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March 24, 2017

2017-03-24 (금요철야, 강국정목사님) 베드로와 요한의 능력전도! (행3:1~10)

우리는 누구든지 이 세상에 태어나서 값진 인생을 살길 원한다. 하지만 사람들마다 그 기준이 다르다. 어떤 사람은 부자가 되는 것이 기준이면 돈버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인생을 많이 드릴 것이다. (막8:36) 온 천하를 다 얻는다고 해도, 또는 값진 인생이라고 생각해서 부자가 되더라도 이 세상의 것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슨 유익일까요? 내 영이 영원한 불못에 빠진다면 아무런 유익이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바로 한 영혼에 대해서 아무것도 바꾸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지혜롭게 신앙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소중히 여기는 영혼구원에 동참할 것이다. 이러한 영혼을 구원하고 세우는 일에 관심이 많으시고 기뻐하시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마지막 때라 영혼구원이 점점 어려워진다. 지금 보면 여러가지 징조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이슬람 세력들이 전세계에 세력을 확산해가고 있다. 게다가 지금 우리나라가 정국이 많이 혼란하고, 인터넷과 게임 등 영적인 것에도 혼탁한 세상이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전통적인 전도로 하나님께 데리고 오기는 한계가 있다. 영적전투를 통해서 그들의 영역을 침투하고 정복하게 될 것이다. 능력전도를 통해서만이 세상의 세력들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이다. 능력전도를 위해서는 성령의 능력을 덧입어야 한다. 하나님은 그 권세를 예수님과 더불어 우리 가운데도 주셨다.

1. 능력전도 방법 (1~6)


세상의 방법으로는 할 수 없는 나면서부터 걸은적이 없는 사람을 어떻게 일으킬 수 있겠습니까? 의학으로 되지 않는 것을 성령의 능력으로는 가능한 것이다.

1) 정한 시간에 기도함 (1)


전도는 사람의 지혜와 능력으로는 되지 않는다. 그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될 때 까지가 전도인 것이다. 구걸하러 나온 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게 된 것이다. 그 장애인은 날마다 성전미문이라는 곳에 구걸을 하러 나왔는데, 본문을 보면 사람들이 메고나온 것을 볼 수 있다. 가장 초라한 영혼인 것을 볼 수 있다. 이 영혼이 단지 못먹어서 그런거라면 크게 불쌍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불쌍한 것은 영생을 소유하지 못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베드로와 요한에게 상한 심령과 불쌍한 마음을 주셔서 한번도 걷지 못한 영혼에게 걸을 수 있게 할 수 있는 믿음을 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사람을 통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 영혼을 준비시켜주시는 것이고, 영혼사랑의 마음과 상한 심령을 기도 가운데 주시는 것이다. 시간을 정해서 기도할 때 하나님의 능력 전도의 역사가 나타날 것을 믿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육신의 생각으로는 성전미문에 앉아 있는 걸인이 귀찮고 더럽다는 생각을 가질 것이다. 하지만 기도할 때 이런 육신의 감정보다는 사랑의 마음으로 바꿔주시는 것이다. 걸인에게 "우리를 보라"는 말이 얼마나 솔깃한 말일까요? 만일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하러 올라갈 때 앉아서 구걸하고 있는 장애인에게 어떤 말을 먼저 했을까요? "내가 기도해줄께요", "같이 예배하러 갑시다"고 전할 것이다. 하지만 그 말을 전했다면 그 영혼은 나사렛예수의 이름을 들어보지도 못하고 죽었을 것이다. 내가 먹을게 없어서 배고파서 죽을것 같은데 "기도합시다"는 말은 너무 거리가 먼 말이다. (약2:15~16) 지금 영혼은 일용할 양식, 먹을게 없다. 일용할 양식도 주지 않으면서 "기도, 순종.." 등의 말은 오히려 마음을 닫게 할 것이다. 굻어죽어가는 난민들에게 "평안히 기도해주겠다"는 말은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베드로와 요한같이 전도대상자와 어떤 방법으로 관계성을 열어야 할지 하나님께 기도할 때 알려주실 것이다. 예수이름이 들리면 오래전부터 일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벌떡 일어나게 될 것을 믿습니다. 마음문을 여는 능력전도자가 되길 바랍니다.

2) 예수 이름으로 선포(6)


능력전도 비결은 여러가지 이론이 아니라 나사렛 예수 이름을 누가 믿고 누가 자주 믿고 선포하느냐에 있다. 평생 걷지도 못하면서 구걸하면서 먹고살아야 하는 장애인에게 무슨 소망이 있겠습니까? 일어나지 못하는 것을 일어나게 하는 약은 2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없다. 이 장애인의 이름을 아시고 모든 것을 아시고 지으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선포하면 일어나고 어그러진 것이 펴지는 것이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에는 권세가 있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에 권세는 모든 병자들이 치유되고 귀신이 떠나가는 것이다. 예수 앞에서는 다 굴복하고 떠나가는게 진리인 것이다. 예수님이 허락하셔야 들어가고 허락하셔야 안들어가고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말을 못해요"라는 말은 능력전도가 아니다. 선포해도 안되는 것은 우리가 믿음으로 선포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다. 예수님의 이름을 완전 신뢰해야 한다. 미련하게 바보처럼 예수의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그대로 이루어진다. 그러한 역사가 이뤄질 것을 믿음으로 선포합니다. 그 사람의 상황과 체질이 다 다르다. 성령의 역사가 일어날 때 일어나는 표적의 일어나는 것이다. 하지만 성령의 역사 전에 "일어날 수 있나?, 안일어나면 어떻게 하지?" 등과 같은 방해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성령의 음성에 순종해서 다가가서 손을 잡고 일으키길 바래요. 성령께서 달려가라고 하면 즉시로 달려가길 바래요. 그것이 방해를 이기는 방법이다. 달려가면 성령님이 예비해놓은 영혼이 있을 것입니다.

2. 능력전도의 열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선포하면 놀라운 치유, 회복의 열매가 반드시 있다. 일으킬 때 뛰어서서 걸었다는 것이다. 말씀을 받으면 그안에서 생수의 강물이 임하게 되는 것이다. 말씀이 들리면 즉시로 새사람이 생기는 것이다. 말씀이 들릴 때 완전치유를 받은 것이다. 이 장애인이 앉아서 무엇이 가장 부러웠을까요? 성전으로 걸어서 들어가거나 지나가는 사람만 봐도 "나도 걸어봤으면 좋겠다"고 이러한 부러움이 있었을 것이다. 그 후 신기하니까 걷고 뛰면서 하나님을 찬양한 것이다.

1) 성전으로 들어가더라


(고후5:17) 그리스도 안에서라면 누구든지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이다. 어떠한 질병을 가지고 계시던지 예수 아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이다. 예수 이름을 선포할 때 걸으면서 뛰면서 성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누가 이 사람이 걷거나 뛰고 성전 안으로 들어가고 찬송할 줄 알았겠습니까?조금 전까지 술과 폭력으로 살았더라도 예수님 안에서는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있습니다. 먼저 새로운 피조물이 될 것을 선포합니다.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서 새시대 새일꾼으로 새가죽부대를 입게 될 줄 믿습니다.
이것이 베드로와 요한의 능력전도이다. 하지만 능력이 있어서 하는게 아니다. 베드로와 요한을 만나기 전까지 하나님과 전혀 상관없이 먹고 마시는 것에 몸을 즐기면 안된다. 말씀을 받는 순간 하나님이 만든 목적대로 새로 태어나고 하나님을 찬소하는 놀라운 피조물이 되는 것이다. 치유, 표적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 영혼이 예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알고 찬송했다는 것이다. 능력전도를 통해서 그 영혼이 하나님을 알고 성령님을 의지해서 하나님이 지으신 목적대로 살게 하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는 통로로 쓰임받길 바래요.

2) 모든 백성이 심히 놀람 (9, 10)

우리들 가운데 주신 은혜가 우리만 누리라고 주신게 아니다. 지난 주에도 복음제시를 해서 복음제시 이후에는 표정이 바뀌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우리를 통해 동네가 놀라는 축복의 통로가 되길 바래요.

예수님은 이 땅에 의인을 부르러 오신게 아니다. 세리와 창귀같은 사람들을 불러서 구원의 선물을 주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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