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February 24, 2019

2019-02-24 (주일예배, 손인규목사님) 기도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 (삼상1:1~10, 19, 20)

하나님은 나의 고통과 어려움에 관심이 많으시다.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나타내시는 기회가 된다. 오늘 말씀에도 한나라는 여인은 내가 가진 고통과 어려움을 기도하고 사용하셨다. 하나님은 돕길 원하시는데, 특별히 기도할 때 기도를 통해 우리가 계획하고 생각하지 않았던 더 크고 놀라운 일을 행하신다. 중요한 것은 문제에만 빠져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통해서 일하길 원하신다. (렘29:11~13) 이방인에게 고통받는 이스라엘 사람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하나님 앞에 부르짓어 기도하면 하나님은 그 기도를 받으실 것이라고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만나주길 원하신다. 기도에 대한 놀라운 결단과 돌파가 일어나길 사모하길 바래요.

1. 기도로 이끄시는 하나님 God who leads one to prayer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길 하나님은 원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어떤 방법으로 기도의 자리로 나오게 하셨을까요?

1) 태를 닫으심 Closes the womb

한나의 고난은 하나님께서 뜻을 이루기 위한 의미있는 고난이다. 하나님으 문을 닫으시면 아무도 문을 열 수 없는 것이다. 어떤 것에 문을 닫으셨다면, 하나님을 만나야 풀 수 있다. 하나님이 닫은 문제를 어떻게 열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문제를 통해서라도 하나님을 찾길 원하신다. 잘 되는데 밤을 새워 기도하는 사람이 있나요? 그런 사람은 거의 없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관심 있으시고, 우리의 삶에 관심 가지길 원하신다. 그런데 우리는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에 관심이 없고,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 있을 뿐이다. 이 시대에 나라와 민족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에 큰 관심이 없다. 하나님은 그냥 넘어가지 않으시고, 기도로 우리를 이끌고 계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별 관심이 없다.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 그런 일을 하고, 순종하겠지 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역사에 우리를 초청하고 자꾸 부르신다. & 우리 삶에 사건을 계속 만드신다. 그 전에는 내 힘으로 하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날 하나님께서 지켜보시다가 문을 닫으신다. 그러면 당연히 되어야 할 일이 안되고, 될 일인데 이상하게 그게 안된다. 하나님께서 문을 닫으셨다는 것이다. 이것이 꼭 내가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니구나, 하나님께서 내 삶에 복을 주셔야만 열매를 맺는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르 향해서 하나님이 내 인생에 주인이고 주관자이심을 깨닫길 원하신다. (이사야22:22) 예수님을 말씀하는데, 예수님이 우릴 향해 문을 닫으면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열리지 않는다 (계3:7~8) 예수님이 바로 이런 권세를 가지신 분이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내 삶에 열린 문을 주시면 아무도 하나님의 일 하심을 막을 자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문을 열어주시는 영적 관계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에 열린 문을 주실 때 안될 것 같은데 그 일이 되는 것이다. 형통함이 있는 것이다. 반대의 경우에는 열심히 씨를 뿌리가 추구해야 하는데, 추수할 때가 되는데 열매가 없고 반대로 가시와 엉겅퀴로 찌르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문이 닫힘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구해야 한다. 하나님이 내 인생을 통해 말씀하고 계심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만약 문을 닫으시는 분이라면, 반대로 내가 수고하고 노력하지 않아도 그 일은 이뤄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가 결혼하면 당연히 아기가 생기도록 하셨는데, 한나는 그게 자연스러운 일이 아닌 것이다. 자연의 원리는 콩 심으면 당연히 콩이 나와야 하는데 콩이 안나오면 닫힌 것이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는데 남들보다 더 열심히 일하고 수고하는데, 보수를 받지 못하면 당연한 일이 아니다. 부부가 결혼해서 아이를 키우는데 항상 행복하지 않다면 자연스러운게 아니다. (마7:7) 하나님은 문이 닫히면 포기하고 그냥 지나가라고 하지 않으신다. 음식점에 갔는데 하루 문 닫는다고 푯말을 보고 그냥 돌아가는 차원의 것이 아니다. 문을 간절히 두드리라고 하나님께서는 간절히 말씀하신다.

2) 갈급함을 주심 Gives Thist

남편이 한나에게도 고기를 두배를 주고 위로한다고 했다. 하지만 한나는 그것으로 위로가 되지 않는다. 무엇으로도 한나의 마음이 채워지지 않는다. 내가 원하고 생각하고 계획하고 원하는 것을 얻었는데 마음이 채워지거나 만족이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영적인 공허함, 갈급함이구나 빨리 깨닫길 바래요. so 사람들은 세상에서 더 좋은 것을 찾아서 갈급함을 채우려고 한다. 하지만 세상의 말을 따라 가면 우리의 영혼이 더 갈증이 난다. 한나는 영적인 갈급함을 채우기 위해 남편에게 의지하지 않는다. 한나가 어느날 깨달은 것은 영적인 갈급함이구나 생각했다. 하나님께 나오길 바래요. 한나는 이 갈급함이 영적인 문제임을 깨닫고 하나님께 나왔다. 우리의 마음이 어떤 것으로도 채워지지 않고 갈급함이 있을 때 이 때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사람을 하나님을 만나길 원하신다. (이사야55:6) 한나는 사람으로부터 받는 위로가 아니라, 우리의 진정한 위로가 되시는 하나님을 찾길 바란다.

3) 대적 브닌나를 쓰심 Uses Peninah, the Adverary

전에는 아이 없는 고통만 있었는데, 이젠느 브닌나라는 고통도 추가됐다. 자녀 없는 한나를 멸시하는 것이 견디기 너무 어려웠다. 한 남자의 아내로써 아이를 갖지 못하게 되고 멸시받는 것이 너무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웠을 것이다. 한나는 미워하고 육신적인 방법을 했겠지만, 중요한 것은 한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그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브닌나는 한나가 기도할 수 있도록 훈련하는 훈련관이자 기도대상이었다. 사단은 우리를 항상 정죄, 고소, 비난한다. &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으로 우리를 공격한다. 우리가 대적하고 싸워야 할 대상은 브닌나가 아니고, 브닌나를 사용하는 사단이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아픔, 분노, 고통을 하나님 앞에 다 토해냈다. 사단이 원하는 것은 한나가 브닌나를 미워하고 괴로워해서 자기 인생이 파괴되는 것을 원한다. 우리가 정말 분노하고 싸워야 할 대상은 사단, 마귀이다. 우리 인생의 문을 닫게 만드는 고통의 원인이 되는 악한 세력되 대적하고 싸우길 바래요. 한나는 이 괴롭고 쓴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가 기도하게 되었다. 가장 의로운 재판관이자 변호인이 되시는 하나님 앞에 깨어진 마음을 가지고 기도한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일하기 위해 이러한 문제를 주신다. 사단은 이 문제 때문에 망할 것이라고 걱정, 염려를 주신다. but 하나님은 이런 것들을 통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 믿음을 가진 우리의 삶이고 십자가의 원리이다. 우리에게 이러한 세상을 이기는 권세가 있다는 것을 예수님이 나타내신 것이다. 나의 눈으로 볼 때 당장 좋아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고 구하고 기도할 때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이다.

2. 기도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 God who works through pray

1) 그를 생각하신 Remember her

기억하셨다는 것은 하나님이 계획하셨던 일, 그 일을 행하겠다는 하나님의 구원을 의미하는 것이다. (레26:45) 하나님은 내가 너와 함께 하고 있음을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언약, 계획이 이루어 질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한나를 향한 놀라운 계획이 있는데, 한나는 하나님의 역시에 믿음의 어머니로 쓰이맏는 것이다. 하나님은 한나를 쓰기 위해 한나의 믿음을 먼저 준비하신 것이다. 우리의 믿음의 그릇을 하나님은 먼저 준비시키신다. 내가 기도하게 하시고, 육신을 깨뜨리고 하나님께 나올 때 하나님께서 일하신다. 나는 내 문제해결에 관심이 있지만, 내 인생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원하신다. 나의 가정을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영적으로 준비되는 것이 최고의 훈련인 것이다. 우리가 기도할 때 기도의 분량이 차기 원하신다. 우리를 영적인 존재로 지으셨기 때문에, 하나님을 기뻐하는 인생을 사는 것이다. 우리가 이것을 알지 못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깨우신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쓰길 원하셔서 하나님의 생명싸개 안에서 훈련시키신다. 우리가 준비될 때 하나님의 놀라운 일이 우릴 통해서 이뤄지는 것이다.

2) 사무엘을 주심

사무엘이라는 이름의 뜻은 하나님께 구한 것을 주셨다는 뜻이다. 저절로 이뤄지만 귀한 줄 모른다. 하나님은 먼저 그 어머니인 한나에게 기도하게 하신다. 하나님은 한두사람 기도하는 사람을 통해 기도하게 하신다. 개혁의 역사는 골방에서부터 시작된다. 기도하는 그 때가 은혜의 때이다. 오히려 근심해야 할 때는 내가 너무 잘 되서 기도하지 않을 때이다. 하나님의 역사는 기도를 통해 역사한다. 다윗과 사무엘이 저절로 세워지지 않는다. 세워질 수 있도록 먼저는 기도로 심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일하시기 전에 기도할 수 있는 한나와 같은 사람을 찾으신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브닌나와 같은 사람을 붙이신다. 악한 시대에 기도하는 한 사람을 찾으신다. (이사야62:6~7) 이 땅 가운데 계속해서 기도하는 사람을 찾고 게신다고 말씀 하신다.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고통, 어려움이 있을 때 사람과 환경을 바라보게 된다. but 문제의 해결은 하나님께 있다. 우리가 열심히 수고해도 열매가 없을 때 "더 노력해야겠다"는 차원에서 멈추면 안된다. 그런 인생을 하나님이 찾고 계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작은 신음에도 기억하고 계신다. 하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우리가 기도하고 구하는 것보더 더 크고 좋은 것을 보는 하나님을 바라보시고 나가셔서 하나님께 응답받고 쓰임 받는 우리의 놀라운 역시가 되길 기도합니다.

Sunday, February 17, 2019

2019-02-17 (주일예배, 김용식전도사님) 상처를 치유하시는 예수님 (요4:6~14)

아니땐 굴둑에 연기가 나지 않는다. 우리의 삶 가운데 결과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다. 사업을 하는데 사업이 저절로 잘되고, 공부하는 사람이 저절로 공부가 잘 되고 하는게 저절로 되는게 아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이다. 기도, 양육, 말씀 잘 듣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저절로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날때부터, 태어나면서부터 그런 것이 아니다. 그런 신앙, 믿음, 신앙인격을 가진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신앙이 자라지 않게 하는 원인이 있다. 그 원인은 가만히 냅두고, 다른 것을 열심히 한다고 그 신앙이 자라는 것은 아니다. 신앙을 자라지 못하게 하는 것을 해결하고 나가야 한다. 고질적이고 끊어지지 않는 죄, 세상 염려 등이 신앙을 자라지 못하게 하는 원인들이다. 특별히 우리 마음 가운데 상처, 묶인 문제이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신앙이 자라고 있는 것 같지만 자라지 않는 문제가 있다. 상처의 특징은 아무리 작은 상처라도 가만히 냅두면 곯게되고 신앙에 큰 장애가 되고 해를 준다. 방치하고 가만히 두면 신앙을 더 어렵게 한다. 아프리카에 많은 아이들이 발에 작은 상처를 치유하지 못해서 나중에 절름발이나 심지에 다리를 잘라내는 경우도 많다. 다친 곳은 다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제때 소독하고 관리 잘 해주면 괜찮다. 다친게 문제가 아니라 치료하지 않는게 문제인 것이다. 상처 많이 받고 산 것 같지만, 자신도 남 못지 않게 상처를 주면서 살아왔다. 인간은 죄인이기 때문이다. 상처의 모든 원인은 우리 가운데 있는 죄이다. 죄가 우리 영혼에 흠집을 내게 한다. 다친 것에는 반드시 치료를 한다. 우리 영혼의 상처도 반드시 치료해야 한다. 그래야 덧나지 않는다. 영혼의 상처는 이 세상의 어떤 것에도 치료가 불가능한 것에 문제가 있다. 돈 많이 벌고 좋은 아파트를 살고 여행을 다닌다고 우리 영혼이 치료되지 않는 것이 문제이다. but 복된 소식은 이것을 위해 예수님이 이 땅 가운데 오신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 이유이다. 우리의 모든 상처를 어떻게 치유해 주시는지 보길 바래요.

1. 여인을 찾아가시는 예수님 (Jesus who visits the woman)


1) 사마리아에 사는 여인


사마리아는 유대와 갈릴리 사이에 있는 위치이다. so 유대에서 갈릴리로 가려면 사마리아를 통과해 가면 최단거리인데 유대인들은 그렇게 하지 않고 돌아갔다. 사마리아는 하나님이 버린 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마리아는 북이스라엘의 수도였는데 앗수르에 정복당하고 나서 민족 말살적책, 혼혈정책을 쓰게 된다. & 이방인들과 피가 섞인 수 많은 혼혈 민족들이 살게 된 것이다. 하나님이 택한 정체성을 잃어버린 더러운 땅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유대인에게 있어서 수치, 더러움의 상징이 되었다. 사마리아 입장에서도 같은 민족으로써 유대인에게 상처가 기본적으로 깔려있게 된 것이다. so 유대인들이 예수님이 하신 사역을 반대와 대적한 것 중에 이런 말을 했다. (요8:48) 사마리아 사람이란 뜻은 귀신들린 자와 거의 동격으로 사용되었다. 이런 취급 받는 사람들이 사마리아 사람들이었다. 이런 지역이 사마리아 지역이다. 오늘 보고자 하는 본문은 이 지역의 사람이었다. 태생적으로 상처를 가지고 살아가는, 아픔이 있는 여인이다. 태어나면서부터 "나는 더러운 사람"이라는 상처를 가지고 산 것이다.

2) 남편이 다섯명이 있던 여인 (The woman who had five husbands)


그 상처 중에서도 더 큰 상처를 가지고 산 여인이었다. 남편이 5명이었다. (18) 기가 막힌 일이다. 남편을 5번이나 바꾼 기구한 운명을 살고 있는 여인이었다. 이 당시는 여성의 인권이 좋을 때가 아니었다. 여성이 마음에 맞는 배우자와 결혼하는 시기가 아니었다. 이런 시기에 남편이 5번이나 바꼈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것이다. 이 여인이 5번 바뀐 이유는 성경이 알려주지 않는다. 하지만 남편을 5번이나 만나고 헤어진 아픔을 가진 여인이었다. 인간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스트레스 중에서 가장 큰 스크레스가 무엇이 있는지 연구했었다. 1위가 배우자와 사별하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아픈 스트레스라는 것이다. 이것을 이 여인이 겪는 것이다. 두번째는 배우자와 이혼하는 것이다. 세번째는 배우자와 별거하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이 겪어야 할 가장 극심한 스트레스인 것이다. 이혼은 당사자 뿐만 아니라 온 가족이 같이 겪게 되는 것이다. 이 여인은 1, 2, 3위 모두를 5번이나 겪게 되는 것이다. 기가 막힌 일이다. 길 가다가 조금 넘어진 상처는 금방 낫지만, 큰 수술이나 큰 상처는 나중에 흉터로 남는 것이다. 이 여인은 인생에 져야 할 큰 상처와 흉터가 5번이나 남아있었다. 그렇다고 이 여인을 위로하거나 걱정해주는 것도 아니다. 아무도 이 여인을 돌봐주는 사람이 없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2000년 전의 사건이었다면 모든 사람이 이 여인과 사건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여인은 언제나 혼자였다. 아무도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고, 우물가에 혼자 나올 수 밖에 없었다. 겨우 자기 인생 살기 위해서 우물가에 터벅터벅 혼자 나와야 되는 그런 인생을 살고 있었다.

3) 메시야를 기다리는 여인 (The woman who is waiting for the Messiah)


사람들은 이 여인을 부정한 여인으로 봤지만, 예수님은 이 여인을 메시아를 기다리는 여인으로 보셨다. 사람들은 이 여인의 과거를 봤지만, 예수님은 이 여인의 소망, 미래에 어떻게 살 것이지에 관심을 두셨다. (요4:25) 기막힌 인생을 살았지만, 그 인생에 메시아가 오신다면 모든 것이 회복되고 알려주고 새로운 시작이 되리라고 이야기 했던 여인이었다. 누가 메시아를 기다리면서 살겠습니까? 상한 심령을 가진 사람만이 그렇게 살 수 있다. 상한 심령을 예수님이 받으시는 것이다. 세상에서는 더이상 바랄 것이 없는 사람, 소망을 모두 깨뜨린 사람이 하늘의 소망을 기다린다. (시51:17)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구하시고 받으시는 제사가 무엇일까요? 그 예배가 무엇인가 성경이 정의하는데 그것이 상한 심령인 것이다. 더 좋은 제사, 멋진 제사 등이 아니고 상한 심령이 하나님께 나가는 제사가 되는 것이다. 이 세상의 마음이 깨어지고 더이상 세상에 소망이 없어졌을 때 하나님께 나가는 제사가 되는 것이다. 이 세상에 아무 소망 없다고 생각할 때 우리 영혼이 깨어난다. 우리가 평안하고 잘 나가고 사업도 잘 되고 결혼하고 잘나갈 때는 주님 앞에 잘 나가지 않는다. 산산히 부서지고 바닥을 치고 이럴 때 주님을 만나게 된다. 이 세상에서 바닥을 치고 모든 것이 깨어지는 그 순간에 하나님을 위한 예배가 열리게 되는 것이다. 이 여인은 메시아를 기다리는 소망이 있었던 사람이다. 사마리아에서도 가장 상처 받고 가장 회복되지 않을 것 같던 이 여인이 유일하게 메시아를 기다리던 사람이었다. 내 삶이 깨어지고 부서졌다고 낙담하지 말고 우리의 귀가 열리고 말씀이 들리는 시기인 것이다.

2. 여인을 치유하시는 예수님 Jesus who heals the woman


여인이 어떻게 예수님을 만나서 기적적으로 치유됐는지 간단히 알아보길 원합니다

1) 물을 좀 달라 Give me a Drink


우리 영혼이 새롭게 되고 주님을 만나는 첫 단추는 예수님이 우리를 찾아오는 단계이다. 우리가 교회 나가볼까? 기도해볼까? 이렇게 우리가 생각하는 것 같지만, 주님이 먼저 그 마음을 주시는 것이다. (눅19:10) 주님이 찾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주님을 찾게 된 것이다. 분실물 수거함에서 물건도 주인이 찾지 않으면 버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 인생도 주인이 찾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여인은 상처가 많은 여인이었기 때문에 만나기 쉽지 않은 여인이었다. 아무도 가지 않는, 남자들은 가지 않는, 가장 더운 시간에 가야지 그 여인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이 여인을 만나기 위해서 예수님이 가신 것이다. 예수님이 우리를 그렇게 찾으시는 것이다. 예수님이 그사람을 반드시 만나고 말거야 하며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셨듯이 주님이 우리도 그렇게 찾고 계신다는 것이다. 처음 만나서 "물을 달라"고 하셨다. 여인의 치유와 별개인 것 같은 이 말을 하신 것이다. 예수님이 얼마나 한 영혼을 인격적으로 섬기고 다루시는지 볼 수 있다. 예수님의 사랑의 마음이 한 영혼을 얼마나 다루시는지 볼 수 있는 문장이다. 예수님 앞에 나가면 혼내시는 예수님으로 생각할 수 있다. "너에게는 어떤 물이 있느냐?"고 물어보는 말이다. 니가 지금 여기 와서 물을 깃고 있는데, 그 물로 너의 상처를 너의 갈급한 영혼을 씻을 수 있겠니? 이렇게 예수님이 친절하게 물어보시는 것이다. 오늘 인생에 어떤 물을 깃고 있나요? 정오에 아무도 나오지 않는 곳에 나와서 힘들게 어떤 물을 깃고 있나요? 내 영혼을 회복케 하는 물인지, 그냥 한번 먹고 마는 물인지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이렇게 열심히 물을 길렀는데 그것이 내 영혼이 아무 상처치유에 도움이 되지 않는 가짜 물을 먹고 있었다, 속고 살았다고 나중에 알게 된다면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그 후 예수님은 영생의 샘물을 마시라고 권명하신 것이다.

2) 영생의 샘물을 마시라


영혼의 상처, 죄악들은 예수님이 주시는 생수를 마실 때만이 해결될 수 있다. 세상 어떤 물로도 해결될 수 없는 그런 물이다. 예수님이 주시는 생수를 마실 때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다. (요4:14) 이 세상에 누가 감히 "너의 상처는 내가 주는 물을 마시면 해결될 수 있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but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선포하셨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목마르고 갈증나고 먹어도 목마른 이유는 이 생수를 마시지 않기 때문이다.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이다. (렘2:13) 세상이 주는 내 영혼을 만족시킬만한 것을 기르는 모습이 죄인들의 모습이다. 여인에게 예수님을 생수를 주시면서 "내가 생수를 그냥 주리라"고 말씀 하셨다. "너 더 깊이 파"라고 하지 않으셨다. 이것이 바로 복음이고 하나님의 은혜이다. 생수를 거저 받는 것이다. 내가 파도 얻을 수 없는 이 생수를 받아 먹으면 더이상 목마르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다. 계속 샘이 솟는 일을 하시겠다고 주님이 말씀하신 것이다. 우리 심령 속에 주님이 주시는 샘물이 터져서 샘물이 계속 솟아날 것이라고 하셨다. (요7:28) 예수님을 믿고 생수를 마시는 자는 목만 추기는 정도가 아니고 샘물이 되고 하시고, 생수의 강이 되게 하시겠다고 하셨다. 이것이 주님이 주신 복음의 핵심이다. 샘물이 터지고 우리 인생이 강이 되게 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3) 남편을 불러오라 Call your husband


주님이 이 물을 주시면 좋겠다고 기대감이 생길 것이다. 생수 이야기를 하다가 여인의 아킬레스건과 같은 남편의 이야기를 예수님이 꺼내셨다. 생수를 주다가 갑자기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아무도 이 여인을 향해 남편 이야기를 꺼낼 수 없었던 고질적인 문제였다. 상처받은 사람에게는 모두 이런 고질적인 것이 있다. 좋다가 상처부위를 건드리면 분위기가 갑자기 싸해진다. 예수님 사역에 있어서 십자가 없는 은혜를 주신 적이 없다. 이것이 주님의 방법이다. 우리는 은혜 많이 받으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도 많이 쌓고 기도 많이 하면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십자가 없는, 자기 부인 없어도 되는 값싸고 포장되지 않은 은혜를 예수님은 주지 않으신다. 십자가 없이는 구원이 없는 것이다. 여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아프더라도 짜내고 도려낸 후에야 치유될 수 있는 것이다. 시궁창 물에 아무리 많은 깨끗한 물을 부어도 그 물은 시궁창 물이 되는 것이다. 시궁창 물을 버리고 깨끗한 물을 부어야 마실 수 있는 물이 되는 것이다.

4) 내가 그라 (I am he)


우리를 찾아주셨다. & 자신이 메시아 되심을 선포하셨다. 메시아를 믿는 것이 모든 상처 치유의 완성임을 믿습니다. 남편으로 인해 힘들었던 여인에게 더 좋은 남편을 주신게 아니고, 십자가로 너의 모든 상처가 치유될 것임을 선포해주신 것이다.

예수님 안에서 치유되지 않을 상처는 없다. 주님이 감당하지 못할 상처는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이 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그런 인생으로 변화될 것이 주님의 뜻임을 믿습니다. (이사야30:26) 이것이 우리가 주님 앞에 상처를 치유받아 너의 인생이 회복될 것이라는 것이 주님이 우리를 향한 계획임을 믿습니다.

Monday, February 11, 2019

2019-02-10 (주일예배말씀, 손인규목사님) 재생산 하는 제자 (마28:19-20)


마지막 때가 다가올수록 많은 사람들을 미혹하고 하기 때문에 죄의 세력이 번성한다. &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린다. 세상은 악할수록 진정한 J 제자들이 나타나기를 바라고 있다. (8:19) 세상이 악해진다고 하나님의 아들인 우리들이 걱정, 염려를 필요가 없다. 세상에 속한 사람은 세상일을 하면 되고, 하나님의 아들은 우리의 일을 하면 된다. 제자들을 향해서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제자 삼으라고 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모든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심을 받았다. 교회는 단지 사람을 모으는 곳이 아니고, 예수님의 제자들을 재생산하는 곳이다. 양은 양을 낳고, 제자는 제자를 낳고, 리더는 다른 리더를 길러내야 하는 사명이 있다. 군대에 입대한다고 해서 저절로 군인이 되는게 아니고, 훈련을 통해서 군인다은 군인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시대 가운데 교회의 위기는 단지 교회의 숫자가 줄어드는게 아니고, 어두운 시대 가운데 예수님의 진정한 제자들이 없거나 줄어드는게 진정한 위기이다. 어둠을 밝힐 있는 빛이 있으면 어둠을 이길 있는 것이다. 교회가 성도들을 훈련해야 하는 것은 이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역사에 제자가 되고, 예수님의 제자를 길러내는 또다른 사역에 참여하는 우리가 되길 바래요.

1. 제자의 자격 (Qualifications of a Disciple)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면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 만약 예수님의 제자들이 높은 사람이라면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를 포기 했겠지만, 그게 아니다.

1) 예수님을 사랑함 (Loves Jesus)


예수님이 열방을 제자 삼으면 되겠지만, 사역을 직접 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좁은 지역만 사역하시고, 열방은 제자들에게 맡기셨다. 하나님 앞에 예배하러 나올 내가 남들보다 뛰어나거나 자랑할만한건 없지만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했던 것처럼 정말 주님을 사랑하는 열정과 마음이 우리에게 있다고 정직하게 고백할 있는 예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있길 바래요. 예수님이 쓰시는 제자들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을 삶에 최고로 여기고 삶을 드리는 것을 아깝게 여기지 않는 사람,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나누는 것을 부끄러워 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사람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신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3번이나 물어보신다. 베드로가 고백할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사명을 주셨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통해 일하길 원하신다. 예수님도 어쩔 없이, 해야하니까 억지로 하는거 주님도 원치 않으신다. 정말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 주님을 기뻐하는 사람을 통해 일하길 원하신다.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깊이 깨달을수록 우리도 사랑에 반응해야 한다. 받기만 하고 누리는게 아니고, 주님을 순종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사랑하고 증인이 되는 것을 귀하게 여기고, 사람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길 원하신다. 일에 충성하는게 아니고, 예수님과의 관계에 충성하는 것이다. 주님을 사랑할 우리를 통해 일하길 원하신다. 우리가 의무감으로 섬긴다고 한다면 관계는 오래 유지되지 않는다. 우리가 하나님을 정말 사랑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무거운 멍에가 아니다. 율법의 한계를 뛰어넘게 되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섬기면 열정이 생기고 그것이 기쁨이 되는 것이다. So 율법의 완성은 사랑인 것이다. 짓고 구원 받을 없는 우리를 구원해주셨을까요? 내가 착해서, 바른 사람이라서 구원 받은게 아니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으로 아무 조건 없이 구원해 주셨다. 예수님의 거룩한 신부로 구원해 주셨다. 예수님을 자랑하길 바래요. 정말 천국을 믿는 사람은 천국을 위해 투자한다. 우리가 주님 앞에 주님의 사랑으로 변화되는 만큼 열매가 나타나는 것이다. 예수님도 예수님을 가장 사랑하는 우리를 통해 일하길 원하신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 깊어지고 사랑을 회복하는 우리가 되길 바래요.

2) 예수님을 끝까지 따름 (Follows Jesus to the End)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가는 곳마다 사건이 있다. 사건에 따라 믿음없음, 기도 안함 등이 드러나기도 한다. 예수님을 따라가는게 내가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면 나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라가면서 연단을 받는 것이다. 그들이 예수님을 끝까지 따를 십자가만이 아니라 부활의 영광이 있음을 깨닫게 것이다. So 분명하게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증인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바보같고 미련해 보일지라도 반드시 부활의 영광이 있구나 것을 믿고 확신할 예수님을 끝까지 따라갈 있는 것이다. 우리도 예수님을 따라갈 많은 사건들이 있지만, 사건을 통해 우리의 믿음을 하나님의 저울에 달아보신다. 고난이 , 환란과 핍박이 찾아올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임을 믿음으로 고백해야 하는 것이다. 사단은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우리에게 고난을 주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통해 우리의 믿음을 더욱 견고하게 하시는 것이다. 우리의 신앙이 계속 성장하기 위해서는 이런 고난과 사건을 계속 이겨내야 하는 것이다. 신앙을 하면 예수님의 제자가 되길 원하는데, 사건 앞에서 믿음의 댓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는 능력만 많이 받는게 아니라, 예수님으로 인해 믿음의 값지불을 지불하고 그것을 통해 예수님의 제자로 다듬어져 가는 것이다.

2.제자의 사역 (Ministry of a Disciple)


제자를 삼으라는 이것은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에게 사명을 주시는 것과 동일하다. 생육하고 번성하고 다스리라고 말씀 하셨다. 하나님은 모든 질서를 회복하길 원하신다.

1) 세례를 주라 (Baptize)


세례는 침례로 물에 완전히 담그는 거이다. , 외부의 변화에 의해 성격이 바뀌고 내가 바뀌는 것이다. 사람이 새사람이 되도록 변화시켜야 하는 것이다. 이것을 위해 우리를 부르신 것이다. (고전10:1~2)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넌 사건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세례를 받은 것이라고 한다. 과거에 에굽의 종이 상태에서 홍해바다를 건넘으로 하나님의 자유한 백성이 것이다. 옛사람은 죽고 사람이 되는 것이다. 세례를 종교적인 의식으로 생각하는게 아니고, 예수님과 새사람이 되는 것이다. 완전히 우리 자신이 성령으로 새롭게 되는 , 이것이 세례를 받고 세례를 주는 것이다. 우리를 통해 창조를 회복하는 역사가 이뤄져야 하는 것이다. (고후5:17)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 세상에 속해있고 포로되었던 우리가 새사람이 것처럼 우리도 새사람이 것을 선포하길 바래요. 제자인 우리를 통해 다른 사람이 예수님 믿고 피조물이 되도록 세례를 주라는 것이다. 단지 교회만 데리고 오는게 아니다.

2) 가르치라 (Teach)


예수님이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보여주셨다. 

a. 본이 (Be a Model)


우리가 돕는 영혼들도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만큼만 사랑하게 된다. 좋은 제자훈련 프로그램을 거친다고 해서 내가 좋은 제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제자훈련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누가 그것을 하고 본을 보이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제자로 변화된 것을 통해 또다른 제자를 길러내는 것이다. 제자는 프로그램이 아니고 인격적인 관계를 통해 되는 것이다. 대형교회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보실 예수님의 제자가 얼마나 되느냐인 것이다. 예수님의 또다른 제자를 길러내는 , 내가 본이 되는 만큼 제자가 성장하는 것이다. 세상은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를 보길 원한다. & 예수님은 3 동안 제자들에게 보여주셨다.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제자의 삶을 살고 있다.

b. 영적인 권위를 가짐 (Have Spiritual Authority)


예수님은 아버지께 순종해서 십지가에 죽으셨다. & 하나님은 예수님을 살리시고 예수님의 이름을 가장 높이셨다. (28:18) 도둑은 경찰을 두려워할까요? 경찰이 도둑보다 힘이 세서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다. 정부로부터 도둑을 잡을 있는 권세를 부여 받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예수님을 따를 하나님께서 영적인 권세를 주신다. 우라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좋은 , 착한 일을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말씀에 순종하면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영적 권위가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도울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는게 중요하거나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게 아니다. 물론 사람이 나를 좋아할 수는 있지만, 사람이 예수님을 사랑할 있다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이다. 사람의 영혼을 변화시키는 것은 우리의 노력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을 돕다 보면 이런 일이 많이 있다. 사람의 노력으로 변화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에수님의 제자를 길러내야 하는데,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 중심으로 도울 제자가 세워진다. 내가 열심히 돕는다고 해서 성장하는게 아니고, 교회 중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거할 내게 권위가 주어지고, 하나님의 제자가 길러질 것이다.

C. 위탁함 (Commission)


하나님은 혼자 사역하지 않으셨다. 제자들에게 위탁하셨다. 제자들을 보내시고 돌아오면 피드개 하셨다. 제자들에게 맡기시고 가르치시고 수정하고 교정하고 하면서 하셨다. 나를 통해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제자를 세우라고 말씀하신다. 그들이 다름 사람을 제자 삼고 세우면 사람이 다른 제자를 세운 것이다. 복음은 이렇게 내려온 것이다.

3) 지키게 하라 (Until Obedience)


받은 사명을 완수하는 것이다. 지키는 것은 영적인 싸움이다. 다른 한사람을 돕고자 하면 사람이 바뀌지 않는다. 사람에게 영향을 주던 것을 이기게 하면 은혜를 받고 변화를 받게 되는 것이다. (12:29)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강한 것이 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하는 강한 것을 지키고 이기게 하려면 예수의 권시를 가지고 빼앗아 와야 하는 것이다. 다시 세상에 빼앗기지 않도록 예수님이 지켰다고 말씀하셨다. 마찬가지로 세상에 안주하지 않고 승리할 있도록 우리가 계속 도와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실 제자들을 함께 부르셔서 공동체를 이루셨다. (4:12) 교회 안에서 혼자 하는 신앙 하지 말길 바래요. 교회 안에서 믿음을 나누고 교제할 있는 믿음의 동역자들을 만들길 바래요. 제자는 영적 싸움에서 승리를 위해서는 머물러 있으면 안된다. 에수님의 제자들은 영적 싸움에서 끝까지 승리하고 세상에 타협하지 않은 사람이다. 신앙은 이론이 아니다. 예수님 안에서 끝까지 믿음을 지켜야 하는 것이다. 시대를 살면서 단지 많은 사람이 모이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이다. 영적인 용사들을 훈련시키고 모으길 원하시는 것이다. 아무리 크고 놀라운 사역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마지막 때에 불로 시험할 것이라고 하셨다. (고전3:13~15) 불로 사람이 쌓고 있는 공적을 모두 태워보신다고 하셨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공적을 시험해보시고 부끄러운 상을 주길 원치 않으신다. 신앙은 처음도 중요하지만, 중요한 것은 끝까지 우리 사명을 완수하는 것이다. 끝까지 믿음을 지키길 바래요. 복음을 위해 죽고자 하면 하나님은 살리실 것이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명을 위해 살고자 하는 사람을 끝까지 살리신다.

세상이 아무리 어두워도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 교회를 깨우시고 살리셨고, 교회를 이루시고 살리셨다. 예수님을 믿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세상을 살렸다. 하나님은 먼저 예수님 안에서 불러주시고 주니의 제자로 살아가도록 우리를 부르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