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May 19, 2019

2019-05-19 (주일예배, 손인규목사님) 말을 바꿔라 (마12:33~37)

말이 내 마음과 기분을 결정하기도 한다. 선한 말이 한 사람을 살리기도하고, 나쁜 말은 주변 사람에게 파괴적인 것이 되기도 한다. 말 한마디 때문에 때로 원수가 되기도 한다. 독이 되는 말이 되기도 하고, 약이 되는 말이 되기도 한다. 하나님은 말씀이시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 so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이뤄지는 것을 믿길 바래요. 하나님의 말씀이 믿어지면 내가 하는 말에도 권세가 생기기도 한다. (잠6:2) 우리가 나쁜 말, 부정적인 말에 잡혀 있으면 긍정적인 말을 하기 너무 어렵다. 좋은 말을 하려고 했는데 괜히 말을 했다가 싸울 수도 있다. 좋은 말을 하려고 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쁜 말들이 흘러나오게 된다. 내 삶에 영적인 성장이 없고 잘 안풀린다고 한다면 나의 말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나의 부정적인 말이 나를 묶고 있는건 아닌가 돌아볼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바껴야 할게 있다면 결단하고 바꾸길 바래요. 말 못하는 병자가 예수님으로 인해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 사건을 가지고 다르게 말한다. 어떤 사람은 다윗의 자손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바리새인들은 귀신의 힘을 빌렸다고 한다. 요즘은 누구의 말이 사실인지 분별하기 너무 어렵다.

1. 말은 나를 말해준다. Words Reveal Who You are


말이라고 하는 열매로써 그 사람, 그 나무를 알 수 있다. (33) 말은 각 사람의 실제를 드러내는 열매와도 같다.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게 된다. 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나를 생각하는 가장 좋은 것이 말이다. 말이라는 것은 아무리 내가 나를 안드러내려고 해도 드러낼 수 밖에 없다. 재미있고 유쾌한 사람들은 새로운 인색을 위해 조용히 해야겠다고 하지만, 입이 근질근질 해서 결국 다 드러난다. 내가 무엇을 옳게 여기는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잘 드러낸다. 말은 그 사람을 나타낸다. 바래새인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바알새불의 힘을 빌러서 하는 것이라고 악하게 말한다. 경건하고 거룩하게 보이려고 하지만, 이들이 하는 말을 통해 영적인 상태와 하나님께 속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은혜가 있으면 감사의 말, 은혜의 말이 나온다. 반면에 반대의 경우에는 나쁜 말이 나온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은 하나님이 하신 일에 대해서 선한 말을 하게 된다. 내가 누구에 대해서, 무엇에 대해서 나쁘게 말하고 부정적이게 보느냐는 우리의 영적인 상태로 나타난다. (요12:49~50) 예수님은 내 뜻대로, 내 생각대로 말했다고 하지 않는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하시는 말씀대로 전했다고 말한다. 왜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겠습니까? 우리에게 본을 보이기 위해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아무리 다른 사람을 변화시킨다고 말씀을 해도 변화되지 않는다. 자녀들에게 많은 말을 할수록 좌절하게 된다. 우리 말에는 아무 능력이 없다. 하지만 수련회 한번 갔다와서 변화가 일어난다. so 우리의 인간적인 지혜의 말은 능력이 없다는 것을 깊이 인정해야 한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일수록 우리 말에 권세가 나타난다. (롬8:13) 말을 염두해두고 이 말씀을 기억해볼 필요가 있다. 육신의 생각대로 말하면 내 영이 죽는다. 내 안에 있는 육신의 세력인 혈기, 미움, 정죄, 판단대로 행동하면 육신의 세력이 강해지고, 내 영이 더 죽고 기도가 잘 안되고 신앙생활이 더 괴롭다. 내 안에 성령이 근심하시고 소멸되기 때문이다. 영으로써 행실을 죽이면 영이 살아난다고 말씀하신다. 내 인생을 바꾸기 위한 첫단계로 말을 바꿔야 한다.

2. 말은 마음으로부터 나온다 Words come out of the Heart


마음에 쌓인 것이 언젠가는 말로 나오게 된다. so 예수님은 말이라는 것이 마음에 있는 것이 드러나는 것이라고 한다. 말은 인격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마음과 세력이 있기 때문에 예수님 앞에서 그들의 말이 드러나는 것이다. 우리의 말이 마음에서 나온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습관대로 하는 말은 그것이 내 삶에 인격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마음에서 나오는 말은 실수가 아니고 가치관이자 인격이다. 우리의 영과 관련이 있다. 이런것은 말을 바꾸고자 하는데 잘 안된다. 셀에서 "이렇게 살겠습니다"고 선포하는데 그렇게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인격화가 되어있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 말에 무엇을 쌓았는지 봐야 한다. 독과 같은 말이 있다면 버리길 바래요. 교회에서 우리 삶과 마음을 바꾸기 위한 여러가지 방법 중 하나가 말을 바꾸는 것이다. 교회 개척기부터 목사님은 입에 청테이프를 붙이라고 하신다. 진짜 붙이라는게 아니고, 나쁜 말을 많이 할 바에는 말을 안하는게 더 낳다. 말을 바꾸려면 말을 쌓는게 중요하다. 내가 무엇을 쌓느냐가 중요하다. (고전2:4) 사도바울은 뛰어난 설교자였지만, 나의 말과 나의 지혜의 말은 버렸다고 했다. 우리의 삶과 생각도 내뜻대로 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다. 우리 안에 마음에 쌓여있는 것을 바꾸더라도 우리 안에 있는 굳어진 오래된 것들이 깨어지는 것이다. 사람의 말을 버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담아서 전할수록 우리의 말에 권세가 나타난다. 내가 하고싶은대로 말하지 않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말을 전하길 바래요. 이것을 위해 마음에 담는 것을 바꿔야 하는데,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담길 바래요. (요6:63) 때로는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적인 기준에서 보면 달갑지 않은 말씀일 수도 있다. 내가 변화되길 원한다면 말이 변화되길 바래요. 예수님의 무서운 말씀이라도 종교인들이 받아들였으면 그들 안에 변화가 일어났을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만이 우리의 영을 살리는 영의 말씀인 것이다. (롬10:17)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말씀이 우리의 인생이 변화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취해서 나의 말씀으로 받길 바래요. 교회에서 하는 중요한 훈련 중 하나가 말하는 훈련이다.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신앙은 하지만 변화가 생기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과 반대되는 불신앙의 말이 있다면 거부해야 한다. 말을 할때나 교제할 때는 비밀을 지킬만한 신뢰가 되는 사람과 교제를 해야한다. 내가 말을 해도 내가 실족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과 교제를 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실족될 수도 있는 것이다. 같은 말을 들어도 내 수준에 따라 이해하고 해석하는게 다르다. 나 중심적으로 이해하고 해석한다. so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의 말로 나를 채우시길 바래요.

3. 말로 심판을 받는다 By your words you will be judged


(민14:28) 광야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신 말씀이다. 적들의 손에 죽을바에는 광야에서 죽는게 더 낳겠다고 하며 모세에게 불평했다. 그들 스스로 말로 대적하는 일을 했다. 하나님이 주신 상급과 유업이 눈 앞에 있는데 그들의 불평하는 말과 거부하는 말 때문에 그들은 결국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 하나님 앞에 믿음의 말을 고백하길 바래요. 때론 내가 하고싶은 말이 있고 변명하고 싶은 말이 있지만 하나님이 원하지 않으면 안할 수도 있어야 한다. 반면 내가 하고싶지 않은 말이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전하길 원하시면 전해야 한다. 이것이 파수꾼의 삶이다. (에스겔33:7) 파수꾼은 적이 오는 것을 알고 권고해야 한다. 리더는 각각 맡기신 셀, 팀 등에 파수꾼으로 세우셨고, 파수꾼의 권위를 주셨다. 파수꾼은 사람들이 듣던지 안듣던지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선포해야 할 책임이 있다. 예수님 또한 그들이 듣던지 안듣던지, 그들의 미움을 받을 것을 알면서 경고하고 선포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소수의 사람이지만 니고데모라던가 아리마데 사람은 예수님께 나온 것이다. 회개를 통해서만 우리 인생의 진정한 변화가 일어난다. 회개와 개혁이 없으면 부흥이 없다. 회개와 개혁 없이 생긴 부흥은 대부분 거짓이다.
반대로 하나님이 원하지 않으시면 안할 수도 있어야 한다. 나와 상관 없는 다른 사람의 일을 어림짐작해서 수근거리기도 한다. 때론 나쁜 의도는 없지만 사람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약점을 잡아서 이야기 하곤 한다. 나의 지위와 권위를 벗어나는 말을 할 필요가 없다. & 교회에 내가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것을 이야기 함으로 심판을 쌓을 필요는 없다. 예수님의 일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물어보면 된다. 나의 신앙과 인격 수준 이상의 것은 이해되지 않기 때문에 이것으로 인해 심판을 쌓을 필요가 없다.

하나님은 우리가 심는대로 거둔다고 말씀하신다. (갈6:7) 우리가 축복의 말로 심으면 축복을 거두게 되고, 믿음의 말로 심으면 믿음의 역사로 거두게 된다. 나의 인생에 하나님의 말, 믿음의 말로 심길 바래요. 하나님의 믿음의 말씀, 축복의 말씀, 생명의 말씀으로 나와 주변 사람들에게 심길 바래요. 기도할 때 믿음을 주시는게 있으면 믿음으로 선포하길 바래요. 아브람과 사래도 이름을 바꿔서 불렀다. 내 안에 불신앙의 세력들을 내 입의 말을 통해 몰아내길 바래요. 육신의 소욕과 반대되는 행동을 하길 바래요. so 우리가 의지적으로라도 말을 바꿔야 한다. 말을 바꿈으로 인생이 바뀌는 경험 하길 바래요.

Sunday, May 12, 2019

2019-05-12 (주일예배, 정의호목사님) 남자와 여자의 창조질서 (창세기2:21~24)

지금시대는 하나님의 말씀과는 점점 멀리 나아가는 모습이다.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가 무너지고, 창조질서가 파괴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진리를 판단 못하게 하고 있다. 특히 남자와 여자의 성에 대해서 파괴하는 근본적인 문제를 파괴하고 있다. 동성애 못지 않게 페미니즘의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다. 이는 남자와 여자를 지으신 창조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으로 이는 남자와 여자를 지으신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분별할 수 있다. 민주주의를 외치지만 소수의 인권을 가지고 다수의 인권을 무너뜨리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 세상이 무서워서 하나님의 말씀을 무너뜨리고 시대에 아부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이 세상이 창조원본이 무엇인지는 알아야 한다. (에스겔33:6) 이 악한 시대가 창조질서를 무너뜨리는대도,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사람들이 파수꾼의 역할을 하며 알리지 않으면 그 책임을 먼저 묻게 되는 것이다. 듣던지 안듣던지 진리를 선포해야 하는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 오늘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창조의 원본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하나님의 눈으로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남자와 여자가 다른 것은 상식이다. 변질된 이 시대의 문제를 분별해서 죄를 방관하지 않길 바래요.

1. 창조 순서의 차이 Difference in creation sequence


남자를 먼저 창조하시고 여자를 창조하셨다. (딤전2:11~14) 성경은 여자가 남자에게 순종하라는 질서를 주셨다. 그 근거로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았고, 여자가 뱀에게 속아서 온 인류가 죄에 빠지게 한 책임이 있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남자가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여자라는 성을 지으신 것이다. (고전11:9) 인간은 남자나 여자나 자기 자신을 위해서 성을 받은게 아니다. 남자와 여자는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각자의 성을 받은 것이다. 성이 중요한게 아니고, 각 성에게 부여된 사명을 감당하는게 중요하다.

2. 창조질서의 차이 Difference in creation order


(고전11:3)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 사이에서 남자가 여자의 머리가 되는 질서를 세우셨다. &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이고,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다. 위에 있는 권위에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이 내신 질서이다. 이 질서의 원형은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의 원형이다. 세분은 똑같이 하나님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서 질서를 세우셨다. 그로 인해서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 열등감이나 불만을 가지지 않으신다. 그 권위에 순종하는 본을 예수님은 보여주셨다. (엡5:22~23) 교회의 머리는 예수그리스도이기 때문에 교회가 예수님께 순종할 책임이 있듯이, 여자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3. 영광의 차이 Difference in glory


각 사람은 자기 머리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 (고전11:7) 모든 권위와 질서는 예수그리스도이다. 예수님은 머리되신 하나님께만 영광 드리는 일을 하셨다. 똑같은 하나님임이도 불구하고, 자신의 머리가 하나님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리 하신 것이다. 십자가 앞에서 능히 내려올 수 있으셨다. but 내려오면 자신의 영광이 되었을 것이다.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서 내려올 수 있었지만 내려오지 않고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의 영광을 위해 살지 않으신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의 영광을 위해 살지 않으셨다. 이것이 세상에 주신 본이다. so 남자는 자신의 머리되신 예수님께 영광이 되어야 할 책임이 있고, 여자는 남편의 영광이 될 때 여자의 영광이 되는 것이다. 자기 영광을 받는 자는 하나님 앞에 영광이 없다. 그 질서를 지킬 때 그것이 자신의 영광이 되는 것이다. 남자의 머리는 사람이 아니다. (고전11:6) 당시 매춘부 등은 머리를 짧게 깎았다. 하지만 여자의 긴 머리는 이 권위 안에 있다는 표시이다. (고전11:14~15) 반면에 남자가 긴 머리를 하는 것은 남자의 머리인 예수님을 부끄러워 하는 것이다.

4. 특성의 차이 Difference in characteristics


남자는 독립적인 흙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여자는 남자에게 속한 갈비뼈로 만들었다. 즉, 여자를 만들 때는 남자에게 속하게 만들었다. (고전11:8) 남자는 사람을 대표한다. 아담이라는 말의 뜻은 남자라는 뜻도 있지만 사람이라는 뜻도 있다. 성경에서도 남자만 세는 것은 남자가 대표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남자와 여자는 만든 재료가 다르기 때문에 특성이 다를 수 밖에 없다. 이는 역할과 기능을 달리 해야하기 때문이다.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대로 살 때 온전한 삶이 되는 것이다. 남자가 여자처럼 되려고 하거나, 여자가 남자처럼 되려고 한다면 고유의 특성이 파괴되는 것이기 때문에 삶이 힘든 것이다. 정상적인 남자와 여자의 모습은 남자는 남자다운 모습이고, 여자는 여자다운 모습인 것이다. 강한 것이 남자의 특성이고, 여자의 뜻은 유순하다는 것이다. 각자 파괴된 자기의 성을 되찾길 바래요. 다윗이 솔로몬에게 한 유언이 "너는 대장부가 되라"고 했는데 번역이 이렇게 되어서 그렇지 원본에는 대장부가 "남자"라는 의미이다. (벧3:3~5) 여자의 성품대로 살라는 것이다. 여자로써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 자기를 단장하는 것이라고 했다.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따라 사는 것이 가장 온전한 삶이고, 이것을 거스를수록 자신에게 고통이 있는 것이다.

5. 역할의 차이 Difference in roles


하나님은 아담을 돕는 베필로 만들기 위해 만든 것이다. 여자와 남자가 똑같으면 여자로써 존재가치가 있을까요? 이미 남자가 있는데요. 자기 정체성을 성에서 찾는게 아니고,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에서 찾아야 한다.

1) 남자의 역할


남자에게는 밖에서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땀을 흘려 일을 하게 만드셨다. (창3:19) 하나님이 정한 것이다. 남자를 이 일 하기에 적당한 재질로 만드셨기 때문이다. 남자를 일해서 가정에 경제력을 지키고 가정을 보호고 가정에 어려운 일이 있으면 감당해야 한다. 하나님이 그렇게 지으셨기 때문이다. 가정의 머리는 가정을 지키고 가정을 보호하고 가정의 생계를 책임을 지는 것이다. 머리에는 책임감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모델을 보여줘야 한다. 가정에 남자와 여자의 사명이 무엇인가 모델을 보여줘야 한다.

2) 여자의 역할


(창3:16) 여자에게는 이런 재질과 본성을 주셨다. 남편이 나를 원하길 원하지만, 남자를 이런 재질로 만들지 않으셨다. 여자는 결혼의 목적을 남편의 사랑을 받길 원하는 것이다. so 여자는 절제력을 가지고 순결하고 온유한 마음으로 자녀를 양육하고 집안일을 하게 하셨다. (디도서2:4~5) 이런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선하고 유순함을 주시고 이런 일을 감당하도록 하셨다.

이게 남자와 여자를 다른 역할로 주신 하나님의 질서이다. 자기가 정하는게 아니다. 성을 자신이 선택할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이 정하신 원리대로 살아야 한다. 사람의 존재는 각자에게 정하신 사명과 역할이 중요하지, 남자냐 여자냐 하는 성으로 가치를 가지려고 하면 힘들어지는 것이다. 자기 소관이 아니고, 자기 사명을 감당하라고 주신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위치를 잘 지키고 분량을 넘어가지 않는 것이 정체성을 지키는 방법이다. 특별히 성 대결로 몰아가서 성정체성을 파괴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딤전5:14~15) 아이 낳고 집을 잘 다스려서 대적에게 비방할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이 사명이다. 사단은 이게 여자의 사명인 것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여자가 이것을 못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 인생의 최고 평가는 하나님에 의해서 결정된다. 우리 인생의 진짜는 하나님나라에서 살 인생인 것이다. 남자든 여자든 자기 앞에 주신 말씀에 순종해서 잘 살았느냐 아니냐가 하나님 심판이지, 성별에 따라 상급이나 심판이 아니다. 그래서 남자로 또는 여자로 사는게 중요한게 아니고, 나에게 주어진 사명이 무엇인지가 중요하다. 사람을 상대로 살면 속는다. 사람이 나를 심판하는게 아니다. 하나님의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시대로 분별하지 말고 하나님 말씀으로 분별하길 바래요.

Sunday, May 5, 2019

2019-05-05 (주일예배, 정의호목사님) 하나님의 결혼 원본을 지키자 (창2:21~24)

Let's abide by marriage Prototype of  God''

오늘날에는 가정에 많은 이슈가 있다. 동성애 문제는 한 국가나 개인 차원의 문제에서 세계적인 문제로 발전을 했다. 동성애 문제가 개인의 차원의 문제라면 전세계에 이슈화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영적인 이슈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때에는 하나님의 권위와 창조질서를 무너뜨리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so 원래의 것과 반대로 가고 있다. 흰것을 검다고 해도 뭐라고 하지 못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원리의 원본을 가르치는 것은 교회 밖에 할 수 없다. 오늘날 이슈가 되고 있는 동성애 문제는 하나님의 창조원본을 알게 될 때 문제를 할 수 있다. 오늘 이것을 나눠보고자 한다.

1. 인간의 창조목적 Purpose of the creation of Man


핸드폰이나 컵을 만들 때도 목적이 있다. 하나님도 사람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이 기쁘게 하기 위해서 만드셨다고 했다. 이것을 인식할 때 자신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만족이나 기쁨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인정해야 한다. 인간은 하나님이 내신 이 창조원리를 찾으며 살 때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다.
이런 창조원리를 벗어나려고 할 때 마치 고장난 기계와 같이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인간은 자신의 근본이신 하나님을 떠나면 정체성을 잃기 때문에 어떤 것으로도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2. 인간의 사명 Mission of Man


하나님은 인간을 지으신 후에 하나님의 사명을 위해 살아야 하는 것이다. (창1:28) 하나님은 우리가 복 받길 원하고 행복하길 원하신다. 그러기 위해서는 창세기 말씀과 같이 사는게 복 받게 사는 방법이다.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 중에서 인간을 만들 때만이 하나님의 형상을 닯게 만드신 것이다. 특별히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게 하는 것을 볼 것입니다. 사람이 결혼한 중요한 사명 중에 하나가 이것이다. 결혼은 자기들의 행복만을 위해 사는 것은 아니다. but 결혼은 자신들의 행복만을 위해서가 아니다.

3. 결혼의 원리 Principle of Marriage


하나님은 첫사람인 남자 아담을 창조하시고, 생육하고 번성하고.... 라는 사명을 주셨다. and 모든 동물을 다스리기 위해서 이름을 지어줬다. 하나님은 혼자 감당하는게 보기 좋지 않아서 여자를 만드셨다. (창2:23, 24) 이것이 결혼이다. 남자가 사명을 감당하는데 돕는 베필로 여자를 지은 것이 결혼의 원리이다. 동성애는 이런 창조목적과 사명에 맞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 목적은 자신이 기뻐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인데, 동성애자들은 이런 것들과 아무 상관없는 것을 주장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원리와는 맞지 않는 것이다.

1) 남자와 여자가 결혼함 Marriage between Man and Woman


하나님이 창조하신 성은 남자와 여자이다. 이외에 제3의 성, 제4의 성은 사단이 만든 것이고 이런 것은 없다. 남자의 갈빗대를 떼서 남자를 만든게 아니고 여자를 만든 것이다. 남자와 여자가 결혼을 해야만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이다. so 남자와 남자가 결혼하거나 여자와 여자가 결혼하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원리를 벗어나는 것이다. (레18:22) 하나님은 동성간에 성관계는 가증하고 역겨운 일로 보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원리를 거스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죄에는 항상 하나님의 형벌이 따른다. (레20:13) 그 죄는 아주 심각하게 다루시고 생각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유의지를 주셨다. 하나님 말씀을 지킬지 말지는 개인의 자유이다. but 하나님의 말씀을 주시고, 그에 대한 책임은 자신이 지어야 한다.

2)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혼함 (Marriage between One Man and One Woman


아담에게 갈비대 1개만 떼서 여자 1명을 만들었다. 결혼을 통해 남자와 여자가 한몸이 되는 것이다. so 한 남자와 두 여자 또는 두 남자와 한 여자가 결혼하는 것은 죄이다. (레20:10) 요즘 간통죄가 없어졌다. 이런 시대에 살고 있는데, 얼마나 하나님의 원본과 떨어지는지를 잘 알아야 한다. 남자와 여자의 간음은 개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에게 주신 성은 하나님이 주신 원본이지, 자기가 임의로 바꿀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성은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만드는 것이다. so 동성애는 개인의 성적 취향이나 사회 형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원리를 벗어나는 죄의 차원에서 생각해야 한다. 물론 음란한 성향이 강한 성 중독자인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이 자신의 성향을 합법화, 정당화 해달라고 주장할 수 있나요? 이걸 인정할수록 하나님의 가증하다고 여기시는 죄를 짓게 되기 때문에 인정하면 안되는 것이다. 이것을 합리화 하면 하나님 앞에 죄를 짓는 결과만 가지게 되는 것이다. (창4:7) 인간은 죄인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죄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 죄가 없는 사람 없고 완전한 사람도 없다. 가인이 시기하는 마음이 다른 사람보다 더 강하지만 하나님은 그것으로 죄를 허락한 것이 아니고 "죄를 다스리라"고 하셨다. 죄의 성향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죄를 다스려야 할 책임이 나에게 있다. 어떤 사람은 혈기가 많아서 다른 사람을 많이 때리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도벽이 강해서 게임에 빠져나오지 못하는 성향이 있지만 이 성향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죄성을 인정하고 해결하고자 하면 하나님이 그것을 도와주신다. (고전6:9~11) 고린도교회 안에도 남색, 음행하는 자들이 있었다. 고린도교회는 문란한 교회였다. 이런 사람들도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과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로움으로 회복된 것이다. 문란한 삶을 살다가 예수님 만나고 해결함 받은 간증도 너무 많다. 예수님 안에서 해결받지 못할 것이 없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예수님이 없었으면 해결받지 못할 일들이 거의 없었을 것이지만, 예수님을 믿으면 모든걸 해결받고 깨끗하게 될 것을 믿으시길 바래요. 성경은 죄를 지으면 마귀에게 속한다고 하셨다. 마귀로 인해 죄가 확산된다. 예수님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고 오셨다. so 이 문제가 전 세계(지구)적인 문제로 번지고 있다. 마귀와 대적하는 영적 싸움을 싸워야 한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교회가 진리를 모르는 시대에 창조원리를 잘 가르치고 감당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