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February 19, 2017

2017-02-19 (주일예배, 정의호목사님) 이혼문제 (마19:1~12)

결혼은 하는것도 어렵지만 사는것도 어렵다. 사단이 한 가정을 파괴하는 것은 그 가정차원이 아니고 그 다음세대, 사회, 각 나라를 파괴하는 연결된 깊숙한 사단의 전략인 것이다. 그래서 결혼은 그 시대의 문제요, 각 나라의 문제인 것이다. 결혼은 노아세대처럼 하고, 감정적으로 살다가 헤어지는 것은 안된다. 이런 노아시대가 될수록 노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킨 것이다. 우리는 원점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것은 하나님 말씀으 지키는 것이다. 물질이 가정을 지켜주겠습니까? 이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정이 행복하고 화평해야 하는데, 그것은 하나님 말씀이 가정에서 회복도는 것이다. 이 시대에 무너저가는 결혼의 원리와 가정의 원리, 이혼의 문제를 알고 회복되길 바래요.

1. 바리새인들으 시험

예수님이 하시는 대부분의 일이 전파하고 가르치고 귀신을 쫒는 일이다. 예수님이 계신 곳에 좋은 동기로 나오는 사람도 있는데, 나쁜 동기로 나오는 사람도 있다. 교회의 잘못된 것을 찾아서 고소하기 위해 나오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의 대부분이 세상의 불신자나 불량배가 아니고 회당 안에, 성전 안에서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하는 거룩하다고 하는 사람들이다. 예수님을 가장 잘 믿는다고 보여야 예수님을 가장 잘 공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다른 무리들과 같이 귀신이 쫒겨나가는 것을 보고도 끝까지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 즉 교회를 5년, 10년 다녀도 마음을 걍팍하게  다니면 본인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3) 이혼문제로 예수님을 고소꺼리르 찾고자 물어본 것이다. 종교인들은 자기 죄를 합리화하려는 사람은 성경에서 죄를 합리화하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혼하려는 사람도 성경에서 찾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신학의 조류가 생겨나는 것이다. 그러면 합법적으로 죄를 짓는 것이다. 시대적으로 보면 좋은 신학 이론인 것 같지만, 열매를 보면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자유주의 신학을 하면 이제는 더이상 십자가 중심의 신앙을 하기 쉽지 않다. 자유적, 인본적인 신앙을 한 사람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를 죽이는 신앙을 하기 어렵다. 따라서 말씀을 지키는 신앙이 아니면 하나님이 멀어지는 신앙이 될수밖에 없는 것이다.

2. 결혼과 이혼의 의미

1) 결혼의 의미 (4, 5)

예수님은 성경말씀을 통해 결혼의 원리를 강조하신 것이다. 결혼의 원리를 알면 이혼의 문제는 그 안에 다 있는 것이다. 결혼의 원리는 결혼을 통해 둘이 합하여 한몸을 이루신 것이다. 결혼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하는 것이다. 결혼의 목적은 여러가지가 있다. 그중 하나가 하나님의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이다. 아담을 돕는 베필로 태어나게 한 것이 여자이다. 인간들에게 사명을 주셨다. (창1:27, 28) 모든 만물을 다스리고 번성할 뿐만 아니라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하신 것이다. 이게 창조의 사명이다. 남자가 여자가 생육하고 번성하지 못했거나, 남자와 남자(또는 여자와 여자)가 결혼했으면 지금 이 시대에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아담에게 이런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그 일을 감당할 남자와 여자를 지으신 것이다.
그리고 결혼은 남자와 여자가 부모를 떠나 한몸을 이루는 것이다. 남자와 여자의 결혼을 통해 한몸으로 짝지어진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 것이라고 하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이고 하나님의 소관이다. 이런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지키면 이혼이 들어오지 못하는 것이다. (말2:15, 16) 하나님이 이혼하는 것을 미워하신다고 한 것이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왜 한명의 아내만 주셨을까요? 그것은 경건한 자손을 얻게하기 위해서이지, 육신의 정욕을 위함이 아니다. 결혼은 많은 여자와 사는게 아니고, 한 여자와 한 남자가 살면서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2) 이혼의 의미

바리새인의 질문을 통해 이혼의 의미가 시작된 것이다. (7) 이에 대해 예수님은 사람의 완악함 때문에 그런 것이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즉, 사람의 타락 때문이지, 하나님의 창조 원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도 마음이 완악하면 그것을 한다. 완악하다는 것은 그 사람이 이미 하나님을 떠나 사단에 잡힌 것이다.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원칙은 산상수훈에서 (마5:31, 32) 이미 말씀하신 것이다.  이혼 후에 다른 여자와 사는 것은 간음이라는 죄를 더하는 것이다. 이런 말씀에 바리새인들은 충격을 받지 않은 것 같은데, (10)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물어본 것이다. 하지만 독신에 은사가 없으면 결혼하지 않으면 오히려 더 많은 죄를 짓게 되는 것이다. 바울은 독신의 은사가 있으면 자신과 같이 되라고 권면했다.
무엇이든지 죄에대해서 문을 열면 그 죄가 들어오지만, 문을 열지 않으면 죄가 들어오지 않는다. 그 선택권은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그것이 자유의지이다. 선악과도 따먹을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뱀이 나타나서 죄의 문을 제시했고 그 후에는 하와의 선택인 것이다. 죄의 문을 여는 것도 선택이고, 문을 열지 않는 것도 선택이다. 하지만 하와는 죄의 지식의 문을 열어둔 것이다. 사단은 우리에게 음란한 영상 등으로 많은 문을 제시한다. 미디어, 게임, 영상, 책 등을 통해 거짓된 지식이 들어오고 그 지식이 열매를 만든다. 불륜드라마, 막장드라마, 영화 등을 통해 자신에게 현실로 나타나는 것이다. 열지 말아야 하는 금기시되는 선악과를 사단이 터치한다. 강의 수문은 100% 막아야지, 1mm의 크랙만 있어도 그 크랙이 조금씩 조금씩 커지는 것이다. 그래서 미디어만 끊어도 많은 영성이 회복된다. 내가 무엇을 보고 듣느냐가 나중에 사건을 만나면 실행되는 것이다. 이것이 나의 영성과 인생에 큰 영향을 가진다.
(딤후2:22) 누구와 함께 하는가가 자신을 결정한다. 항상 불평, 불만, 비난하는 사람은 피하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공개적으로 간증하게 하는 것은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게 끔 한다. 죄의 문을 열어두게 하는 간증은 안하게 한다. (롬16:19) 선한 곳에는 우리가 지혜롭게 듣고 하지만, 악한 곳에는 미련하게 문을 닫아버리는게 좋은 것이다. 죄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 마세요. 그것은 사단의 미끼이다. 죄는 오직 자기 자신의 죄에만 관심을 가지세요. 이혼에 대한 지식이 생겼기 때문에 이혼을 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세상의 죄와 지식에 관심을 끊어야 한다. 죄에 관심을 갖는 것은 사단의 세력에 끌려가는 것이다. 부부가 싸울 때도 한계를 둬야 한다. 특히 말에 이혼, 헤어지자 등의 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 자꾸 말을 하면 그 말이 내게 임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말들을 했다면 회개해야 한다.

이혼은 아픈 것이다. 원해서 그렇게 되기도 하지만, 배우자에 의해 원치 않고도 그렇게 된 경우도 있다. 하나님은 지난 일에 대해 회복하고 용서 받으면 된다. 하나님은 이런 죄로 인해 회복되고 살길 원하신다. 간음한 여인을 도와주시고 이제 다시는 그 죄를 짓지 말라고 예수님도 말씀 한다. 자신과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을 돕고 섬김으로 영혼을 이끄는 삶 살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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