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더러운 것이 가득함 Full of everything unclean
무덤을 적어도 1년에 한차례 정도는 하얀 석회가루로 회칠한다. 왜 회칠을 할까요? 명절을 지키기 위해(1년에 2차례 절기를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으로 간다. 이런 사람들이 무덤인지 아닌지 구분하라고 한 것이다. 무덤을 만지면 부정탄다는 율법이 있기 때문이다. 성지순례를 왔는데 7일 동안 부정타면 좀 그렇지 않을까요? (민19:16) 그 무덤의 겉모습은 회칠을 해서 깨끗하지만, 그 안에는 예수님 말씀대로 죽은 사람의 뼈 등이 가득하다. 이런 것이 너희들 모습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겉으로는 좋아도 속으로는 모든 추악한 것을 한다는 뜻이다. 그런 사람들과 접촉하면 그런 종교적인 외식이 다른 사람을 종교적인 외식으로 오염시킨다.
죄는 전염성이 강하기 때문에 죄와 같이하면 오염되는 것이다. 거짓말, 음란 등과 같이 있으면 자신도 오염되는 것이다. 부정한 사람과 같이 있으면 자신도 부정해지는 것이다. 주의 이름을 깨끗한 사람과 같이 지면 내 영도 깨끗해지는 것이다. 개인도 그렇지만 한 교회가 종교적인 외식하는 교회라 하면 그 안의 전 교회가 외식으로 물들이게 되는 것이다. 종교적인 교회 안에서 성령을 때라 신앙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아무도 자기 속마음을 나누지 않거나 표현하지 않는 셀모임에서 속마음을 드러내기란 너무 어렵다. (요12장) 나사로의 집에 예수님이 방문했을 때 일이다. 마르다는 음식준비로 바쁘지만, 동생 마리아는 자신이 가진 지극히 비싼 나드향유를 가져와서 예수님 발을 닦고 머리로 발을 닦았다. 이 향유는 가룟유다의 계산에 따르면 수천만원 상당의 것이다. 마리아는 사람 보기엔 책망받고 비난 받아야 하는 일이다. 마리아는 반대의 일을 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속사람의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속사람의 마음이다. 이것을 본 가룟유다는 마리아를 칭찬한 것이 아니다. "이 향유롤 어찌하여 300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사람을 돕지 않느냐?"고 말했다. 가난한 사람에게 주라고 했는데 누가 가룟유다를 비난하겠느냐? 1/10만 예수님 발에 붓고 나머지는 좋은뜻에 쓰는 것이 좋은거 아니냐 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가난한 사람보다 더 천하게 여기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 말을 들은 예수님은 "가난한 자는 항상 너희와 함께 하지만, 나는 항상 너희와 함께 하지 않으리라"고 하셨다. 사람에게 옳게 보이는 것이 외식이라고 말씀하셨다. 실제 속마음은 가난한 자를 위해서 그렇게 말했다고 요한복음은 말하지 않는다. 300데나리온에 팔아서 헌금하면 가룟유다는 그것을 훔치려고 그 말을 했다고 한다. 회칠한 무덤같은 가룟유다의 모습과, 순전한 나드 같이 예수님을 섬기는 마리아의 모습으로 극단적으로 드러난다. 우리가 하는 말이 아니라 행하는 중심, 동기를 보신다. (렘17:9~10) 가난한 사람을 돕는 모습으로 다니는데 어떻게 속마음을 알겠나요? 외식하는 사람의 슬픈 비극이다. 행위와 행실대로 보응한다. 속에 선한게 있으면 외식할 필요가 있겠나요? 속에 숨기고 싶은 것이 있기 때문에 외식하는 것이다. 외식하는 것 자체가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그 속마음을 다 아신다. 외식하는 마음이 언제 드러날까요? 십자가 사건 앞에서는 다 드러난다. 드러나면서 갸롯유다의 운명도 그때 끝나는 것이다. 우리 속에 더러운 것이 언젠가는 다 드러난다. 그것이 드러나는 순간 우리 인생도 끝나게 된다. 결정적인 사건을 만나기 전인 지금이 은혜의 때이다. 갑자기 사건을 만날 때는 피할 길이 없다. 지금 해결하고 넘어가야 나중에 갚지불이 적은 것이다.
2. 불법이 가득함 Full of wickedness
허영, 열등감으로 외식이 나타나는 것이다. 기도를 잘 못하고 기도를 안하면서 기도를 잘하는 사람처럼 보이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예수님은 이런 바리새인과 서기관이 겉을는 옳게 보여도 속은 불법이 가득하다고 말씀 하셨다. 여기 나오는 불법은 예수님이 다른 곳에서도 사용하셨다. (마7:21~23)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키포인트인데 "주여 주여" 하는 자가 다 들어가는게 아니다. 아버지의 뜻대로 행해야 갈 수 있는게 키포인트이다. 아버지의 뜻대로 하지 않는 것을 불법이라는 의미이다. 마지막 때가 되면 자신의 일을 토설할 것이다. 23절에서 나오는 "불법"이 같은 단어이다. 주의 이름으로 귀신도 쫒고, 병도 낫게 하고, 기도도 했지만, 불법을 행했다고 하신다. 많은 것을 고백해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나와 상관없다. 니가 한 일이다"고 말씀하실 것이고, 두번째로 "불법을 행했다"고 말씀하실 것이다. 사람 앞에서는 실제로 놀라운 일을 했지만, "주여 주여" 하면서도 아버지의 뜻대로 하지 않았다. 그 일을 하고 말고를 말하시는게 아니다. 왜 하나님이 하라는 말은 안전하고, 하지 말라는 말은 하는건 왜 그럴까요? 오늘날도 사람 마음을 거스르는 설교, 회개하는 설교를 하면 백성들이 하지말라고 할 것이다. 예레미야 시대에도 그랬다. 좋은 일을 하는게 다 좋나요? 그건 사람의 뜻이다. 좋은 일을 하더라도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게 중요하다. 귀신을 쫗아냈지만 주님의 뜻대로 하지 않아서 문제가 되는 것이다. 주님이 귀신 안쫏아냈다. 주님의 뜻대로 하면 자신의 의견과 상충되고, 특별히 자기 영광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말씀, 영성은 없으면서 말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다.
예전에 갔던 집회에서 인도자가 "절대 허락없이 기도해주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그런데 안수하러 다니는 사람을 봤다. 동기가 뭐겠어요? 자기를 드러내가 위해서는 자기 방법으로 "주의 이름"으로 뭐든지 한다. 치유, 기도사역 등도 한다. 우리 마음에 상처, 열등감, 쓴뿌리가 남아있고, 죄, 교만, 허영이 남아있으면 이런 외식의 유혹을 받을 수 밖에 없다. 바리새인들은 이런 종류의 사람이다. 우린 주님의 이름으로 큰 일을 하는 자체보다, 주님의 뜻에 순종해서 하는 법을 먼저 배워야 한다. 주님이 아무리 귀한 일을 하고, 주님의 일을 하더라도 불법을 하면 마귀의 일을 하는 것이다. "마귀의 이름으로"라고 하면 이상하기 때문에 광명의 천사처럼 한다.
목사님 분당시절에 부산에서 기도 한번 받으러 온 사람이 있었다. 목사님 기도하는데 기도하지 말라는 마음을 주셨다. 기도해주는게 더 쉬운데 하나님은 하지 말라는 것이다. 기도 안하고 잘 보냈는데, 그 후에도 목사님 마음을 끊임없이 유혹하는 것이다. 베데스다 연못에서 30년된 환자만 고쳐주고 갔다. 그 곳에서 모든 환자 고쳐주는게 뭐가 힘들어서 1명망 고쳐주셨을까요? 사람들 사이에서 "사랑이 많다고 했는데 왜 저러실까?"라고 비난 받았을 것이다. 인정이 많은 것은 자랑꺼리라고 말하지만 "인정마귀"라고 한다. 예수님은 아버지가 보여주지 않는 것은 안하신다고 말씀하셨다. 아버지의 뜻을 따라서 그냥 가신 것 뿐이지, 사랑과 자비가 얺는게 아니다. 외식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그 당시에 그 상황에서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을 한게 얼마나 많을까요?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은 겸손해야 한다. 겸손을 먼저 배워야지, 일이 사람을 만드는게 아니다. (잠16:19) 교만한 마음으로 많은 사약을 하고 많은 유익을 얻는 것보다, 이렇게 할 수 있는 자신의 마음을 찾는게 더 좋아하다는 말이다. 자기 안에 죄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불법을 행햐게 되는 것이다. 회개 외에는 죄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내가 먼저 깨끗하게 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