 추수감사예배를 드리게 하는 것은 영적인 원리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이다. 감사에 인색한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하기 위해서이다. 추수감사예배는 농사짓는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한해동안 나에게 주신 건강, 직장, 가정, 태어나게 한, 결혼, 자녀, 교회에 있게된것들이 저절로 된거라고 생각하나요? 추수감사예배를 드리는 것은 당연시 여기는 것을 고치기 위해서 예배를 주신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는 정말 부끄러운 모습이다. 내가 잘해서 그렇다고 생각하는게 맞는거 같지만 그건 유대인의 생각이다. 수없이 떠나고 싶은 마음 하나님은 다 아시지만 하나님이 붙들고 계시기 때문에 붙어있는 것이다. 하나님께 명절을 통해 감사로 풍성한 한주 보내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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