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October 28, 2018

2018-10-28 (주일예배, 정의호목사님) 어느 것이 더 크냐 (마23:16~22)

예수니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하는 말씀이다. 23장 말씀을 계속 전한다는 것은 인내와 용기와 성령의 능력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맹세할 때 자신이 가진 중요한 것을 걸로 맹세한다. 하나님의 이름, 자신의 이름, 심지어 손가락에 장까지 지진다면서 맹세를 한다. 예수님은 이전에 맹세하지 말라고 말하신 적도 있다. 속이 헛되거나 거짓된 사람일수록 맹세를 하게 된다. 서로 믿지 못할 때 맹세라는 수단을 사용한다. 못믿을 사람이 맹세를 한다고 그 말이 지켜진다는건 아니다. 맹세하고 오히려 죄를 짓는 것이다. 맹세를 통해 그들의 신앙관, 물질관, 영적인 가치관의 실체를 자기 입으로 드러낸 것이다. 우리의 신앙에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무엇을 위해 신앙하고, 교회 다니면서 무엇을 중히 여기고 무엇을 가볍게 여기는지 확인해보길 바래요. 우리의 기준은 늘 하나님이 중요시하게 여기는 것은 중하게 생각하고, 하나님이 나쁘게 생각하는 것은 나쁘게 여기는 건강한 신앙 하길 바래요.

1. 눈 멀고 어리석은 종교인들 The religious who are blind and foolish


"화 있을진저"라는 말을 먼저 하셨다. 지도자의 실수는 개인에게만 머물지 않는다. 자신으로 인해서 다른 사람을 잘못 인도한 것에 대한 책임을 지어야 하기 때문에 부담이 있다. 자기만 심판받는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을 실족케 하는 죄를 더 짓게 되는 것이다. so 자격이 없으면서 애써 리더가 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약3:1) 선생이 될 자격이나 능력이 없는 사람은 선생이 되지 말라는 말이다. 차라리 남에게 배우고자 하는 제자되고자 하는 것이 자신에게는 더 유익하다. 

1) 눈 먼 인도자 (Blind guides)

남을 가르치는 자리이다. & 제자로 칭함받는 것보다 랍비라 칭함받는 것을 더 좋아한다. 그것을 자신의 명예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예수님은 눈 먼 지도자라고 칭했다. 맹인은 눈은 있는데, 눈의 기능은 하지 못한다. 그들을 맹인이라고 하셨다. 자기도 알지 못하는 것을 남에게 가르치니까 맹인이라고 칭하신 것이다. 그 결과는 둘 다 망하는 것이다. (마15:14) 자기 자신도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는데 어떻게 전하겠어요? 예수님에 관한 것은 매주 전한다고 했다. but 자신이 예수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전하는게 아니고, 예수님에 관한 것을 전하는 것이다. 예수님 태어난 곳, 언제 십자가를 지시고.. 등등만 전하게 되는 것이다. 용서는 전해도, 용서 자체를 전할 수는 없다. 회개를 전해도 회개 자체를 전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그 말씀을 듣는 자들은 용서를 하지 못하고, 회개를 하지 못한다. 영적인 맹인은 자신이 뭘 모르는지 인지하지 못한다. 이게 그들의 문제이다. (요9:41) 마음이 교만하면 다른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진리도 자신은 알지 못하고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자기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다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그게 교만이고 독선이고 오만이다. & 자기 지식에 갇혀서 무지한 것이다. 영의 세계를 모르는 자들은 영의 세계를 모두 받아들이지 못하고 신비주의라고 매도한다. 자기의 생각과 다르면 모두 틀린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전8:2) 하나님이 우리의 실체를 파악하고 있다.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자신이 다 아는 줄로 생각하는 것이다. 어리석은 맹인이 되지 않으려면 자신 스스로 낮추어야지 맹인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올 ㅅ 있는 것이다. 대부분 자신의 수준 만큼만 해석할 수 있다. 이것을 인정하면 문제가 안되는데, 다 안다고 생각하는게 문제가 시작한다. 지식의 근본은 내 머리가 아니고 하나님이다. 지식을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고, 지식을 막으시는 분도 하나님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만큼만 알 수 있고, 주시는 자만이 알 수 있다. (마11:25) 이게 하나님이 주시고 닫으시는 기준이다. 내가 뭘 안다고 하는 사람,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닫으신다고 했다. 그 지식은 하나님이 주지 않으신 죽은 지식이다. but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들에게는 주신다고 했다. 자신을 주장하지 못하고, 율법, 신앙, 하나님을 알지도 못한다. 그런 자들이 오히려 하나님의 지혜로 구원받는 바른 지식을 받는 이유는 하나님이 이런 사람들에게 일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사람을 가까이 하신다. so 자신의 마음을 낮추는 만큼 하나님의 지식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2) 어리석은 인도자 Foolish guides


이 말이 종교인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그들은 당대에 뛰어난 사람들이다. but 그들의 지식은 영적 분별력이 없는 지식이었고, 그래서 어리석은 지식, 영적 세계를 깨닫지 못하는 지식들이다. 그래서 이들은 어리석은 사람들이다. 사람이 왜 혼적이고 인간적인 것인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식이 차단되고 막혀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지식을 받지 못하면 어리석게 되는 것이다. 죄가 우리의 영적 분별력을 막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죄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완전히 원수지게 만드는 것이다. 예수님이 말씀 하실 때마다 원수가 되는 것은 죄가 그렇게 하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의 죄는 하늘의 두루마리에 적어도 부족하다. 교만, 명예, 거짓, 외식하는 자이다. 이런 것들이 하나님과 관계가 막혀있기 때문이다. 하지 말라는 것만 하면서 살기 때문이다. 원인은 분명한 것이다.. 하나님의 지식은 많으나, 분별력이 없는 죽은 지식(어둠, 거짓의 지식)인 것이다. 성전으로 맹세해도 되고,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라고 한다. & 성전의 제단으로 맹세하면 안지켜도 되는데, 제단에 예물로 지키면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들의 신앙관, 생각이 물질을 거룩한 하나님보다 더 거룩하게 생각한다. (눅16:13~14) 돈에 대한 설교를 할 때 비웃는 사람은 대부분 돈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물질에 메여있다면 백성들 전체를 그러게 가르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2. 더 큰 것을 가르치는 예수님 Jesus who tea ches what greater

 
(17~19) 자기 문제에 메인 것은 사단에게 생각을 잡히는 것이다. 하와는 욕심이 들어와서 사단이 하와의 이성과 분별력을 완전히 바꿔버리는 것이다. 제단보다는 예물이 더 중요하지? 성전보다 예물이 더 중요하지? 이것이 잘못된 것은 아주 상식인데, 이런 상식 밖의 일이 교회에서 일어난다. 자기 문제에 메이고, 자기 죄에 메이면 거짓된 지식에 메여서 틀린 지식이 바르게 보인다. 이성이 흐려지고 사단이 그런 마음을 품게 하면 이런 거짓된 지식이 바르게 보인다. 자기 문제에 메인 사람을 사단이 그 문제를 잡기 때문이다. 교회는 상처를 치유받지 못한 사람들로 인해 이상한 일이 많이 일어난다. 사단의 속임수들이 교회에는 일어나게 된다. 왜 성전을 가볍게 여기고 성전의 금을 더 귀하게 여길까요? 성전에 계신 하나님을 만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교회에 와서 하나님 말씀 못듣고 하면 교회 사이즈, 주차장소 등이 더 중요하다. 주일 말씀을 똑같이 안들리는데, 주일 점심메뉴는 잘 보이는 것이다. 예배를 영으로 듣지 못하는 사람은 예배와 예배 프로그램 중에 뭐가 더 중요하고 더 큰지 생각해봐야 한다. 셀의 목적인 전도와 양육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이 일어나는 셀이 되어야 하는데, 이런 본질을 잃게 되면 셀 모임 자체와 인간적인 모임이 되는 것이다. 신앙의 핵심을 놓치게 되면 하나님 만나는 것은 뒷전이고, 다른 것에 신경 쓰다가 신앙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자기 문제가 우상이 된다. 자기 문제가 있는 사람은 셀에서도 부딪치고 하게 된다. 해결되지 않은 그 문제를 해결 받아야 건강한 신앙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사람들은 예배의 정해진 순서가 굉장히 중요한 것이다. 예배에 하나님의 임재는 없고 예배 형식만 남은 것인다. 하나님 임재 중심으로 살려는 사람과 비본질적인 형식을 중요시 하는 사람의 갈등은 수천년동안 대립되어온 것이다. 개혁의 사람과 전통의 사람과 계속 싸우는 것이다. 전통이라는 것이 속이는 것이다. 풍금을 사용하다가 피아노가 들어오면서 풍금파와 피아노파의 싸움이 시작했다. 지금은 피아노 친다고 뭐라고 하지 않지만, 피아노를 교회에서 처음 시작한 사람은 은 힘들었을 것이다. 항상 개혁과 선구자들은 전통에 저항을 받게 마련이다. 루터 등은 성경을 번역했는데, 교황은 사제들의 권위가 떨어진다면서 이단시 했고 화형시켰다. 종교가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목사님도 개혁적인 것을 좋아하지, 나이 먹었다고 안정적인 것을 원하지 않는다. 자신들이 안한 것을 예수님이 하니까 예수님을 이단시 한다. 전통이 본질을 빼앗아버리는 것이다. 하나님이 임재하는 성전을 가르쳐야 하는데, 성전 안에 있는 재물을 중시하게 가르친다. 이것이 종교인들의 문제이다.

잃어버린 본질을 생각해보기 바래요. 본질적인 것으로 걸리면 그 사람의 신앙이 본질적인 것이고, 본질 이외의 것으로 걸리면 그 사람의 신앙은 볼질적이지 않은 신앙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을 하찮게 여기고 무엇을 중히 여기는지 생각해보세요. 지푸리기 같은 본질 외적인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길 바래요. 본질은 십자가의 구원이다. 그것을 날마다 경험하길 바래요.

Friday, October 26, 2018

2018-10-26 (금요철야, 손인규목사님) 기도의 능력 (막9:28~29)

아무 의미 없이 부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증인의 부르심이 있고, 예수님의 제자로 살라고 부르신 줄 믿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따륵 헌신된 제자들이다. 배와 그물을 다 버리고 예수님을 위해 살길 원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제자들에게도 한계가 있었다. 이들이 예수님을 분명히 믿었고, 헌신하고 비전과 사명이 다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할 수 없는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을 가르쳐 주셨다. 오늘 말씀에는 제자들이 주님을 위해 살고자 하는데 무엇이 부족한지 그리고 무엇이 준비되어야 하는지 사건을 통해 알려주고 있다. 제자들이 인간적으로 또는 윤리 도덕적으로 부족한게 아니다. 단순하게 그런 차원에서 머물 수 있다. 하지만 제자들에게 말하는 것은 다른 차원이다. 오늘 제자로 살아가기 위해서 기도의 삶이 얼마나 중요한가 말씀하고 계신다. 신앙하고 금요일에 기도하로 온 분들은 다 알고 있을 것이다. but 어떤 사람이 어려움이 있다고 해서 꼭 기도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어려움이 있다고 해서 기도가 잘되는 것도 아니다. 오늘 하나님 앞에 말씀을 통해 어떤 하나님을 만나야 될 문제가 있다면, 내 주변에 치유와 회복이 필요한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과연 하나님 앞에 내가 어떻게 준비가 되고 어떻게 반응을 해야하는지 하나님 말씀을 보길 원한다. 하나님 말씀을 통해 기도의 돌파가 일어나는 역사가 임할 것을 선포합니다. 기도 외에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다고 했는데, 이런 종류가 무엇일까요?

1. 영적 승리를 위한 무기

예수님과 3명의 제자가 산으로 같이 올라간 사이에 말을 못하고 못듣고 자주 쓰러지는 아이를 데리고 왔다. & 자주 그리고 어려서부터 계속 지속된다고 했다.  아버지가 데리고 왔는데 예수님의 제자들이라도 고쳐줄 줄 알았는데 고쳐주지 못했다. 우리가 만약 이 아이를 못고쳐줄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예수님을 기다렸을 것이다. 제자들은 고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기도를 했는데, 문제는 고치지 못했다는 것이다. & 그 자리에서 바리새인들과 논쟁을 벌이게 되고 사람들에게 창피를 당하고 있었다. 이렇게 잘 못하고 있을 때 예수님이 오셨다. 예수님이 모든 상황을 보시고 이렇게 말씀 하셨다. (막9:19) 예수님이 단지 믿음이 없는 제자라고 해야 할텐데, "믿음이 없는 세대"라고 하셨다. 예수님이 능력을 행하는 모습을 제자들만 본게 아니고, 둘러싼 많은 사람들이 봤을 것이다. 문제는 사람들이 믿음이 없는 것이다. & 믿음이 없는 그 모습을 보고 슬퍼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가 믿음 없는 것을 슬퍼하시다. 우리의 상황, 형편을 가지고 슬퍼할 것이 아니라, 내 안에 믿음이 없는 것(내 안에 슬퍼해야 할 것은 그 상황이 아니다.)을 슬퍼하셨다. 우리가 믿음을 가지면 예수님이 일할 수 있는데, 믿음 없는 것을 예수님이 슬퍼하신다는 것이다. 종교적인 모양은 있지만 실제가 없는 것이다. 만약 예수님과 제자들만 있는 가운데 아버지가 아이를 데리고 왔으면 어떻게 됐을까요? 제자들이 고치지 못하는 것은 주변에 믿음없는 사람들 안에 둘려쌓여 있으니까, 그들에게 믿음의 영향력을 끼치는게 아니고(가정이든, 직장, 캠퍼스 든) 나도 똑같이 믿음이 없는 것처럼 돌아가버리는 것이다. 교회 문 밖을 벗어나면 세상에서는 아무런 영향력이 없는 것이다. 왜 예수님이 세명의 제자들만 데리고 갔는지 이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예수님과 있을 때만 믿음이 있는 것이고, 예수님이 잠시만 자리를 비우면 믿음이 없어져 버린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나도 믿음이 없어져 버린다. 밖으로 나갔다 오면 영향력 없는 사람으로 돌아온다. 주변에 아무런 영향력을 끼치지 못한다. 믿음 없는 세상에 나가면 내 영이 약하니까 영향을 끼치는게 아니고 영향을 받게 된다. 본문을 보면 예수님이 이 아이의 운명을 바꾸는 일을 하신다. 예수님과 제자들의 차이는 믿음이 없고의 차이다. 그것이 어디서 나오는가? 기도 외에는 이런 종류가 나가지 않는다고 하신다. 기도가 강력한 역사의 촉매제가 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KJV에는 기도와 금식 외에는... 이라고 표현되어 있다.) 말씀하신 예수님도 사역하실 때 처음에 40일 동안 금식을 하셨다. 예수님은 기도의 모델이 되신다. 내가 누릴 수 있는 당연한 것을 거부하는 것이고, 영적인 소원에 집중하는 것이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이 내 안에 주시는 영적인 소원을 붙잡길 바래요. 예수님을 위해, 하나님을 위해 분명히 살길 원하지만 기도하는 이유는 영적인 공격이 있기 때문이다. so 하나님이 쓰시는 믿음의 사람들을 보면 앞서가기 때문에 많은 핍박이 있다. 그래서 하나님이 쓰시는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기도의 사람들이다. 가정에서 첫 열매로 부르심 받은 사람들은 남들과 다른 갚지불이 있다. 가정 안에 우상의 재물을 허물고 온전한 구원이 일어나기 전까지 가정 안에 나의 인생이 어려움과 고난, 방해꺼리가 있을 수 있다. 영적인 전투가 있는 것이다. 특별한 사명이 있기 때문에 이것을 방해하는 방해꺼리가 있다. 뒤쳐저서 따라가는 사람은 그냥 따라가면 된다. but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서 다른 사람들보다 앞서가길 원한다면 핍박과 저항이 있을 수 있다. 기러기떼가 이동하면 제일 선두에 리더인 기러기가 무리 앞에 선다. 제일 많은 저항을 받아서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게 된다. 우리도 더 많은 방해와 공격이 있지만 기도를 통해 이겨낼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만약 기도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때론 능력이 나타날 수도 있지만, 영적인 방해가 있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믿음으로 살고자 할 때 원수가 있지만, 이것을 두려워하면 안된다. 중요한 것은 이런 모든 상황 가운데 기도로 무장해서 나갈 때 놀라운 승리가 보장되어 있다.
기쁨의교회는 개척 시기에 날마다 철야기도가 있었다. 놀라운 현장에 목사님도 참여하고 있었다. 이런 기도에 먼저는 담임목사님께 날마다 기도의 갚지불이 있으셨고, 수많은 성도들이 날마다 주님 앞에 기도하는 기도가 쌓여서 그 기도 위에 교회가 놀라운 역사가 있을 수 있었다. 그때 쌓았던 기도를 오늘날까지 먹은 것이다. 지금 이 시기에 우리도 놀라운 도전이 있길 바래요. 예수님과 함께하는 그 곳에 놀라운 기적이 있지만, 세상 사이에 세상에 둘러쌓여 있을 때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는 것이 제자들의 고민이었던 것이다. 새로운 역사를 위해 기도가 돌파되길 바래요. 기도를 하면 할수록 내가 더 강해지고 놀라운 능력이 나타날 것을 바라보면서 기도하게 된다. but 이런 생각으로 가도하면 굉장히 실망할 수 있다. 기도는 내 안에 강한 것이 깨어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나의 강한 능력과 지혜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행할 수 없기 때문에 기도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혈기와 분을 내면서까지 내가 원하는 뜻을 사람들에게 이루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이 이 세상의 방법이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되지 않는다. 기도라는 것은 나의 강한 것이 깨어지는 것이 기도이다. 기도가 어려운 것은 우리 자신이 너무 강하기 때문이다. 자아가 강하면 강할수록 기도가 너무 어렵다. 성경에 기도라는 것은 회개의 표현이다. 금식기도는 나의 회개를 표현할 때 금식기도한 것을 볼 수 있다.
(요3:7~8) 요나가 니느웨에 가서 선포를 했다. 그러자 왕이 금식을 선포했는데, 사람 뿐만 아니라 소와 양떼도 금식했다. 또한 사람과 짐승들도 굵은 베옷을 입었다. 사람들이 요나가 한 말을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여서 국가적으로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서 회개한 역사가 일어난 것이다. 하나님께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깨어지지 않는 육신의 세력을 깨어야 해서이다. 하나님은 일하길 원하시는데, 우리가 너무 강해서 못하신다. 금식과 기도로 우리의 강한 육신이 깨어지길 원하신다. 곰곰히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정직하게 하나님 말씀 앞에서 우리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강해지려는 사람은 많지만 약해지려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나님은 능력이 없어서 못쓰는게 아니라, 우리가 너무 강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쓰지 못할만큼 강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이 쓰지 못하시는 것이다. (딤전4:5) 오늘 본문을 볼 때 제자들이 기도할 때 능력이 나타날 것을 기대했을 것이다. 전에 이런 일들이 제자들을 통해 분명히 나타났었다. 과거에 성령충만했기 때문에 지금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열매가 없었다. 예수님이 기도하지 않아서라고 말씀하셨다. 과거에 믿음이 있었다고 해서 지금도 믿음이 있는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과거의 믿음이 아니라 현재 믿음을 갖는 것이다. so 기도를 통해 영적인 무장을 해야한다고 하신다. 다른 많은 것을 하는 것보다 기도로 깨어있는 사람을 찾고 계신다. (막11:17) 다른 어떤 많은 일을 하는 것보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집이 되길 원하신다. 기도라는 말은 "기도의 처소(집)"이라는 뜻이 있다. 밤낮으로 부르짖는 기도이 집이 우리가 되길 원하신다. 다윗이 찬양대를 모집해서 24시간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하면서 계속해서 기도하며 하나님을 구했던 것처럼 어느 곳에 가든지 (교회든 가정이든 세상에 있을 때라도) 우리의 모든 삶이 하나님의 임재 안에 거하는 기도의 집이 되길 원하신다. 하나님의 지성소에 들어가는 기도의 차원으로 들어가는 놀라운 변화가 회복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2. 영혼을 구원하는 목자의 값지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살고자 하는 영혼의 구원을 받은 사명을 받은 사람이라면 명목적인 그리스도인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꼐서 제자들에게 기도해야 한다고 말씀 하십니다. 교회 가운데 나의 문제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주변에 있는 영혼들을 위해 금식하며 기도하는 목자의 마음을 가진 하나님의 사람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길 원한다. 어려서부터 한번도 제대로 자기 인생에 있어서 자신의 인생을 살지도 못하고 파괴된 인생을 살고 있는 그 사람을 구원하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갚지불을 해야 하는데, 금식하며 기도하는 갚지불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우리의 인간적은 능력으로는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내가 이번 학기에는 개편된 셀에서 조금 더 열심히 하고 성실히 더 많이 일해야겠다라고 내 능력을 말씀하시는게 아니다. 내가 가진 능력을 나눠주는 것도 물론 좋은 것이다. 오늘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나의 성실 등의 차원으로 되지 않는다고 말씀하신다. 나의 분주한 삶을 멈추고 나의 마음을 깨뜨리고 기도하지 않는 것을 멈추고 나의 시간을 드려서 무릎을 꿇을 때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그 사람을 통해 하나님이 일하길 원하신다. 하나님은 나의 강한 것을 통해 일할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신다. 그 영혼을 위해 눈물로 기도할 수 있는 한 사람을 찾으신다. 그 영혼을 위해 기도하지도 않으면서 많은 일을 그 영혼을 위해 해줄 수 있다. 하지만 그 사람의 인생이 바뀌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 but 그 사람 안에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이다. 내 옆에 죄인 한 사람, 아무도 가까이 가기 싫어하는 죄와 상처를 아무도 도울 수 없다. 예수님의 사랑이 아니면 도울 수 없는 것이다.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기도의 갚지불을 할 수 있는 사랑의 마음으로 나의 마음을 깨뜨려서 그 사람의 죄와 상처를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을 찾고 계신다. (요10:11~12) 선한 목자는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기도하는 사람이다. 세상은 점점 더 똑똑하고 더 능력이 많고 더 많은 지식을 쌓으며 흘러간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거슬러서 양들을 먹일 수 있는 목자를 찾으시다. 몇년 전 서아프리카에 에볼라바이러스가 번져서 엄청남 사람들이 죽었다. 감염 되지마자 잠복기가 거의 없이 죽게 되는 것이다. 이런 열악한 가운데 있는 아프리카에 "국경없는 의사회"라는 조직에서 치료를 위해 들어가서 환자를 돌보던 의사와 간호사가 걸렸다. 그때 미국에서 이 두사람을 후송했다. 미국에 대재앙이 될 수 있어서 많은 이슈가 됐는데, 기적적으로 두사람이 완치가 됐다. 내 생명의 위협을 알면서도 환자들을 도운 것이다. 자신의 목숨을 걸고 이런 일을 하는 사람도 있다. 소방관, 전쟁터 등도 마찬가지이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악하고 어두운 세상 가운데 예수님의 이름으로 죄와 상처가 있는 영혼을 통해서 하나님나라를 확장해나가는 일을 한 영혼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한사람을 찾고 계시는 것이다. 내 문제가 아닌 이런 영혼을 위해서 금식하며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을 찾으시는 것이다. (고후4:12) 내 안에 사망이 역사함으로 내가 죽어지고 낮아지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에 생명이 역사하는 것이라고 고린도교회를 통해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반대로 우리가 십자가에 못박히는 것이다. 우리의 강한 것,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다. 나의 권리를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죄 가운데 믿음없는 한 영혼을 위해서 우리 자신을 하나님 앞에 내어드리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살고자하는 사람만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필요한 것이다. 복음의 능력을 경험한 바울이 (고후4:16) 라고 말한다. 바울의 고백처럼 우리가 은혜받고 변화된 것은 우리가 성실해서가 아니다. 우리가 변화되기까지 나 한사람을 통해 갚지불한 사람이 있기 때문에 죄 많은 우리가 변화된 것이다. 우리 주변에 또다른 영혼의 삶에 변화되길 원한다면 그 영혼을 위해 갚지불하는 또다른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 이 아이가 이러고 싶어서 이랬겠습니까? 제정신이 들면 온몸이 구석구석 아플 것이다. 하지말아야지 생각해서 자신이 제어되지 않는다. 영적인 문제이다. 사람들의 위로가 도움이나 해결되지 않는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일하시면 하나님께서 놀랍게 변화시켜주실 것을 믿습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다름 사람들을 볼 때 죄의 세력은 미워하되 사람을 위해 긍휼히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을 찾으신다. 영적인 치유와 변화와 하나님 나라가 임하길 원한다면 기도의 결단과 변화가 임해야 할 줄 믿습니다. 우리가 영혼을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는 놀라운 방법인 것이다. 오늘 하나님은 우리 자신도 연약하고 우리가 돌이켜보면 실수도 하고 연약하지만, 예수님은 이런 우리의 기도를 사용하셔서 하늘의 영광을 나타나길 원하신다고 말씀하신다.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하나님께서 마음을 주신 것은 기쁨의교회가 세워질 때 했던 기도가 쌓여서 지금까지 왔는데, 은혜받은 지금 시점에서 기도하는 다음 세대를 일으키길 원하시는 것을 느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을 구경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에 나가면 믿음을 잃어버리는 사람이 아니라, 기도로 믿음없는 세대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과 승리가 나타나는 것을 보길 원하신다. 우리가 주님 말씀에 순종해서 기도할 때 하나님의 마음, 예수님의 마음, 목자의 마음을 주셔서 영혼이 변화되는 것을 기대하길 원합니다.

Sunday, October 21, 2018

2018-10-21 (주일예배, 정의호목사님) 외식하는 문제 (마23:13, 15)

예수님이 외식하는 바리새인들을 책망하는 말씀이다. 시대와 자신을 분별하는 말씀이 되길 바래요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한 마음은 사람의 좋은 본성이다. 외모, 자동차 등으로 자신과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한 것이다. but 지나치면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러면 거짓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자기 안에 실제가 없는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것에 집착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이 신앙에서도 나타난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문제 역시 마찬가지이다. 거기에 상응하는 실제가 없다는 것이 이 사람들의 문제이다. 더 큰 문제는 자기 문제를 인정하지 않고 드러내지 못하는 자신의 자존심이 더 큰 문제가 된다. 믿음이 없으면서 믿음이 좋은 것처럼 살려면 어떻게 해야하나요? 믿음이 없어도 성경을 많이 공부하고 암기하고 하는 등으로 외식하는 것이다. 기도를 잘 못하는 사람이 기도 잘하는 것처럼 보이려면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거리, 사거리에 나가서 기도하고, 사람 없을 때 기도 안하고 사람 많은 때 기도하게 되는 것이다. 사단도 자신이 사단임을 가리기 위해서 빛나는 천사인 광명의 천사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모습을 속이려는데 있다. 자기 있는 모습 그대로를 나타내는 것이어야 하는데, 숨기고 속이는 것이다. 더 큰것은 이런 종교적인 외식은 한 영혼의 구원을 막는 죄를 짓게 만든다. 이런 사람에게는 "화있을진저"라고 말씀하셨다. 말씀을 통해 습관적으로 종교적인 외식이 없는지를 바라보길 바래요.

1. 외식하는 이유 Reasons for hypocisy


자신의 영혼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영혼 또한 구원을 살 수 없기 때문에 생명을 담보하는 죄이다. 외식은 위선적으로 행한다는 뜻이다. 가면을 쓰고 연극을 하는 연극배우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런 연기를 잘 하는 사람들은 사람들에게는 인기를 얻고 유명세를 타게 된다. but 그 사람은 실제 그 사람이 아니다. 외식하게되는 이유는 자기 안에 실제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 좋은 왕이 와서 좋은 왕 역할을 하면 가면이 왜 필요할까요? 그 사람의 신앙은 실제가 아니다. 이게 외식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은 없으면서 경외하는 연기는 할 수 있다. 찬양의 기름부음도 없으면서 기름부음이 넘치는 찬양으로 연기는 할 수 었다. 이런 종교적인 연기를 통해서 사람들에게는 훌륭한 사람이라고 인정 받을 수 있다. 자기의 실체를 감추려고 한다. 자기 안에 실제가 없는 사람일수록 그럴 수 밖에 없다. but 자기 안에 실제가 있는 사람은 따로 그렇게 살 필요가 전혀 없다. 믿음의 영이 없으면 믿음없는 사람이라고 인정하면서 살면 된다. but 헛된 자기 자신의 모습에 수렁이 빠져서 빠져나오기 힘들다. 부부의 모습 또한 싸우고 각방 쓰고 하더라도 외식하면 나올 때 다정한 모습으로 나올 수 있다.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아내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 but 성경은 감춰진 것이라도 드러나게 되어있다. 하나님은 외식하는 그 사람의 실제를 다 보고 계시기 때문이다. (마6:1)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외식은 자기에게 얼마나 힘들겠어요? 우리는 빚 좋은 게살구가 아니고 실속있게 신앙해야 한다. 평생을 속이면서 외식하면서 사람들에게는 그리 살았지만, 마지막 병상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2. 외식하는 사람의 실제 Reality of hypocrites


외식하는 사람은 교회 안에서 거룩한 직분을 훌륭하게 소화할 수 있다 but 집에 와서는 풀어지고 연기를 하지 않는다 . so 직장에서 하는 모습이 연기가 아닌 본모습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교회에서는 다른 사람부터 낮아지며 순종을 가르친다. 집으로까지 외서 연기하는 사람은 연기가 뛰어난 사람이다. 육신에 속한 사람은 교회의 영적인 것을 하면 할수록 더 피곤해한다. 영에 속한 것을 하면 힘이 나는데, so 속사람이 변화된 경험이 없으면 안된다. (고전4:20) 연기하는 사람은 연기력으로 할 뿐이지, 연기하는 사람의 인격과 능력까지 가지고 있지는 않는다. 성경말씀은 많이 가르치고 배울 수는 있어도, 그 말씀을 통해서 믿음을 가질 수 없다. 찬양을 열정으로 할지라도 하나님을 만날 수는 없는 것이다 신앙을 이왕 할 것이라면 실제적인 신양을 하고, 허상을 버리길 바래요.

3. 외식하는 사람의 문제


외식하는 사람들이 화가 있어야 하는 이유이다. 자기 안에 생명의 말씀이 없으면서 교인 1명을 얻는게 무슨 의미기 있습니까? 외식은 겉으로 보기엔 아름다운 말씀이지만, 그럼 말쓰이 아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가르치는대로 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게 가르친다. (눅11:52) 종교인들은 중요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는데 다른 사람들도 구원을 가로막는 방법으로 가르쳤다. 구약성경에 대해서 랍비들이 가르칠 때 예수님에 대한 내용은 가리거나 ㄱ르치지 않는다. & 게으르고 탐심하고 등등 한다. 그 옷에 대한 행동을 하는 것이다.  그 옷을 입으면 그에 걸맞는 행동을 해야한다. 집에서 이런 행동을 누가 가장 가장 많이 할까요? 성경에서 부모에게 순종하고 존경하라는 말씀은 알아도 이 말씀을 행하기는 너무 어렵다. 부모가 천국문을 닫는 꼴이 된다. (눅17:2) 실족하는 일이 없을 수는 것이다.

Sunday, October 14, 2018

2018-10-14 (주일예배, 손인규목사님)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라 (마12:28~29)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에게 임하는 축복이 있길 바랍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향해, 교회를 향해 기대하는 것들이 있다. 세상이 우리에게 기대하는 것은 시대의 가치관과 도덕, 필요와 연관이 있다. 세상의 필요를 채워주는 그리스도인을 원할 것이다. & 시대에 따라 다를 것이다. 우리가 이 땅에서 어떻게 해야할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무엇을 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고 목적일까요? 교회 안에서도 내가 어떤 일을 해야할지도 다 다를 것이다. 교회가 해야할 일을 어떤 사람은 선교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것을 다 모아서 하나로 설명할 수 있다면 오늘 말씀처럼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는 것이다.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사명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게 하는 것이다. 신앙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말씀이다. 신앙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에게는 오늘 말씀이 생소할 수도 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하는 영적인 권세가 임할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을 사용하셔서 새 일을 행할 것이다.

1.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오신 예수님 Jesus who came for God's Kingdom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와서 예수님을 공격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예수님이 설명하시는 것이다.

1)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오해


이 시대에도 신앙을 열심히 했다. 당시 유대인들은 열심히 율법을 읽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의식을 엄격하게 했다. 제일 존경받고 인정받는 교단은 바리새파였다. 이들은 일주일에 2번씩 금식했고, 구제했다. 엄격하게 율법을 지켰다. 자신의 몸을 더 엄격하고 정결하게 지키려고 노력했다. 사람들이 볼 때는 거룩해보인다. but 이들의 내면에는 변화가 없고 영적인 생명과 능력은 없다. 하나님을 잘 모른다는 것이 문제이다. 예수님이 하시는 일, 악한 영들을 내어 쫒는 일들을 할 때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다. 예수님이 사단의 힘을 빌려서 예수님을 공격한 사람들이 하나님을 안믿는 사람들이 아니고, 남들이 인정하는 사람들이 한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잘 모른다는 것이다. & 이당시에는 겉으로 드리는 것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해한다. 메시아가 와서 저 사람들을 당장 심판하고 벌 주실 것이라고 하나님을 이해했다. but 예수님은 오히려 예수님을 비난했던 종교지도자를 향해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요8:44)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서 "너희의 아비는 마귀다"라고 직설적으로 이야기 했다. 너무나 충격적인 말이다. 이 시대의 신앙관과 기준으로 봤을때도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신앙 잘하는 사람들이라고 이해했었는데, 예수님은 반대로 말씀하셨다. 우리가 이해하는 것과 하나님나라는 다르다는 것이다. 거룩하고 경건한 이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던 것이다. & 십자가에 못 박았다. 진리의 영으로 충만하지 않고 이시대와 타협하다보면 하나님의 관점과 다를 수가 있다. 모든 감춰진 것들을 예수님은 다 드러내신다. & 악한 영들과 영적인 싸움을 하셨다. 우리 안에 감춰져 있던 것들을 드러내는 사역을 하신 것이다. 예수님의 사역은 이 땅에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는 사역을 하러 오셨다는 것을 믿으시길 바래요.

2) 성령의 능력으로 임함 Comes with the power og Holy spirit


성령의 능력으로 힘입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사역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 나름대로 이해해서 노력하는데서 그쳤다는 것이다. 내가 수고하고 노력한 차원에서 신앙이 머무르면 안된다. 그것은 종교인 것이다. 예수님의 사역은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행하셨다는 것을 믿길 바래요. 예수님을 처음 믿음을 가질 때 아직 세상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의 삶에는 옛사람의 습관이 남아있다. 죄를 즐기던 나쁜 습관들이 아직 남아있다. 혈기, 사치, 음란, 게으름 등 변화되어야 할 문제들이 남아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길 바래요. 한쪽으로는 하나님 말씀의 영향을 받고 있으면서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다른 한쪽에는 죄의 영향을 받고 있다. 옛사람의 세력을 예수님은 강한자라고 말한다. 내가 즐기면 즐길수록 내가 힘을 실어주는 것이다. 반복해서 죄를 지으면 지을수록 죄를 끊기 너무 어렵다. 집을 짓고 내 삶에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느날 복음을 받고 변화되고 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예수님의 능력을 힘입을 수 없지만,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옛사람을 쫒아낼 수 있다. 죄의 세력은 저절로 끊어지지 않는다. 반대로 죄를 미워해야 한다. 대적해서 쫒아내야 하는 것이다. (요일3:8)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그냥 교회에 나오는것이 아니다. 교회 와서 예배의식을 지키는 것이 아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는 하나님의 편에 속한다는 것이고, 이런 하나님의 능력을 소유한다는 것이다. so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놀라운 특권인 것이다. 예수님 안에는 이런 결박을 끊을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천지를 창조하신 놀라운 하나님을 믿었는데 아직 죄의 영향이 이다. 도덕적으로 바르게 살아야지 하지만 하기 너무 어렵기 때문에 개인이 너무나 약하기 때문에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한다. 예수님을 믿지않는 사람의 상태는 결박 가운데 있지만,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사람은 인격체이다.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바뀌지는 않는다. 기계라면 기계를 사서 새로운 프로그램을 설치하면 모든 것이 바뀐다. but 사람의 인생은 새로운 프로그램을 새로 설치하는 것처럼 바뀌지 않는다.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이지만 전쟁을 해서 쟁취하는 것이다. 계속해서 믿음의 싸움을 하는 것이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것들이 내 삶에 영향력을 끼치고 있어서 하나님은 이른 세력을 물리치라고 말씀하신다. 영적인 변화는 뭘까요? 우리 삶에 남아있는 자가 쫒겨나는 만큼 변화가 생기는 것이다. 내 삶에 변화가 일어나지 못하도록 무언가 강한 자가 내 삶의 영역 안에 들어와서 결박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내 신앙이 새롭게 되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면 그것을 그냥 두면 안될 것이다. 지금까지 신앙을 열심히 하고 믿음이 있으면 되지 이 세력과 휴전을 해야겠습니까? 하나님의 능력으로 아직 남아있는 옛삶의 세력들의 진지를 무너뜨리길 바래요.

3) 우리 안에 임함 Comes within us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온전한 하나님의 나라는 언제 일어날까요? 다시 일어나는 심판의 그날 온전하게 임하게 된다. 왕국은 왕이 다스리는 그 나라이다. 왕국은 영토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왕국은 어디에 임하겠습니까? 이 세상 나라가 아니라 우리 안에 하나님 나라가 임한다고 말씀하신다. (눅17:21) 하나님을 우리가 믿은만큼 하나님의 나라가 회복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나라로 하나님께서 세워가시는 과정인 것이다. 하나님의 성전, 영토로 삼으셔서 우리를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 받길 원하신다. 분명히 은혜를 받았는데 엣 삶으로 돌아간다. 우리가 죄의 빌미를 주는 순간 우리를 통해 하나님나라가 임하는 영역을 점점 빼앗기게 된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죄의 세력을 이기는 만큼 온전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세상사람들이 다 인정하는 내 안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길 원하신다.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세상에 화려한 왕국을 세우는 것보다 죄로 망가진 사람들 안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길 원하신다. (막2:17)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감사해야 할 줄 믿습니다. 하나님 앞에 굴복되는 만큼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을 믿습니다. 죄와 상처로 망가졌던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일에 쓰임받을 수 있는 것이다. 쓰임받는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우리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 속해있을 때 이런 일이 일어난다.

2. 하나님 나라가 이하는 방법 The way God's kimdom reigns


1) 예수님의 권세를 사용하라 


(삘2:9~10) 과거의 어떤 것이라도 예수님의 권세 안에 굴복되는 것이다. 인간적으로 뛰어난 사람이 제자들 중에는 없다. but 성령이 임해서 놀라운 사역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행3:6) 베드로가 이 사람에게 능력을 행할 때 베드로나 사도의 이름으로 명령하지 않았다. 우리의 의와 자랑으로는 아무런 능력도 없다. 사단은 오직 예수님의 이름과 권세만 무서워한다. 죄이 세력을 이기는 권세가 예수님 안에 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이런 예수님을 믿는 것이다. 지금 우리 인생에 우리 앞에 있는 문제가 심각하더라도 이것을 이길 수 있는 권세가 있다는 것이다.

2) 예수님의 권위 안에 거하라 Reside in the authority of Jesus


예수님의 권위가 누구를 통해서 나타나느냐이다. (행19:14~16) 악한 영이 뭐라고 말합니까? 예수님의 권세가 있다는 것을 스게바의 아들도 알고 있었지만, 그 능력 안에 있지는 않았다. 중요한 것은 내가 예수님 안에, 예수님의 권위 안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예를들어 한국인으로써 한국 법을 따라야만 국민으로써의 권리를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법을 어기면 제지를 받는다. 예수님의 권위를 행사하는 것은 예수님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권위 앞에 무릎 꿇어야 하는 것이다. 지식적으로는 동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예수님의 권위와 능력이 나타나지는 않는다. 로마의 백부장이 자신의 종이 병으로 죽어가서 예수님께 도움을 청한다. (눅7:7~10) 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백부장이 예수님의 권위 아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 권위가 내 안에 나타나야 한다. 그 사람이 그 권위 안에 속해야 하는 것이다. 그 권위 아래 속해있다는 것을 나타나야 한다. 그 하나님의 교회가 말씀을 선포하는데 아무런 반응이 나타나지 않으면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 사람은 그 권위 안에 있지 않는 것이다. 영적인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권위 안에 있을 때 하나님의 나라에 속하는 일이 일어난다. but 사단은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의 권위 안에 거하지 못하게 한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권위 안에 속해야 하는 것이다. 내 생각이 아무리 어려운 것 같아도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권위 아래 굴복시킬 때 하나님의 권위가 우리 안에 거하게 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인격적인 반응을 할 필요가 있다.
(삼상3:19)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무엘이 순종하니까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 사무엘은 사울을 위해 밤새도록 기도했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순종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영적인 권세를 주시는 것이다. 다른 것으로 되지 않는다. 인간적이고 종교적인 헌신으로 그것들이 되는게 아니다. 이것을 분별해야 한다. 무조건 기도를 많이 한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실제로 예수님의 권위 아래 속해야 한다. 좋은 교회, 좋은 말씀을 듣는다 해도 하나님의 권이 안에 있지 않으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3) 회개하라 Repent


무조건 떠나라고 대적한다고 해서 능력이 일어나는건 아니다. 죄라는 것은 악한 영과 계약을 맺는 것이다. 이 계약을 끊는 것이 회개이다. 죄는 악한 영이 내 안에서 활동할 수 있는 문을 열어주는 것이다. 모든 것이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은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회개하는 것이다. (행3:19) 중요한 것은 하나님 말씀을 통해 죄를 회개하는 것이고, 죄의 영향력을 뿌리뽑는 것이다. 죄의 영향력 안에 있으면 예수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다. 죄를 완전히 끊지 않으면 언젠가 죄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회개한다는 것은 과거의 죄를 점점 멀리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가운데 순종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회개할 때 우리 삶에 영향을 주는 죄의 세력으로부터 떠나는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고 강력한 말씀이 선포될 때 우리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이다. 우리 안에 죄의 세력이 끊어지는 것이다. 우리의 삶에 오랫동안 영향을 끼친 세력이 떠나가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신앙은 세상이 원하는 많은 일, 종교적인 형식보다 하나님 나라가 이하는 것이 중요하다. 죄인인 우리의 삶 안에 들어오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길 원하신다. & 예수님이 이미 우리 안에 거하신다. (요일4:4) 영향을 주고 있는 이런 세력들을 내어쫒고 우리를 통해 하나님나라를 증거하고 죄의 상처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회복해서 하나님나라가 임하는 우리가 될 줄 믿습니다.

Sunday, October 7, 2018

2018-10-07 (CS데이, 정의호목사님) 잃어버린 자를 찾으시는 예수님 (눅19:1~10)

돈을 벌어서 먹고싶은거, 사고싶은거에 쓰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이후의 삶은 생각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막상 자기가 원하는 성공, 승진, 재물 모은 후의 삶을 보면 꼭 행복한 삶을 사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자주 보는데도 그렇게 생각한다. 인생이 거기에 집착한 삶의 과정에서 많은 인격들이 파괴될 수 밖에 없고, 가정이 파괴되고 곤고하고 외톨이가 되게 된다. 우리 인간은 육체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영적인 부분을 만들어 놓으셨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데, 먹고사는 육체의 부분만을 위해 살면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신의 영을 채우지 못하는 이상 영혼의 평안함을 구할 수 없다. 예전처럼 물질의 어려운보다는 영적인 궁핍의 문제가 많다. & 교회를 다니면서도 성령없이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많나요? 교회를 다니면서도 그렇게 힘들게 다닐 이유가 뭐가 있나요? 부모를 잃은 아이는 다른 것을 다 채워줘도 행복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 영혼이 곤고한 것은 뭐가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 영적 부모인 하나님을 잃어서이다. 하나님을 다시 만나고 예수님을 다시 만나기 전까지는 우리의 영혼을 다시 회복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행복한 삶을 다시 회복하길 바래요. 삭개오라는 한 사람이 어떻게 예수님을 만나고 회복됐는지 보길 바래요.

1. 예수님을 보고자 하는 삭개오 Zacchaeus who wants to see Jesus

하나님이 정하신 일을 하신 계획을 가지고 예수님은 그곳을 찾는다. 예수님은 아무데나 가지 않으시고 항상 그 곳에서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서 찾으신다. so 예수님이 가는 곳마다, 만나는 사람마다 인생이 변화되는 것을 보게 된다. 이 장소에 예수님이 와계시다면 이 곳에서 어떤 목적과 만나고자 하는 사람이 있고, 예수님의 뜻이 있기 때문에 와계시는 것이다. 이것을 믿길 바래요. 이것이 신앙의 자세이다. 예배와서 인생이 변화되서 교회에 남아있는 사람들이 이런 사람들이다. 우리끼리 우리말을 하면 이런 놀라운 일이 일아나겠습니까? 오늘 이 곳에 오시는 예수님을 만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길 바래요.
또 알아야 할 것은 예수님이 여리고성을 간다고 그 곳에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는 것은 아니다. 예배를 드려도 예수님을 못만나는 사람이 많다.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준비된 자를 만나주시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이 어디를 갈 때마다 낮아지고 병자들이 있다. 그런 사람만이 예수님이 만나주신다는 것이다. 예수님께 수많은 군중들이 여리고성에 모여들었지만, 2명만이 예수님을 만났다. 바디메오와 삭개오만이 만난 것이다. 이런 은혜가 우리에게도 임하길 바래요.

1) 세리장 삭개오 Zacchaeus, a chief tax collector

이름에는 의미가 있다. 삭개오는 청결한 사람, 의로운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삭개오가 살아가면서 부모가 지어준 삭개오라는 이름과는 반대로 불결하고 더럽고 불신적인 삶을 살았고, 그때마다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이름 때문이라도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삭개오가 신앙을 버리고 남들이 싫어하고 증오하는 로마의 앞잡이인 새리가 된데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로마시대에 자신이 출세하고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이 방법밖에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다른 직업을 가질 능력이 없으니까라는 생각을 한다. 삭개오는 세리장까지 된 것이다. 세무서장이 되려면 얼마나 악독하고 로마에 충성해야 될 수 있을까요? 그런데 삭개오는 세리장이 된 것이다. but 그럴수록 세상에서는 배척당하고 하는 것이다. 삭개오는 자기가 원하는게 됐다.

2) 삭개오는 갈망 Zacchaeu's desire

부모도 말렸겠고, 결혼했다면 가족들도 말렸을 것이다. 가족들로부터 먼저 무시당하고 증오, 모멸, 냉대, 소외감을 당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친구, 지인들로부터도 동일한 고통을 당했을 것이다. 결국 그는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더 많았다. (잠14:12) 인생을 자기 고집대로 살고 주관대로 사는 사람은 자기 생각이 옳다고 생각한다. 자기 신앙, 생각이 더 지혜로운 것 같다. 결국 열매가 그것을 알려준다. 필경은 사망의 길인 것이다. 사람은 자기 꾀로 자기 계획을 이루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우리를 창조하신 말씀을 떠나면 결국 행복할 수 없다는 결론이다. 세상의 출세, 돈, 명예로는 채워지지 않는다. 삭개오는 다 출세한 후에 영혼의 곤고를 느꼈다. 마음이 부할 때는 귀가 닫혀있고 자기 말만 하지만, 고난을 당하면 귀가 열린다고 했다. 삭개오도 마찬가지여서 예수님을 보고자 하는 마음의 소원이 들었다. 예수님을 만날 소원이 있습니까? 소원이 없으면 그것은 어려운 것이다. & 삭개오가 소원을 가졌기 때문에 예수님이 여리고성이 오신 것이다. (빌2:13) 죄에 대한 소원이 있으면 언제가는 죄를 짓게 되는 것이다. 선한 소원을 주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다. 우리에게 선한 소원을 주시면 반드시 하나님이 찾아오실 것이다. so 예배를 그냥 오면 무슨 일이 일어나요? 소원을 가지고 와보세요. 그것은 다른 차원이다. 소원은 내가 갖는게 아니다. 예수님은 오늘날 말씀으로 찾아오시는 것이다. 말씀에 믿음으로 반응할 때 그 믿음이 소원을 이루시는 것이다.

3) 삭개오의 도전 Zacchaeus's challenge

자신이 키가 크면 예수님을 잘 봤을텐데 키가 작아서 볼 수 없었다. 방해가 있는 것이다. 사람, 감정, 사건을 통해 사단이 방해를 한다. 소원이 약한 사람은 방해를 이길 수 없다. 삭개오는 방해가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소원이 강한 사람은 값지불을 한다. 돈이 없어도 카드로 사고, 휴가를 내면서까지 한다. 자기의 형편, 상황을 부인하면서까지 값지불과 자기부인을 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어야 한다. 값지불과 자기부인을 해야 한다. 자기부인을 하지 않고 누가 예배 못나오나요? 하지만 예수님 만나기 어렵다. 자기를 부인하고 지기 십자가를 지어야 한다. 세무서장이라는 타이틀을 버리고 굳은 자존심을 십자가에 죽어야 한다. 소원이 약하면 할 수 없다. (마13:8) 어린아이와 같은 자에게는 말씀이 깨달아진다고 하셨다. 어린아이같지 않으면 성경을 통동할 수 있지만 천국은 갈 수 없다. 신앙은 하나님의 원리를 벗어날 수 없다. 예수님 만나는데 그것이 방해가 되고, 방해꺼리를 자기가 잡고 있는 것이다.
삭개오는 나무 위에 올라간 것은 군중들에게 돌팔매질 맞고 욕 먹는다는 것이다. 그것을 부인하고 올라간 것이다. 그런 자기를 십자가에 부인하고 못박지 않으면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다. 이런 믿음의 결단이 필요하다.

2. 예수님이 찾으시는 삭개오 Zacchaeus whom Jesus seeks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닌다 하더라도 딱 한사람만 만난다. so 지나가면서 삭개오를 보면서 (5)라고 말씀하신다. 이미 삭개오의 이름을 알고 계셨다. 삭개오은 누가 말하지 않았는데도 재산의 절반을 어려운 사람에게 주겠다고 했다. 지난 삶을 회개하는 것이다. 이후 예수님은 이 가정에 구원을 선포하셨다. &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것을 찾으려 오셨다. 예수님이 오셨을 때 찾아지는 우리가 되길 바래요. 오늘 이 자리에서 예수님이 사람을 찾고자 할 때 그 사람이 우리가 되길 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