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내가 당하는 문제를 크게 보인다. & 내가 사는 시대가 힘든 시대인 것 같다. 하지만 어느 시대나 힘들었고 편힌 시대는 없었다. 세상의 흐름이 강하다고 사람들의 신앙이 어려운건 아니다. 오히려 강하기 때문에 더 강해질 수 있다. 진주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조개 안에 이물질이 들어가고 조개가 아프니까 몸에서 분비물이 나오고, 그래서 다듬지 않아도 고운 진주가 나오게 된다. 즉, 아프게 하는 이물질과 싸우기 위해 진주가 되는 것이다. 고난을 싸우기 위해 내 믿음이 좋아지는 것이다.
신앙이 좋길 원하나요? 좋은걸 얻을만한 값지불이 필요하다는 걸 알길 바래요. 아무리 재능이 뛰어난 사람도 열심히 하지 않으면 좋은 결과를 얻기 힘들다. 장거리 마라톤과 같은 경주를 포기하지 말고 달려가길 바래요.
장거리기 때문에 처음도 중요하지만 끝까지 마치는게 중요하다.
1. 버리라
믿음으로 경주를 하고자 한다면 세상에 의지하고 가진 것을 버릴 수 있는 믿음을 가지길 바래요. 믿음의 경주를 잘하길 원한다면 버릴 수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세상의 것을 버릴 수 있는 믿음을 가지길 바래요. 못버리는 이유는 믿음이 없어서이다. 믿음이 없으면 세상 것을 빼앗기기 위해 다투고 싸우고 경쟁한다. 믿음이 있다면 버릴 수 있길 바래요.
달리기 위해서는 가벼워야 한다. 어느 달리기 선수가 경기에서 준비를 못해서 등산화를 신고 가면 이길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완주도 어려울 것이다.
1) 모든 무거운 것
믿음의 경주를 하는데 필요없는 것은 내려놓으라고 말씀합니다. 나를 무겁게 해주는 것 중에 나에게 유익이 되게 하는 것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예수님을 의지하지 않기 때문에 내가 높아지는 것이다. 많이 갖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니다. 세상을 많이 알수록 걱정도 늘어난다. & 세상에서 많이 보고 듣는 소식 때문에 오히려 두렵다. 보고 듣는것 때문에 기도, 찬양, 예배 때 집중이 안된다. 이 세상은 보고 듣는 것으로 내 마음을 빼앗아간다.
컵에 물이 다 채워져 있으면 더이상 새 물을 채울 수 없다. 내 마음에 다른 것으로 채워졌다면 더이상 다른 것으로 채울 수 없다.
어려서 받은 상처도 버려야 하는데, 버리려 하지 않는다. 버려야 되는데 그 말을 버리지 않는다. 너무 어려서부터 들었던 말이 진리의 말이 아닌데, 잘 버리지 못한다. 주님 앞에 내려놓길 바래요. 내 힘과 지혜로 해결하고자 하는데 안됩니까? 예수님은 나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맡기라고 합니다. 염려하면서 기도하지 말고, 그 문제를 주님께 맡기길 바래요. 인생 전체를 던지길 바래요. 그러면 주님이 채워주실 것입니다. 주님께 내 문제를 맡기고 그냥 따라가면 된다.
2) 얽매이기 쉬운 죄
얽매인다는 것은 덫 또는 철조망 등을 의미한다. 세상 사람들은 전통, 경험, 인권 등의 이름으로 죄를 합법화 한다. 하지만 죄의 기준은 하나님이시다. 모든 시대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항해서 죄가 아니라는 문화와 철학이 있다. 하나님이 하라는 것을 하지 않게 하는 것이 사단이다. 이 죄는 우리를 덫과 같이 얽매인다. 우리가 죄를 억지로 짖는게 아니고 내가 좋아서 유혹이 되고 죄를 짓는 것이다. 따라서 시험이 올때 유혹을 이기는게 중요하다. (마6:13) 시험, 유혹은 누구에게나 온다. 하지만 유혹이 올 때 이기길 바래요. 유혹이 오면 피해야 한다.
술이 유혹이 되는 사람이라면 술자리를 피해야 한다. 죄가 유혹이 올 때 피해야 하는데, 그 환경을 내 삶에 계속 남겨두고 우리는 계속 둔다. 그것을 과감하게 끊으시길 바래요. 사단은 우리를 유혹할 때 유혹이 될만한 것, 약점, 약한 부분으로 유혹한다. 나의 강한 부분으로 공격하지 않는다. 믿음이 좋은 사람이 넘어진다고 놀랄 필요는 없다. 누구나 약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죄를 안짓는게 중요하지만 누구나 죄를 안지을 수 없다. 그러면 누구나 털고 예수님 앞으로 나오길 바래요. 내가 그보다 더 악한 죄를 지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예수님은 알고 계신다. 나의 죄를 들고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 앞에 나오길 바래요.
죄의 속성은 작게 시작해서 우리의 영혼을 점점 결박한다. 나에게 있는 얽매기 쉬운 죄가 있다면 그것을 가지고 열심히 신앙할게 아니라, 그것을 내려놓으시길 바래요. 믿음으로 신앙하려고 결단할 때 그것을 유혹할 약한게 있다면 내려놓고 예수님께 나와서 자유해지길 바래요. 그런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길 바래요.
2. 바라보라
믿음은 바라보는 것이다. 우리 자신을 어떻게 바라봅니까?
1) 믿음의 증인들
세상사람들을 바라보면 믿음을 빼앗긴다.
믿음의 선배들, 믿음의 증인들을 바라보라고 말씀하신다. 빈자리 없이 허다한 경기장의 관중석에 빽빽히 믿음의 선배들이 앉아서 우리를 응원한다. 증인들은 법정에서 증언의 효력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법정에 섰을 때 믿음의 증인들이 우리를 바라보고 증언을 해줄 것이다. 우리를 다 지켜보고 있다. 우리 한사람을 응원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믿음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사단은 반대로 말한다. 나 혼자 힘든 외로운 믿음의 삶을 살고 있다고 한다. 나를 조롱하고 정죄하는 원수의 소리만 들린다. 사단의 무기는 두려움이다. 두려운 가운데 어떤 일을 결정하면 안된다. 두려움이 동기가 되어 결정하면 믿음의 경기를 할 수 없다. (왕상19:4) 믿음을 지킬만한 믿음의 사람이 되지 못합니다. 믿음을 지켰는데, 주여 이제는 저를 거둬가옵소서 라고 죽음의 영에 잡혔다. 누구를 바라보느냐가 중요하다. 누구를 바라보고 있습니까? 믿음없는 사람, 세상사람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믿음에서 떠나는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까? 나만 이길을 가는게 아니다. (딤후2:3) 바울이 디모데에게 유언처럼 마지막에 쓴게 디모데서인데, 여기서 믿음의 길, 고난을 받으라고 한다. 예수를 믿기까지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복음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치고 가족이 희생한다.
100년 전 복음을 위해 조선에 온 사람은 적어도 의사 이상이었고, 20~30대 젊은이였다. 기본적으로 자녀들도 희생 또는 이후로도 한국에서 계속 살면서 복음을 전한다. 내가 누구의 말을 들을지 보고 있나요? 사단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면 회개하고 돌아오길 바래요. 주님께 나올 때 우리를 짓누르는 사단의 세력에서 자유를 얻길 바래요. & 믿음으로 살아가려는 사람을 바라보고 그들을 응원하길 바래요.
2) 하늘의 상급
믿음으로 달려갈 때 하나님께서 상을 주신다고 하셨다. 우리가 왜 낙담하나요? 지금 당장 이땅에서 거두지 못할 때 실망한다. 우리에게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한다. 우리에게 상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히11:6) 우리 가운데 아무도 몰라주는 것 같지만, 믿음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이 나를 알고계시는 것을 믿으시길 바래요.
세상사람들은 믿음으로 살지만 왜 열매가 없냐고 할지 몰라도, 하나님의 일, 하나님을 위해 살 때 상급이 있는 것을 믿으시길 바래요. 이것을 바라봐야 믿음의 경주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상이 없는 사람은 이 땅에서 모두 영광받은 것이다. 이 세상의 기준으로 신앙하면 주님 앞에 섰을 때 부끄러움을 당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나의 상급이다. (히11:24~26) 모세는 하나님 나라에 보화를 알고 실제적으로 믿었던 것이다. 왕궁에서 누릴 것보다 천국에서의 삶을 믿고 바라본 것이다. & 상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본 것이다. 이것이 보여야 실제적으로 나보다 더 많이 가진 사람이 부럽지 않는 것이다. 이 세상 무엇보다 영광스런 것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을 믿길 바래요. (딤후4:8) 이것이 믿어지길 바래요. 이런 믿음이 없어서 내 자신을 불쌍하게 여길게 아니라, 하늘나라에서의 영광스런 삶을 볼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래요. 의의 면류관, 영광의 면류관을 쓴 모습을 바라보길 바래요.
3) 인내하라
인내라는 것은 소극적인게 아니고 안주하는게 아니다.
사건과 고난이 오더라도 이겨낼 수 있는 능력이다. 믿음이 있는 사람만이 인내할 수 있다. 나의 믿음을 흔드는 고난을 만나면 이겨낼 수 있는 믿음의 능력을 달라고 구하길 바래요. 신앙은 소극적인 인생이 아니다. 세상의 이론, 가치관을 가진 사람은 믿음의 삶을 흉내낼 수도 없다.
이런 싸움에 있어서 중간에 포기하지 말고 믿음의 성장과 진보가 있길 바래요. 옛날에 받은 은혜만 말한다면 뒤로 퇴보하고 있는 것이다. 믿음은 안주하고 퇴보하고 있는 우리에게 성장을 주시는 것이다.
세상사람과 싸우지 말고, 지금까지 살아왔던 나와 싸워서 돌파하길 바래요. 그래서 새로운 믿음을 구하길 바래요. (삼하3:1)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은 과거의 믿음보다 오늘의 믿음이 더 좋고, 오늘보다 내일의 믿음이 더 좋다. 믿음은 퇴보하는 것이다. 과거의 믿음에 안주하는 사람은 믿음이 퇴보하는 것이다. 안주하지 않고 계속해서 믿음으로 달려가길 바래요.
하나님나라의 원리는 시작은 화려하지만, 먼저된 자가 나중되고 나중된 사람이 먼저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가운데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으로 다시 일어나서 역전하는 하나님의 믿음을 받길 바래요. 세상을 버릴 수 있는 믿음을 가지길 바래요. 우리로 하여금 머물지 말고 믿음의 길을 갈수 있도록 능력주시는 하나님을 바랍니다. (요일5:4) 우리 안에 있는 예수님이 주신 믿음으로 세상에 끌려가지 말고 안주하지 않길 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