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December 6, 2018

2018-12-02 (주일예배, 정의호목사님) 회칠한 무덤 같은 사람 (마태복음 23:27-28)

겉과 속이 다른 이중성 있는 삶을 사는게 외식하는 것이다. 실제 자격은 없으면서 사람들에게는 그런 것처럼 열등감이나 허영심에서 나오는 것이다. 아무리 자신이 허물이 많아도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며 살면 오히려 정직한 모습이 될 것이다. 하나니이 아닌 사람 앞에 살고자 하는 동기부터 잘못된 것이다. 하나님 앞에 사는 사람은 사람을 두려워하거나 칭찬에 얽메이지 않는다. 하나님 앞에 사는 것은 속사람이 훈련받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 앞에 사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 외식은 십자가 없이 훈련 없이 신앙생활 하는 손쉬운 종교생활을 할 수 있는 방법이다. 많은 사람들은 외식의 유혹을 받는 것이다. 훈련은 받지 않으면서 겉으로 보기에는 좋은 신앙처럼 보이기도 한다. & 그런 사람을 직분자로 세우기 위해서는 가정생활, 직장생활, 인간관계 등 신앙의 검증이 필요하다. 이 세상은 이미 의인이 없다고 하나님께서 선언하셨기 때문이다. 의인이 없다고 하는데 의인처럼 사는건 참 이상한 것이다. (눅16:15) 사람 앞에 스스로 옳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다 아신다고 하셨다. 사람 중에 높임 받는 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 받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외식은 힘 안들이고 사람들에게 칭찬받는 것이다. 복권, 로또 같은 것이 힘 안들이고 부자가 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but 하나님 앞에는 미움 받는 것이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기 때문에 행한대로 처리하시는 것이다. 일시적으로는 모래위에 짓는 집이라고 하셨다. 폭풍이 볼 때는 한순간에 모너지는 인생이 되는 것이다. 주님 앞에는 한순간에 무너진다. 지금 살아있는 동안에 인생을 통채로 바꾸는 것이 지혜로운 것일 것이다. 자기 인생에 큰 심판거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23장 지루하리만큼 계속 반복 말씀하시는데, 그러니만큼 진지한 인생 되길 바래요.

1. 더러운 것이 가득함 Full of everything unclean


무덤을 적어도 1년에 한차례 정도는 하얀 석회가루로 회칠한다. 왜 회칠을 할까요? 명절을 지키기 위해(1년에 2차례 절기를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으로 간다. 이런 사람들이 무덤인지 아닌지 구분하라고 한 것이다. 무덤을 만지면 부정탄다는 율법이 있기 때문이다. 성지순례를 왔는데 7일 동안  부정타면 좀 그렇지 않을까요? (민19:16) 그 무덤의 겉모습은 회칠을 해서 깨끗하지만, 그 안에는 예수님 말씀대로 죽은 사람의 뼈 등이 가득하다. 이런 것이 너희들 모습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겉으로는 좋아도 속으로는 모든 추악한 것을 한다는 뜻이다. 그런 사람들과 접촉하면 그런 종교적인 외식이 다른 사람을 종교적인 외식으로 오염시킨다.
죄는 전염성이 강하기 때문에 죄와 같이하면 오염되는 것이다. 거짓말, 음란 등과 같이 있으면 자신도 오염되는 것이다. 부정한 사람과 같이 있으면 자신도 부정해지는 것이다. 주의 이름을 깨끗한 사람과 같이 지면 내 영도 깨끗해지는 것이다. 개인도 그렇지만 한 교회가 종교적인 외식하는 교회라 하면 그 안의 전 교회가 외식으로 물들이게 되는 것이다. 종교적인 교회 안에서 성령을 때라 신앙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아무도 자기 속마음을 나누지 않거나 표현하지 않는 셀모임에서 속마음을 드러내기란 너무 어렵다. (요12장) 나사로의 집에 예수님이 방문했을 때 일이다. 마르다는 음식준비로 바쁘지만, 동생 마리아는 자신이 가진 지극히 비싼 나드향유를 가져와서 예수님 발을 닦고 머리로 발을 닦았다. 이 향유는 가룟유다의 계산에 따르면 수천만원 상당의 것이다. 마리아는 사람 보기엔 책망받고 비난 받아야 하는 일이다. 마리아는 반대의 일을 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속사람의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속사람의 마음이다. 이것을 본 가룟유다는 마리아를 칭찬한 것이 아니다. "이 향유롤 어찌하여 300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사람을 돕지 않느냐?"고 말했다. 가난한 사람에게 주라고 했는데 누가 가룟유다를 비난하겠느냐? 1/10만 예수님 발에 붓고 나머지는 좋은뜻에 쓰는 것이 좋은거 아니냐 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가난한 사람보다 더 천하게 여기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 말을 들은 예수님은 "가난한 자는 항상 너희와 함께 하지만, 나는 항상 너희와 함께 하지 않으리라"고 하셨다. 사람에게 옳게 보이는 것이 외식이라고 말씀하셨다. 실제 속마음은 가난한 자를 위해서 그렇게 말했다고 요한복음은 말하지 않는다. 300데나리온에 팔아서 헌금하면 가룟유다는 그것을 훔치려고 그 말을 했다고 한다. 회칠한 무덤같은 가룟유다의 모습과, 순전한 나드 같이 예수님을 섬기는 마리아의 모습으로 극단적으로 드러난다. 우리가 하는 말이 아니라 행하는 중심, 동기를 보신다. (렘17:9~10) 가난한 사람을 돕는 모습으로 다니는데 어떻게 속마음을 알겠나요? 외식하는 사람의 슬픈 비극이다. 행위와 행실대로 보응한다. 속에 선한게 있으면 외식할 필요가 있겠나요? 속에 숨기고 싶은 것이 있기 때문에 외식하는 것이다. 외식하는 것 자체가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그 속마음을 다 아신다. 외식하는 마음이 언제 드러날까요? 십자가 사건 앞에서는 다 드러난다. 드러나면서 갸롯유다의 운명도 그때 끝나는 것이다. 우리 속에 더러운 것이 언젠가는 다 드러난다. 그것이 드러나는 순간 우리 인생도 끝나게 된다. 결정적인 사건을 만나기 전인 지금이 은혜의 때이다. 갑자기 사건을 만날 때는 피할 길이 없다. 지금 해결하고 넘어가야 나중에 갚지불이 적은 것이다.

2. 불법이 가득함  Full of wickedness


허영, 열등감으로 외식이 나타나는 것이다. 기도를 잘 못하고 기도를 안하면서 기도를 잘하는 사람처럼 보이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예수님은 이런 바리새인과 서기관이 겉을는 옳게 보여도 속은 불법이 가득하다고 말씀 하셨다. 여기 나오는 불법은 예수님이 다른 곳에서도 사용하셨다. (마7:21~23)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키포인트인데 "주여 주여" 하는 자가 다 들어가는게 아니다. 아버지의 뜻대로 행해야 갈 수 있는게 키포인트이다. 아버지의 뜻대로 하지 않는 것을 불법이라는 의미이다. 마지막 때가 되면 자신의 일을 토설할 것이다. 23절에서 나오는 "불법"이 같은 단어이다. 주의 이름으로 귀신도 쫒고, 병도 낫게 하고, 기도도 했지만, 불법을 행했다고 하신다. 많은 것을 고백해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나와 상관없다. 니가 한 일이다"고 말씀하실 것이고, 두번째로 "불법을 행했다"고 말씀하실 것이다. 사람 앞에서는 실제로 놀라운 일을 했지만, "주여 주여" 하면서도 아버지의 뜻대로 하지 않았다. 그 일을 하고 말고를 말하시는게 아니다. 왜 하나님이 하라는 말은 안전하고, 하지 말라는 말은 하는건 왜 그럴까요? 오늘날도 사람 마음을 거스르는 설교, 회개하는 설교를 하면 백성들이 하지말라고 할 것이다. 예레미야 시대에도 그랬다. 좋은 일을 하는게 다 좋나요? 그건 사람의 뜻이다. 좋은 일을 하더라도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게 중요하다. 귀신을 쫗아냈지만 주님의 뜻대로 하지 않아서 문제가 되는 것이다. 주님이 귀신 안쫏아냈다. 주님의 뜻대로 하면 자신의 의견과 상충되고, 특별히 자기 영광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말씀, 영성은 없으면서 말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다. 
예전에 갔던 집회에서 인도자가 "절대 허락없이 기도해주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그런데 안수하러 다니는 사람을 봤다. 동기가 뭐겠어요? 자기를 드러내가 위해서는 자기 방법으로 "주의 이름"으로 뭐든지 한다. 치유, 기도사역 등도 한다. 우리 마음에 상처, 열등감, 쓴뿌리가 남아있고, 죄, 교만, 허영이 남아있으면 이런 외식의 유혹을 받을 수 밖에 없다. 바리새인들은 이런 종류의 사람이다. 우린 주님의 이름으로 큰 일을 하는 자체보다, 주님의 뜻에 순종해서 하는 법을 먼저 배워야 한다. 주님이 아무리 귀한 일을 하고, 주님의 일을 하더라도 불법을 하면 마귀의 일을 하는 것이다. "마귀의 이름으로"라고 하면 이상하기 때문에 광명의 천사처럼 한다. 
목사님 분당시절에 부산에서 기도 한번 받으러 온 사람이 있었다. 목사님 기도하는데 기도하지 말라는 마음을 주셨다. 기도해주는게 더 쉬운데 하나님은 하지 말라는 것이다. 기도 안하고 잘 보냈는데, 그 후에도 목사님 마음을 끊임없이 유혹하는 것이다. 베데스다 연못에서 30년된 환자만 고쳐주고 갔다. 그 곳에서 모든 환자 고쳐주는게 뭐가 힘들어서 1명망 고쳐주셨을까요? 사람들 사이에서 "사랑이 많다고 했는데 왜 저러실까?"라고 비난 받았을 것이다. 인정이 많은 것은 자랑꺼리라고 말하지만 "인정마귀"라고 한다. 예수님은 아버지가 보여주지 않는 것은 안하신다고 말씀하셨다. 아버지의 뜻을 따라서 그냥 가신 것 뿐이지, 사랑과 자비가 얺는게 아니다. 외식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그 당시에 그 상황에서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을 한게 얼마나 많을까요?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은 겸손해야 한다. 겸손을 먼저 배워야지, 일이 사람을 만드는게 아니다. (잠16:19) 교만한 마음으로 많은 사약을 하고 많은 유익을 얻는 것보다, 이렇게 할 수 있는 자신의 마음을 찾는게 더 좋아하다는 말이다. 자기 안에 죄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불법을 행햐게 되는 것이다. 회개 외에는 죄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내가 먼저 깨끗하게 해야 하는 것이다.

2018-11-25 (주일예배, 정의호목사님)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마23:25~16)

아이 키우는게 너무 힘들다. 하나의 인격체와 영혼을 키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사람을 전도하는 것도 어렵지만, 전도해서 양육하고 섬기고 키우는 것은 더 어렵다. 아무 상관없는 사람을 섬기는 것을 당연시 하는 차원에서 넘어서 대적하고 한다. 도와지면 몰라도, 그렇게 돕고 섬겨도 대적하고 떠나는 영혼도 너무 많다. 한 영혼을 돕는다는 것은 자신의 힘으로는 돕지 못하고, 자신도 용서받은 십자가사랑을 아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을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섬길 수 있지, 자신의 의로 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한 영혼을 두고 사단과의 치열한 영적 전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혼을 돕는 사역을 통해서 많은 어려움을 키우고 있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위해서 끊임없이 기도함으로써 보호했다고 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는 처음부터 많은 말씀을 했지만 계속 끊임없이 걍팍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대적했고, 결국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이는 일을 하게 되었다. 겉으로는 하나님의 모습을 하고 속으로는 사단의 일을 했다. 그래서 예수님은 "화있을진저"라고 계속적으로 경고의 말씀을 하셨다. 바리새인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끊임없이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직접 이런 말씀을 듣는 것은 재앙이요 저주인 것이다. 그 날을 피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경고하시는 것은 예수님의 은혜임을 알길 바래요. 지푸라기같은 비본질적인 것에 메여서 외식하는 것이 무엇인지 끊어내길 바래요. & 영적인 신앙을 하길 바래요. 강둑에 앉아있으면 수영을 할 수 없고, 강물로 들어가야 한다. 우리의 본질적인 문제를 다리면서 자신을 회복하는 기회가 되길 바래요.

1. 겉을 깨끗이 하는 사람  Those who clean the outside


겉모습과 안모습이 다르다. 실제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외적인 청결을 강조했다. (막7:2~4) 잔과 주발과 놋그릇을 씻는 전통이 있었다. 자신의 몸을 부정타지 않기 위한 전통이었다. 아주 청결, 깔끔 떨기를 대단한 사람들이었다. 물론 나쁜건 아니지만, 이런 사람이 만든 전통을 하나님 말씀보다 더 중하게 여기는 것이 이들의 전통의 문제이다. (마15:2~3) 그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범하는 죄를 짓고 있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도 이런것을 찾아보면 많이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 말씀으로 전통을 돌아보고, 전통을 거스르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면 될 것이다. 이것으로 예수님의 일을 판단했다. 이런것을 이번주는 찾아보세요. 아마 하나 이상은 반드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종교인들은 이런 종교적인 전통이라는 겉모습을 통해서 자신들을 깨끗하게 하려고 했다.  
So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린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신 것이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은 전통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영성이 없으니까 인간적인 전통으로 영성을 보이려고 했던 것이다. (마15:18~20) 입으로 내뱉는 말이 그들을 더럽게 한다고 했다. 그것은 마음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 때가 되면 무엇이 그들을 더럽게 할까요? 입으로 먹는거라던지 손이 더러운게 아니고 입에서 나오는 것이 드럽게 하는 것이다. 탐욕은 물질에 대한 욕심이다. 시기, 질투, 교만 등은 모두 욕심에서 나오는 것이다.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낮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을 낮는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으면 비전이 아니고 욕심이다. 죄를 다스리라고 했는데, 죄를 다스릴 능력이 없어서 방탕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혈기가 있지만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은 밖으로 나오지만, 다스릴 능력이 있으면 괜찮다. 게임, 미디어, 인터넷, 스마트폰 등도 마찬자기로 육신을 죽일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 절제할 수 있고 문제가 되지 않지만, 절제할 능력이 없으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잠4:23) 내 안에 영적 생명이 있으면 그 생명이 지켜준다. 속에 영적 생명이 없으니까 겉으로 생명이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 외식이다. 내면에 자신감 있는 사람은 입는 것도 대충 입어도 괜찮다. 더러운 옷을 입고 더러운 외모를 하고 하면 외식한다고 안하고 솔직하다고 한다. 자기모습 그대로 행하기 때문이다. But 예쁘게 화장하고 예쁘게 입고 하면서 더러운 말을 하면 그게 외식인 것이다. 이것이 예수님은 화있을진저라고 말하시는 것이다. 그리스도 신분에 합당한 삶을 살길 바래요.

2. 안을 깨끗히 하는 사람 (26)


겉은 깨끗이 하면서 속의 탐욕 등은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속이 안좋아서 얼굴에 트러블이 났는데 화장하고 약바르고 하면 좋아집니까? 아닙니다. 속을 다스리면 얼굴은 금방 좋아지는 것이다. 우리 안에 있는 것은 방탕과 탐욕으라고 했다. 외모로 겸손한 척 허리 굽히며 인사하고 해도 안되는 것이다. 사람 앞에 외식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알길 바래요. 경건해지려면 오직 회개밖에 없다. 어떤 공로나 노력으로 죄가 없어지는게 아니다. 노력한다고 죄가 없어지지 않는다. 그 사람의 삶에 회개가 없는 삶을 산다고 하면 그사람의 속은 가장 더루운 상태에다. 회개의 기도 응답이 가장 좋은 응답이다. 회개하는 사람의 영혼은 깨끗한 것이다. 그 마음에는 예수님과 하나님의 설교를 잘 들을 수 있는 마음인 것이다. 인간은 다 하나님이 사용하기 위해서 지은 하인이다. (딤후2:20~21) 아무리 그릇이 훌륭하고 재질이 번쩍이더라도 더러운 그릇은 안쓰신다. 하지만 재질, 모양도 부족하더라도 그릇이 꺠끗하면 그 그릇은 사용할 것이다. 거룩한 용도로 선한 곳에 쓰인다는 것이다. 깨깻한 정도에 따라서 천하게 쓰시기도 한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겉모습은 대단한 금그릇인데, 속은 방탕과 타락으로 더러운 그릇이었다. & 예수님을 죽이는 악한 일에 천한 용도로 쓰인 것이다. 반면에 제자들은 그릇은 보잘것 없는 재질이었지만, 가장 선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능력과 재질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재질은 예수님이 바꾸시면 되는 것이다. 속이 깨끗하냐가 하나님나라에 문제가 된느 것이다. 은사 부족해서.. 등등으로 쓰임받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세상에서는 잘 쓰임 받더라도 교회 안에서는 쓰임받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잠25:4) 찌꺼기가 있다면 그것과 함꼐 그릇을 만들면 그것을 그릇이라고 할 수 있겠어요? 내 재능만 자랑하지 말고 내 재능이 잘 쓰임받길 원한다면 내 재능 안에 박혀있는 찌꺼기부터 제거해야 한다. 아무리 재능을 가져도 한두가지 때문에 쓰지 못한다. 마음밭이 다 나쁜게 아니다. 사람 보기에 내가 부족함이 없고 능력이 없고 좋은 신앙을 하는데 왜 나를 안쓰시는가? 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신다. 사람 눈치 보지 마세요. 사람 눈치 보는 사람은 사람의 종이 되서 하나님의 미움을 받는다. 날마다 자기 죄를 토설하고 죄를 회개하는 만큼 우리 심령이 깨끗하게 된다. 심령이 깨끗해야 그곳에 하나님의 통치가 일어난다. 올 한해 남은 날동안 기도와 말씀으로 자기 안을 깨끗히 하는 한해가 되길 바래요.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삶을 준비하는 기간이 되길 바래요. 그러면 하나님이 귀히 쓰시는 새로운 일꾼으로 쓰시길 바래요.

218-11-18 (주일예배, 정의호목사님)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라 (마23:23:24)

예수님도 23장을 설교할 때는 마음이 어려울 수 있을 것 같아요. 화 내는 말씀을 전할 때 부담이 있는데 그래도 하나님이 뜻이 있어서 말씀을 주신 줄 믿습니다.

이 세상에는 속이는 일과 속는 일이 많이 있다. 보이스피싱과 같이 남에게 속는 일도 있지만, 자기 자신에게 속는 것도 있다. 속이는 사람이 진리이고 선한 것처럼 접근하기 때문에 속는다. 자기 자신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진리이고 선하다고 생각하기에 속는 것이다. 특히 우리 영혼을 속이는 것은 영원한 생명을 파멸하는 가장 악한 속임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영혼을 속이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게 아니다. 거짓의 아비인 사단이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을 광명의 천사로 접근해서 속이기 때문에 아무도 자기가 속고있다고 생각하지 못한다. 종교는 생명을 빼앗는 사단의 속임수라고 할 수 있다. So 너희의 신앙은 속고있다고 말씀하신다. 자기가 부족하다고 인정하면 오히려 그런 염려가 작아질 수 있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모른다. 사단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 없이 신앙할 수 있다고 속이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이 없는 곳에는 사단의 거짓된 이론으로 속이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 진리의 말씀을 영으로 듣지 못하게 속는 것이다. 이렇게 계속되는 종교인들의 문제들에 대해서 강조하시는 이유를 통해서 나 자신, 우리 자신, 교회 안에 속고 있는 것이 없는가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가 되길 바래요.

1. 종교인들이 드린 것 Things offered by the religious 


부부 사이나 셀에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어려움이 주로 어디서 오는가를 잘 보세요. 서로 자신의 잘한 것만 주장하고 다른 사람의 못한 것만 보기 때문에 싸우게 된다. 내가 잘못한 것을 생각하면 그런 논쟁은 쉽게 없앨 수 있다. 자신이 옳다고 강하게 주장하는 사람일수록 자신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자신이 속고 있다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23) 박하는 향기가 나는 채소이고, 회항도 양념으로 쓰는 채소이고, 근채도 작은 씨앗으로 향료로 쓰는 채소이다. 즉, 비싸지 않는 하찮은 채소이다. 이런 하찮은 채소들 마저도 무게를 잘 재서 십일조를 드린 것을 알고 있다. But 그들은 자신이 잘하고 있는 이것 한가지만 생각하고 있다.

2. 종교인들이 버린 것


잘한 것보다 못한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하신다.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다고 하셨다. 잘하고 있는 것만 촛점을 맞추고 있다면 더 중한 것을 놓치게 된다. 정의는 옳은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정의가 생긴다. 하나님 마음을 모르면 정의가 불의로 된다. 작은 것은 중요하게 생각하고, 큰 것은 하찮게 생각한다. 자신의 것을 귀하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의 티끌은 크게 생각한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문제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 & 긍휼을 버렸다고 했다. 바다 다니면서 멀리 다니면서 영혼 전도한다고 자랑하면서 자기 집 근처에 있는 세리들은 천대하고 회당에 들어오지도 못하게 한다. & 거리와 회당에서 자선과 긍휼을 베푸는 일을 하면서 과부의 돈을 훔쳤다고 했다. 이들은 자기 근처에 있는 불쌍한 사람들은 오히려 훔치고 한 것이다. 사람을 위해 한 일은 전혀 없다. (마12:7) 이게 하나님의 마음이다.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신다. 즉, 자비없는 제사, 마음 없는 예배, 마음 없는 찬양 등을 원치 않으신다. 요한복은 8장에 보면 현장에서 간음하다가 걸린 여인을 봤다. 자신의 죄는 보지 못하고 여인의 죄만 보고 돌로 치려고 준비한 사람들이 있었다. 예수님은 죄 없는 자는 돌로 치라고 하셨다. 이 말을 들었을 때 자기 죄가 보인 것이다. 이와같이 자기 죄가 보이는 사람은 남의 죄를 말할 수가 없다. 예수님은 정죄보다는 용서와 긍휼로 대한 것이다. 그것도 가까이 있는 긍휼이 필요한 사람에게 긍휼을 베푸셨다
하나님을 신뢰하는게 믿음이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믿지 않으면서 예배드리는 것이 외식이다.  아직도 예수님을 믿지 못하니까 정죄감 때문에 자신의 허물을 버리지 못하게 되니까 외식이라는 죄가 추가되는 것이다. 이런 종교인들에게 예수님은 너희들이 하던 십일조도 하되, 너희들이 버린 긍휼과 자비도 같이 하라고 하신 것이다. (마5:18~20) 율법을 지키려면 다 지켜야지, 작은 거시라고 지키지 않고 하면 안된다. 예수님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신앙수준을 알려주신 것이다.

3. 종교인들의 문제.


종교인들의 문제는 맹인이라는 것이다. 하루살이가 중요한지 낙타가 중요한지는 상식선에서도 잘 알수 있다. 율법의 자잘한 세칙을 만들어서 지키는 것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다. 정말 넘어질 것,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을 꿀꺽 해버린다. 일대일을 하면서 비본질적인 질문을 계속한다. "목사님, 겨자씨는 얼마나 작아요?" 사람의 눈으로 그렇게 바라보기 때문이다. 신앙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마음인데 특별히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마22:37, 39) 첫째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신앙에 어떤 중요하고 큰 일을 하는가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느냐가? 하나님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모두 놓치키 싫다. 외식하는 자들아 화있을진저라고 하시는데,,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없이 하는 모든 것이 외식이다. 예배는 드릴 수 있지만, 하나니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예배를 받길 원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보시고 받으시는 분인데, 그 마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고 내 마음으로 하면 하나님꼐 드릴게 없다. (요이4:10) 이게 사랑이다. 사랑이 여기 있는데,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 하나님이 먼저 우리에게 사랑을 주셨다. So 회개를 통해서 죄사함을 받을 때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할 수 있다. 겉모습은 깨끗한데 속은 더럽기 짝이 없다. 그 이유는 예수님의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다. 예수님의 사랑을 잃어버렸다. 예수님을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사랑한다고하는 외식이다. 한 여인은 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발을 씻었고,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닦았다. 이것을 예수님을 향한 모든 사랑을 그 발에 부었다. 이 여인은 가장 큰 율법을 행한 것이다. 먼저 예수님의 죄사항을 받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이다. 에수님을 사랑하느 것이 율법의 완성이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에 너무 무례하고 하다. 하나님 사랑, 율법 사랑이 가장 큰 율법이다. 큰 문제가 아니고 하루살이 같은 작은 문제 때문에 분열되고 하는 것이다. 하루살이 같으 문제에 메이는 사람은 작은 것에 목메이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중하게 여기는 것은 중히 보고, 작게 보는 것은 작게 볼 수 있어야 한다. 한 쪽에 치우치지 말고 온전한 신앙 하길 바래요.

2018-11-11 (주일예배, 손인규목사님) 보물을 하늘에 쌓으라 (마태복음 6:19-24)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많은 문제들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돈과 관련있다. & 우리의 문제들 중에서도 돈과 관련있는 것이 많다. 나의 어려움ㅇㄹ 나는 것보다 나의 물질생활을 나누는건 어렵다. 성경에서는 물질관련 말씀이 많다. 이는 하나님이 물질에 대해서 많은 관심이 있다는 것이고, 신앙은 삶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돈을 벌며 사는 것이 세속적인 것 같지만, 사실은 굉장히 영적인 전투인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은 돈문제만 터치하지 않기를 원한다. (딤후6:10) 우스개소리로 부모님이 헌금을 하라고 아이에게 돈을 쥐어준다. 500원짜리 동전을 2개 주고 하나는 헌금이고 하나는 용돈이었는데 교회를 가다가 하나를 잃어버렸다. "헌금을 잃어버렸네요.."라고 말을 한다.
우리 안에 욕심이 있다. 욕심은 하나님이 주신 것 이상의 것을 원하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은 이 땅에서 열심히 일하고 돈을 벌지만 어떻게 물질을 대하고 사용하는지를 보길 원합니다. 땅에 보물을 쌓고자 하는 사람이 있고, 하늘에 보물을 쌓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

1. 땅에 보물을 쌓는 사람


열심히 이 땅에서 일하며 살아가지만 하나님께 속한 사람에게만 하는 말이 아니다.

1) 땅의 보물에 마음이 있음


보물을 땅에 쌓으니까 마음이 이 땅에 있고, 마음이 이 땅에 있으니까 보물을 이 땅에 쌓는 것이다. 마음이 있으면 감정이 들어가고 열정이 들어간다. So. 내 마음이 있는 일을 할 때 열정이 생기는 것이다. 내 마음이 향하는 그곳이 내 생각이 향하는 것이다. 먹고싶은 생각과 소원이 있으면 다른 것을 줄이면서 까지 결국 그 물건을 사게 된다. 그것을 위해서 물질과 시간을 투자할 때 고생스럽지 않고 열정이 생기는 것이다. 아무리 없고 바빠도 나의 육신을 위해서 시간과 물질을 쓰게 된다. 반면 바쁘고 힘들어도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둔 사람은 그 상황에서도 하나님 나라에 시간과 물질을 쓰게 된다. 우리의 몸이 하나님을 만날 때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하나님의 눈으로 나를 보면 회개가 일어나고 영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면 하나님나라에 보물을 쌓게 되어있다. 나의 눈을 이 세상에서 하나님꼐로 바라보길 바래요. 예수님은 종교인들을 향해 영적인 소경이라고 하는 이유는 하나님나라가 아닌 땅에 소망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눈이 어둡다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다는 것이다. & 나의 문제, 땅의 문제, 세상만 보인다. 중요한 것은 이 땅에서의 삶은 영원하지 않고, 내가 소유한 것도 영원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이 땅에 투자하게 되고, 이 땅에 사는 것에만 신경을 쓰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돈을 버는 것이 나쁘다는게 아니고, 돈을 벌더라도 사람마다 그 동기가 다른 것이다. 땅에 보물을 쌓고자 하는 사람이 열심히 일을 하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직 된다. 똑같이 일을 하지만 땅에 보물을 쌓는 사람은 일을 하면 할수록 하나님과는 멀어진다. & 돈을 벌기위해서 과정이 중요하지 않다. 하나님 앞에서 하는게 아니라 이 땅에 보물을 위해 살기 때문에 그것들이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 이 돈을 쓰는데는 인색하고, 나를 위해서 먹고 마시는데 돈을 쓰는 것에는 아깝지 않고, 영적인 것에 돈을 쓰는 것은 아깝다. 우리가 헌신을 하고 하나님 앞에 즐거이 물질을 드리고 섬겨야 하는데 하나님께 보이기 위해서 드리면 안된다. 아나니와 삽비라이 경우를 보면 다른 사람이 은혜 받고 남들에게 구제하고자 하는 마음이 들었고 그렇게 했다. 아나니와 삽비라는 그 모습을 보고 인정받고 싶어서 재산을 팔아서 교회에 드렸다.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서 하는 것은 땅에 보물을 쌓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헌신하고 수고하며 물질을 쓰는 것은 하나님꼐 드려야 하는 것을 믿습니다.

2)보물을 주인으로 섬김 (24)


오늘날 이 시대에 세상을 둘러보면 신으로 숭배를 받는 것이 물질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을 가르켜서 물질만능주의라고 한다. 돈이 마치 전지전능한 신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But 돈이 모이는 곳에 문제가 생긴다. 본문에서 재물의 원어는 맘모니아스라는 것이다. 돈을 섬기게 만드는 영적인 세력이 있다는 뜻이다. 맘몬의 세력은 헌신과 충성을 요구한다. &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길 원한다. 내가 벌고 있는 돈으로 나의 가치를 매긴다. 돈이 나의 주인 역할을 하는 것이다. But 돈은 영원하지 않다. 세상의 것은 아무리 좋은 것도 녹이 슬거나 도둑이 좀먹는다. 이 세상의 무엇을 섬긴다는 것은 자유함이 없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는데 자유함이 없어진다. 주인이 자리에 나와 세상 재물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마음에 자유함이 없는 것이다.

2. 하늘에 보물을 쌓는 사람


하나님 나라에 보물을 쌓는 사람도 있다. 하나님 나라에 마음이 있다. 영혼을 구원하는 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일에 마음이 있다. & 하나님이 하신 일을 알리는데 마음이 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우리 인생의 증인이 된다. 하나님나라에 보물을 쌓는 것은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니고 나를 위해서이다. 정말 나를 위하면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나라에 보물을 쌓으라는 것이다. 아무도 빼앗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정말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하나님나라에 보물을 쌓는 것이다. 하나님의 원리대로 사는 것이 보호받고 복을 받는 인생인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물질을 어떻게 쓰게 될까요? 하나님나라를 위해 시간을 어떻게 써야할지 질서가 생기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나라에 보물을 쌓고자 하면 돈을 허투로 쓰지 않는다. 나를 위한 일에 먼저 돈을 쓰고나면 하나님나라에 남는 것을 드리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하나님꼐 먼저 드리고 나서 남는 물질을 내가 쓴다. 믿음으로 하나님꼐 드리는 것을 기뻐하신다. 창세기에도 가인과 아벨의 경우에도 제사의 문제이긴 하지만 물질의 문제이기도 한다. 가인이 드리는 물질은 하나님이 받지 않으셨지만, 아벨이 드리는 것은 하늘나라에 쌓였다. 보물을 땅에 쌓고 있는지, 하나님나라에 쌓고 있는지 하나님은 보고계신다. 제일 좋은 것을 가치있고 효율적으로 보는 것은 하나님나라에 쌓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쓰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사용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잠11:24) 어떤 사람은 나를 위해 과도하게 아끼지만 가난하다. 마음이 가난하고 인색한 것이다. 그러나 가진 물질이 적다 할지라도 세상의 기준인 액수로 보지 않기를 바래요. 물질 뿐만 아니라 나의 재능 등을 하나님을 위해 섬기는 것이 하늘에 보물로 쌓이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물질을 드리는 것은 물질 뿐만 아니라 마음을 드리는 것이다

2)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김


누가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겠습니까?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길 바래요. & 물질을 종으로 보길 바래요. 물질생활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이 주인임을 믿길 바래요. 하나님이 목사님 안에 물질의 소원을 주신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물질에 대한 소원함을 주시면 내 생각이라고 생각하고 무시하고 넘어갔다. 하지만 물질에 대한 소원을 주시면 하나님이 이렇게 하길 원하신다고 순종한다. 물질을 어떻게 쓰길 원하신지 묻기 시작했다. & 물질을 하나님께 쓰면 그만큼의 물질을 채워주시고 놀라운 은혜를 경험한다. 내가 무엇을 사랑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내 삶의 주인이 바껴야 한다. 내가 사랑하는 대상이 하나님이 되길 바래요. 진정한 나의 보물을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재물은 하나님을 섬기는 나의 종이다. 내 발 아래 재물을 두길 바래요. 하나님은 계속해서 하나님 앞에 물질을 맡은 청지기로 감당할 수 있도록 하길 바래요.
우리가 어떤 물질생활은 물질생활만이 아니다. 단순히 돈을 벌기위해서 일하는게 아니다. 과거에 미국에 건너간 청교도들은 일하기 위해 돈버는거라고 생각하지 아니다. 일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중세 수도원에는 일이 곧 기도라고 생각했다. & 사람을 만나면 하나님을 섬기는 것 만큼 섬겼다. 거룩, 성실, 정직, 마음을 드려 열심히 일하니까 많은 소득을 벌게 되는 것이다. 거룩한 청지기에게 더 많은 것을 주길 원하시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길 원하는 것이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모르는 세대가 일어났다. (사2:13) 가나안 땅의 원주민들처럼 농사를 짓고 먹고살기 위해서는 바을과 아스가롯을 섬기니, 이스라엔 사람들도 그렇게 해야지 농사를 지을 수 있나보다 하면서 섬겼다. 세상의 신을 섬기는 이방의 문화를 섬기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우리가 세상을 사는 것을 구분하기 만든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오직 우리의 주인되신 하나님만을 섬기는 우리가 되길 바래요.
사도바울은 하나님을 섬길 때 세상의 물질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빌4:12, 13) 바울은 궁핍한 형편 안에 있을 때도 그것을 기쁘게 여겼다. 물질이 감정을 좌우하지 않고 하나님을 섬겼다. 이러한 믿음의 사람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길 바래요.

하나님을 나의 주인으로 섬기길 바래요. 하나님이 만물의 창조자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길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해주실 것이다. 세상의 지혜와 영광이 하나님께 나아갈 것이다. 하나님께 충성하면 더 큰 것을 맡겨주실 것이다. 반대로 마귀는 하나님을 믿지못하게 하고 대적하게 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대적하게 만든다. 우리가 죄를 짓는 것을 통해 하나님의 축복이 우리에게 오는 것일 막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좋은 것을 하나님 뜻대로 사용하고 하나님나라에 보물을 쌓는 부요한 자가 되길 바래요. 하나님이 주신 작은 것에 충성함으로 상급쌓고 영광 얻는 우리가 되길 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