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February 17, 2019

2019-02-17 (주일예배, 김용식전도사님) 상처를 치유하시는 예수님 (요4:6~14)

아니땐 굴둑에 연기가 나지 않는다. 우리의 삶 가운데 결과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다. 사업을 하는데 사업이 저절로 잘되고, 공부하는 사람이 저절로 공부가 잘 되고 하는게 저절로 되는게 아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이다. 기도, 양육, 말씀 잘 듣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저절로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날때부터, 태어나면서부터 그런 것이 아니다. 그런 신앙, 믿음, 신앙인격을 가진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신앙이 자라지 않게 하는 원인이 있다. 그 원인은 가만히 냅두고, 다른 것을 열심히 한다고 그 신앙이 자라는 것은 아니다. 신앙을 자라지 못하게 하는 것을 해결하고 나가야 한다. 고질적이고 끊어지지 않는 죄, 세상 염려 등이 신앙을 자라지 못하게 하는 원인들이다. 특별히 우리 마음 가운데 상처, 묶인 문제이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신앙이 자라고 있는 것 같지만 자라지 않는 문제가 있다. 상처의 특징은 아무리 작은 상처라도 가만히 냅두면 곯게되고 신앙에 큰 장애가 되고 해를 준다. 방치하고 가만히 두면 신앙을 더 어렵게 한다. 아프리카에 많은 아이들이 발에 작은 상처를 치유하지 못해서 나중에 절름발이나 심지에 다리를 잘라내는 경우도 많다. 다친 곳은 다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제때 소독하고 관리 잘 해주면 괜찮다. 다친게 문제가 아니라 치료하지 않는게 문제인 것이다. 상처 많이 받고 산 것 같지만, 자신도 남 못지 않게 상처를 주면서 살아왔다. 인간은 죄인이기 때문이다. 상처의 모든 원인은 우리 가운데 있는 죄이다. 죄가 우리 영혼에 흠집을 내게 한다. 다친 것에는 반드시 치료를 한다. 우리 영혼의 상처도 반드시 치료해야 한다. 그래야 덧나지 않는다. 영혼의 상처는 이 세상의 어떤 것에도 치료가 불가능한 것에 문제가 있다. 돈 많이 벌고 좋은 아파트를 살고 여행을 다닌다고 우리 영혼이 치료되지 않는 것이 문제이다. but 복된 소식은 이것을 위해 예수님이 이 땅 가운데 오신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 이유이다. 우리의 모든 상처를 어떻게 치유해 주시는지 보길 바래요.

1. 여인을 찾아가시는 예수님 (Jesus who visits the woman)


1) 사마리아에 사는 여인


사마리아는 유대와 갈릴리 사이에 있는 위치이다. so 유대에서 갈릴리로 가려면 사마리아를 통과해 가면 최단거리인데 유대인들은 그렇게 하지 않고 돌아갔다. 사마리아는 하나님이 버린 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마리아는 북이스라엘의 수도였는데 앗수르에 정복당하고 나서 민족 말살적책, 혼혈정책을 쓰게 된다. & 이방인들과 피가 섞인 수 많은 혼혈 민족들이 살게 된 것이다. 하나님이 택한 정체성을 잃어버린 더러운 땅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유대인에게 있어서 수치, 더러움의 상징이 되었다. 사마리아 입장에서도 같은 민족으로써 유대인에게 상처가 기본적으로 깔려있게 된 것이다. so 유대인들이 예수님이 하신 사역을 반대와 대적한 것 중에 이런 말을 했다. (요8:48) 사마리아 사람이란 뜻은 귀신들린 자와 거의 동격으로 사용되었다. 이런 취급 받는 사람들이 사마리아 사람들이었다. 이런 지역이 사마리아 지역이다. 오늘 보고자 하는 본문은 이 지역의 사람이었다. 태생적으로 상처를 가지고 살아가는, 아픔이 있는 여인이다. 태어나면서부터 "나는 더러운 사람"이라는 상처를 가지고 산 것이다.

2) 남편이 다섯명이 있던 여인 (The woman who had five husbands)


그 상처 중에서도 더 큰 상처를 가지고 산 여인이었다. 남편이 5명이었다. (18) 기가 막힌 일이다. 남편을 5번이나 바꾼 기구한 운명을 살고 있는 여인이었다. 이 당시는 여성의 인권이 좋을 때가 아니었다. 여성이 마음에 맞는 배우자와 결혼하는 시기가 아니었다. 이런 시기에 남편이 5번이나 바꼈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것이다. 이 여인이 5번 바뀐 이유는 성경이 알려주지 않는다. 하지만 남편을 5번이나 만나고 헤어진 아픔을 가진 여인이었다. 인간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스트레스 중에서 가장 큰 스크레스가 무엇이 있는지 연구했었다. 1위가 배우자와 사별하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아픈 스트레스라는 것이다. 이것을 이 여인이 겪는 것이다. 두번째는 배우자와 이혼하는 것이다. 세번째는 배우자와 별거하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이 겪어야 할 가장 극심한 스트레스인 것이다. 이혼은 당사자 뿐만 아니라 온 가족이 같이 겪게 되는 것이다. 이 여인은 1, 2, 3위 모두를 5번이나 겪게 되는 것이다. 기가 막힌 일이다. 길 가다가 조금 넘어진 상처는 금방 낫지만, 큰 수술이나 큰 상처는 나중에 흉터로 남는 것이다. 이 여인은 인생에 져야 할 큰 상처와 흉터가 5번이나 남아있었다. 그렇다고 이 여인을 위로하거나 걱정해주는 것도 아니다. 아무도 이 여인을 돌봐주는 사람이 없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2000년 전의 사건이었다면 모든 사람이 이 여인과 사건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여인은 언제나 혼자였다. 아무도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고, 우물가에 혼자 나올 수 밖에 없었다. 겨우 자기 인생 살기 위해서 우물가에 터벅터벅 혼자 나와야 되는 그런 인생을 살고 있었다.

3) 메시야를 기다리는 여인 (The woman who is waiting for the Messiah)


사람들은 이 여인을 부정한 여인으로 봤지만, 예수님은 이 여인을 메시아를 기다리는 여인으로 보셨다. 사람들은 이 여인의 과거를 봤지만, 예수님은 이 여인의 소망, 미래에 어떻게 살 것이지에 관심을 두셨다. (요4:25) 기막힌 인생을 살았지만, 그 인생에 메시아가 오신다면 모든 것이 회복되고 알려주고 새로운 시작이 되리라고 이야기 했던 여인이었다. 누가 메시아를 기다리면서 살겠습니까? 상한 심령을 가진 사람만이 그렇게 살 수 있다. 상한 심령을 예수님이 받으시는 것이다. 세상에서는 더이상 바랄 것이 없는 사람, 소망을 모두 깨뜨린 사람이 하늘의 소망을 기다린다. (시51:17)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구하시고 받으시는 제사가 무엇일까요? 그 예배가 무엇인가 성경이 정의하는데 그것이 상한 심령인 것이다. 더 좋은 제사, 멋진 제사 등이 아니고 상한 심령이 하나님께 나가는 제사가 되는 것이다. 이 세상의 마음이 깨어지고 더이상 세상에 소망이 없어졌을 때 하나님께 나가는 제사가 되는 것이다. 이 세상에 아무 소망 없다고 생각할 때 우리 영혼이 깨어난다. 우리가 평안하고 잘 나가고 사업도 잘 되고 결혼하고 잘나갈 때는 주님 앞에 잘 나가지 않는다. 산산히 부서지고 바닥을 치고 이럴 때 주님을 만나게 된다. 이 세상에서 바닥을 치고 모든 것이 깨어지는 그 순간에 하나님을 위한 예배가 열리게 되는 것이다. 이 여인은 메시아를 기다리는 소망이 있었던 사람이다. 사마리아에서도 가장 상처 받고 가장 회복되지 않을 것 같던 이 여인이 유일하게 메시아를 기다리던 사람이었다. 내 삶이 깨어지고 부서졌다고 낙담하지 말고 우리의 귀가 열리고 말씀이 들리는 시기인 것이다.

2. 여인을 치유하시는 예수님 Jesus who heals the woman


여인이 어떻게 예수님을 만나서 기적적으로 치유됐는지 간단히 알아보길 원합니다

1) 물을 좀 달라 Give me a Drink


우리 영혼이 새롭게 되고 주님을 만나는 첫 단추는 예수님이 우리를 찾아오는 단계이다. 우리가 교회 나가볼까? 기도해볼까? 이렇게 우리가 생각하는 것 같지만, 주님이 먼저 그 마음을 주시는 것이다. (눅19:10) 주님이 찾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주님을 찾게 된 것이다. 분실물 수거함에서 물건도 주인이 찾지 않으면 버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 인생도 주인이 찾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여인은 상처가 많은 여인이었기 때문에 만나기 쉽지 않은 여인이었다. 아무도 가지 않는, 남자들은 가지 않는, 가장 더운 시간에 가야지 그 여인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이 여인을 만나기 위해서 예수님이 가신 것이다. 예수님이 우리를 그렇게 찾으시는 것이다. 예수님이 그사람을 반드시 만나고 말거야 하며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셨듯이 주님이 우리도 그렇게 찾고 계신다는 것이다. 처음 만나서 "물을 달라"고 하셨다. 여인의 치유와 별개인 것 같은 이 말을 하신 것이다. 예수님이 얼마나 한 영혼을 인격적으로 섬기고 다루시는지 볼 수 있다. 예수님의 사랑의 마음이 한 영혼을 얼마나 다루시는지 볼 수 있는 문장이다. 예수님 앞에 나가면 혼내시는 예수님으로 생각할 수 있다. "너에게는 어떤 물이 있느냐?"고 물어보는 말이다. 니가 지금 여기 와서 물을 깃고 있는데, 그 물로 너의 상처를 너의 갈급한 영혼을 씻을 수 있겠니? 이렇게 예수님이 친절하게 물어보시는 것이다. 오늘 인생에 어떤 물을 깃고 있나요? 정오에 아무도 나오지 않는 곳에 나와서 힘들게 어떤 물을 깃고 있나요? 내 영혼을 회복케 하는 물인지, 그냥 한번 먹고 마는 물인지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이렇게 열심히 물을 길렀는데 그것이 내 영혼이 아무 상처치유에 도움이 되지 않는 가짜 물을 먹고 있었다, 속고 살았다고 나중에 알게 된다면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그 후 예수님은 영생의 샘물을 마시라고 권명하신 것이다.

2) 영생의 샘물을 마시라


영혼의 상처, 죄악들은 예수님이 주시는 생수를 마실 때만이 해결될 수 있다. 세상 어떤 물로도 해결될 수 없는 그런 물이다. 예수님이 주시는 생수를 마실 때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다. (요4:14) 이 세상에 누가 감히 "너의 상처는 내가 주는 물을 마시면 해결될 수 있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but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선포하셨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목마르고 갈증나고 먹어도 목마른 이유는 이 생수를 마시지 않기 때문이다.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이다. (렘2:13) 세상이 주는 내 영혼을 만족시킬만한 것을 기르는 모습이 죄인들의 모습이다. 여인에게 예수님을 생수를 주시면서 "내가 생수를 그냥 주리라"고 말씀 하셨다. "너 더 깊이 파"라고 하지 않으셨다. 이것이 바로 복음이고 하나님의 은혜이다. 생수를 거저 받는 것이다. 내가 파도 얻을 수 없는 이 생수를 받아 먹으면 더이상 목마르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다. 계속 샘이 솟는 일을 하시겠다고 주님이 말씀하신 것이다. 우리 심령 속에 주님이 주시는 샘물이 터져서 샘물이 계속 솟아날 것이라고 하셨다. (요7:28) 예수님을 믿고 생수를 마시는 자는 목만 추기는 정도가 아니고 샘물이 되고 하시고, 생수의 강이 되게 하시겠다고 하셨다. 이것이 주님이 주신 복음의 핵심이다. 샘물이 터지고 우리 인생이 강이 되게 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3) 남편을 불러오라 Call your husband


주님이 이 물을 주시면 좋겠다고 기대감이 생길 것이다. 생수 이야기를 하다가 여인의 아킬레스건과 같은 남편의 이야기를 예수님이 꺼내셨다. 생수를 주다가 갑자기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아무도 이 여인을 향해 남편 이야기를 꺼낼 수 없었던 고질적인 문제였다. 상처받은 사람에게는 모두 이런 고질적인 것이 있다. 좋다가 상처부위를 건드리면 분위기가 갑자기 싸해진다. 예수님 사역에 있어서 십자가 없는 은혜를 주신 적이 없다. 이것이 주님의 방법이다. 우리는 은혜 많이 받으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도 많이 쌓고 기도 많이 하면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십자가 없는, 자기 부인 없어도 되는 값싸고 포장되지 않은 은혜를 예수님은 주지 않으신다. 십자가 없이는 구원이 없는 것이다. 여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아프더라도 짜내고 도려낸 후에야 치유될 수 있는 것이다. 시궁창 물에 아무리 많은 깨끗한 물을 부어도 그 물은 시궁창 물이 되는 것이다. 시궁창 물을 버리고 깨끗한 물을 부어야 마실 수 있는 물이 되는 것이다.

4) 내가 그라 (I am he)


우리를 찾아주셨다. & 자신이 메시아 되심을 선포하셨다. 메시아를 믿는 것이 모든 상처 치유의 완성임을 믿습니다. 남편으로 인해 힘들었던 여인에게 더 좋은 남편을 주신게 아니고, 십자가로 너의 모든 상처가 치유될 것임을 선포해주신 것이다.

예수님 안에서 치유되지 않을 상처는 없다. 주님이 감당하지 못할 상처는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이 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그런 인생으로 변화될 것이 주님의 뜻임을 믿습니다. (이사야30:26) 이것이 우리가 주님 앞에 상처를 치유받아 너의 인생이 회복될 것이라는 것이 주님이 우리를 향한 계획임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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