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January 29, 2017

2016-01-29 (주일예배, 정의호목사님)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마18:15~17)

이 세상의 이슈의 대부분은 죄문제이다. 모든 뉴스는 죄문제로 시끄러운데, 자기 죄문제가 아닌 남의 죄문제에 집중되어 있다. 자기 죄문제를 이슈화 시켜서 이슈화하는게 아니고, 남의 죄문제에 관심이 많다. 사실 더 큰 문제는 자기 죄문제이다. 내 생명이 걸려있기때문이다. 남의 죄로 내 죄를 바라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리고 목적도 그 문제를 해결하려는게 아니고 그 죄 문제를 정죄하고 조롱하기 위해서 다루는 경우가 많다. 예수님은 성경에서 보듯이 이 세상을 심판하러 오신게 아니고 이 세상으 구원하러 오셨다고 선포하셨다. 그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유일한 이유도 우리의 죄를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십자가를 믿으면 죄를 용서함 받음을 믿으시기 바래요. 그리고 용서함 받은 체험이 있다면 남의 죄도 용서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믿어야 한다. 자기 죄는 관대하지만 남의 죄는 크게 보는 경우가 많다. 이 세상에는 죄인이 설 자리가 없다. 자기 죄 때문에 남의 죄를 크게 보는 것이 이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이다. 세상은 죄인이 용서받을 곳도 없기 때문에 예수님이 오셔야 할 이유인 것이다. 사람들은 죄와 그 사람을 동일시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죄를 심판하듯이 그 사람을 심판하려는 경우가 있다. 오물이 더럽다고 오물을 묻히고 온 그 아이도 더러운 아이라고 취급하는 경우와 같은 경우이다. 그 아이가 내 아이라면 그렇게 취급하지 않을 것이다. 이게 하나님의 사랑이다. 그 사람은 여전히 하나님의 자녀이고, 그 사람에게 죄만 없애준다면 새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하나님은 아시기 때문이다. 실제적으로 예수님은 아무도 받아주지 않는 세리 마태를 불러서 제자로 세워주신 것이다. 어떤 죄를 지어도 죄만 지으면 그 사람이 위대한 사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예수님은 보여주신 것이다. 어린아이와 같이 작은 자에 대한 말씀이다. 작은 자는 죄를 지은 자를 말한다. 죄를 지으면 가장 수치스런 자가 된다. 이런 죄인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각은 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사랑과 위로로 돕고자 하는 사랑과 위로의 마음이 있어서 자기가 대신 값지불을 하면서까지 돕는 사람이 있다. 이렇게 중요한 것이다. 또 다른 사람은 같은 죄인을 보면 분노, 심판, 정죄, 매장하려고 한다. 죄를 짓는 한 사람의 영혼을 보기 전에 그 사람의 죄만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러기 쉽다. 가족이라도 죄를 지으면 그 죄만 보인다. 자기 부모, 배우자, 자녀인 것을 잊어버리게 된다. 자기 죄를 용서함 받지 못한 사람은 남의 죄를 볼때 그렇게 보는 것이다. 죄를 용서해야 한다는 개념 자체가 없는 것이다. 가정에서 자라는 과정을 보면 사랑과 받아주는 것을 경험하지 못하고 자란 아이는 나중에 결혼 후에도 배우자나 자녀를 용서할 수 없는 것이다. 죄에 대해서 용서함 없는 세상이 가장 끔찍한 세상이다. 그러면 서로가 물어뜯고 정죄하는 세상이 되는 것이다. 세상이 점점 이런 세상이 되는 원인은 서로 정죄하고 돌을 던지는 것에 익숙한 세상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바리새인, 세상 사람들이 간음한 여인을 돌로 치려고 할 때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고 하셨다. 죄 없는 자만 돌을 던질 자격이 있다고 하신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도 이 여인을 정죄하지 않으셨다. 죄는 정죄하고 심판한다고 없어지지 않는다. 경험적으로 우리는 너무 잘 안다. 죄는 용서함 받음으로 해결받을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자기 죄로 죽는걸 원하지 않는다. (겔33:11) 하나님은 회개함으로 사는 걸 원하시는 것이다. 아무리 방탕한 사람이라도 돌이켜서 회개하길 원하는게 하나님의 마음이다. 하나님은 죄가 밉지, 사람을 사랑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남의 죄를 심판하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자기에게 죄를 지은 한 사람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말씀하신다. 목적은 단 하나이다. 한 죄인을 구원하는 것이 목적이다. 답은 하나이다. 나에게 못된 짓을 하더라도, 그 죄인을 용서해서 구원받게 하는 것이 목적이어야 한다. 자기 죄에 대해 자유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단지 남 앞에 드러난 죄와 숨겨진 죄만 있을 뿐이지, 누구나 다 죄인인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주는 사람이 있고, 죄를 범하는 사람이 있다. 죽을 때까지 예수님의 형상을 담기 너무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죽을 때까지 예수님의 십자가를 의지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 믿는 한 형제가 죄를 지었을 때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4단계로 보길 바래요.

1.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15)


혼자만 속태우면 상처가 되고 쓴뿌리가 되서 다른 죄를 더하게 되는 것이다. 상대가 죄를 짓는 것 때문에 내가 죄를 짓게되는 어리석은 자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사람과 만나서 일대일로 그 죄를 해결해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먼저 퍼뜨리는 짓은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면 바늘같은 작은 죄가 건너 건너 황소같은 큰 죄가 되는 것이다. 내 문제로 남까지 끌어들여서 함께 죄를 짓게 되는 어리석은 짓이 되는 것이다. 그 사람과 만나는 동기와 목적이 중요하다. 그 사람을 만나서 따지고 보복하는 그런 동기가 아니라면 그 죄를 그대로 가지고 있다면 그 죄로 인해 그 사람은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서 영원히 심판받게 되는 것이다. 그 사람이 그 죄를 회개하고 해결 받아서 구원을 받게 해야 하는 것이다. 그 죄문제를 영적 리더를 만나서 도움 받고 지혜를 얻을 수 있다. 그 사람을 만날 때는 예수님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예수님이라면 그 사람을 어떻게 대할까? 하는 문제이다. 그 사람이 다시 빛 가운데 나오게 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러지 않으면 혹 떼러 갔다가 혹 붙이고 온다는 것처럼 만나서 더 큰 불화만 만드는 미성숙한 행동이 되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 마음은 죄인이라도 심판 받게 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해서 구원받게 하는 것이다. 그 사람도 심판 받고, 그 사람으로 인해 나도 심판 받게 되는 것이 사단의 전략이다. 사람과의 관계가 묶이면 평생 내가 묶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일대일로 만나서 풀어야 하는 것이다. 새롭게 시작하는 기회가 되길 바래요.

2. 한 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라 (16)


일대일로 권면하면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는 반면, 완고해진 사람은 더 나쁜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있다. 회개할 마음이 없는 사람은 한두사람을 더 데리고 가서 다시 한번 권면하라고 하신다. 객관적인 증거로 다루려고 하시는 것이다. 어떤 죄는 감정적인 이유로 그 사건을 객관적으로 보기 어려울 때가 있다. 양쪽 말을 다 들어봐야 객관적인 분별을 가질 수 있을 때가 많다. 사람은 자기 중심 적이라 자기 잘못한 것은 보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이 자기 중심적이기 때문에 인간관계가 좋지 못하는 것이다. 인간관계가 좋은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이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같이 만나라고 하는 것이다. 상담자, 리더가 중재해도 그 사람이 완고하게 마음을 열지 않으면 해결은 불가능하다. 교제와 대화, 소통이 중요한 건 다 안다. 하지만 그게 잘 안되는 이유는 마음 자세가 안되서이다. 마음 자세가 준비되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면 어떤 묶인 관계가 풀어지지 않는게 없다. 셀, 교우간에 묶여있다면 내 속이 좁아서이다. 다윗은 솔로몬에게 "대장부가 되라"고 하시는 것이다. 상대방의 말을 듣고 이해할 수 있는 넓은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러면 인간관계가 묶일 일이 전혀 없는 것이다. 2017년은 풀어지는 넓은 마음 가지길 바래요.

3. 교회에 말하라 (17)


두 세사람이 객관적으로 말하는데도 듣지 않고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러면 개인 차원에서는 벗어났기 때문에 교회에 말해야 한다. 이것은 영적인 문제다. 악한 영에 잡혀있기 때문에 교회 차원에서 다뤄야 한다. 다른 사람도 넘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몸은 교회에 있지만 세상에 속해있기 때문에 교회의 영권 안에 들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적 권세로 회개하지 않으면 얼마나 그 결과가 비참한지 교회는 알려줘야 한다. 그걸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경고는 하는 것이 교회의 의무인 것이다.

4.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17)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악한 영에 속한 사람이기 때문에 교회 공동체는 그 사람과 교제하지 못하게 하고 근신하게 한다. (고전 5:11)

이것이 예수님의 4가지 방법이다. 어떤 죄인이라도 자기 죄를 회개하고 돌아오는 세리와 창기는 받아들여도, 끝까지 거부하고 듣지 않는 바리새인, 제사장, 장로들은 예수님도 어쩔수 없이 이 단계로 할 수 밖에 없었음을 보여주신 것이다. 죄인에게는 먼저 심판이 아니라 용서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첫번째이다. 그래서 우리도 그렇게 하는 것이 첫번째이다. 그러고 난 다음 반응에 대한 책임은 그 사람의 책임이다. 우리 편에서는 우리 책임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죄인을 회개시키는 것이 먼저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을 다하는 우리의 사역이다. 남들이 어떻게 하든지, 죄인들이 어떻게 하는지 상관없이 예수님이 하라는대로 하면 그 후는 예수님이 하실 일이지, 우리 책임이 아닌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 편에서 잘했다고 칭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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