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December 31, 2017

2017-12-31 (주일예배, 손인규목사님) 점점 강해지는 신앙을 하라 (삼하3:1)

이 세상의 흐름은 점점 편리하고 여유로운 삶을 추구한다. 세상은 이것을 진화 또는 발전이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하나님나라를 추구하는 우리는 이것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 몸은 편할 수 있지만 육신의 욕구가 점점 커진다. 육신의 소욕은 만족을 모르고 점점 편한 것을 찾고 점점 만족을 모르고 자극적인 것을 찾는다. 신앙하는 사람은 모두가 신앙이 좋아지길 원한다. 신앙이 좋아지는 사람도 있지만, 더 미지근하고 약해지는 사람도 많이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신앙에서 소출을 내서 하나님을 기쁘게 하길 원하신다고 하셨다. 하나님께 영광 드리길 원하시는 줄 믿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약해지는건 아닌지, 하나님 앞에 새롭게 되길 바랍니다. 다윗과 같이 점점 강해지는 신앙 하길 바래요.

1. 오래 지속되는 전쟁 (The war that lasted a long time)


사울왕이 전쟁에서 전사하며 다윗의 인생에 모든 고난이 끝난 것 같다. 다윗이 유다지파의 왕이 되고, 다른 지파는 아직 사울왕의 계보에서 왕이 되고 계속 다윗과 전쟁이 지속된다. 다윗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따라 이스라엘 전체의 왕이 될 것이다. 하지만 현재는 온전히 이뤄지지 않았다. 그 후로 7년이 더 걸렸다. 이것은 신앙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나님을 믿고 구원 받으면 모든 영적인 싸움이 끝난 것 같다. 하지만 하나님나라가 이뤄지기 전까지는 영적 전투가 아직 남아있는 것이다. 우리의 할 일은 안주할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믿음으로 달려가야 한다. (빌3:12) 바울은 이미 놀라운 능력을 받고 기적을 경험한 사람이었지만, 바울의 고백은 끝까지 하나님이 주신 것을 내것이 될 수 있도록 천국의 상급이 될 수 있도록 계속해서 달려가고 있다고 한다. but 사단의 전략은 전쟁이 끝난 것처럼 얘기하고, 우리를 자만하게 만든다. (고전10:12) 어떤 사람이 "이제 나는 훈련받을 것이 없다"고 자신만만한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이 사람은 이미 적에게 속고 있고 공격당하고 있는 것이다. 천국은 사도바울과 같이 계속 열정을 가지고 계속 오는 사람의 것이다. (마11:12)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다. 침노한다는 것은 침략한다는 것이다. 우리들을 향해서 천국을 침략하라고 말씀하신다. 가만히 앉아서 천국을 기다리라는 뜻이 아니다. 신앙의 년수가 오래된다고 해서 신앙이 좋아진다는게 아니다. 천국을 향해서 공격하길 바래요.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데 대충 하는 사람이 있나요? 천국을 침략하듯이 신앙하는 사람이 결국 천국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사단은 우리에게 믿음이 식고 첫사랑을 잃어버리도록 유혹한다. 그냥 세상의 죄에 대해서 문화의 다양성으로 만들어서 우리를 타협하게 한다. 천국은 지금도 끊임없이 공격당하고 있다. 한 쪽에서는 열방을 나가서 깜짝 놀랄만한 기적과 천국을 공격하는 엄청난 역사가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가난하고 순수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이땅에 안주할 수 없어서 천국을 계속 침노하고 있다. 내가 먼저 됐다고 안주하는 자는 결국 나중 되는 것이다. 천국을 향해서 달려가시길 바래요.

2. 점점 약해지는 사울의 집


전쟁 가운데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해진다고 말씀하신다. 사울은 이미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었다. 가장 강한 세력이 꺽여졌지만 남은 세력이 있다. 사울의 집은 인간적인 것으로 계속해서 왕이 되길 원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점점 기울어질 수 밖에 없다. 다윗을 연단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잠시 남겨두신 것일 뿐이다. (시127:1)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면 아무리 파수꾼이 지키고 있어서 그 수고가 헛된 것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면 잘 될 일도 잘 되지 않는다. 하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잘 안될 일도 잘 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열정(favor)인 것이다. 내가 수고하고 노력할 수 있지만 그 열매를 누릴 수 있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하지만 하나님을 대항하면 내가 그 복을 누릴 수 없는 것이다. 사울은 어느날 갑자기 은혜 받아서 왕이 되었다. (삼상9:2)

1)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함


왕이 되긴 했지만 하나님을 기쁨이 되기 위해서 말씀에 순종하길 거부했다.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을 받기 위함에 집중했다. 그래서 하나님의 기름부음이 사라지게 되었다. 놀랍고 감사한 일에 계속해서 그 은혜를 유지하길 바래요. 부와 명예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지금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반응과 태도가 나의 인생을 좌우하는 것을 믿길 바래요.

2) 회개의 기회를 거부함


불순종 했다고 해서 바로 심판하지 않으신다. 하지만 사울은 계속해서 죄를 짓는다. 누구나 실수는 있지만, 회개의 기회를 주실 때 돌이키길 바래요. 사울은 사람에게 인정받고 체면을 지키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하나님을 떠나는 그 길을 계속 걸어가는 것이다. 그 죄로 인해 하나님 마음이 아픈 것을 계속 보면서도 자신도 그 길을 계속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사울의 집안은 다윗의 집안과 대적하는 사람들과 함께 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멀리 있지 않았다. 하나님이 주시는 회개의 기회를 붙잡길 바래요.

3) 인격적인 관계를 거부함


사울에게도 사무엘을 붙여주셨다. 영적인 지도자를 붙여주셨단 것이다. 하지만 그 말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불순종하면서도 사울은 스스로 슬퍼하지 않았다. 사울은 하나님이 그를 돕게 하기 위해서 사람을 붙여주셨지만,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일을 하지 않았다. 사울의 눈에는 사무엘 선지자가 귀해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사울이 불숭종했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박수를 쳤다. 이것이 이 땅의 모순이다. 하나님을 거스르는 일을 해도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반드시 있다. 하나님께서 나의 주변에 믿음의 사람들을 붙여주신 것은 나의 믿음을 돕기 위해서이다. 팀과 셀에 인격적인 관계를 가지길 바래요. 문제를 오픈하고 도움을 청하길 바래요. 믿음의 사람들과 인격적인 관계를 가질 때 죄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미지근한 상태로 머물러 있다가 그냥 죽는 것이다. 뚜껑없는 미지근한 냄비에 개구리를 넣으면 개구리는 가만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불을 점점 높이면 개구리는 서서히 죽는다. 개구리는 자신이 죽는줄도 모르고 그냥 있다가 죽는 것이다.

3. 점점 강해지는 다윗의 집


다윗은 왕이 되기위해 애쓰지 않았다. 다윗은 무엇이 되는게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하는 편을 선택했다.

1) 말씀을 통한 훈련을 받아들임


다윗이 한 일은 이 한가지이다. 하나님이 주신 훈련을 부드러운 마음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왕이 되는 기름부음을 받고나니 자신을 죽이려는 일만 생겨나는 것이다. 빨리 왕이 되는것보다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다윗에게는 더 중요했던 것이다. 이것이 중요한 것이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이 영적으로는 더 강한 것이다. 다윗은 인간적으로 본다면 너무 약한 사람이다. 목동이다. 다윗은 자신을 의지하지 않았고, 하나님이 이루시는 것을 따라서 순종할 때 나아가는 것이다.

2) 회개의 기회를 받아들임


다윗이 완벽한 사람이었다면 우리같은 사람에게는 소망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것을 가진 왕이 되었을 때 죄를 지었지만, 선지자인 나단이 와서 말을 할때 다윗은 지체하지 않고 회개를 했다. 다윗은 자신의 체면을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 앞이 엎드린 것이다. 하나님이 나의 의, 자존심을 깨뜨리는 것 같다. 이런 것을 경험하게 하신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 엎드렸다. 하지만 소망이 없는 사람은 다윗이 이렇게 말할 때 사람의 말로 듣는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기지 않는다. 내 안에 있는 어둠의 세력에서 하나님 말씀을 붙잡길 바래요. 말씀을 통해서 회개를 주실 때야말로 새롭게 도약할 수 있는 기회임을 알길 바래요.

3) 인격적인 관계를 받아들임


다윗이 어려울 때 사무엘을 만나고 나단을 만난다. 그를 도와주는 영적인 멘토가 있었다. 사무엘의 말을 받아들이고, 나단이 책망할 때 받아들인 것이다. 다윗이 이렇게 할 때 다윗 주변에는 사람이 모여드는 것이다. 나 혼자 모든것을 할 수 있을 때 신앙이 강한 것 같지만 영적으로는 배울 기회가 와도 배우지 않는 아주 나약한 사람이다. 신앙은 내가 강해서 이기는 것이 아니다. 내가 약하게 될 때 내 안에 영적인 생명이 나를 강하게 하는 것이다. 나의 속사람이 강한 사람이 되길 바래요. 내 죄의 세력을 이길 수 있는 십자가의 권세가 내 안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다윗의 집과 같이 강해지는 비결이 있다면 훈련이 있어야 한다. 영성이 육성보다 더 강한 사람이 되길 바래요. 다윗이 강해졌을 때 다윗은 죄를 지었다. 반대로 광야에서 훈련 받을 때 다윗은 오히려 영이 강했다. 우리의 삶이 풍요로울수록 영적으로 강해지지 않으면 죄를 짓게 된다. 관상용 열대어를 수송하는데 아무리 좋은 환경을 만들어줘도 절반 이상이 죽고, 살아있는 것도 비실비실하다. 하지만 수조 안에 열대어의 천적인 문어를 넣어두면 잡아먹힌 몇마리를 제외하고는 모두 생생하게 살아있었다. 열대어가 살아남기 위해서 더 쌩쌩한 것이다. 마지막 때를 살면서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사람은 더 강해질 것이다. 이 세상은 점점 더 악해지지만 그것을 이기기 위해서 점점 더 강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 타협한 사람은 우리의 생명력도 잃어가는 것이다. 육신의 세력을 이기는 사람은 점점 더 강해질 것이다. 다윗의 집에 속해서 점점 강해지는 신앙을 해야할 것이다. (갈1:7) 성경은 우리에게 말하기를 십자가 외에 다른 복음은 없다고 말한다. 직분이 올라가고 신앙 년수는 올라가도 신앙이 저절로 되는게 아니다. 십자가를 잃어버리면 생명이 점점 잃어버리는 것이다. (고전15:31) 사도바울이 믿음의 삶을 살 수 있던 것은 날마다 죽는 것이 바울의 고백이다. 예언과 지식으로 절대 되지 않는다. 새로운 것을 듣는다고 변화가 있는게 아니다. 날마다 부활의 생명의 능력을 받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면서 이 땅의 나그네로 달려가길 바래요. (히10:39) 오늘 다윗의 집안과 같이 하나님 앞에 점점 강해지는 신앙 하길 바래요.

Sunday, December 24, 2017

2017-12-24 (성탄주일예배, 강국정목사님) 큰 기쁨의 소식을 전하라 (눅2:1~14)

죄를 대신 감당함으로 우리를 기쁨으로 살게해주신 아기 예수님이 태어나신 날이다. 이제까지 기쁨을 나눴는데, 그 기쁨을 전하는 우리가 될 줄 믿습니다. 우리의 죄, 너무 지긋지긋하다. 그 죄 때문에 계속해서 눌리고 어둠가운데 사망과 흑암의 그늘 안에 살 수 밖에 없다.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하다. 그 죄 때문에 자다가 깜짝 놀라서 일어날 때가 있다. but 그 죄를 감당해서 죽으시는 예수님이 태어난 줄 믿습니다. 세상은 오늘 성탄의 의미도 모른채 쇼핑센터, 백화점, 시장 등 할것 없이 북적이고 12월 초만 되면 크리스마스 장식을 교회보다 먼저 한다. 세상이 반짝반짝 하지만 그것은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서 장식하는게 아니고 자신의 육신을 채우기 위해 상업적으로 이용한다. 세상에서도 크리스마스는 왠지 누굴 만나야할 것 같고 왠지 기쁘다. (요1:11) 예수님은 죄가 없는 의인들을 위해 온게 아니고 아무도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은 것이다. 죄인들 속에 어둠이 있기 때문이다. 나의 죄를 감당하기 위해 아기예수님이 오신 것이 내게 큰 기쁨이 되길 바래요. 예수님을 더 적극적으로 영접드려서 가장 큰 기쁜 소식으로 전하는 우리가 되길 축복합니다. 우리만 그 기쁜 소식을 받고 누릴게 아니라 오늘 말씀처럼 온 백성에게 전하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어제 주일학교에서 주변 소외계층에 가서 찬양하고 노래 부를 때 너무 기뻐하는 모습을 보였다.

1. 아기예수 탄생의 기쁜 소식 (1~7)


취업, 결혼 등 많은 기쁜 소식이 있다. 하지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이 가장 큰 기쁜 소식인 줄 믿습니다.

1) 말씀의 성취 (1~7)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말씀이 성취된 기쁜 소식인 줄 믿습니다. 에덴동산에서 모든 열매를 먹을 수 있었는데 중앙에 선악과는 못먹게 하셨다. 그런데 그것을 먹고 죄를 지어서 지금까지 영원한 불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우리들이 계속해서 불순종하면서 진노를 받으면서 사는게 너무 불쌍하기에 예수그리스도를 보내겠다고 미가서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셨다. (미가5:2)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알 수 있다. 수백년 동안 미가서 선지자를 통해서 약속의 말씀을 주시고 수백년동안 지키시고 예수님을 보내신 것을 알 수 있다. 창세 전부터 하나님을 우리를 너무너무 사랑하신다. (눅1:38) 호적령이 없었으면 베들레헴에 갈 필요가 없었다. 호적을 하러 요셉과 마리아가 각각 고향으로 돌아간 것이다. 유대 베들레헴에 도착하니 해산의 때가 온 것이고, 여관방이 없었다. 그 때 마굿간을 급하게 찾아 들어간다. & 구유(말밥통)에서 태어나게 되신 것이다. 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는 10여km정도 된다. 하지만 베들레헴에서 난다고 했기에 가는 도중에 나지 않는 것이다. (마1:22) 이 모든 일은 평강을 얻게하는 것도 감사한데 약속의 말씀대로 이루기 위함인 줄 믿으시기 바래요. 하나님의 영광, 기쁨, 찬송을 올려드리면 하나님이 기뻐하실 줄 믿습니다. 말씀을 이루시는 본을 보여주신 것이다. 말씀으로 주시는 기쁨은 큰 기쁨이다. 큰 기쁨이 되는 성탄 보내길 바래요.

2) 우리 죄를 위해 구주로 나심 (11)


천국은 모든 보석으로 되어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 모든 영광을 버리시고 위엄있는 모습으로 오지 않으시고 누구나 다가갈 수 있도록 어린아기로 오셨다. 왜 연한 순과 같이 흠모할만한 모양도 없이 오셨을까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기에 이것이 큰 기쁨의 소식이라고 말씀하신다. (마1:21) 우리의 죄를 대신해 죽으실 분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죄가 없으신 분만이 우리를 위해 죄값을 치룰 수 있기에 예수님 밖에 없는 것이다. (마1:18)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했기때문에 죄가 없다. 오직 예수님의 이름만이 아버지께로 갈 수 있는 것이다. 요셉과 마리아 사이에서 동침함으로 얻은 아기가 아니라,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했기 때문에 아기예수인 것이다. 이 사실을 믿을 때 우리가 기뻐하게 되는 것이다. (눅1:31) 처녀인 마리아의 편에서는 가브리엘 천사의 말은 청천벽력과 같은 말이다. 약혼만 했는데 성령으로 주신 아기가 부담되었을 것이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는 어린 아기로 나셨지만 하나님의 아들로 나신 것이다.

2. 목자들에게 임한 기쁜 소식 (8~14)


가장 기쁜 소식을 주셨고 실제로 주셨다. 오늘날에도 가장 좋은 것을 주시되 성령을 주신다고 하신다. 다른 사람들은 성탄이라고 기쁠텐데, 왜 나에겐 기쁨이 없을까 할지 몰라도 나에게 기쁨을 주실 줄 믿습니다.

1) 먼저 목자들에게 알리심 (8~12)


베들레헴 목자들을 말한다. 풀피리를 불면서 별들을 바라보며 양을 치는 낭만적인 목자를 생각한다. but 이리떼들로부터 양떼를 지키고, 밤에는 죽지 않을까 계속 지키는 힘든 일이고 허드렛일을 하는 목자를 말하는 것이다. 어린아이가 먹고살기 위해서 부모님을 도와서 일을 하는 가난하고 상한 마음의 목자들에게 위대한 예수님의 탄생을 전해주는 것이다. 동일하게 상한 마음을 가져야 하고, 동일하게 겸손한 마음을 가지는 그 놀라운 기쁜 소식을 전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위대한 자신의 아들의 탄생을 헤롯왕에게 알리지 않았고, 동방박사에게 먼저 알려주셨다. 추후에 헤롯왕에게 알려주었는데 베들레헴의 2살 이하의 아들을 모두 죽이라고 했다.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아무 죄 없는 다른 아기들을 죽인 악한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우리 가까운 나라는 지금도 예수를 전하면 죽인다. 들의 목자들에게 아기예수가 태어난 것을 알린 것은 예수님의 탄생을 전할 것이기에 위대한 탄생을 알린 것이다. 우리들에게 기쁜 소식이 날마다 영원한 천국으로 갈 때까지 들려지길 축복합니다.

2) 목자들이 전함 (10, 17~18)


목자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셨다고 말씀하셨다. 온 백성은 우리들을 말하고, 열방의 국가들을 말한다. 오늘 성탄의 메시지가 온 열방 가운데 선포될 것을 믿음으로 선포합니다. (눅2:17~18) 예수그리스도를 전하는 천사가 될 줄 믿습니다. 놀랍게 여길 것을 믿음으로 성취되길 바래요. 천사들에게 예수님의 탄생을 듣고 전하면 목자들이 말한 것들을 선포하며 전하시길 바래요. (눅2:19) 마리아는 가브리엘을 통해 들었지만, 목자들을 통해 확증을 시켜주시고 하나님의 계시를 마음 깊이 가지고 아기를 양육하게 된 것이다. 마리아와 같이 하나님의 말을 마음에 깊이 간직하고 되새기길 바래요. (눅2:20) 예수님의 탄생을 듣고 보았던 목자들이 아기예수의 탄생을 다시 전한 것이다. 하나님꼐 영광을 돌려드리며 찬송하며 돌아간다. 본 그대로 하나님께 영광 돌려드리고 찬송을 돌려드리며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성탄, 예수그리스도의 탄생을 통해 구원을 얻었다면 그 기쁜 소식을 전하길 바래요.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표적을 보여주신다. 겸손한 예수님이 겸손할 수 없는 우리에게 날마다 오신다. 이것이 표적이다.

오늘 말씀을 생각해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하나님의 형상으로 우리를 지으시고 계속 우리를 보셔도 죄 가운데 있으니까 미가 선지자를 통해 예수님을 예언해주시고, 또 죄를 지으니까 아담으로부터 왔던 저주를 끊으시고 구원을 얻고 이 땅을 정복할 뿐만 아니라 부활생명을 주셔서 영원한 하나님나라에서 하나님과 거하며 놀라운 삶을 사는 우리로 베풀어주신 것이다.

Sunday, December 10, 2017

2017-12-10 (손인규목사님, 주일예배) 하나님이 쓰시는 적은 무리들 (사7:1~7)

우리가 살면서 사람을 잘 만나야 한다는 말을 듣는다. 누구를 만나느냐가 중요하다. 좋은 선수가 되려면 훌륭한 코치를 만나야 한다. 이미 뛰어난 전문가를 만나면 이미 반은 성공한거다. 전문가는 뭔가 다르다. 오늘 보고자 하는 것은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잘 아는 전문가는 하나님이시다. 얼마 전 주일말씀에도 세상에서 말하는 전문가들이 버린 돌 조차 머릿돌(모퉁이돌)로 쓰신다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최고의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대로 따라가면 우리 인생에 놀라운 복이 있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어떤가를 알길 원합니다. 하나님 앞에 귀하게 쓰임받는 우리가 되길 바래요.

1. 하나님이 일하시는 목적 (Purpose of God's work)

오늘 내용은 미디안이 전쟁을하기 위해 이스라엘을 공격해왔다. 바로 옆에 진을 치고 있었는데, 기드온이 말씀을 받고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모였다. (2) 아직 유대인들은 수가 적은데, 하나님은 미디안 사람에게 넘기지 않겠다고 하신 것이다. 미디안과 싸우기 위해 3만명 밖에 없었다. 인원이 너무 부족했던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다르게 말씀하신다. "아니다. 넘 많다. 그래서 사람들을 돌려보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관점은 우리와 다르다는 것을 알길 바래요. 하나님은 우리 상식과 다르다. 우리 기준에서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 결과가 좋으면 무조건 다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but 하나님은 많은 사람들로 일하지 않으신다고 하신다.

1) 영광을 받기 위함 (To be glorified)

우리는 결과가 좋으면 결과를 통해 영광받으실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우리의 생각일 뿐이다.  하나님은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이 일하시기 때문이다. 그 일보다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이 더 중요하신 것이다. 나를 자랑하고 자기 영광을 삼을 것이라고 하나님은 알고 계셨다. 내가 잘 해서 된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하나님은 알고 계셨던 것이다. 사람들 마음에는 교만한 마음이 있다는 것을 하나님은 알고 계셨던 것이다. 내가 영광 받기 위한 나의 바벨탑을 쌓고 있는 우리를 알고 계신 것이다. (창11:4) 우리의 이름을 천하에 알려야겠다는 어마어마한 성을 쌓겠다고 한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의 영광을 구하는 그 일에 함께 하지 않으신다. 어떤 모양이든지 나의 바벨탑이 있다면 무너뜨리길 바래요.

2) 시험하여 선별하심 (To test ans select)

두번의 테스트로 사람을 보낸다. 하나님은 아무나 쓰지 않으신다.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는 일에는 그 일에 합당한 사람들을 쓰셔서 일하길 원하신다. (시7:9) 하나님은 눈에 보이는 사건을 통해 드러내시는 분이다. 나에게 주신 사건들을 만날 때 나의 믿음을 드러내시길 원하신다. 내 믿음이 어디에 서있는지, 훈련의 정도, 성숙도를 나타낸다. 예수님의 능력과 권세가 나타난다. 우리의 믿음이 사건을 만나고 기회를 만나면 나타난다. 베드로는 사건을 만날 때 믿음없음이 드러나서 예수님으 3번이나 부인했다. 반면 어떤 사람은 자신의 인생을 주님께 드리는 믿음의 고백을 주님께 드리기도 한다. 나의 믿음, 인격을 주님께 드리는 기회가 되는 것이다.

2. 하나님이 거절한 많은 무리들 (The crowd whom God rejected)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거절한다. (3) 집으로 돌아가도 좋다고 편하게 얘기한게 아니다. "두려워 떠는 자는 즉시 떠나 돌아가라"고 하셨다. 강하게 돌려보내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거절한 많은 무리들은 이렇다.

1) 두려움을 가진 (Have fear)

마음이 원하지는 않지만 의무감으로 그 장소에 나왔다. 하나님보다 적들을 더 크게 보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다. 두려움을 다른 말로 하면 불신앙이라고 한다. 단순히 염려, 근심하는게 아니고 영적인 세력이고 불신앙인 것이다. 하나님을 따라가는 것이 부담된다. 내가 주님을 위해서 엄청난 것을 희생하는 것처럼 보인다. 믿음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영광이 되는 것이다. 이들은 미디안과 전쟁에 나가는 것이 무서웠다. 전쟁하러 나온게 아니고 몸을 사리는 것이다. 오히려 전쟁하려는 사람들에게 방해만 되는 것이다. 자기에게만 부정적인게 아니고 다른 사람에게까지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빨리 돌려보내라고 하나님꼐서 말씀하신 것이다. "할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더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못할 일이 없느니라"는 말씀이 나의 고백이길 바래요. 내 눈에 하나님과 세상 중에 뭐가 더 크게 보입니까? 뭐가 더 중해보입니까? 믿음이 없으면 세상에 있는 사람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하나님의 이름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정말 두려워해야 할 분은 하나님 한분밖에 없다. (이6:5)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다.

2) 육신의 소욕을 절제 못함 (Indulge into desires of flesh)

기드온이 말씀에 순종해서 물가로 내려온다. (4) 한 부류는 물을 벌컥버컥 마셨고, 다른 한 부류는 손에다 물을 떠서 좌우를 살피며 물을 홀짝홀짝 마시고 있었다. 물을 벌컥벌컥 마시는 사람을 돌려보냈다. 전쟁이라는 사명을 받고 부르심 받은 사람은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 사명을 위해서는 내가 포기해야 할 값지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목표가 없으면 방자히 행한다고 했다. (잠29:18) 육신을 절제하지 못하는 사람은 은혜를 받기는 받는데 오래가지 못한다. 가시밭에 뿌려진 씨는 세상에 양분을 다 빼앗기기 때문에 열매 맺기 힘들다. 그래서 우리가 걸어가야 할 믿음의 길은 좁은 길이라고 말씀하신다. (마7:13~14) 사람들이 원하는 길은 넓은 길이다. 남들이 다 좋아한다고 해서 그것이 다 좋은 길은 아니다. 하나님 앞에 찾는 자가 적을 지라도 하나님 앞에 생명의 길을 가길 바래요. 실제 삶에서 값지불이 없다면 공허하고 무기력하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은 우리가 값지불 할 때 이뤄지는 것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전쟁은 칼과 창으로 하는 전쟁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적인 지혜와 지식으로 하는게 아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그 일에 이성, 육신 인간적인 지혜가 있는 사람이 어떻게 성공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에는 우리의 이성이나 지혜를 뛰어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의 자아가 강하면 강할 수록 쓰임받기 힘들다. (갈5:24) 우리 안에 정과 욕심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밖음으로써 하나님의 역사에 쓰임받길 바래요.

3. 하나님이 쓰시는 적은 무리들 (A few men that God uses)

무릎을 굽히지도 않고 혀로 물을 햝고 있었다. 기드온이 가르쳐준 사람도 없었는데, 이 300명은 물을 손에 떠서 혀로 햝아 먹고 있었다. 오늘 하나님이 이들에게 (5)과 같이 표현했다. "개가 핥는 것 같이 혀로 물을 핥는 자들"이라고 표현하시면서 저 자들을 쓰겠다고 하셨다. 그 당시에도 개라는 표현은 좋지 않거나 낮추어서 쓰는 표현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쓰시고자 하는 사람들을 이렇게 표현하셨다. 신약에도 예수님은 개라는 표현을 쓰셨다. (막7:26~29) 예수님은 이 여인을 낮추시기 위해 이 말씀을 하신게 아니다. 우리가 예수님 앞에 낮아지고 깨어지며 굴복되는 순간 우리 앞에 악한게 떠나가는 것을 믿으시길 바래요. 우리가 먼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부르심과 사명을 분명하게 붙잡아야 한다. 버려진 돌가 같은 나의 인생을 회복되어야 한다. 능력이 많아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게 아니다. 하나님을 정말 사랑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할 때 거룩한 열정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딤후2:4) 하나님 앞에 위기의 때에 부름 받았다는 비전을 가지길 바래요.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비전이 분명할 수록 육신의 소욕을 절제하며 능력을 주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 앞에 살아가는 믿음의 삶은 하나님 나라에 소망이 가득하다면 하나님 나라의 상급을 위해서 절제할 수 있어야 한다. 믿음의 행위를 보이라는 것이다. 큰 일을 행하는 것만 능력이 아니다. 예수님도 십자가 위해서 사람들이 조롱할 때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으셨다. 내려 오거나 불을 내려 심판할 수 있지만 내려오지 않으셨다. 성경에서 믿음의 관계를 말할 때 다윗과 요나단을 말한다. 다윗만 아니었으면 요나단이 왕이 되었을 것이다. 인간적으로 보면 다윗때문에 자신이 왕위를 빼았았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삼상18:1) 기드온의 300용사들과 같은 마음을 가질 때 하나님께서 만나주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생각과는 정반대로 말씀하실 수도 있다.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데 쓰임받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을 구경하는 구경꾼이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는 적은 무리기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전쟁을 정말 하길 원하는 믿음이 있는 자들을 모으셨다. (눅12:32)

Sunday, November 26, 2017

2017-11-26 (주일예배, 정의호목사님) 버려진 돌을 쓰시는 하나님 (마21:42~46)

세상에 무서운 사람은 변화가 없는 사람이다. 모두가 박장대소 하면서 웃는데 웃지않는 한사람이 있다. 무섭다. 그보다 더 무서운 사람은 모두가 은혜받고 변화되는 와중에 변화가 없는 사람이다.
예수님은 세상에 오셔서 많은 말씀을 전하셨고, 수많은 사람들이 변화되서 새로운 삶을 살았다. but 대제사장, 서기관들은 끝까지 변화되지 않았다. 세리와 창귀같은 그 시대의 악한 죄인들도 변화가 되었지만, 이런 놀라운 말씀을 들어도 변화되지 않다는 것은 더 심각한 세력이 그 속에 있다는 것이다. 귀신들린 자보다 더 심각한 사람이다. 변화입니다. 포도원 주인이 포도원을 맡겨놓고 원하는 것은 열매이다. 천국은 능력, 자질도 문제가 되지 않지만, 변화되지 않는 사람은 못들어간다. 죄를 회개하지 않기 때문에 변화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변화의 열매를 요구하시는 것이다. 어떤 사람을 부르셔서 어떤 모양으로 쓰시는지 보길 바래요. 하나님 앞에 합한 삶을 살길 바래요.

1. 건축가들이 사용하는 돌 (Stone that is used by builders)

중동은 돌이 많아서 대부분이 돌로 건축한다. & 돌에 대한 전문가이고, 좋은 돌은 쓰고 나쁜 돌은 버린다. 종교의 전문가들은 종교인들은 문벌과 지식과 지혜를 가진 사람을 세우는데, 그  사람들이 대제사장, 서기관들이다. 세리와 창귀들은 버려진 돌이고 쓸모없는 돌이라고 한다. (고전3:18) 우리 생각을 뒤집지 않으면 하나님을 믿기 어렵다. 자기 지혜를 의지하는 사람은 신앙하기 어렵고 변화되기 어렵다. but 자신을 어리석은 자로 생각하면 좋다. (고전3:19) 지혜를 의지하는 사람은 당혹스런 말씀이다. (고전3:20) 사람의 지혜를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헛것이다. 세상의 지혜에서 어리석은 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종교인들은 예배 잘 섬기고 제사 잘 드리는 사람을 지혜있는 자라고 생각하고, 세리와 창귀들은 어리석고 쓸모없는 사람으로 생각한다. but 하나님의 눈은 어떤지 보세요. 하나님의 지혜는 우리의 눈에는 기이하다. 그들이 지혜있다고 생각하고 세운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 없고, 그들이 하나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사람들이 하나님나라에 들어간다는게 얼마나 기이한가요? 신앙이 어렵거나 힘들 때 리더가 하는 말을 따진다. 리더의 말을 자기의 기준으로 듣기 때문이다. 리더도 자기의 기준으로 말하는 것이다. 종교인들도 하나님은 이럴것이라고 자기의 기준으로 말한다. but 하나님의 뜻과 기준은 우리로써는 전혀 상상도 할 수 없고 다르다. (42) 이런 일은 사람의 일로써는 알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을 알아야 오해가 없다. 그러지 않으면 이 종교인들처럼 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신앙 하길 바래요.

2.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돌 (Stone that is used by God)

하나님은 건축전문가들이 버린 쓸모없는 돌로 건축의 가장 중요한 돌인 머릿돌이 되게 하신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데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정상적으로 보여야 하는데 왜 기이하게 보일까요? 그건 하나님의 기준과 우리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자기 수준이 아직 따라오지 못하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세상 기준에서 완벽한 사람을 쓰지만,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이 버리고 배척한 사람들을 모아서 더 큰 일에 쓰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관점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을 연한 순과 같이 아주 작은 모습으로 보내셨다.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은 다르다. 그 아들을 통해 세상을 구원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갈등하지 않으신데, 우리는 왜 이해하지 못할 일이 많이 생기고 갈등합니까? 아직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고전1:18) 종교인들에게는 예수님의 십자가가 미련해보인다. but 구원을 받을 사람에게는 예수님의 십자가가 구원으로 보인다. (고전1:19) 총명한 자들, 자기 지혜를 의지하는 자들에게 십자가는 쓸모없는 미련한 것으로 보인다. 예수님은 종교인들이 무시하는 갈릴리 어부들을 하나님나라에 기둥같은 사도로 세우셨다. 그 사람들을 하나님나라에 사도로 세우셨다는게 너무 기이한 일이다. 지옥 심판받을 것이라는 세리도 사도로 세우셨다. 기절할 일이다. but 하나님의 일을 하는 대제사장, 서기관들은 천국에 가지못한다는 것은 얼마나 기이한 일인가요? (고전1:27~29) 아무도 자기 힘과 자랑, 능력, 문벌, 지혜로 하나님나라에 들어갔다는 말을 하지 못하도록 하게 하려 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오히려 세상이 버린 자를 쓰시는 것은 이루것도 자랑할게 없기 때문이다. so 지혜로운 자들이 교회에서 원망, 불평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하나님은 강한자들이 버린 약한 자들을 택하여서 강한자들을 부끄럽게 하신다. so 강한 자들은 교회 안에서 불만이 많다. & 하나님 앞에 버려진 자가 되는 것이다. 초대교회에는 양반, 상놈, 종의 신분차이가 있었는데 종이 주인보다 은혜가 많아서 영수(사역자, 장로)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세상은 금수저가 높아보이지만, 하늘나라에서는 금수저에게 버림받은 흙수저들이 쓰임받는 것이다. 아들까지 그 위치였다면 하나님이 어떤자를 어떻게 쓰실지는 알수 있다. 하나님의 방법은 보배를 질그릇에 넣는 분이다. 보배인 자기 아들을 말구유에 넣는 분이다. 이건 기이한 일이 아니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당연한 일이다. 이 당연한 일이 있는 자들에게는 불공평해 보이는 것이다. 멸망할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도가 미련해 보이는 것이다. 이것이 미련해 보인다는건 내가 망할 신앙을 하고있다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는 망할 자들에게는 미련해보인다. 하나님의 지혜를 배우길 바래요.

3. 하나님이 쓰시는 방법 (The means that God uses)

건축가들의 버려진 들이라고 해서 모조건 다 사용하는건 아니다. 미련한자, 약한 자들을 쓰긴 하지만 다 쓰는건 아니다. 오해하면 안된다. 레위 같은 세리는 사도로 쓰임받았지만 모든 세리가 다 쓰임받은건 아니다. 반드시 새롭게 다듬은 후(변화시킨 후) 쓰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예수님조차 십자가를 지나서 부활이라는 변화된 영광을 통해서 구원으로 쓰신 것이다. 레위도 세리라는 옛사람에서 변화된 삶을 통해서 쓰시는 것이다. 그 시대에 갈릴리마을 어부가 다 쓰임받는게 아니고, 가족을 버릴 정도로 변화가 되었기 때문에 쓰임받는 것이다. 예수님은 죄인을 부르러 오시긴 하셨지만, 회개를 통해 구원을 주기 위해 오신 것이고, 이것을 통해 쓰임받는 것이다. 연약할지라도 회개하고 변화되면 존귀한 일꾼이 되는 것이다. 교회 안에 미련하고 부족해보이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교회 안에서까지도 여전히 미련한자, 약한 자로 변화받지 못한 삶을 사는건 하나님께 쓰임받지 못한 삶, 너무 불쌍한 삶을 사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의 미련, 불쌍한 자라고 주장하는 것(자기 의)이 강하기 때문이다. 모세, 사도바울 조차도 변화되었을 때 쓰임받은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변화의 열매이다. 종교인들은 시작은 좋아도 새로운 변화가 없는 것이 치명적인 문제이다. 변화되지 않은 금수저보다 새로게 변화된 사람이 값진 것이다. 종교인들은 많은 좋은 조건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변화된 열매가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나라를 빼앗긴 것이다. 좋은 문벌과 가정을 가졌기 때문에 쓰임받지 못한게 아니다. 반면에 사도들도 가난하고 미련했기 때문에 쓰임받은 것도 아니다. 회개받고 예수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은 변화의 열매 차이다. 매주 예배 드리는 것은 하나님이 변화의 기회를 주시는 것이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3년 동안 충분히 변화될 기회를 주셨다. but 그들은 끝까지 변화되지 않았다. 변화될 기회는 한번이면 족하다. 예배 한번으로 인생이 변화되는 것이다.

하나님나라는 먼저된 자가 나중되고, 나중된 자가 먼저되는 일이 기이한 일이 아니다. 오늘 말씀도 예수님이 직분받은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다. 내 자신이 변화되는 열매가 있어야 한다. 직분을 받고도 변화되지 못하면 결국은 그 직분도 빼앗기게 된다. 악한 자는 자기 죄를 인정하지 않고 남의 죄를 공격한다. 하나님께서 교회 남아있게 하시고 직분을 가지고 있는 것은 열매 맺은만큼 나의 상급이 되는 것이다. 한해 마무리 하면서 말씀이 무슨 의미를 주시는지를 생각해보길 바래요. 하나님은 열매를 맺을 기회를 주셨다. 작년과 올해 초와 지금 어떤 열매를 맺고 있는지, 더 못해졌는지, 땅에 파묻었는지 생각해보세요. 열매맺는 풍성한 한해로 마무리 해서 하나님나라에 상급잇는 신앙 마무리 하길 바래요.

Friday, November 24, 2017

2017-11-24 (금요철야예배, 송경훈강도사님) 성경이 주는 유익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책이다. 성경에 기록된 역사 안에는 하나님의 거룩한 뜻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실현되어지고 백성과의 언약이 어떻게 발전되어지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길 원했다. (신4:10) 이스라엘 백성들은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배우게 해야한다고 하신다. 내 나름대로의 방식대로 신앙하기 쉽다. so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 말씀은 하셨던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계속해서 하나님을 배워야 하는 것이다. but 배워야 한다는 원어적 뜻은 훈련의 의미도 담겨져 있다. 하나님을 배우는 것은 저절로 되는게 아니라 훈련도 포함되어진 것이다. 우리 교회의 특징 중에 말씀대로 살아가는 훈련도 있다. 이런 훈련들이 저절로 되어지는건 아니다. 하나님을 모르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말씀을 주시고 말씀을 배우고 훈련 받으라고 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 자녀세대에 까지 배우고 가르치라는 것이다. 배우고 훈련하고 가르치는 의무가 있는 것이다. 이 세상을 살 때 성경대로 살면 가장 확실한 것이다. 누구나 망하는 인생을 살고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성경은 살아가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교과서와 같이 알려주는 것이다.

1. 구원에 이르게 함


유대인들의 자녀교육을 보면 원리와 방법이 하나님 중심적이다. 자녀들에게 어릴때부터 성경과 하나님의 역사를 꾸준히 가르친다. (신6:7) 유대인들이 자녀를 가르치는 유일한 것이 하나님 말씀이었다. 이들의 삶을 보면 하나님 말씀과 동떨어진게 아니다.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고 배우고 가르치는 말씀 중심의 가르침이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주신 이유는 모든 사람들이 구원의 길을 따라 오라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믿음으로 구원의 방법을 주신 것이다. 성경 안에 구원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있는 일은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다.

2.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책


세상에도 좋은 책들은 많이 있다. & 그 책들은 감동을 주기도 하고 유익을 주기도 한다. but 그 책들은 사람이 쓴 책이고, 사람의 생각과 감정도 들어있다. 성경이 왜 완전한 책일까요? 그 안에 하나님 말씀이 있기 때문이다. 그 안에 교훈과 책망이 들어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볼 수 있어야 하고, 그 가치를 알았다면 몸이 따라가야 한다.

1) 교훈과 책망의 교육


죄와 탐욕으로 인해 죄가 좋아보인다.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을 믿는 경향이 있다. 하나님 말씀이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고 생각해서 가치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세상을 보며 탐하고 좋아하면 복음이 약해지고 진리가 약해지는 것이다. 신앙하는 사람은 하나님은 사랑이라는 것은 다 알고 있지만, 하나님의 사랑이 눈에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 가치가 많이 약해져 보인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영적인 반응이 우리 안에 일어나야 한다. 잘못을 하면 책망도 해야하는 것이 성경의 말씀이다. 이런 가르침을 지키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더라도 금방 쫒겨 날 것이라는 말씀도 하신다. 말씀에는 반드시 순종이라는 댓가가 따른다. 말씀대로 살라고 말씀을 주셨고, 말씀대로 살지 않는다면 댓가를 치뤄야 한다는 경고의 말씀도 하신다. 예수님을 따르기에는 사람이 가진게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 비어있는 상태로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 & 그 순종을 요구하신다. 우리는 복음 안에서 말씀으로 무장해야 한다. 신앙을 하면서도 아무 죄책감도 없거나 하면 말씀이 약하다는 것이다. 내 의지로 하는게 아니라 내 안에 말씀으로 하는 것이다. 말씀으로 인한 강한 믿음을 가져야 할 줄 믿습니다.

2) 영혼의 양식


전자제품을 사면 사용설명서대로 사용해야 한다. 성경이 인생의 이런 지침서이다. 메뉴얼대로 하지 않으면 그 인생은 보장받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가 성경에 기록된 메뉴얼대로 사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고 그것대로 살아가지 않는 것이 더 어려운 것이다. 하나님 말씀도 없이 내 뜻대로 사는 것은 매우 고달픈 인생이다. 하나님 말씀 없이 장애물과 같은 고달픈 인생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벧전2:2) 갖 태어난 아기는 엄마의 젓이 없으면 금방 죽는다. so 본능적으로 젓을 먹는다. 갖난아기가 젓을 먹지 않으면 죽는 것처럼 우리도 말씀을 먹지 않으면 영이 죽게되는 것이다. 삶에 즐거움이 없다는 것이다. 사람은 밥만 먹고 살수 없다. 하나님 말씀을 사모해서 먹을 때 구원에 이르도록 우리가 자라나는 것이다. 이것이 밥만 먹고 사는 것과 다른 것이다. (벧전2:3) 마찬가지로 우리도 말씀의 맛을 보게되면 말씀을 사모함으로 말씀을 먹게되는 것이다. (마4:4)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40일 금식 하실 때 마귀의 유혹이 나타났다. 우린 약해서 사단이 싸움을 걸면 이길수 있는 방법이 없다. 하나님 말씀 밖에 없다. 가장 강력한 하나님 말씀의 검을 가지길 바래요.

3. 성경을 읽어야 할 이유


성경 안에는 인간이 살아가야 할 이유가 있다.  하나님 중심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똑같은 일상이지만 말씀의 충만함을 깨달으면 보는 눈이 달라진다.

1)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함


좀 모자라거나 부족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워지면 하나님이 쓰기에 적합한 사람이 된다. 부족하고 미약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지만, 내 능력이 아닌 말씀의 능력이로 이뤄가신다. (요일2:5)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하게 되어져야 한다. 아는 것만으로 되는건 아니다. 선을 행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 선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가추는데 전제조건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온전하게 될 때이다.

2) 선을 행할 능력


선을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다르다. 무엇이 옳고 선한지는 알고 분별하는 것이 능력이다. 사람들이 왜 기독교인들을 싫어할까요? 우리는 분명한 하나님 말씀이 있다. 세상사람들이 어떤 말을 해도 하나님의 눈으로 발전해야 한다. (시119:11)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 된다는 다윗의 말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유익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알고 이미 알고 있다. 교회적으로 성경통독을 통해 많은 은혜의 바다이다.

Sunday, November 19, 2017

(2017-11-19 손인규목사님, 주일예배) 영적 공격을 기도로 돌파하라 (느헤미야4:1~6)

우리가 어떤 일을 정말 잘 하려면 몇번 대충 하는 것이 아니라 노력을 해야한다. 무엇이든지 그것을 잘 하기까지는 엄청난 보이지 않는 수고와 노력, 값지불이 있다. 처음 신앙을 시작할 때 얼마나 뜨거운 마음이 있습니까? 열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신앙을 시작한다. & 영향력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고싶다는 생각이 있다. 믿음 좋은 사람이 되기 원하는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이런 마음들이 흐지부지 하게 된다. & 간혹 신앙을 포기하는 사람도 생긴다. 누구나 신앙을 잘하길 원하지만 저절로 잘 되지 않는다. 원하는게 있다면 값지불이 필요하다. (눅14:28) 중요한 것은 과연 내가 높은 건물을 준공하기까지 그 비용을 준비할 수 있는가를 계산하라고 하신다. 누구나 시작할 수 있지만 끝까지 마치지 않으면 나의 것이 되지 않는다. 신앙의 생명력이 있으려면 값지불이 필요함을 알길 바래요. 그냥 가만히 앉아있고 값지불이 없다면 그것이 그냥 있지 않는다. 왜 이런 값지불이 필요할까요?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을 하려면 이것을 싫어하는 영적 방해세력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이 세상을 살고 있지만 우리는 천국백성이다. 우리가 아무 방해가 없으려면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면 된다. 하나님을 믿는 나의 삶에 항상 평안하기만 하다면 내가 잘 하고있는 것인지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이것이 좋은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잠14:4) 많은 소를 기르려면 그만큼 해야할 일이 많아지지만 그것이 나쁜게 아니다. 주님을 위해 살려고 하면 어려움이 당연히 있다. 주님 앞에 아름답고 멋진 인생을 살아야겠다고 해야 한다. 믿음을 갖고 적극적인 인생을 살길 바래요. 믿음이 성장하면 어려움이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이 잘못된게 아니다. 믿음으로 살고자 순종하는 가운데 방해를 만나는 사람이 있다면 믿음으로 이기고 기도로 승리하는 우리가 되길 바래요.

1. 영적 공격(1~3)


하나님이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영적인 공격을 말한다.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 남유다는 바벨론에 의해 망한다. 이후 이스라엘민족이 뿔뿔이 흩어졌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귀환하게 되고 성전을 건축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성벽을 세운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실제 삶에 각 영역에 회복이 일어나려고 할 때 사마리아인인 산발락과 도리아에 의해 영적인 공격이 일어나게 된다. 내가 하나님 앞에 비전을 받으면 저절로 쉽게 일어나려고 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일이 저절로 일어나지 않는다. 이런 방해를 이겨내야 할 줄 믿습니다.

1) 사람을 통해 공격


산발락은 사마리아의 지도자이고, 도비아는 산발락의 부하이다. 이 둘은 하나님의 일에 방해하는 악한 일에 쓰임받는 사람이다. 우리 주변에 있는 가까운 사람을 통해 영적인 방해가 있다. 하나님은 사람을 쓰실때 그냥 쓰지 않으시고, 영적 상태에 따라 쓰신다. (잠16:4) 악인의 역할을 할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하나님은 선한 일을 할 사람을 악하게 쓰지 않으신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선한 일을 할 때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안타까움을 품고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 복음을 위해 사는 사람, 주님의 일을 가치있게 여기는 사람, 하나님의 일을 사랑하고 기쁘게 여기는 우리가 되길 바래요. 하나님은 거룩한 소원, 믿음을 주신다. 믿음으로 순종하는 것을 방해하는 사람, 적극적으로 기도하고 말씀대로 사는 사람들에게 방해하는 사람이 있는데 낙담하고 포기하지 말길 바래요. 낙담하고 포기하면 원수들에게 지는 것이다.

2) 말로 공격


a. 미약한 사람들아 (2)


미약하다는 것은 더이상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여인의 상태를 말한다. 너가 어떤 사람인지 돌아보라, 너는 힘이 없는 미약한 사람들이라고 하며 하나님 사람들의 정체성을 낮게 하는 것이다. 우리들로 하여금 우리 스스로 우리를 사랑하지 못하고 나의 부모님, 환경을 부끄럽게 여기고 때로는 내가 아무 잘못한 것도 없는데 주눅들고 굽신여기고 나는 잘 못할꺼야 하고, 신앙에 있어도 하나님은 나를 싫어할꺼야 하며 나를 작게 여긴다. 사단은 우리들에게 참수하고 고소하는 역할을 한다. (계12:10) 우리가 예수그리스도 앞에서 사단을 참수하고 이미 이긴 것을 믿길 바래요. 사단이 주는 참수하는 말이 감정으로 들어올 때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기길 바래요. 참수한다는 것은 거짓으로 죄가 있는 것처럼 고소하는 것이다. 사단은 나의 약점과 문제점을 점점 부풀린다. 이것은 하나님의 성품과 반대된다.

b. 여우가 올라가도 무너지리라 (3)


우리가 믿음으로 심은 것에 대해서 낙담하게 만든다. 결과, 열매가 빨리 주어지지 않으면 우리가 낙담하고 포기하게 만든다. 믿음으로 기도하게 하는데 우리에게 정말 믿음이 있느냐, 좋은 결과가 있느냐 하는 여러가지 말로 우리를 공격한다. 우리들의 믿음의 수고를 우리 스스로 작게 여겨서 믿음의 삶을 스스로 중단하게 만든다. 기도를 하기는 하지만 대충 하게 만든다. 사단이 주는 말로 하는 공격, 방해들이 있을 때 마음에 계속 받아들이고 있을게 아니라  주님 앞에 내려놓으시길 바래요.

2. 느헤미아를 쓰시는 하나님 (4, 5)


열심히 하고자 할 때 방해하는 세력이 있을 때 느헤미아를 준비시켜놓으셨다.

1) 한 사람을 준비하심


에스라를 통해 말씀의 회복을 일으키시고, 느헤미야를 통해 성벽을 재건하는 역사를 하나님이 일으키신다. 하나님은 혼자 일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우리에게 맡기셨기 때문에 하나님 혼자서 일하지 않으신다. & 사람을 통해 일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언제든지 세상이 아무리 악해진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준비된 한 사람을 사용하신다. 이스라엘을 회복하는 역사에 하나님의 사람들을 찾고 계신다. 아무나 그 일을 우연히 쓰지 않으신다. 준비된 사람에게 하나님은 거룩한 일에 쓰신다. 예수님도 제자들을 부르셔서 직접 훈련 시키시고 성령을 부어주셔서 쓰신다. 성전을 만드는데는 스룹바벨을 쓰시고, 말씀회복에 에스라를, 성벽 재건에 느헤미야를 쓰신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백성, 그들이 수치와 부끄러움 당하는 것에 애통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선한 도구로 쓰실 줄 믿습니다. 말씀에 반응해서 깨어나는 사람을 하나님은 쓰실 것이다. 세상의 도덕, 윤리, 유행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에 순종할 때 우리 인생을 놀랍게 쓰실 줄 믿습니다.

2) 느헤미야의 기도


느헤미야는 문제 앞에서 하나님 앞에 기도로 나온다. 영적 생명력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올 때 기도로 승리할 수 있다. but 우리는 조상탓 등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다.

a. 우리 하나님이여 들으시옵소서


느헤미야는 포로생활을 오래 했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의 하나님이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신다는 것을 믿은 것이다. 믿음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온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나의 하나님이신 것을 믿으시길 바래요. 우리의 기도에 믿음의 근거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여전히 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느헤미야는 자기의 문제는 먼저 고백하기 이전에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신 것을 고백하고 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다. 나는 나의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고 고백하는 것이다. 하나님과 나와의 막힌 문제를 먼저 해결받길 바래요. 이것이 바로 회개인 것이다. 내가 먼저 하나님 편에 설 때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 되시는 것이다.

b. 그들이 욕하는 것을 갚으소서


나의 문제, 상황과 형편, 어려움 가운데 있는데 그들이 욕하는대로 갚으시옵소서, 그들이 심은대로 갚아주시옵소서 하는 것을 믿으시길 바래요. 신실하신 하나님, 심은대로 거두시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면 남들의 잘못으로 인해 우리는 실족하고 넘어지게 된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을 방해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징계될 것을 믿었다. (갈6:7) 하나님의 이 말씀은 악을 행하는 사람에게는 심판의 근거가 된다. 하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약속의 메시지인 것이다. 내 삶에 무엇으로 심고 있는지를 살펴봐야 할 것이다. 정죄하는 사람은 그 정죄로 인해 내가 정죄받겠지만, 남을 너그럽게 대하는 사람은 남들도 나를 너그럽게 대한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무엇으로 심고 있는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심판 받을만한 악한 것을 심지 말고, 기도와 믿음으로 심을 때 하나님은 반드시 갚아주실 줄 믿습니다. 나는 인색하면서 하나님은 나에게 풍성하게 대하길 원한다면 그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느헤미야는 심은대로 거두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믿었다.

3. 열매를 주시는 하나님 (6)


하나님 앞에 나와서 우리의 하나님이 되어달라고, 심은대로 갚아주시길 믿음으로 기도했다. 그럴 때 백성들의 마음을 움직이셨다. & 열매를 주신다.

1) 성벽이 서로 연결됨


성벽을 쌓는데 순서대로 쌓은게 아니고 자신의 집과 가까운 구역을 정해주고 동시에 성벽을 쌓기 시작했다. 산발락과 도비아의 방해를 물리치고 쌓아나갈 때 성벽이 연결되는 돌파가 이뤄졌다. & 그 위로 높이 쌓는 일만 남은 것이다.

2) 마음을 들여서 일함


하나님이 주신 사명과 약속의 방해를 물리칠 때 사람들의 마음이 일치하게 됐다. 하나님의 일을 억지로 하는 사람이 없어진 것이다. & 모든 사람들이 믿음으로 쌓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들의 시간, 물질, 마음을 드리는 그곳에 우리들의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믿음으로 살 때 방해가 있고, 느리게 보이고 미약해 보인다.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기도하고 기도로 싸워 이길 때 열매를 주실 줄 믿습니다. 믿음으로 갚지불할 때 열매를 주신다. 믿음으로 순종할 때 복이 있다. 사람을 상대로 살지 말고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주변 방해를 이기고 승리하길 바래요.

지난주

<말씀>
포도나무는 열매를 원하는 것이지, 나무 자체를 원하는게 아니다. (15:2) 성경은 우리도 포도나무에 비유했다. So 포도나무같은 우리 신앙도 열매가 맺어야 하고, 열매를 맺을 신앙이 정상인 것이다. 열매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변화가 없다면 의심과 회의가 들어오게 된다. 열매가 예수님 안에 붙어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좋은 신앙을 한다고 생각하더라도 열매가 없다면, 변화가 없다면 사건을 만나면 떠나게 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자기 열심으로 하겠지만, 열심, 헌신, 충성, 일을 한다고 인생이 영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나중에 열매를 보면 아는 것이다. (15:4) 안에 신앙을 오래하고 열심히 한다고 하더라도 말씀에 의하면 예수님 안에 있지도 않으면서 열심히 교회 다닌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하는 신앙, 헌신이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것이 아니다. 오직 열매가 있는 열매만 받으시는 것이다. 잎파리같은 잎들이 많아도 안에 여래가 없다면 건강한게 아니다. (15:8) 우리 신앙의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열매를 통해 영광 받으신다고 하셨고, 열매가 있을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고 하셨다. 예수님께 붙어있다면 열매를 많이 맺을 것라고 하셨다. 순간 합당한 열매를 원하셨다. 열매를 위해서 사는 것이다. 열매를 통해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길 바래요.

  1. 포도원을 세로 주인(33)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고 망대를 만들어서 특상품을 만들 있는 포도원을 만들었다고 하셨다. 이유는 한가지이다. 좋은 포도열매를 얻기위해서 많은 수고와 비용을 드린 것이다. 주인은 타국으로 농부들에게 세를 주고 갔다고 했다. 그냥 주고 간게 아니다. 세를 주고 갔다. 달란트 비유에서도 달란트를 그냥 주고 간게 아니고 장사하고 열매를 놓으라고 것이다. 여기도 포도원은 여전히 주인 것이다. 농부들은 포도열매를 가지고 세를 내야할 사명이 있는 것이다. 교회당 등은 하나님이 주신 포다원이다. 교회, 세상은 태어나서 놀고 먹으라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정한 합당한 세를 내라고 하셨다. 세는 하나님께 올려드릴 영광이다. So 세상을 살면서 자기를 위해 먹고 살다가 죽으면 되는게 아니다. 남의 , 하나님의 땅에서 책임있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일을 한만큼 열매를 맺고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 우리 삶의 목적이다. 신앙을 일년, 오년, 십년 할수록 그에 합당한 열매를 원하시는 것이다. & 그것이 상급이 되고, 남는 인생을 사는 것이다. So 주인의 포도원에 살면서 하나님의 세를 떼먹고 사는 하나님의 열매를 도둑질하는 삶을 살려면 매주 예배 가운데 열매를 가지고 나와야 것이다

  1. 농부들의 태도(34~39)

농부들은 처음에는 감사했을 것이다. 주인이 좋은 포도원을 만들어서 우리에게 맡긴 것이다. But 날이 갈수록 감사가 없어지고 시간이 갈수록 은혜에서 악한 마음으로 바뀌게 것이다.

1) 종에 대한 태도 Attitude toward servants

열매를 바칠 마음이 없고 바칠게 없으면 태도가 바뀐다. 세를 받으러 종들을 핍박하고 죽였다. 이유는 포도원에서 놀고 먹다가 열매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동안 주인이 주신 포도원을 자기의 것으로 여기고 먹고 놀면서 악한 인생을 것이다. 주인은 화가 많이 났을 것이다. 하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그들에게 회개할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이다. 종들은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들이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했다. 하나님을 섬기라고 의로운 삶을 살라고 했다. 하지만 시대 사람들은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돌로 쳐죽였다. 지금 시대에도 매일 아침 QT 통해, 셀모임을 통해, 예배를 통해 계속 열매를 요구하시는 것이다. 용서의 열매, 사랑의 열매, 겸손의 열매, 자기부인, 헌신, 온유의 열매를 원하시는데 그걸 그냥 들으면 안된다. 하지만 용서하라는 말씀을 들을 말씀을 미원하고 팝박한다. 이것이 농부들의 반응이다. 농부들이 특별히 나쁜 사람이 아니다. 내가 열매있는 신앙을 하면 그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은 내가 열매가 없기 때문이고, 열매를 드리는 신앙을 하고있지 않아서이다. So 우리는 하나님이 열매를 요구할 열매를 드릴 있다면 이런 삶을 살지 않는다. 말씀에 합당한 변화, 열매있는 신앙을 해야한다. 하나님이 나에게 원하는 열매를 드리길 바래요.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하나님의 세를 내지 않는 불법자로써 살고 있는 것이다.

2)
아들에 대한 태도 Attitude toward the son

모든 죄를 아들을 통해서 용서해주실 마음을 가지고 아들을 보내셨다. & 아들은 회개와 회개의 열매를 요구했다. & 믿음의 열매를 요구했다. But 여전히 농부들은 요구들을 거부한채 아들을 포도원 밖으로 데리고 가서 죽였다. 아들이 없으면 포도원이 자신들에게 상속받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여기서 아들은 예수님을 말한다. 제사장과 서기관들은 직분을 자기 영광의 도구로 썼다. 예수님은 그들의 죄를 아시고 책망하시면서 돌이킬 것을 요구했다. But 예수님을 밖으로 끌고 가서 십자가에 못박았다. 이것은 대제사장과 장로들만의 문제가 아니고 오늘날도 동일한 문제가 있다. 죄인에게는 예수 없이는 소망이 없기 때문에 자기 아들에게 기회를 주신 것이다. 예수님 없이는 다른 기회가 없다. 하나님은 다른 모든 죄들을 용서해주신다. 예수님을 버라고 부정하면 영혼에 소망이 없다. 우리 구원에 유일한 기회요 마지막 찬스가 예수님이시다

  1. 주인의 결단(40~41)


이렇게 주인은 어떻게 할것인지 물어봤다. 그들은 악한 자들을 진멸하고 다른 농부들에게 세로 것이라고 했다. 진멸한다는 것은 그냥 죽인다는게  아니고 비참하게 죽인다는 것이다. But 종교인들은 이것이 자신의 문제인 것은 몰랐다. 지식은 우리를 변화시키지 못한다. 교만하게만 뿐이다. 하나님은 열매 바치길 거부하는 농부들을 진멸하고 다른 농부들에게 세를 준다고 하셨다. 하나님께 부름심 받은 사람들은 일꾼으로 부르심 받았다. 포도원 가서 일할 일꺼리도 주신 것이다. 셀리더, 동역자, 직장의 직분, 봉사부서, 집사 등의 직분 주셨는데, 그에 합당한 세를 원하신다. 열매를 받기 위해서 세를 주시는 것이고, 열매를 얻기 위해서 포도원에서 일을 하게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역자의 열매를 원하시고 세우시겠죠? 매일 부끄러움이 없는 열매를 원하신다. 속사람이 예수님의 형상으로 변화되는 영적인 열매, 영혼 등의 열매를 원하시는 것이다. 열매가 없으면 직분이 책망이 수도 있는 것이다. 대제사장과 서기관은 좋은 직분을 받았지만 그것이 책망꺼리가 되는 것이다. 열매가 중요하지, 직분이 중요한게 아니다. 자기 귀한 직분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인격을 닮는 인격의 열매를 가장 원하실 것이다. 성령의 7가지 열매를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받으시는 것이다. 성령의 멸매로 다른 영혼에 변화를 가져다 것이다. 여전히 삶의 패턴이 같고, 스타일이 같으면 안된다. 나를 통해 제자가 세워지지 않고 영혼이 구원받지 않으면 안된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변화되지 않는 인격으로 열매를 맺기는 힘들 것이다. 착각하게 하는 신앙은 나를 망하게 한다. 교회를 다니면서 아무 열매 없이, 변화 없이 교회에 많은 일을 하는 것은 착각하는 것이고 망하게 하는 것이다. 자신의 열매를 다시 체크해봐야 한다. 1월에 시작했던 것이 어떤 열매가 나타났는지 체크해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