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영적 전투의 공동체
이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목표를 한가지로 말한다면 성공으로 생각된다. 내가 원하는 목표를 향해 사람들은 달려간다.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가졌다면 이 세상의 목표 이상이 되어야 한다. 그것을 영적인 승리이다. 날마다 하나님이 주신 믿음을 지키시고 세상을 정복하는 삶을 살길 바래요. 세상은 우리에게 세상에서 인정 받으려면 세상의 원리, 문화를 따라서 세상에 굴복하고 타협할 때 좋은 것을 주겠다고 한다. 믿음을 포기하거나 타협을 요구한다. 남들은 다 이렇게 살아가는데 너만 특벽하게 별나게 살아가냐고 말한다. 일시적인 문화와 유행을 따라 살라고 강요하고 우리를 비난한다. 다윗도 마찬가지다. 사윗의 왕국에서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충만함으로 전쟁터에서 승리했고, 사울의 미움을 받아서 다윗을 죽이려고 군대를 동원했다. 다윗이 사울을 피하기 위해 아둘람에 숨었고, 사울의 왕국에서 빚지고 억울함으로 슬픔과 괴로움 당하는 사람들이 모인 것이다. 인간적으로는 다윗도 힘들고 쫒기고 있는데, 다윗에게 도움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하지만 하나님 기쁨이 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뛰어나야만 되는건 아니다. 너무 좋은 일이 생겨서 안다니던 교회를 나오기 시작하는 사람이 있나요? 아니다. 반대다. 아둘람에 모인 사람들처럼 우리가 약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오게 된 것이다. 다윗과 같이 하나님 나라를 회복하는 400명의 용사가 된 것이다. 다윗과 함께 살게 되면서 하나님 나라를 회복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용사가 된 것이다. 다윗이 원수인 사울을 죽이지 않는다. 적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게 전쟁인데, 다윗은 사울왕을 죽일 기회가 오지만 죽이지 않는다. 이게 영적인 싸움이기 때문이다. 세상처럼 악을 악으로 갚는 것이 영적인 전쟁은 아니다. (롬12:21) 날마다 이세상을 나갈 때에 하나님이 주신 진리의 말씀과 선의 무기로 세상 악을 이기는 영적인 축복이 임하길 바래요. 이 세상의 기준과 방법을 이기는 것이 영적인 승리인 것이다. 전쟁을 혼자 싸우는 용사가 있나요? 믿음의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함께 모여서 성령 안에서 연합되어질 때 이 세상을 이기는 영적인 용사가 되고 영적인 군사가 되는 것이다. 주님의 영적인 삶을 살고자 하면 고난과 핍박이 있다. 세상사람이 나를 좋은 사람으로 말한다면 그게 좋은 일일까요? (딤후3:12) 우리가 박해를 원해서가 아니다. 우리가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어떤 사람이든지 원하지 않더라도 영적인 싸움을 싸우게 되어있다. 그게 내 안에 예수그리스도가 있다는 증거이다. 영적인 공격이 있다는 것은 내 안에 예수그리스도가 있다는 싸인이다. 하나님과 함께 영적인 싸움을 싸우고 승리하는 우리가 되길 바래요.
2. 비전의 공동체
우리가 인생을 살지만 먹고사는게 중요한 사람은 사울의 왕국에 살게 되는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는 말씀으로 살기보다 내 인생이 중요하다는 것은 다윗과 아둘람에 살기 힘들다. 인생 폼나고 편하게 살아야겠다는 사람은 다윗과 함께 살기 힘들다. 아둘람은 화려한 왕궁이 아니고, 황량한 광야에 있는 굴이다. 하나님이 나를 있으라고 하는 곳이 다윗과 아둘람 공동체이다.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아둘람은 아주 볼품이 없다. 하지만 이것이 하나님의 지혜이다. 볼품없는 질그릇 안에 가둬두신다. (고후4:7) 이 말씀을 믿으시길 바래요. 그냥 알고 있는 말씀이 아니라, 이 말씀을 믿으시길 바래요. 우리 안에 있는 보배를 발견하길 바래요. 우리가 보지 못하면 이 세상에 속할수 밖에 없다. 세상 속에서 비교의식과 열등감을 가질 수 밖에 없다. 내 안에 예수그리스도의 보배를 깨달으시길 바래요. 이 세상을 사랑하고 높아지길 원하는 사람의 눈에는 하나님께서 감추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지혜를 가진 사람의 지혜를 어리석게 만드신다. 세상의 지혜를 가지면 가질수록, 물질을 채우면 채울수록 그들의 영혼은 곤고하다. 이들이 온 것은 다윗 때문이 아니라, 다윗 안에 있는 하나님의 비전 때문인 것이다. 하나님은 다윗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을 모으고자는 하나님의 비전을 품었다. 다윗은 하나님을 위해 큰 일을 해야겠다는 큰 포부를 가진게 아니고, 하나님과 함꼐 하자는 하나님의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비전을 볼 수 있는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왜 매주 모여서 예배를 하는지 생각해보길 바래요. 이렇게 환란을 당하고 가진거 없고 힘없고 원통한 사람들이지만 하나님을 위해 살고자 하는 비전 때문에 우리가 모여있는 것이다. 이 세상의 성공을 위해서는 예수님을 따를 수 없다. 하나님 나라의 크고 놀라운 비전을 다윗이 받게 됐다. 하지만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사울의 왕국에서 다윗의 비전이 이뤄진다는 것은 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사울은 그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다윗을 죽이려 한 것이다. 우리 안에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분명히 붙잡고 지키지 않는다면 우리의 믿음을 포기하고 세상과 타협할 수 밖에 없다. (마7:13~14) 우리 가운데 생명의 길을 가길 바래요. (눅18:8) 예수님은 믿음의 사람들이 이 땅에서 원한당하고 고통과 아픔이 있는것을 아신다. 하나님의 때를 따라 기다리고 비전을 향해 끝까지 나가길 바래요. (잠29:18)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인생의 비전과 소망을 끝까지 지키고 붙잡길 바래요.
3. 훈련의 공동체
다윗과 함꼐 한 400명의 사람들 중에는 의지할게 없는 사람들이었다. 한마디로 소망없는 사람들이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이들을 쓰기 위한 중요한 과정이었다. 하나님이 다윗에게 왕의 기름을 부으셨으면 빨리 왕으로 세우고 주변을 정복해서 큰 나라로 세울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윗에게는 더 큰 시련을 주신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다윗을 훈련시키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비전만 이루는 사람은 필요없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의 그릇으로 우리를 준비시킨다. but 다윗에게 중요한 것은 훈련의 과정을 다윗은 도망하거나 하지 않았다. 인생에서 황금과 같은 중요한 날을 하나님 앞에 다 내려놓았다. 내가 죽든지 말든지 자기의 생명까지 하나님 앞에 내어두었다. 그렇다고 해서 다윗의 인생이 정말 초라했나요? 그 기간에 다윗은 시편의 대부분을 쓰고 날마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삶을 살았던 시기인 것이다.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간절히 찾게 되는 것이다. 이들도 이런 어려운 시기를 겪었기 때문에 다윗과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훈련 가욷데 있는 사람은 가장 안전한 사람이다. 다윗도 항상 바람의 등불과 같이 목숨이 위태위태했지만, 영적으로 충만해서 시편도 쓰고 놀라운 인생을 살았다. 오히려 왕궁에서 편한 삶을 살 때 어려움을 많이 겪게 되는 것이다. 어려움이 있을 때 하나님은 나에게 눈을 떼지 않으시는 것이다. (삼상25:29)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을 때 우리 인생에 고난이 많은 것처럼 보이지만 주님이 내 인생을 보호하고 계신 것을 선포하길 바래요. 그리고 하나님의 생명싸개로 보호하고 계시고 승리를 주실 것을 믿으시길 바래요. 사람들은 다윗이 빨리 왕이 되길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왕이 되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을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 역시 세리요 어부인 볼품없는 사람들이었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받고 예수님 안에서 훈련 받을 때, 그 후에 하나님의 역사에 쓰임받는 인생을 산 것이다. 훈련이 뭐라고 생각하나요? 훈련하는 공동체는 바꿔 말하면 끊임없이 성장이 나타나는 곳인 것이다. 온전한 그리스도의 인격으로 바뀌는 과정 중에 있는 것이다. 날마다 주님의 인생을 경험하는 것이다. 예전에 주신 것에 안주하지 않는다. 날마다 나의 삶이 새로워지는 것을 경함하는 것이다. 과거에 받은 은혜보다 앞으로 받을 은혜가 더 많을 것을 기대하고 믿는 삶을 살길 바래요. 하지만 과거에 머문다는 것은 지금의 훈련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가치없는 인생을 살지 말고 하나님이 주신 놀라운 인생을 살라고 우리를 부르셨다. 날마다 하나님 안에서 믿음의 사람들과 선한 싸움을 싸워서 이기길 바래요. 우리가 함께 할 때 삼겹줄은 끊어지지 않는 것이다. 끝까지 믿음의 길에서 승리하는 삶 살길 바래요. 끝까지 믿음 안에서 성장하고 훈련 안에서 새로운 삶 살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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