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February 25, 2018

2018-02-25 (주일예배, 손인규목사님) 변화의 사람이 되라 Be a man of change (요4:5~9, 28~30)

누구나 변화를 원하지만, 신앙을 하면서 변화되고 새롭게 된다는 것은 우리의 생각 속에서 일어나는게 아닌 아주 실제적인 것이다. 영적으로 성장하고 있는지? 변화되고 있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변화된 것이 안에 머무르고 있으면 안된다. 영적인 성장, 변화가 있다면 감출 수 없이 보여지게 된다. 내 말, 행동 등이 달라진다. (고전13:11) 어리면 어린아이가 어른스럽게 행동을 해도 어린아이다. but 성장하고 장성했다면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다고 했다. 믿음이 성장하는만큼 전인격적인 변화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so 영적인 변화도 신체적인 변화와 비슷하다. 영적으로 성장과 변화를 경험하는 자가 변화되는 것이다. 주님오는 그 날까지 영적 성장판이 닫히지 않고 자라날 수 있다. but 어떤 사람은 항상 옛날 일만 말하지만, 어떤 사람은 계속적으로 간증이 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가 변화되길 원하신다. (엡4:24) 하나님은 우리에게 새사람을 입으라고 하신다. 옛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올해를 향한 예수님의 마음은 변화의 사람이 되길 원하신다. 변화에 촛점을 맞춰서 오늘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1. 마음의 변화 Change of heart


학자들에 의하면 이 우물이 30~40미터 정도로 추측한다. 즉, 우물을 기르는 것은 이 여인에게는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사람들이 아무도 오지않는 시간에 이 곳에 오는 것은 절박하고 기고한 사연이 있을 것이다. 2천년 전 남성 중심의 보수적인 이 사회에서 이 여인의 행동인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여인에게는 채워지지 않는 목마름이 있다는 것을 예수님은 알고 있었다. (요4:14) 예수님은 물 뜨러 나온 이 여인에게 단순히 목마른게 아니고 세상에서 채워지지 않는 목마름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신다. 세상의 물질, 성공 등이 채워져도 목마른 것을 채워주실 분은 예수님 뿐인 것을 믿으시길 바래요. 완벽해보이는 사람과 결혼했는데 기대를 채워지지 못했다. 그래서 다른 남자와 결혼하는 등 벌써 5명의 남자와 결혼했다. 대상은 다르겠지만, 이 대상이 사람에 따라 학위, 일, 물질... 등이 될 수 있다. 내가 인정받기 위해 열심히 할 때가 있다. 하지만 여전히 갈급함이 채워지지 않는다. 신앙을 하더라도 하나님의 마음이 채워지지 않는 사람은 결핍이 있다는 것을 자신은 안다. 뭔가 채워지지 않는 가운데 남겨있는 것이다. 결국 내 안에는 상처가 남고 다른 사람에게 계속 상처를 준다. 나를 보호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냉소적, 경계적으로 대한다. 우리 삶의 근본적은 목마름을 해결해주시는 것은 예수님인 것을 깨닫고 믿길 바래요. 마음의 중요한 변화는 그동안 남편을 만나면 갈증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예수님을 만나고 물동이를 던지고 동네로 달려나갔다. "내가 속고 있었구나!"라는 것이 깨달아지는 은혜가 있길 바래요. 과거에는 내가 죄를 끊고싶어도 끊지 못하는 것은 내가 그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but 예수님이 내 마음에 들어오면 그 것들이 모두 싫어진다. 삭개오의 경우도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 물질을 붙잡고 있었는데 예수님을 만나 후에는 뺏은 물질의 4배를 갚겠다고 얘기했다. 진정한 변화가 일어나려면 변화되고 싶은 간절한 소원이 있어야 한다. 예수님이 이 여자에게 억지로 회개, 변화되어야 한다고 오랫동인 설득하고 권면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내가 정말 새롭게 되고 변화도길 원하는 사람을 도우신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아프리카에서는 원숭이 주먹 하나 들어갈만한 입구의 통을 만들어서 바나나를 넣어둔다. 그러면 원숭이를 그 안에 바나나를 움켜쥐면 사냥꾼이 달려오는데, 원숭이는 움켜쥔 바나나를 놓기만 하면 도망갈 수 있는데 놓지 않는다. 내 마음에 움켜쥔 것을 내려놓고 변화를 원할 때 예수님이 변화를 주신다. 우물가에 물을 뜨러 온 이 여인도 사람들로부터 상처를 벗어나게 된 것이다. 마음의 변화가 있는 것이다. 나는 변화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려고 하는 것은 그 당시 바리새인의 행동이다. 이 여인이 예수님을 만날 때 마음의 변화, 내면의 변화가 있는 것이다.

2. 관계의 변화 Change of relationship


그 동안에는 멀리했던 사람들, 관계의 변화와 돌파가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 만나기 전에는 나에게 좋은 사람은 가까이 하고, 인간적으로 불편하게 하면 멀리한다. 나에게 좋은 사람과만 그 관계 안에 머물고 있다. 근본적으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린다. 이 죄는 우리가 가장 사랑해야 하는 사람들, 가까이 해야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도 멀어지게 한다. 우리가 신앙은 하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해결되지 않은 차이가 있다면 사람과의 관계가 깨어져 있다. 교회 어딜 가든 사람과의 관계가 좋지 않다. but 이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고 마음에 변화가 있은 후에는 다른 사람들이 다르게 보이고 그 사람들이 불쌍해 보인다. & 그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so 성령은 우리 주변에 막혀있는 관계의 장벽을 깨뜨리신다. so 하나님 앞에 은혜 받고 속사람이 변화된 사람은 사람과의 관계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 은혜를 받기만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 받기만 원한다면 잘못된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품을 수 없는, 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과의 관계의 돌파가 있길 바래요. 이런 변화가 우리에게 있어야 할 줄 믿습니다. 예수님은 동네가서 전도해야 한다는 말씀을 하지 않았다. 과거에 나와 같이 영적인 갈증을 안고 살아가는 그 사람들이 불쌍해 보여야 한다. 우리는 은혜를 더 받고 안주하길 원한다. 정말 변화가 있다면 그동안 내가 품을 수 없었단 사람들을 품고 사랑으로 섬기는 변화가 있길 바래요. 만약 우리는 은혜를 받았다고 말하면서 사람과의 관계가 막혀있다면 하나님은 싫어하신다.

3. 영향력의 변화 Change of influence


우리의 삶을 곰곰히 돌아보면 내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내가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그렇다. 본문의 여인은 과거에는 부정적인 영향력을 끼쳤다. 물론 그런 의도는 아니었다. 육체의 쾌락을 위해 내 마음대로 살려고 할 때 동네 주민들은 알게모르게 영향을 받는다. 죄라는 것은 남을 오염시키는 힘이 있다. 믿음이 자라나도록 돕는것이 아니고 부정적인 쪽으로 영향을 계속 끼치게 된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희생을 헛되이 하는 것이다. (29~30) but 한 동네를 변화시키는 것은 약했던 한 사람을 택해서 변화시킨 후에 이 여인을 통해 동네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하나님은 많은 사람을 통해 변화시키지 않는다. 변화된 한 사람을 통해 변화시키시는 것이다. 이 여인은 지금까지 자기를 위한 인생을 살아왔다. 하지만 예수님 만나고 변화된 후에 이 지역을 변화시키는 축복의 통로로 쓰임받으신 것이다. 우리가 정말 구해야 할 것은 다른 외적인 능력이 아니다. 우리가 변화되고 하나님이 우리를 이끄시는 대로 순종하고 따르는 것이다. & 한마디, "와보라"는 한마디가 변화시키는 것이다.  변화의 영향력이 힘을 가지는 것이다. 인간적인 힘을 가지고 변화시키는 것과는 다른 변화가 있는 것이다. 우리 자신은 과연 하나님 앞에서 어떤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가? 부정적인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는 일에는 영적인 힘이 필요하다. so 우리가 영적으로 충만해야 한다. & 하나님을 만날수록 우리의 능력은 더 커지는 것이다. 하나님은 예수님 한분을 통해서 온 세상의 죄로부터 구원하시는 것이다.

오늘 먼저는 내 마음의 변화, 과거의 죄의 세력으로부터 결단과 변화의 열매가 있길 바래요. 내 목마름은 예수님으로부터 채우시고 관계의 변화와 영향력의 변화가 있길 바래요. 새로운 차원의 변화를 사모하길 바래요.

Sunday, February 18, 2018

2018-02-18 (주일예배, 손인규목사님) 나의 목자이신 하나님(2) (시23:3~6)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의 창조자 뿐만 아니라 우리를 고아와 같이 방치하지 않고 우리 목자 되셔서 살펴보시고 다스리신다. (시103:14) 우리는 스스로 강해지려고 한다. 그래서 남들보다 강해야 살아남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다. but 우리가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 아신다. 하나님 없이 강해지는게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강해지는 법을 배워야 한다. 오늘은 목자되신 하나님에 대해서 계속해서 보길 원합니다. 목자되신 하나님을 내 안에 모시길 바래요.

1. 의의 길로 인도하심(3) He guides us in paths of righteouness


양이 한 곳에서 머물면 그 땅은 더이상 쓸모없는 땅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양은 혼자 초원으로 갈 능력이 없다. 능력있는 목자는 양을 계속해서 풍요로운 땅으로 인도한다. 우리는 양과 같이 우리 인생이 무엇이 옳은지, 지혜로운지 알지 못한다. & 죄를 떠날 능력이 없다. so 목자이신 하나님으로 예수님은 인도해주신다. 우리는 과거의 영광에 취해있거나, 말씀을 통한 변화를 원하지 않는다. 자꾸만 새로운 믿은 안에서 영적인 변화가 아니라 안주하고자 하는 생각이 든다. 세상 어느 누구도 자격이 있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않았다. so 어느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내 자신을 자랑할 수 없다. 하나님의 양이 된 사람들은 나의 목자이신 하나님이 얼마나 선하신 분인지 증거하는 삶을 살길 원한다. 다윗은 이새의 아들 중에서 특별하게 내세울만한게 없는 자녀였다. 아버지로부터도 주목받지 못한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이다. 다윗은 양에게 풀을 먹이는 목동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베들레헴에서 양을 치는 한 소년을 세우셨다. 하나님은 다윗을 통해 환란당한 자, 약한 자들을 모아서 공동체를 형성한다. 하나님은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모형인 것이다. 이것이 우리 인생에 놀라운 기적이다. 목자되신 하나님을 따라가기만 하면 우리를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것이다. but 우리는 옛날, 세상, 에굽을 그리워한다. 계속 영향받는 세상을 끊어버리고 하나님을 따라가는 우리가 될 줄 믿습니다.

2. 임마누엘, 함께하심(4) He is Immanuel, with us.


유목민은 어느 지역이든지 비슷한 라이프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유목민들은 영양분있는 목초를 먹이기 위해 몇달을 지나서 푸른 초장으로 간다. & 겨울이 되기 몇달 전에 자신이 사는 지역으로 돌아간다. 그 사이에 양을 먹기 위해 맹수들, 뱀, 독수리 등이 있다. 이 위험과 고통을 지나야 좋은 땅을 지나야 한다. 하나님이 주시는 좋은 땅으로 인도하기 위해 이런 환란과 연단,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가야 한다. (행14:22)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사도바울은 당연히 받아들이고 알고 있었다. 이런 과정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주시겠다는 약속을 믿어야 한다. 다윗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기름부음 받은 것 때문에 사울로부터 미움받고 있다. 사도바울도 비슷한다. 유대인으로부터 세상의 찌거기와 같이 여김받았다고 고백한다. (딤후3:12)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함으로 고난받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그리스도로 인해 고난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믿음 안에서 고난 받는 분이 있습니까? (이사야43:2)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가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약속하셨다. 우리가 이런 마지막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는 이것으로 염려하는 신앙을 하지 말아야 한다. (롬8:35, 37) 우리에게 때로는 환란, 곤고, 박해가 올지라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넉넉히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믿음의 길을 하나님이 항상 함께 하신다. 믿음의 무리에 떨어져 나가면 안된다. 고난 가운데 있을 때 성령을 부어주신다. 고난이 없으면 변화가 없다. 중간에 어떤 양이 아파서 뒤쳐지면 목자는 그 양을 포기하지 않는다. 우리가 공동체 안에 머무르며 따라가면 우리가 약할지라도 끝까지 갈 수 있다. 한마리도 잃길 원치않는 것이 목자이다. (요6:39) 하나님이 이끄시는대로 약속의 땅으로 가길 원하신다.

3. 위로하심(5, 6) He comforts us.


골짜기를 지나서 가면 양들을 위해 예비된 곳이 있다. 푸른 초장이 있는 것이다. (히11:16)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본향을 사모하라고 말씀하신다. 명절이 되면 고향을 방문한다. 북한에 고향을 두고 남한에 있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들은 통일이 되서 고향에 갈 수 있길 그릴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영적인 본향을 사모하라고 말씀하신다. (눅16:25) 거지나사로는 본향을 사모하며 이 땅에서 고난을 받았고, 부자는 이 땅에서 받을 것을 다 받고 누렸다. 하나님나라의 본향에서 우리를 위한 거처를 예비하고 있다고 말씀하신다. (요14:2, 3)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나의 본향에서 아름다운 거처를 예비하시고 하나님 안에서 진정한 본향으로 가길 원하신다. 양들이 들에서 살아갈 때 양들을 괴롭히는 것들로부터 보호하고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목자는 양에게 기름을 붓는다. 우리도 갈 때 상처날 때도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치유하기 위해 힘, 능력을 주신다. 천국에 대한 소망을 품고 가야한다. 이런 하나님을 믿는다면 이런 세상으로부터 자유함이 있는 것이다. 짧은 인생을 살면서 육신, 혼적인 만족을 얻으며 살것인지 매 순간마다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인생을 부끄러워할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살아가길 바래요. (시23:6) "하나님의 집에 영원히 거하길 원합니다."  이것이 다윗의 고백이다. 우리 인생에 가장 큰 복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시다. 날마다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이 우리 인생의 복인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양인 증거인 것이다. & 주님을 따라가는 우리 믿음의 삶에 있어서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경험하고 우리의 상급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길 바래요. & 우리의 거처를 예비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길 바래요.

Sunday, February 4, 2018

2018-02-04 (주일예배, 손인규목사님) 나의 목자이신 하나님 (시23:1)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그 후에는 주변 사람들에게 하나님께 인도해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 관계가 양과 목자의 관계이다. 다윗은 실제 목자의 삶을 살았고, 하나님은 나의 목자라고 고백한다. & 목자가 되어주셔서 감사하다고 고백한다. 다윗은 사울왕에게 쫒겨서 광야에서 많은 훈련을 받았다. "하나님은 나의 군대장관이니, 나를 항상 유격장으로 인도하신다"고 고백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을 모르면 다른 사람을 도울 때 오해가 있을 수 있다. 오늘 왕이신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선하신 목자 되신다. (겔34:31) 너희는 나의 초장에 있는 양이라고 말씀 하신다. 왜 하나님께서 우리의 목자 되시는지 보길 원합니다.

1. 보호자가 되심 (He is our protector)


좀 뛰어난 양이라고 해서 다른 양보다 건강하고 오래사는게 아니다. 양이 다른 양의 털보다 더 예쁘다고 그것을 자랑할만한게 아니다. 어차피 늑대나 맹수를 만나면 죽는 것은 매한가지이다. 결국 양의 삶은 어떤 목자를 만나느냐 하는 것이다. 좋은 목자를 만나면 편하고 행복하게 산다. but 나쁜 목자를 만나면 먹지도 못하고 맹수에게 먹히고 배에 가스가 차서 죽는다. 목자는 한시도 양에게 눈을 떼면 안되는 고된 직업이다. (시121:4) 목자는 양들이 편히 잠들기 위해서는 양떼 입구에서 졸지도 못하고 양을 지켜야 한다. 모든 사람들이 목자되신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는게 아니다. 양이 되어야 한다. 양은 야생동물이 아니다. 그래서 목자는 값지불을 해서 양을 사와야 한다. so 하나님은 우리를 양으로 삼기 위해서 예수님의 피로 우리를 사신 것이다. 그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다. 예수님을 믿고 영접함으로 목자되신 하나님의 울타리  안에 거하길 바래요. & 항상 그것을 감사하고 기뻐하길 바래요. 우리를 죄와 심판으로부터 구하기 위해서 목숨과 바꾸셨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권세가 있다고 하셨다. 실제로 다윗은 양을 지키기 위해 늑대와 곰과 싸웠다. (삼상17:37) 이럴 때마다 나의 목자이신 하나님께서 자신을 지켜주실 것을 믿었던 것이다. 내 인생에 고난이나 위험이 찾아올지라도 나의 목자이신 하나님을 바라보시길 바래요. 나 주위에 한사람 한사람이 예수님의 핏값으로 사신 한사람 한사람인 것을 믿길 바래요. 다른 사람의 목자로 살아야 하는 우리 자신도 봐야 한다. 우리가 한 영혼을 도울 때 목자의 사랑과 은혜를 경험했다면 우리도 목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목자인지 아닌지는 사건을 통해 드러닌다. 우리는 왕 같은 목자가 되길 원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양을 목자의 마음으로 품을 때 우리에게 목자의 권위를 주실 줄 믿습니다. (요21:15)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베드로에게 3번이나 말씀하셨다. 또다른 양을 먹이는 목자가 되길 바래요.

2. 공급자가 되심 (He is our provider)


목자는 양들을 푸른 초장으로 인도해서 먹을 수 있게 한다. 양들이 쉴 수 있는 것은 좋은 목자를 만나서 쉴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겔31:14) 우리가 목자되신 하나님을 따라가면 좋은 꼴을 먹을 수 있는 것을 믿길 바래요. but 내가 좋은 풀을 먹으러 찾고 다니면 좋은 것을 먹지 못한다. 하나님이 먹이시는 것만 먹길 바래요. 좋은 목자 되신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좋은 것을 먹여주실 줄 믿습니다. 가장 좋은 것으로 먹여주실 줄 믿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일을 행하시고 좋은 것을 먹이시기 위해서이다. 목자는 목자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이 보시는 관점은 내가 보는 관점으로 사람들을 보지 않으신다. 내가 목자의 눈으로 다른 사람을 볼 수 있을 때 목자가 되는 것이다. (마9:9) 세관에 앉아있는 세리는 그 당시 가장 큰 죄인이다. 하나님 앞에 가면 제일 큰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but 예수님은 다른 눈으로 보셨다. 예수님이 오실 때 마태는 감히 예수님께 나갈 수 없었다. 예수님이 세리를 부를 때 자신의 인생을 결단한다. 그것도 많은 말을 듣고 결단하는 것도 아니다. "나를 따르라"는 한마디에 따를 때 예수님의 12제자가 되고, 성경의 복음서 하나를 기록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도 세리 마태와 똑같은 은혜를 입은 줄 믿습니다. 목자되신 생명의 꼴을 먹으면 죽어있던 우리 삶의 양식이 바뀔 줄 믿습니다. & 이런 목자되신 하나님의 눈으로 다른 영혼을 바라봐야 할 줄 믿습니다.
성경에는 선한 목자 뿐만 아니라 삯꾼도 있다. 목자는 우리가 받은 은혜로 또다른 영혼을 돌봐야 한다. (요10::11~12) 선한 목자인지 삯꾼인지는 사건이 생기면 드러난다. 삯꾼은 이리가 나타나면 내가 더 중요하니까 내가 살기위해 달아난다. 내 양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삯을 받는만큼만 일을 한다. so 나쁜 목자를 만나면 괴로울 것이다. 양을 치는 목자의 일을 할 뿐이지, 진정한 목자가 아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진짜 목자가 되라고 하신다. 하나님 양이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양을 사랑하는 것이다. 우리가 정말 돌봐야 하는 양들이 어떤 양들입니까? 동물의 세계에서도 맹수들은 사냥할 때 그 무리들을 공격할 때 전체를 공격하지 않고 제일 약한 것, 병든 것들을 공격한다. so 영혼들을 도울 때도 영적인 공격을 많이 받을 사람을 먼저 돕고 돌봐야 한다. 예수님도 수가성에서 상처 많은 한 여인을 찾아가신다. 자기 마음대로 살다가 고통과 상처와 어둠 가운데 살던 한 여인을 찾아가는 것이 목자의 마음임을 믿습니다. 잃어버린 양을 돕는 것이 목자의 양식임을 믿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양식임을 믿으시길 바래요. 우리가 해야할 일은 우리의 목자장이신 하나님께 나가서 부리짓는 것이다. (렘10:21)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붙여주신 영혼들을 우리가 먹일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부르짓고 우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들의 역할인 것이다. (히5:7) 예수님도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하셨다고 하셨다. 예수님이 능력이 없어서 그랬겠습니까? 내가 여기에 올 수 있었던 것은 누군가 나를위해 눈물흘리고 값지불 했기 때문에 여기에 올 수 있었던 것이다. 목자되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양식을 우리가 먼저 충분히 먹고, 이후 그 양식으로 양들을 먹일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들도 보여줘야 될 줄 믿습니다. (벧전5:3~4) 목자되신 주님을 따라서 살아가고, 내가 목자의 삶을 살 때 시들지 않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을 줄 믿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보호심 아래 거하길 바래요. 주님의 말을 듣기 위해 날마다 귀를 기울이길 바래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목자되신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고 목자의 축복을 나눠주는 삶 살길 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