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눈 멀고 어리석은 종교인들 The religious who are blind and foolish
"화 있을진저"라는 말을 먼저 하셨다. 지도자의 실수는 개인에게만 머물지 않는다. 자신으로 인해서 다른 사람을 잘못 인도한 것에 대한 책임을 지어야 하기 때문에 부담이 있다. 자기만 심판받는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을 실족케 하는 죄를 더 짓게 되는 것이다. so 자격이 없으면서 애써 리더가 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약3:1) 선생이 될 자격이나 능력이 없는 사람은 선생이 되지 말라는 말이다. 차라리 남에게 배우고자 하는 제자되고자 하는 것이 자신에게는 더 유익하다.
1) 눈 먼 인도자 (Blind guides)
남을 가르치는 자리이다. & 제자로 칭함받는 것보다 랍비라 칭함받는 것을 더 좋아한다. 그것을 자신의 명예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예수님은 눈 먼 지도자라고 칭했다. 맹인은 눈은 있는데, 눈의 기능은 하지 못한다. 그들을 맹인이라고 하셨다. 자기도 알지 못하는 것을 남에게 가르치니까 맹인이라고 칭하신 것이다. 그 결과는 둘 다 망하는 것이다. (마15:14) 자기 자신도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는데 어떻게 전하겠어요? 예수님에 관한 것은 매주 전한다고 했다. but 자신이 예수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전하는게 아니고, 예수님에 관한 것을 전하는 것이다. 예수님 태어난 곳, 언제 십자가를 지시고.. 등등만 전하게 되는 것이다. 용서는 전해도, 용서 자체를 전할 수는 없다. 회개를 전해도 회개 자체를 전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그 말씀을 듣는 자들은 용서를 하지 못하고, 회개를 하지 못한다. 영적인 맹인은 자신이 뭘 모르는지 인지하지 못한다. 이게 그들의 문제이다. (요9:41) 마음이 교만하면 다른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진리도 자신은 알지 못하고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자기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다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그게 교만이고 독선이고 오만이다. & 자기 지식에 갇혀서 무지한 것이다. 영의 세계를 모르는 자들은 영의 세계를 모두 받아들이지 못하고 신비주의라고 매도한다. 자기의 생각과 다르면 모두 틀린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전8:2) 하나님이 우리의 실체를 파악하고 있다.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자신이 다 아는 줄로 생각하는 것이다. 어리석은 맹인이 되지 않으려면 자신 스스로 낮추어야지 맹인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올 ㅅ 있는 것이다. 대부분 자신의 수준 만큼만 해석할 수 있다. 이것을 인정하면 문제가 안되는데, 다 안다고 생각하는게 문제가 시작한다. 지식의 근본은 내 머리가 아니고 하나님이다. 지식을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고, 지식을 막으시는 분도 하나님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만큼만 알 수 있고, 주시는 자만이 알 수 있다. (마11:25) 이게 하나님이 주시고 닫으시는 기준이다. 내가 뭘 안다고 하는 사람,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닫으신다고 했다. 그 지식은 하나님이 주지 않으신 죽은 지식이다. but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들에게는 주신다고 했다. 자신을 주장하지 못하고, 율법, 신앙, 하나님을 알지도 못한다. 그런 자들이 오히려 하나님의 지혜로 구원받는 바른 지식을 받는 이유는 하나님이 이런 사람들에게 일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사람을 가까이 하신다. so 자신의 마음을 낮추는 만큼 하나님의 지식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2) 어리석은 인도자 Foolish guides
이 말이 종교인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그들은 당대에 뛰어난 사람들이다. but 그들의 지식은 영적 분별력이 없는 지식이었고, 그래서 어리석은 지식, 영적 세계를 깨닫지 못하는 지식들이다. 그래서 이들은 어리석은 사람들이다. 사람이 왜 혼적이고 인간적인 것인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식이 차단되고 막혀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지식을 받지 못하면 어리석게 되는 것이다. 죄가 우리의 영적 분별력을 막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죄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완전히 원수지게 만드는 것이다. 예수님이 말씀 하실 때마다 원수가 되는 것은 죄가 그렇게 하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의 죄는 하늘의 두루마리에 적어도 부족하다. 교만, 명예, 거짓, 외식하는 자이다. 이런 것들이 하나님과 관계가 막혀있기 때문이다. 하지 말라는 것만 하면서 살기 때문이다. 원인은 분명한 것이다.. 하나님의 지식은 많으나, 분별력이 없는 죽은 지식(어둠, 거짓의 지식)인 것이다. 성전으로 맹세해도 되고,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라고 한다. & 성전의 제단으로 맹세하면 안지켜도 되는데, 제단에 예물로 지키면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들의 신앙관, 생각이 물질을 거룩한 하나님보다 더 거룩하게 생각한다. (눅16:13~14) 돈에 대한 설교를 할 때 비웃는 사람은 대부분 돈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물질에 메여있다면 백성들 전체를 그러게 가르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2. 더 큰 것을 가르치는 예수님 Jesus who tea ches what greater
(17~19) 자기 문제에 메인 것은 사단에게 생각을 잡히는 것이다. 하와는 욕심이 들어와서 사단이 하와의 이성과 분별력을 완전히 바꿔버리는 것이다. 제단보다는 예물이 더 중요하지? 성전보다 예물이 더 중요하지? 이것이 잘못된 것은 아주 상식인데, 이런 상식 밖의 일이 교회에서 일어난다. 자기 문제에 메이고, 자기 죄에 메이면 거짓된 지식에 메여서 틀린 지식이 바르게 보인다. 이성이 흐려지고 사단이 그런 마음을 품게 하면 이런 거짓된 지식이 바르게 보인다. 자기 문제에 메인 사람을 사단이 그 문제를 잡기 때문이다. 교회는 상처를 치유받지 못한 사람들로 인해 이상한 일이 많이 일어난다. 사단의 속임수들이 교회에는 일어나게 된다. 왜 성전을 가볍게 여기고 성전의 금을 더 귀하게 여길까요? 성전에 계신 하나님을 만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교회에 와서 하나님 말씀 못듣고 하면 교회 사이즈, 주차장소 등이 더 중요하다. 주일 말씀을 똑같이 안들리는데, 주일 점심메뉴는 잘 보이는 것이다. 예배를 영으로 듣지 못하는 사람은 예배와 예배 프로그램 중에 뭐가 더 중요하고 더 큰지 생각해봐야 한다. 셀의 목적인 전도와 양육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이 일어나는 셀이 되어야 하는데, 이런 본질을 잃게 되면 셀 모임 자체와 인간적인 모임이 되는 것이다. 신앙의 핵심을 놓치게 되면 하나님 만나는 것은 뒷전이고, 다른 것에 신경 쓰다가 신앙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자기 문제가 우상이 된다. 자기 문제가 있는 사람은 셀에서도 부딪치고 하게 된다. 해결되지 않은 그 문제를 해결 받아야 건강한 신앙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사람들은 예배의 정해진 순서가 굉장히 중요한 것이다. 예배에 하나님의 임재는 없고 예배 형식만 남은 것인다. 하나님 임재 중심으로 살려는 사람과 비본질적인 형식을 중요시 하는 사람의 갈등은 수천년동안 대립되어온 것이다. 개혁의 사람과 전통의 사람과 계속 싸우는 것이다. 전통이라는 것이 속이는 것이다. 풍금을 사용하다가 피아노가 들어오면서 풍금파와 피아노파의 싸움이 시작했다. 지금은 피아노 친다고 뭐라고 하지 않지만, 피아노를 교회에서 처음 시작한 사람은 은 힘들었을 것이다. 항상 개혁과 선구자들은 전통에 저항을 받게 마련이다. 루터 등은 성경을 번역했는데, 교황은 사제들의 권위가 떨어진다면서 이단시 했고 화형시켰다. 종교가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목사님도 개혁적인 것을 좋아하지, 나이 먹었다고 안정적인 것을 원하지 않는다. 자신들이 안한 것을 예수님이 하니까 예수님을 이단시 한다. 전통이 본질을 빼앗아버리는 것이다. 하나님이 임재하는 성전을 가르쳐야 하는데, 성전 안에 있는 재물을 중시하게 가르친다. 이것이 종교인들의 문제이다.
잃어버린 본질을 생각해보기 바래요. 본질적인 것으로 걸리면 그 사람의 신앙이 본질적인 것이고, 본질 이외의 것으로 걸리면 그 사람의 신앙은 볼질적이지 않은 신앙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을 하찮게 여기고 무엇을 중히 여기는지 생각해보세요. 지푸리기 같은 본질 외적인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길 바래요. 본질은 십자가의 구원이다. 그것을 날마다 경험하길 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