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큰 기쁨의 좋은 소식
선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베들레헴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베들레헴은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는 시골 촌 동네이다. 다윗의 고향이기 때문에 역사성은 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촌 동네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사건은 긴급, 중요한, 엄청난 뉴스이다. 가장 중대한 뉴스를 받았을 때는 누구에게 먼저 전해야 할지가 가장 중요한 것이다. 내가 가장 중대한 뉴스를 전해들었을 때는 누구에게 먼저 전했을까요? 그당시 이런 사건이 있으면 종교지도자인 대제사장이나 서기관에게 먼저 보고해야 했을 것이다. 이게 사람의 생각으로는 상식이다. 이런 사람의 생각을 내려놔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생각을 알 수 있다. 몇십년동안 쌓아온 내 생각으로 하나님의 생각을 보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어떤 생각을 할까?를 먼저 생각하고 그 생각을 내 생각으로 바꿔나가는 과정이 신앙이다. 하나님은 엉뚱하게 베들레헴의 양을 치는 목자에게 천사들을 보낸 것이다. 부자도 아니고 이름있는 자도 아니고 아무도 관심가진 자가 없는 목자에게 보낸 것이다. 목자들은 왜 우리에게 먼저 알려주셨냐고, 자격이 없고 초라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큰 소식을 받는 사람 자체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소식은 앞으로도 지금까지도 하나님은 동일하게 이런 방법으로 이렇게 정해질 것이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예언하신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이런 방법으로 전하시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의 좋은 소식은 대제사장, 왕, 황제가 먼저가 아니라는 것이 주님의 생각이다. 이게 세상 방법과 다른 방법이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의 좋은 소식은 낮아진 자에게 먼저 전해지는 것이다. (눅1:51~53) 이런 사실이 성경에 많이 나온다. 동방박사를 통해 대제사장과 서기관에게 "유대인의 왕이 어디서 나느냐?"고 물어보는 것을 통해 먼저 전하려 했지만, 가진 자는 "베들레헴"이라고 대답을 했지만 무관심함으로 베들레헴으로 가지도 않았다. 로마 왕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 것이다. 그당시 가장 부유했던 고린도 지역에 바울이 교회를 개척했는데 (고전1:26~29)와 같이 이런 하나님을 이해하고 바로 알길 바래요. 그래야 하나님의 일에 오해를 하지 않을 수 있다. 내가 하나님을 몰라서 그렇지 하나님은 창세부터 지금까지 바뀌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남에게 빼앗기지 않으신다. 자신의 영광을 취하는 자를 부끄럽게 만드신다. 영원한 생명을 주는 곳은 교회밖에 없다. 그래서 교회 와서 다른 것에 기웃거리지 말고 오직 예수님의 생명을 아는 것에 촛점을 맞추길 바래요.
2. 예수 그리스도의 표적
환상이 아니다. 만왕의 왕이시고 존귀하신 예수님이 말구유(말밥통)에서 나셨다. 천사들의 말이 더 가관이다. 그것이 표적이라고 한다. 이게 어떻게 만왕의 왕이라는 표시냐? 3대째 거지의 표시라는 말이 더 이해가 갈 것이다. 하나님의 차원은 우리의 차원과는 다르다. 이런 하나님의 차원으로 인해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수천년동안 기다리고 있고, 로마를 이길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백마를 타고 하늘에서 오셔서 로마 군대를 이기는 모습으로 와야 메시아로 인정할 것으라는 환상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런 환상을 깨야 한다. 교회, 목회자라면 이래야 한다는 생각을 내려놔야 한다. 이것이 내 신앙을 어렵게하고 교회, 하나님을 판단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백마를 탄 왕자같은 표적을 기대하는 자에게, 말구유에 나오는 표적을 천사에게 들으면 천사를 비난할 것이다. 그래서 이런 표적을 목자에게 먼저 보여주는 것이다. (이사야53:1~2) 이 말씀을 아는 사람은 베들레헴의 마구간에서 구유에 쌓인 아기만에 표적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이 말씀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베들레헴 마구간으로 가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그들이 만나는 것은 악한 왕을 만날 뿐이고, 외식하면서 자기 영광을 구하는 종교인만 만날 뿐이다. 자기 지식을 자랑하는 자들, 자기 명예만 신경쓰는 사람들만 있을 뿐이다. (고후4:7) 금그릇, 화려한 교회만 찾아다닌다. 그곳에 보배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보배를 질그릇에 넣었다고 하지만 질그릇에는 관심 없다. 하나님을 아는 자만에 찾을 수 있도록 질그릇에 넣으신 것을 믿으시길 바래요. 높은곳에 올라가는 신앙이 아니라 낮은곳으로 내려가는 신앙 하길 바래요. 착각하지 마세요. 지금도 우리는 낮은 곳으로 내려가는 것이 능력인 것을 알길 바래요. 자기 십자가 없이는 내려갈 수 없는 것이다.
마굿간에 계시는 예수님의 보배를 만나려면 내려가는 능력과 마음을 가지는 성탄절 되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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