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August 28, 2016

2016-08-28 (주일예배, 정의호목사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마16:13~17)

너 자신을 알라고 한 말이 있지만, 아무도 자신을 알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왜냐면 내 체질을 만든 사람은 내가 아니고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아는 만큼 나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 안에서 나를 알아야 내 자신을 아는 것이다.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은 나를 아는것 같아도, 내가 뭘 위해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 많이 없다. 사도바울도 예수님을 믿었지만, 믿기 전에는 자신이 의인인 줄 알았다. 그래서 많은 그리스도인을 잡아서 감옥에 가두고 스데반집사를 죽이는 일이 생긴 것이다.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는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놀라운 변화이다. 예수님은 바울을 죄인이라고 말하지 않았고, "어찌하여 나를 괴롭히느냐?"고 말하신 것이다. 예전 삶과 전혀 반대의 삶을 사는 것을 변화라고 한다. 이것이 능력이다. 자신의 모습을 깨닫는 것의 특징이 변화되는 것이다. 베드로 역시 그냥저냥 물고기 잡으면서 사는 어부였다. 하지만 깊은 곳에서 그물을 던지라는 말에 순종할 때 예수님을 만났고 가장 먼저 깨닫게 된 것이 자신이 죄인인 것이다. 아무도 베드로가 죄인인 것을 말하지 않았지만 예수님을 만남으로 자신이 죄인인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의 특징이 변화의 삶이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자신이 죄인인 것을 깨닫지 못하고 죄 지으면서 불쌍한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철학책, 도덕책도 자신이 죄인인 것을 알게하는 것은 없다. 사람의 특징 중에 하나가 지식의 욕구이다. 그러나 이런 지식은 우리의 영혼에게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있는게 아니다. 최고의 지식은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다. (골2:3)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춰져 있는 것이다. 예수님에 대한 지식이 있다고 해서 예수님을 잘 아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의 일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예수님을 잘 알아서 그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꿀을 연구분석해서 꿀맛을 분석하고 이해할 수 있을 수는 있지만, 꿀맛의 성분은 모르지만 꿀을 먹어본 사람이 실제적인 꿀맛을 잘 아는 사람이다. 이게 신앙의 차이이다. 예수님의 지식적인 이론보다 예수님을 만나는 것에 힘써야 하는 것이다. 세상의 많은 지식을 알아도 인생이 변화되지 않는 것보다 예수님을 만나면 인생이 변화되는 것이 큰 차이이다. 교회를 다니더라도 예수님을 지식적으로 아는 단계인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신앙인지 생각해보세요. 어물쩍 넘어갈 문제가 아니고 생명과 관계된 문제이다.

1. 세상 사람들이 아는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은 제자들을 데리고 가이사랴 지방에 갔다. 여기는 이스라엘의 가장 북쪽 지방으로 우상을 섬기는 지방이다. 여기서 예수님은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었을 때 제자들은 그나마 긍정적으로 말하는 것을 말씀 드렸다. 귀신들린자, 미친자 등의 답변은 얘기하지 않았다. 세례요한이 말한 사람이라 굉장한 사람이라고 했지만 그리스도는 아니었다. 엘리야 역시 굉장한 선지자였는데, 그로 봤다. 하지만 놀라운 선지자로 봤다면 구원은 없는 것이다. 좋은 사람, 놀라운 사람, 위대한 사람으로 대부분의 이스라엘 사람들(악한 바리세인은 빼고)은 믿었다. 이런 좋은 영향력과 교훈을 따라 산다고 해서 도덕적인 삶(착한 삶)을 살 수는 있겠지만 인생의 생명을 얻는데는 한계가 있다. 우리의 영혼의 생명의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는 것이다.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하는게 종교인의 불행이다. 자기 신앙이 어떤가를 체크해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래요. 목사님의 좋은 교훈을 받아들일 지는 몰라도 영원한 생명, 근복적인 죄문제를 해결받을 수는 없는 것이다. 내가 직접 꿀을 먹는 신앙 하길 바래요. 말씀을 먹어서 네 창자에 넣으라고 하신다. 영생을 얻는 신앙 하길 바래요.

2. 베드로가 아는 예수 그리스도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아느냐?"고 물어보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어케 믿든 더 중요한 것은 나는 어떤 예수님을 믿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세상에서 가장 심각한 질문이라고 한다면 예수님이 내 앞에 서서 "너는 나를 누구라 아느냐?"고 물어보는 것이다. 이것이 내 영원한 생명을 결정짓게 하는 질문인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해서 대답하고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예수님을 어케 생각하든 그게 중요한게 아니다. 자기를 위해서 신앙해야 하는데 셀장, 목회자, 주변사람 눈치 보면서 신앙하는 것은 안된다. 다른사람이 말하는 예수님이 아니고 내가 아는 예수님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질문에는 내 양심에 정직해야 하는 것이다. 부끄러움이 아니다. 예수님을 믿는 기회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적이 없는 사람은 갈등되고 혼란스러울 수 있지만 부끄러워할 필요 없다. 예수님을 만날 기회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 앞에 섰을 때 낭패되지 않으려면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친히 세운 사도들에게도 이 질문을 하신 것이다. 이런 질문에 누가 가장 바로 대답할 수 있냐면 예수님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일 것이다. 베드로가 가장 먼저 대답 했다. 베드로에게 이 질문은 자기 신앙을 고백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것이다. (16) 세상에서 가장 놀라운 신앙고백인 것이다. 모든 사람이 엘리야다 세례요한이다 미친사람이다 귀신들린자다고 말할 때 이런 고백이 나온 것은 놀라운 것이다. 예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으시길 바래요. 믿으면 복이 됩니다. 이것을 믿을 때 내 인생이 구원과 복이 임함을 믿으시길 바래요, & 왕의 자녀가 되는 것도 믿으시길 바래요. 예수님만이 구원을 위해 보내신 유일한 분임을 믿으시길 바래요. (요14:6) 예수님만이 우리 인생이 하나님께 갈 수 있는 길, 천국으로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인 것이다. 예수님 이외의 모든 세상 이론은 진리가 아니다. 진리는 우리 인생을 자유케하는 능력이 있다. 예수님 만이 영생인 것이다. 자기가 생명을 준다는 것은 모두 사단의 거짓이다. 예수님이 아니면 아버지께 올 자가 없다고 하셨다. 예수님을 떠나면 길이 아닌 것들을 하고, 생명이 아닌 곳에 가있다. (행4:12) 천하에 똑똑한 사람이 너무 많지만, 구원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이단 교주(적그리스도, 거짓선지자)의 특징은 자신이 재림예수라 한다. 그리고 자기는 죽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놀랍게도 다 죽었다. 이런 어이없는 말에 속아 넘어가는 사람이 너무 많다. 예수님의 자리에 자기가 있는 것이 거짓선지자, 적그리스도의 특징이다. 내가 악한 영에 미혹되면 예수님은 안믿어지고 그런 사람이 믿어지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가 아니면 절대 구원이 없다는 것을 믿으시길 바래요. (롬 10:9) 입으로 시인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말은 입에서 나오는게 아니고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머리로는 아는 것이지, 믿는 것이 아니다. 무릇 지킬 것 중에서 마음을 지키라고 한 것이다. 예수님이 내 주님이라는 것이 서툴고 안나오는 것은 마음에 예수님이 없는 것이다. 내 마음 중심에 뭐가 있는가를 자신이 한번 대답해보세요. 우리 인생에 최대 문제는 내 죄에서 구원받는 문제이다. 가장 가까운 문제가 죄문제이다. 성경은 우리 인생을 풀과 같다고 한다. 풀은 봄에 아름다운 싹이 나오고 여름에는 무성하게 잎이 나온다. 하지만 결국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는 것이다. 이게 우리 인생이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지만, 하나님 말씀이 내게 있으면 그 안에 씨로 말미암아 영생을 얻게 되는 것이다. (17) 여기서 예수님은 옛날 이름인 바요나 시몬(요나의 아들 시몬)이라고 얘기 했다. 우리가 가진 믿음은 하나님이 주신 복이다. (마11:25) 하나님이 이렇게 하시는 것에 너무 감사가 된다는 것이다. 교만하고 자신의 지혜를 믿는 자에게는 감추시고, 어린아이와 같은 자에게는 보여주시는 것이 너무 감사하다는 것이다. 영적인 것은 하나님께서 알려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살아계신 주이시다. 이게 마음으로 믿어지고 입으로 찬송하는 사람은 복이 있는 사람인 것이다. 예수님을 내가 어케 믿고 있는지 마음의 고백을 하는 사람이 되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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