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November 27, 2016

2016-11-27 (주일예배, 정의호목사님) 실족케 하지 말라 (마18:5~9)

사람이 태어나서 가만히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 과정에서 어떤 사람은 선한 일을, 어떤 사람은 악한 일을 한다. 예수님을 믿고 안믿고는 자유이다. 하지만 자신이 산 것에 대해서 심판을 받아야 한다. 다른 사람을 위해 사는 사람은 하늘의 별과 같이 빛나게 한다고 하셨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죄짖게 하는 사람도 있다. 암론의 바늘과 같이 작은 일을 통해 압살롬이 다윗을 반역하게 하는 일이 되게 한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의 기준은 죄이다. 예수님을 믿고 자기 죄를 용서함 받은 사람은 죄를 지어도 그 죄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착하게 살고 적은 죄를 지은 사람에게는 그 죄가 심판이 있는 것이다. 천국에서 받을 상도 다르고, 심판도 다른다. 자기 스스로 지은 죄도 큰 죄이지만, 다른 사람으로부터 죄를 짓게 하는 것이 더 큰 죄이다. 특히 믿는 사람을 죄짓게 하는 것이 가장 악하고 큰 죄이다. 우린 하나님이 기뻐하는 존재로 태어났다. 하나님은 우리가 잘 되길 바라신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다른 사람을 잘되게 하는 인생을 살면 우리의 삶이 형통케 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존귀하게 대하면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존귀하게 여긴다. 우리가 하지 말아야 할 죄의 가장 큰 것이 무엇인지 볼 때 우리 인생이 형통하게 할지언정, 다른 사람의 인생을 불행하게 하는 삶을 살면 안된다. 지난주와 연결되서 작은 자에 대해서 말씀 하신다. (5) "내 이름으로"라는 것은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에 자신을 부인하기도 하고 나를 낮추기도 해야한다는 의미이다. 그래야 내가 다른 사람에게 죄를 짓지 않게 된다.

1. 작은 자를 영접하는 자


이렇게 작고 겸손한 자를 영접하는 것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라고 하신다. 예수님은 높으신 분으로 스스로 낮추셔서 십자가에 죽으셨기 때문이다. 자기를 낮추지 못하기 때문에 예수님을 영접할 수 없는 것이다. 어린아이와 같이 하지 못하면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한다고 하셨다. 자기 스스로를 높이는 사람은 예수님을 낮추게 된다. 그래서 예수님 말씀을 들어도 사람들을 멸시하는 것은 예수님을 멸시하고 배척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가까운 나의 주님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내 부하고 높아진 마음이 예수님을 물리치는 것이다. 하지만 내 마음이 상하고 깨어져서 깊은 상처 가운데서 만나는 예수님은 나의 위로자가 되고 나의 상처를 싸매시는 것은 예수님은 겸손한 자를 가까이 하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자들을 가까이 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강한 자, 왕 같은 자를 영접하는 자가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라고 하지 않으신다. 자신이 무시할 수 있는 자를 가까이 하는 것이 예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은 겸손한 것이다. 내가 얼마나 큰 능력이 있는지가 신앙의 성숙도는 아니다. 내가 얼마나 낮아질 수 있는지가 신앙의 정도이다. 어린아이처럼 자신을 얼마나 낮출 수 있는지, 내려놓을 수 있는지를 보면 그것을 통해 하나님은 큰 일을 하신다.

2. 작은 자를 실족케 하는 자


예수님을 믿는 작은 자를 실족케 한다는 것은 그 작은 자를 죄를 지어 넘어지게 하는 것이다.

1) 실족케 하는 죄의 심각성 (6)


과장법 같긴 하지만 과장법이 아니고 실제이다. 연자맷돌은 나귀가 매는 큰 돌이다. 그것도 얕은 바다가 아니고 깊은 바다에 빠지는게 더 나은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연자맷돌은 죄의 무게이고, 깊은 바다는 깊은 지옥불을 말한다. 작은 자에게 하는 그 죄게 엄청나게 큰 죄라는 것이다. 그것은 예수님이 핏값으로 사신 영혼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에게는 생명과 같이 귀한 영혼인데, 내가 그 영혼을 죄 짓게 하면 예수님께 지은 죄이기 때문에 큰 죄이다. (마25:40) 우리의 관점을 바꿔야 하는 말씀이다. 우리의 중심은 큰 일, 좋은 일에서 잘 나타나지 않는다. 좋은 일은 예수님 안 믿는 사람도 하길 원하기 때문에 믿음을 분간하기 힘들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만 하는 일에서 믿음을 분간하신다. 열처녀들이 기름이 남아 있을 때 오지 않으신다. 그 때 와봤자 분별이 안된다. 기다리다 지쳐서 포기할 때 그 때 오신다. 마찬가지로 우리 중심으로 큰 일을 통해 보시는 것은 아니다. 남들이 눈길 주지 않고 하기 싫어하는 그 때 예수님이 그걸 보신다. 예수님 믿는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하는 일이 곧 내게 하는 것이라고 하신다. 예수님을 믿는 자가 중요한 것이다. 자기 스스로 혼자 죄를 짓는 것도 심판이 심각하다. 하지만 오늘은 그 죄를 떠나서 예수님을 믿는 자를 죄짓게 해서 넘어지게 하는 그런 사람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교회에서도 신앙 잘 하는 사람을 깨어서 교회 안나오게 하고 교회 떠나게 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교회 다니는 것을 핍박하는 것, 제사 때 우상에게 절하게 하는 것은 작은 죄가 아니다. (벧후2:14) 신앙이 약한 자를 유혹하고 무시하고 판단하고 정죄해서 낙심해서 교회 안나오게 하는 것은 아무 나쁜 죄이다. 더 심각한 죄는 교회 잘 다니는데 이단에 빠지게 하는 죄이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심각한 죄가 더 많다. 실족하게 하는 일은 세상 끝날 때까지 계속 있다. 하지만 내가 그 사람이 되서는 안된다. 술집, 오락, 도박, 폭력, 사기, 매춘 등 다 자기 돈 벌게 하기 위해서 남들이 신나게 죄 짓게 하는 것이 아주 나쁜 죄이다. 직업을 갖더라도 남에게 죄 짓게 하는 직업을 가지면 안된다. 교회를 잘 다니는 사람을 꾀어서 세상 유혹하고, 어떤 사람은 성령을 거슬르게 해서 종교인으로 빠지게 하는 것들이 나쁜 죄이다. 사단의 목적은 믿는자, 교회에서 신앙생활 잘 하는 자이다. 신앙생활 잘 하는 사람에게 신앙을 더 잘하게 하는 사람이 있고, 반대의 사람도 있다. 영적인 문제이다. 믿는 자의 믿음을 소멸케 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사단의 계략이다. 그래서 믿는 자를 대할 때는 함부로 판단하고 모함하고 고소하고 자기 생각과 맞지 않는다고 핍박하는 것을 위험한 것이다. 한 영혼의 생명을 죽이는 엄청난 죄이다. 오늘 말씀처럼 작은 자이다. 한때 신앙 잘 하다가 안나오는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 집사, 장로, 셀장 등 리더들로부터 상처를 받는 것이다. 나의 행동으로 인해 상처 주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저 모양으로 안살기 위해 교회 안다닌다."며 실족케 한다.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게 화가 있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되면 안된다.

2) 실족케 하는 죄의 경고 (8)


손가지고 지옥에 갈바에는 손발없이 지옥 안가는게 나은 것이다. 발 때문에 지옥가는 것은 발을 찍을 정도의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삼손도 사사이다. 하나님이 세우신 자이다. 그래서 특별한 능력을 주셨다. 하지만 눈 때문에 정욕을 이기지 못했다. 하지만 눈을 뽑고 난 후에 그 전보다 블레셋 군사를 더 많이 죽였다고 했다. 자기 손으로 남을 섬기고 돕고 말씀을 읽고 선한데 쓰면 좋지만, 죄를 짓게 하는데 쓰이면 안된다. 우린 어떤 모양으로든지 다른 사람에게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 내가 가만히 있어도 다른 사람은 영향을 받는다. 선한 영향 뿐만 아니라 나쁜 영향력이 되기도 한다. 상급이 되기도 하지만 심판꺼리가 될 수도 있다. 나의 손과 발, 지체가 선한 일에 쓰임받기 위해서는 남이 잘되는데 쓰임 받아야 한다. 그래서 남이 잘되는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사람은 죄 지을 때 혼자 짓지 않는다. 이게 남들과 같이 죄 짓도록 하는 사단의 계책이다. (마25:40) 다시 읽어 보세요. 지극히 작고 연약한 자에게 하는 것이 곧 예수님에게 하는 것이다. 우린 강하고 큰 자를 대할 때는 죄를 짓지 않는다. 하지만 자기보다 약한 자를 대할 때 죄를 많이 짓는다. 바리새인들 세리와 창기들에게 많은 죄를 지었다. 그들은 안식일 못 지키게 했고, 회당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약한 자를 무시하는 그 사람은 예수님도 무시하기 때문에 예수님이 가까이 하지 않는다. 약한자, 낮은자, 천한자, 남이 돌보지 않는 자에게 가까이 가보세요.

Sunday, November 20, 2016

2016-11-20 (주일예배, 정의호목사님) 천국에서 큰자 (마 18:1~4)

사람은 다 남보다 잘 되길 원하고, 경쟁심리가 다 있습니다. 누가 더 지위가 있고, 나보다 더 잘하는지 비교하는 마음이 있다. 외모, 직업, 학벌, 재산 등을 비교하는 것은 나보다 높은지 낮은지를 보기위한 경쟁의식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객관적으로 괜찮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열등감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열등감은 굉장히 주관적이다. 자기 실력이 좋음에도 불구하고 열등감을 가진 경우가 많다. 동네축구에서 열등감을 가지면 큰사람이 될 수 없다. 큰 사람, 세계를 기준으로 봐야 한다. 수능을 아무리 잘 봐서 명문대를 갔다고 해도 하바드생을 만나면 열등감을 느낄 것이다. 하바드를 가면 세계적인 학생들이 오기 때문에 열등감, 자살하는 사람이 많다. so 보이지 않는 세계와의 경쟁을 하면 열등감을 가지지 않을 수 있다. 이곳은 하나님 나라의 절대적인 기준이 있기 때문에 열등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 하나님 앞에 큰 자가 되서 자유로운 삶을 살길 바래요.

1. 천국에 들어갈 자


먼저 천국에 들어가야 큰자, 작은자가 되는 것이다. (1) 그때는 제자들이 길을 가면서 누가 크냐면서 다투는 그때 제자들이 이것을 질문한 것이다. 제자들 사이에는 누가 크냐가 이슈였던 것 같습니다. 이게 오늘날 교회생활을 하는 우리들의 문제인 것이다. 누가 더 인정받고 높아지느냐의 문제로 어려워지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천국에서 누가 더 크냐의 문제를 다루기 전에 누가 천국에 먼저 들어가는지를 다루신다. 천국의 원리를 같기 때문이다. 천국에 누가 들어가냐와 천국에서 누가 더 크냐의 기준이 같은 것 같다. (3)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방법을 간단하게 한줄로 말씀해주신다.

1) 돌이켜라

돌이키라는 말은 변화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현재의 그 모습에서 변화되어야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이 세상의 옷을 그대로 입고 가면 안되고, 천국의 예복을 입고 들어가야 한다. 세상에서의 가치관, 옛사람의 생각으로는 천국에 갈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돌이키라는 것이다. 청함을 받은 사람은 많아도 택함을 받은 사람은 적다는 것이다. 우리는 교회만 다니면 다 천국에 갈 것 같지만, 예수님 말씀은 그것과는 다르다. 믿음 없이 다니는 사람은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심지어 10년을 다녀도 변화가 되지 않는다. 옛 사람이 변화되지 않으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의지와 능력, 팔, 손을 주셨지만, 그에 대한 책임은 물으신다. 하라고 하신 것, 하지 말라고 하신 것에 대한 책임을 주신 것이다. 돌이키라는 말씀을 주셨지만 할지 말지는 자신에게 달렸다. 다만 그에 대한 책임은 자신이 져야 한다. 오랫동안 생각이 굳어진 사람일수록 변화는 더 어려운 것이다. 묵은 포도주를 오랫동안 먹은 사람은 끊기 쉽지 않은 것이다. 자기 생각이 오랫동안 굳은 사람은 변화되기 힘들다. (눅5:37~39) 내 생각을 바꾸지 않을 생각으로 말씀을 들으면 생각이 복잡해서 분노가 나고 터져버린다. 내가 새롭게 변화되길 원한다면 예수님의 새 말씀을 받아야 하는데, 내 생각을 새롭게 해야 한다. 옛사람으로 살기 너무 편하지만, 이 삶을 바꾸려면 값지불이 필요하고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너무 불편하다. 신앙생활도 똑같은 것이다. 수십년동안 잘 살아왔는데 바뀌기는 쉽지 않다. 돌이키기가 쉽지 않다. 천국에 들어갈 확신이 있는 제자들에게 천국을 가기 위해서는 돌이켜야 한다고 말씀 하신다. 종교생활을 오래 할수록,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일수록 변화가 더디다. 과거에 교회생활 하면서 리더로도 섬겼던 사람, 세상의 많은 부자들일수록 변화가 어렵습니다. 오래 교회다닌 사람은 다른 사람을 가르치려고 하지만 정작 자신은 변화가 없다. 이런 사람들일수록 정말 돌이켜야 할 사람이다. 옛사람에 속한 자기에게 회개를 해야 한다. 회기 없이는 변화되지 않는다. 죄가 우리 묵은 포도주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다닐지 몰라도, 직분은 받을수 있어도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는 어렵다. (엡4:22~23) 옛사람은 유혹의 욕심을 가지고 사는데, 이런 사람들의 마지막은 썩어져가는 구습을 가지고 사는 것이다. 그러지 않아야 심령이 새롭게 되는 것이다. 인격이 새롭게 되어야 천국에 갈 수 있다. 교회는 죄인이 변화받기 위한 곳이다. 그래서 교회를 다니는데 변화가 없는 것은 넌센스이다. 교회 다니는데 의미를 두는게 아니고, 천국에 가는 것에 먼저 관심을 가지기 바래요. 신앙을 점검해보시고 천국에 갈만큰 돌이킨 사람인지 점검해보시길 바래요.

2) 어린아이 같이 되라

어린아이는 작은자, 약한자이다. 천국은 자기를 낮추고 겸손한 삶을 사는 것이다. 교만한자, 완고한자는 옛님 말씀을 판단하지, 변화될 수 없는 것이다. 자기 의가 강한 사람은 회개하지 못한다. 사람의 지식으로는 사람의 죄를 찾아낼 수 없지만, 성령을 받으면 생각치도 못한 것들이 깨달아직 천국에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이제 한해가 한달 남짓 남았습니다. 남는 것이 있어야 한다. 한해동안 열심히 일했는데 적자를 본거면 헛살아온 것이다. 열매가 있어야 그 마음밭이 어떤 마음인지 알 수 있는 것이다. 보이지 않은 것(전도, 양육.. 등)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나온 열매(인격, 9가지 열매 등)를 봐야 한다. 인격의 열매가 없다면 내가 성장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돌, 뿌리 등을 뽑아내야 하는 것이다. 내 속사람의 변화가 나타났는지가 매우 중요한다. 섬기는 종의 모습으로 바뀔 때 인정받을 것이다.

2. 천국에서 큰 자


하나님은 자신을 존귀히 여긴 사람메게는 존귀히 여긴다. 천국의 확신을 가지길 바래요. 천국에 들어간다고 다 끝난건 아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것을 대하는 만큼 하나님도 우리를 대한다. 이 세상의 사람이 인간으로 태어났지만, 천국에는 폭이 더 크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 믿고도 교회 다니고 상급 쌓는 것은 천국에서의 지위 때문이다. 천국에 가면 여기에서의 삶이 끝난다. 셀예배, 부르짖는 기도 등은 천국에서는 없다. 그래서 이 땅에서의 삶이 매우 중요하다. 영원한 삶을 결정짓는 것이 이 세상의 삶이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의 삶이 중요한 것이다. (4) 이 말을 사람들은 이해하기 너무 어려워한다. 이 세상의 묵은 포로주를 오랫동안 먹은 사람은 이와 반대의 지식으로 가르침 받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원리로는 내가 큰자가 되어야 한다고 배웠기 때문이다.  so 세상 사람들은 강한 사람이 되라고 가르친다. 사람들은 자기 주장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런 사람은 천국에 간다면 가장 밑바닥으로 가는 것이다. 이런 사람이 어린아이와 같은 말을 하기 너무 어려운 사람이다. 우리 믿음의 주는 예수님이다. 오실 때부터 예수님은 가장 낮게 사신 것이다. 가장 자신을 낮추신 예수님을 천국에서는 가장 높은 자리로 옮기신 것이다. (빌2:8~11) 어느정도로 낮아져야 하는가를 몸소 보여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지극히 높이신 것이다. 이게 하나님이 하신 것이다. 이 땅에서 자기를 낮추지 못하는 사람이 천국에서 가장 낮은 자이다. 자기 의, 자존심 때문에 자기를 부인할 수 없는 사람은 천국에서 낮은 사람이다. 계산을 하시길 바래요. (막10:43~44) 천국에서 크고자 하면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 종이 되어야 한다. 이 땅에서 사는 것은 잠깐이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지위는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 (약4:6) 누구에게 은혜 안주는지 알아야 한다. 천국에 소망을 둔 사람은 세사아 사람들과 경쟁하지 않을 수 있다. 천국에서 누가 더 큰지에 대한 다툼은 거룩한 다툼이다. 천국의 소망을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과 구분된 삶을 산느 것이다. 옆 사람, 주변 사람과 비교하며 신앙할 필요가 전혀 없다. 왜냐하면 천국에서의 삶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천국에서의 내 상급은 하나님의 주권으로 결정되지, 주관적인 관점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마5:11~12) 천국을 상대로 사는 사람은 욕이나 박해를 받더라도 아무 상관이 없다. 우리이 상이 더 크기 때문에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하셨다. 하나님을 상대로 사는 사람의 특권인 것이다. 천국에서 받는 상급은 아무에게도 빼앗기지 않는 것을 믿으시길 바래요. (마25:12) 하나님은 자기 스스로 높아지려고 하는 자는 낮추시는 분이다. 그러면 초라한 삶이 되는 것이다. 내가 높아지는 것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다. 나는 이 세상에서 낮아지는 연습만 하면 되는 것이다. 한해가 가기 전에 새로운 삶을 살길 원한다면 삶의 방신, 패러다임을 한번만이라도 바꿔보길 바래요. 자기 의지로 결단해보시길 바래요. 하나님께 메이는 사람은 사람에게 자유할 수 있다. 그러면 하나님 앞에 집중해서 살 수 있는 것이다.

Sunday, November 13, 2016

2016-11-13 (주일예배, 손인규목사님) 두려움을 이기는 능력 (딤후1:7)

두려움이 없는 사람은 없다. 이 집은 이게 걱정이고, 저 집은 저게 걱정이다. 우리가 특별히 새로운 일을 하려고 할 때 두려움이 있다. 익숙한 환경을 떠나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야 할때, 새로운 일을 해야 할 때, 새로운 장소에 있을 때 두려움이 있다. 하지만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면 새로운 곳에 갈 수가 없다. 새롭게 되려면 두려움을 이겨야 한다. 아브라함은 노년에 고향을 떠나서 새로운 사람, 알지도 못하는 그곳으로 믿음의 길로 떠나야 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세상이 기억하는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은 아니지만, 세상이 주는 두려움을 이겼기 때문에 믿음의 삶을 살 수 있었다. 믿음으로 살고자 하려면 세상을 이길 능력이 필요하다. 이세상에 남들과 다른 길을 가는 능력이 있어야 하나님 자녀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을 의지하면 얼마나 두려울지 잘 알고 있다. (이사야51:12) 생명과 능력되신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말씀 하신다. 하나님께 속한 것은 변함 없고, 가치있는 것이다. 우리가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은 하나님이 주신 가치있는 인생을 살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해야 할 것이다. 세상을 사는 두려움을 어떻게 이겨야 하는가를 하나님 말씀을 통해 나누길 원한다.

1. 두려움을 대적하라 (7a)


두려움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계획하지 못했던 놀라운 인생을 계획하고 계신다. 우리의 삶에 영적인 변화가 있을 때, 우리가 도약하려고 할 때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세상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고 여러가지 거짓말로 위협한다. 우리가 세상의 방법으로 살지 않으면 손해볼 것이라고 위협한다. 믿음으로 살길 결단 하면서도 부정적인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인생의 즐거움도 없을 것이라고 사단은 두려움을 준다. 디모데후서는 바울의 사역에 있어서 제일 마지막에 쓴 편지이다. 그래서 유언과 같은 말씀이다. 이 시대 교회는 로마의 네로로부터 핍박을 받고 있을 때이다. 사도바울은 평생 복음을 위해서 살았다. 지금까지 바울과 함께 했던 동역자들이 디모데를 떠났다. 바울이 능력을 행할 때는 곁에 있던 동역자들이 바울이 감옥에 갇히니 모두 떠났다. (빌4:4) 하지만 오히려 세상을 향해 기뻐하라고 말씀 하신다. 말씀처럼 주 안에서 기뻐하길 바래요. 평생 주님을 위해 살아온 바울의 모습이 쓸쓸해 보였을 것이다. 하나님이 정말 바울의 형편을 알고 계신지 하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믿음이 있을 때는 문제가 안됐는데, 믿음이 없어지니 그것이 힘들어지는 것이다. 두려움은 단순한 생각에 그치지 않는다. 두려움은 이 세상에 속한 어둠의 힘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믿을 수 없는 사건들을 통해 작은 소수민족이 에굽에서 나올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었다. (사사기7:3) 세상에 두려워하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영적인 싸움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두려움의 세력에 갇히게 되면 좋은 재능과 은사 부르심과 능력이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 두려움에 의해 하나님이 주신 능력이 소멸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두려워한다는 것이 영적으로 패배하고 있는 것이다. 두려움은 세력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슬픔, 좌절 뿐만 아니라 때로는 우리의 몸을 공격하기도 한다. 너에게 하나님이 주신 은사와 능력이 있는데, 두려움을 주는 세력을 먼저 이겨야 한다. 두려움은 하나님의 사명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우리의 생각과 눈이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게 한다. 세상이 주는 두려움과 능력 때문에 거룩한 목표, 사명을 바라보지 못하게 한다. 이것이 사단의 전략이다. 바울 한사람을 가뒀더니 수많은 사람이 떠나고 바울이 세운 교회가 흔들린다. 우리가 할일은 두려움의 세력을 대적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기 전에 겟세마네동산에서 영적전투를 하신 것이고, 승리했기에 십자가를 지실 수 있었다. 적극적으로 영적으로 싸우시길 바래요. 하나님의 능력을 받으시길 바래요.

2. 하나님의 능력을 받으라


1) 믿음의 능력


인간적인 능력이 아니고,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다. 사명을 위해 살 수 있는 능력을 부어주신다. 이 세상에 어둠을 이기는 부활의 권세가 있다. 예수님을 살리신 부활의 능력이 우리 안에도 있는 것을 믿으시길 바래요. 그것을 믿고 구하고 선포해야 한다. 사단은 보이지 않는 것을 미리 걱정하게 한다. 그러가 믿음의 능력이 그것을 이기게 하는 것이다. 두려움이 능력이 있듯이 믿음도 추상적인 것이 아닌 그것이 나타나는 것이다. (히11:1) 어떤 사람은 믿음을 가지고 신앙을 해도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살길 원한다. 믿음은 도전적이고 모험적이어서 우리로 하여금 세상사람들로 하여금 미련해보이고 흉내낼 수 없는 도전적인 삶으로 우리를 인도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이 믿음으로 들어오면 우리 안에 과격한 변화와 결단이 일어난다. 이런게 없으면 믿음이 없는 것이다. 세상이 주는 두려움은 우리를 결단하지 못하게 하고 소극적인 삶을 살게 한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온 백성이 두려워 떨고 있을 때 가나안을 정복할만한 믿음의 크기와 능력이 있으니 가나안을 정복한 것이다. 믿음의 능력만큼 삶을 사는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은 세상을 이길수 있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요일5:4) 우리 가운데 어떤 환경이 있든지 세상을 이기는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보길 바래요. (요6:66~68) 우리 안에 세상을 이길 말씀이 있을 때 다른 교회, 다른 사람이 어떤 삶을 살든지 주님 앞에 영광스러운 칭찬받는 인생을 살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주신 좋은 것들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에게 능력이 필요하다. 나의 결단, 나의 의지만으로는 주님을 따를 수 없다. 하나님의 창조적이고 세상을 이길 부활의 능력을 구해야 한다. 구하고 의지하는 만큼 하나님을 주시는 것이다. (고후4;7) 능력은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세상 세력을 깨뜨리는만큼 나의 능력이 나타날 것이다.

2) 사랑의 능력


(요일4:18) 사랑은 두려움을 이기는 능력이다. 하나님을 깊이 사랑할수록 세상이 주는 두려움을 이길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임하면 세상이 주는 두려움은 더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십자가의 사랑으로 이 세상에 가장 강한 죽음의 권세를 이기셨다. 도저히 용사받을 수 없는 죄인을 향한 조건없는 크고 놀라운 사랑이다. 아가페사랑은 세상의 사람은 이해할 수 없다. 세상의 사랑은 조건적이기 때문에 하나님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가페사랑은 세상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다. (요일2:!5) 우리가 세상을 사랑하니까 세상의 사랑을 뺏기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만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채워진다. (마24:12) 세상이 이렇게 점점 악해지는데 사람을 어떻게 믿고 신뢰하고 사랑할 수 있는지 사람들은 말한다. 다른 사람을 사랑할 능력이 없으니 나도 그 사람이 점점 미워지고 서로 원수가 되고 관계가 깨어진다. 다른 사람, 가족, 친구를 받아주고 용서할 능력이 없는 것이다. (삼하9:3,7)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은총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은 가진 사람이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이다. (롬12:21) 하나님의 사람은 이 세상 무엇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죄를 용서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세상이 해결할 수 없는 허다한 죄를 용서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이다. 부부, 자녀와 원수가 되고 세계가 싸우고 교회가 나눠지지만, 하나님 안에 있으면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으로 세상을 이길 능력이 있는 것이다.

3) 절제의 능력


하나님은 우리에게 절제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다. 절제는 내 자신을 다스려서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다. 단지 절제하는 것, 금욕적인 것은 성경적이지 않은 것이다. 육신을 다스려서 하나님의 뜻을 굴복시키는 것이다. 먹고, 마시고, 누리고 즐길 자유가 있지만, 그것을 다 사용하지 않고 절제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으로 사는 것이다. 우리는 미련한게 아니고 지혜로운 것이다. 누릴 권리가 있지만 다 사용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기 위한 지혜로운 삶은 사는 것이다. 절제는 약해보이지만 절제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성령이 주시는 거룩한 소원이 있다. 내 안에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은 거룩한 능력이다. 나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안주하고 만족하는 사람은 더이상 절제하지 않는다. 세상에 소망을 두고 즐기길 원하니까 절제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라고 말한다. 날마다 믿음의 경주를 한다. 하나님의 거룩한 능력이 있다. 세상은 거룩의 능력, 절제의 능력을 잃어버린 것이다. 정말 우리를 힘들게 하고 무너뜨리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니고 내 내면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잠16:32) 세상에서 남들에게 인정받는 사람보다 마음을 절제할 수 있는 자가 더 큰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거룩한 비전을 위해 세상을 누릴 수 있는 마음을 다스릴 능력을 가지길 바래요.

우리는 이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다. 이 세상을 이길 능력과 사랑, 절제의 능력을 받았다. 이 세상을 이길 믿음과 능력을 이미 받았다. 내게 주신 믿음, 사랑, 절제의 능력을 사용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놀라운 사람이 되길 바래요.

Monday, November 7, 2016

2016-11-06 (주일예배, 강국정목사님) 하나님 자녀의 권세를 회복하라! (요한복음 1:12 마가복음 16:17,18)

어렵게 오신 발걸음, 하나님 자녀의 권세를 회복하고 돌아가길 바래요. 지금은 너무 혼란한 때이다. 이때 성 무너진 곳을 막아서는 한 사람이 되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각 신문, 방송매체마다 자기의 의견이 옳다고 하는 어둠의 세력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게 잘된건지 확인할 ㅅ 없다. 계속해서 뒤에서 조정하는 세력이 있다. 우리는 보이는 정치, 경제, 문화, 사회를 보는게 아니고, 영적인 분별력을 가질 필요가 있다. 우리 가정에도 어둠의 공격이 있다. 부부는 사랑하지만, 네 집안 식구가 원수가 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직장 안에서 전투가 시작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둠의 권세를 이길 수 있는 분을 초청하고 영접해야 하는 것이다. 부자? 법조인? 무기지휘자들이 어둠의 세력을 해결할 수 없다. 어둠을 단번에 물리친 빛되신 예수님을 적극적으로 초대해야 할 것이다. (요1:9) 예수님은 참빛이 되십니다. 참빛이 들어올 때 우리 안에 어둠의 세력이 떠나갈 것이다. 우리가 어둠가운데 있으면 우리가 위험가운데 있는지 모른다. 참빛되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해서 모든 어둠을 물리치길 바래요.
둘째로 거짓은 우리를 멸망하게 하는 것이다. (요14:6) 예수님은 참 진리가 되십니다. 예수님을 영접할 때 세상의 거짓을 이길 수 있는 하나님 나라의 권세를 얻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자녀된 권세를 얻기 위해서는 믿음으로 예수님을 영접하길 바래요.

1.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접


죄로 말미암아 어둠에 있는데, 그 죄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해결해 놓았다. 공짜 중에 공짜인 예수님의 영생을 얻으시길 바래요. 그래서 값없이 받은 선물이다. 사랑하는 가족이 그날 아침에 쓰러져서 소천했으면 너무 가슴이 메이고 안타깝다. 마음가운데 인생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우리의 가족이라면 생명이 왔다갔다 하는 상황에서 금, 학위가 중요하겠습니까? 영생을 얻게 되면 사망, 권세가 두렵지 않다. 교회에 처음 나왔다면 영생을 소유해야 하는 것이다. 예수를 믿는건 왠지 못가진 자, 불쌍한 자만 받는 것 같아요. 이왕이면 세상의 지위, 돈 많이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예수님을 구주로 표현하길 바래요. 오늘 순간의 선택이 영원을 좌우할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고 마음문을 열길 바래요. (계 3:200 천국, 지옥 주관자이신 예수님을 고백하길 바래요. 마음문을 열면 예수님이 넘어오신다. (요3:16)  영생을 주기 위해서 구한 자녀를 보내신 것이다. 공기, 햇빛은 돈이 안들고, 값없이 주신 것이다. 하나님 말씀은 일점일획도 변환이 없다. (행4:12) 하나님의 말씀은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우리를 죄로부터 자유케 하기 위해서 내려오신 것이다.

2.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


1) 귀신을 쫒아내며


모르는 사람에게 귀신을 전하면 안좋을 것 같습니다. 귀신은 성경에 나오기 때문에 전해야 할 때는 전해야 하는 것이다. 보이는 귀신은 그나만 괜찮은데, 본문의 귀신은 무덤에 산다. 이것은 귀신이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하는 귀신이 하는 짓이다. &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에게서 "나오라"고 한마디 하니 귀신이 다 나온 것이다. (막9:25~27) 모두들 못듣는 귀신이 하는 것이다. 귀신 쫒아내는 권세를 모두들 얻으시길 바래요. (마12:28)

2) 새 방언을 말함


믿는 자에게 이렇나 새 방언을 받는데, (행2:4)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방먼이다.말씀대로 이뤄지는 교회가 성령의 교회이다.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 기도를 할 때도 방언이 중요하다.

3) 뱀을 집어올림


하나님 자녀에게 주시는 권세이다.

4) 무든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않음


예수 믿는 것 때문에 조롱, 핍박 받으십니까?

5) 손을 얹은 즉 낫게 됨


세상의 방법으로도 낮지 않는 영적인 정자가 있다. (약5:15~16) 기도 받았는데 병이 안난다고 하면 안된다. 그 사람의 믿음이 기도 받을 때의 믿음이 그런 믿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