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혜있는 자
세상에서 말하는 지혜와 영적인 지혜는 다르다. 이렇게 얻은 지혜는 사람들의 만족을 얻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바꿀수 있는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지혜 안에 있을 때 안전하고 내 영혼에 변화가 일어난다. 지혜의 근본은 하나님이라고 성경은 말한다. 하나님이 능력을 부어주시는 것이다. 변화가 마땅한 것이다. 세상의 것이 변화를 줄 수는 없다. 사도바울이 하나님을 증거하러 다닐 때 사람의 말과 지혜는 하지 않았다. 사람이 듣기에 좋은 말이 아니다. (고전2:5) 세상에는 지혜로운 자가 많이 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사람이 생각하지 못한 것을 예비하셨다고 했다. 사람의 지혜로는 사람이 생각한 것으로는 알 수 없다. (고전2:10) 다만 성령으로만 알 수 있다.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의 깊은 곳까지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이 사람의 지혜와 가르침으로 알수 없고 오직 성령으로만 알수 있다고 기록한 것이다.
1) 행할 것을 주의
사람들은 자신의 방법을 고수한다. 스스로 지혜롭다고 하나 내가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한다고 한다. 내 지식은 배우거나 경험으로 아는 것이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누가 조금 더 책을 보고 경험을 했는냐에 따른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 지혜있다고 하는 자는 어리석은 자라고 성경을 말한다. 아무것도 이뤄진 것도 없는데 오직 믿음으로 있는 경우도 있다. 사람들은 어리석다고 말한다. 뭐라도 더 하고 생각해야 할텐데 라고 한다. (15) 사람들이 쉽게 하는 말과 행동 등 지혜없는 자의 것을 주의하라고 한다. 지혜가 생기면 내가 어떤 일을 행해야 할지를 알게 된다.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갈등 가운데 있을 때 내가 확신이 없을 때는 누군가를 의지하게 된다. 그런데 사람을 의지하면 안된다. 사람은 사람을 돕기에 너무 부족하다. 오직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 하나님의 지혜를 의지하는 것이 지혜로운 것이다. 동물들은 반사적인 행동만 한다. 먹고, 자고, 싸고... 사람들은 반사적인 행동만 하면 안된다.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어떤 의도, 생각을 하고 행동한 것에는 책임이 따르는 것이다. 내가 어떤 선택을 하고 결정하는 것은 나에게 있는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이 짧은 세상에서 가치있고 귀한 행동을 할 것이다. (엡4:22~24) 하나님은 과거를 묻지 않으신다. 우리가 과거에는 하나님 없이 내 지혜와 내 방법대로 살아왔다. 이런 회복이나 약속의 말씀이 없다면 안타까울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새로워지길 원하지만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 내 자신을 의지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이리나 늑대가 있어도 말씀을 따라 살면 보호받는 것이다. 구습에서 새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생각이 아니고, 행동을 바꿔야 하는 것이다. 그동안 속아서 살아왔다면 이제는 지혜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 성령이 주는 분별있는 행동으로 살길 바래요.
2) 때가 악함
사람이 사는 곳에는 희노애락, 선과 악이 항상 공존한다. 아무리 사람이 선하게 살고 좋은 일로 살아도 악이 항상 같이 있다. 죄는 항상 같이 있어왔다. 노아시대에 하나님이 창조한 귀한 것들이 심판 받은 이유가 있다. 하나님의 자녀가 세상의 여자를 얻어서 살았다. 막 산 것이다. 그들은 육체가 된 것이다. 죄로 인해 타락한 육체만 남은 것이다. 죄가 요구하는대로 사는 것이다. 종교의 자유라고 하며 다른 신을 섬기고 하는 것은 속는 것이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죄는 더 심해지는 것이다. 우리가 세상을 악하다고 하는데, 악하다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혜로운 사람은 세월을 아끼면서 세상이 악하다는 것도 알아야 하는 것이다. 때가 악하기 때문에 세월을 아끼라는 것이다. 때가 악한 이 시대에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잡아서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엡6:13) 악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한다. 아무리 악한 시대에 공격을 당해도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면 승리의 삶을 살 수 있다.
2. 주의 뜻을 이해하는 자
하나님이 없는 무지한 자 같은 삶을 살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야 한다. 세상에서 지혜로운 것은 하나님 앞에 약한 것이 된다. (고전1:27) 우리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다 이해하지 못한다. 상식적으로 보면 지혜있는 자를 통해 일을 해야 하는데, 하나님은 미련한 자를 통해 일을 하신다. 그 이유는 강하고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는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일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주님의 일을 받아들이고 주님의 뜻에 동의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면 즉시로 판단이 들어온다. 하나님의 뜻을 평가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열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고전1:21) 이것이 하나님이 하시는 방법이다. 사람의 뜻과는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는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일하시는 것이다. 초자연 등 사람들이 놀랄만한 방법이 아닌, 미련한 것으로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은 한점 거짓도 없는 것이다. 받아들이고 이해하려고 하길 바래요. 성령충만을 받아서 세월을 아끼길 바래요.
3. 성령 충만한 삶을 사는 자
왜 말씀대로 되어지지 않고 악한 것들이 일어날까요? 분명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 이런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로 살아야 한다. 이것이 말씀의 능력이다. 더 크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지켜야 할 위치가 있다. 각자 그 위치를 지켜서 세상에서 능력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아야 한다. 성령충만을 말하면서 뜬금없이 술취하지 말라고 하신다. 이런 옛사람을 버리라는 의미에서 술취하는 것은 방탕한 것이라는 것이라고 한다. 술에는 세력이 있다. 세력은 보이지 않는 신이다. 술을 끊는 것은 그 세력을 끊는다는 것이다. 내 안에 자리잡고 있는 옛사람을 끊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야 나의 옛사람의 세력이 쫒겨나는 것이다. 성령충만한 삶을 살 때 하나님꼐 영광돌리는 삶을 살 수 있다.
1) 찬송하는 삶
내 안에 성령으로 가득차 있으면 외부에서 어떤 반응이 오더라도 성령의 반응이 나타나는 것이다. 어떤 외부적인 현상에도 성령에 의한 반응이 나올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 반응이 나오는 것이다. 모든 상황 속에서 주를 찬송할지어다 하는 것이다. 내가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은 것이 문제이다. 눈에 보이는 현실에 살지 말고, 성령충만한 초자연적인 삶을 살길 바래요. 찬송은 하나님을 높이는 것을 말한다. 내 삶 가운데서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감동을 주실 때 지나가는 누구에게도 하나님을 찬송하는 사람이 될 줄 믿습니다
2) 감사하는 삶
내가 아무리 영적인 삶을 살아도 그 사람의 인생에 감사함이 없으면 그 사람은 이상한 사람이다. 감사는 능력이고 회복이고 또다른 기회이다. 성령충만의 그릇, 감사의 그릇을 준비하길 바래요. 아직 받지 않은 것으로 인해 낙심하면 불신의 교만이다. 하지만 주지 않으신 것을 감사하면 축복의 그릇이다.
구원받은 성도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말씀을 통해 알게 되어야 한다. 그래서 세월을 아껴야 한다.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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