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January 28, 2018

2017-01-28 (주일예배, 정의호목사님) 복 없는 자의 삶 (시1:4~6)

결단할 것은 결단하고, 주야로 묵상할 것은 묵상해야 복 있는 삶을 살 수 있다. 오늘 말씀은 복 없는 자의 삶을 살라고 하는게 아니다. 자기 인생이 꼬이고 묶인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자기 자신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다. 결자해제(자기가 묶었으면 자기가 풀어야 한다)라는 말이 있다. 자기가 풀려고 해야만 풀리는 것이다. 자기가 말씀 믿고 살려고 하지 않으면 안된다. (잠26:2) 까닭없는 저주는 없다고 하셨다. 저주는 이유 없이 아무에게나 오지 않는 것이다. 그 이유를 알때 해결할 수 있다. so 겸손해야 한다. 이유와 해결책을 알려줄 때 겸손해야 알 수 있다. 겸손한 사람이 복이 있는 것이다. 복 없는 자는 복 없는 삶을 선택해서 간다. 지금까지는 설령 그런 삶을 살아왔다 할지라도, (시편 1편)에 해답이 있다.

1. 복 없는 자의 모습 (The look of the unblessed)


복 있는 사람은 말씀에 뿌리를 둔 삶을 산다고 했다. 복 없는 사람은 그와 반대겠죠? (4a) 악인들은 그렇지 않다고 하셨다. 사람들의 말을 신뢰하고 사람의 말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but 자신이 그 열매에 책임을 지는 것이다. 무엇을 하든지 하려고 해도 안되고, 내가 하려고 하는 것을 다른 사람이 하면 잘 되고... 우연이 아니다. 겸손한 자는 이것을 보고 자신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 (시107:10~11) 사망의 그늘은 목숨이 붙어있으니 사는 인생이다. 내가 하려고 해도 할수 있는 것이 없다. 이게 복 없는 인생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해서 그런다. 복 있는 자는 이 반대로 하나님 말씀을 즐거워하고 주야로 묵상한다. 지금 내 삶이 고통스럽다면, 그동안 내가 하나님 말씀을 어떻게 대했는지 겸손하게 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사람들의 꾀에 따라 살았는지, 하나님 말씀을 내가 순종했는지를 보면 내 인생을 볼 수 있다. 하나님 말씀과 뜻에 대한 태도를 바꾸는 것에서 찾아야 한다. 하나님은 위경 가운데 말씀을 보내서 해결하신다. 하나님 말씀이 내 삶에 모든것이 되어야 하지, 좋으면 받아들이고 싫으면 뱉어버리는 것은 안된다. 누구의 말을 따라서 누구의 말에 결정을 내리는지가 내 인생을 결정짓는 것이다. 사단도 자기 사람을 통해 일한다. 교회 안에 있어도 누구 말을 따라서 사는가가 내 신앙을 좌우하는 것이다. 신앙이 자라지 않고 삶에 열매가 없는 사람은 말씀에 뿌리를 두지 않는 것이다. so 복 있는 삶을 살고자 한다면 내 삶의 스타일을 뿌리채 바꿔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소망이 없다. 뼈를 깎는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내 삶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러면 넉넉한 삶을 주시는 좋으신 분임을 믿어야 한다. 내 삶의 스타일을 한번 바꿔봐야 한다. 내 자신을 한번 바꾸는 쓰임받는 인생 살길 바래요.

2. 복 없는 자의 상태 (Condition of the unblessed)


지금 내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자기부인도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받을 심판을 생각해보세요. (5a)

1) 심판을 견디지 못함 (They will not stand in the judgment)


악인들은 하나님 말씀을 거스르고 악한 꾀에 따라 산다. 악한 꾀를 지헤롭게 여긴다. but 알아둬야 할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다. 심판을 믿지 못하면 나 좋은대로 내 스타일대로 막 산다. 하나님의 심판은 내 마음대로 피할 수 없는 것이다. so 악인들의 꾀는 하나님의 심판 전까지만 살 수 있는 한시적인 삶이다. (마3:12) 이것은 내 마음대로 못한다. 모든 사람들은 한번은 이 심판대에 서야한다. 심판이 우리 신앙의 목적지가 될 수 있다. 상급으로 심판받기 때문이다. 다시 돌이킬 수 있는 회개의 기회조차 악인들에게는 없다. 그 심판은 하나님 말씀이 기준이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씀으로 심판한다고 하셨다. so 주야로 그 말씀을 묵상하는 자가 복있고, 그러지 않는 자가 복 없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어린 양 되신 예수님의 뜻을 따라 살길 바래요.

2)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함 (5b)


하나님은 죄인들에게도 의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 그 동안 의를 배우고 죄를 돌이켜서 하나님께 돌아오는 기회를 주기 위해서이다. 의인들의 모임(회중)에는 항상 악인들도 같이 있다. but 그것이 배우고 살기보다 의인들을 괴롭히고 걸림이 되는 삶을 살다가 심판을 자초한다. (이사야26:10) 은인들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은총을 받았지만, 복 없는 사람은 정직한 자의 땅에서 오히려 불의를 행한다고 했다. 자기 스타일을 바꾸지 않는 것이다. 기회를 줬지만 악을 자초하는 것이다. 그러니 복이 없는 것이다. 사람이 교만하면 어딜 가도 의인의 회중에 있지 못한다. 악인들은 어딜 가도 티가 난다. 하나님의 사람이 있는 모임에 갖다 주고 기회를 줘도 그 안에서 주장한다. 자기에게 복이 없는 것이다. 의인들은 의인들의 회중에서 상급 쌓는 의를 행하는 일을 한다. 그 안에서 죄인들은 죄를 쌓고 심판꺼리를 쌓는다. so 이리 저리 붙어다니고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정착할 곳이 없고, 결국 떠나게 된다. (요일2:19)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면 스스로 걸러지는 것이다. 기회가 있을 때 돌아와야 한다. 성령의 근심은 하나님의 마음이다. 같은 가족이라도 믿는 가족과 믿지않는 가족이 갈라질 때가 온다. 그 때가 되기 전에 복 있는 인생의 길로 돌아오는 지혜를 가저야 한다. (마13:49~50) 의인 중에 악인을 끝까지 두지 않는다. 아무도 이런 인생길로 가지 않길 바래요. 우리 인생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 이 시간이 지나면 영원히 기회가 없다. 교회, 셀, 부서 등에서 의인들과 함께 가튼 길이 복 있는 길이다.

3. 복 없는 자의 결국 (The end of the unblessed)


왜 악인의 삶이 복이 없을까요? 하나님은 의로우시고 공평하기 때문이다. (시37:17) 하나님은 다 아신다. 악인의 팔은 부러지게 하셔도 의인들은 붙드신다. 의인들을 핍박하고 무시하고 왕노릇 하는게 이긴 것 같아도 하나님은 그것을 보며 가소롭게 여기시고 웃으신다. (시37:10) 이렇게 없어지는 인생을 살면 안된다. 의인의 삶은 인정하시고 악인의 인생은 망하게 하신다. 복 있는 삶을 살려면 하나님의 공평하심과 의로우심을 믿고 따라가면 된다. (잠14:12) 사람이 옳은 길 같아도 하나님 보시는 눈은 다르다. 올해는 말씀에 부리를 내셔서 악인들의 꾀에 따라 살지 말고 말씀에 따라 살면 새로운 것을 경험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을 체험하는 형통한 한해기 되길 축복합니다.

Friday, January 26, 2018

2016-01-26 (금요철야, 김용식전도사님) 주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눅13:1~7)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주시는 메시지가 있는 줄 믿습니다. 빌라도가 유대인들을 다른 사람들 피와 섞이게 학살해서 제물과 함께 드리는 끔찍한 사건에 분노를 가졌다. 이런 생각으로 예수님께 나와서 예수님의 대답을 듣갈 원했다. 이런 정도의 끔찍한 일을 당할 정도의 사람이라면 저주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어떤 환란이나 비참한 일을 당하면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생각할 수 있지만, 남이 당하는 불행한 일을 생각하면서 나는 그정도는 아니라는 안도감을 가지는 것이다.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어려운 일을 가진 사람들을 보며 그 사람이 어떤 죄 때문에 그럴 것이라는 생각과 나는 그 사람들보다 낫다거나 상관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예수님은 그 생각들을 다 알고 계셨다. & 그 생각이 하나님께 나가지 못하는 안전장치인 것을 예수님이 알고 계셨다. 즉 착하게 사는 사람들, 법 없이 살 수 있는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고, 그 사람이 결국 종교인이 되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so (눅18:11) 이것이 바리새인의모습이었다. 사람과 비교하게 되면 진정한 자신의 실체가 어떤지, 자신이 진정 어떤 사람인지 도저히 알수가 없다. 이런 것이 자신의 보호막이 되어서 하나님 앞에 나가지 못한 것이다. 상대적인, 인본적인 죄에 대한 개념들이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것에 장벽과 같은 것이다. 이런 것으로는 회개할 수 없다는 것을 예수님은 잘 알고 계셨다. 청년때 생각하던 죄의 개념과 지금의 죄에 개념이 많이 바뀐 것을 느끼고 있다. 뭐가 진리고 뭐가 옳은지 요즘 사람들은 모르는 시대이다.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좋은 일을 하는 것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많다. but 예수님은 회개하지 않으면 망한다고 말씀하셨다. 회개하지 않기 때문에 망하는 것이지, 죄가 많아서 망하는 것이 아니라고 예수님께서 선포하시는 것이다.

1. 열매를 구하는 주인

 

1) 열매없는 무화과나무


주인의 의도에 따라서 포도원에 한 자리를 마련해서 잘 가꾸고 열매 잘 맺을 기대를 가지고 심었을 것이다. 무화과나무의 존재 의미는 무화과 열매를 맺는 것이다. 나무에게 있어서 열매 맺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데 열매를 맺지 못했다. 농부가 모내기를 하면 열매를 거두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당연히 열매를 거둬야 할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한다. 그것에는 원인이 있었다. 그 원인을 품고서 3년을 있었다. (잠26:2) 무화과나무가 괜히 열매가 없는게 아니다. 반드시 이유가 있기 때문에 열매를 맺지 못한다. 열매맺지 못하는게 당연한게 아니고 이상한 것이다. 죄문제를 그대로 두고 3년 동안 이 나무는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2) 주인의 심판~9)


주인이 이 나무를 찍어버리라고 한다. 하나님은 열매없는 것에 대해서 반드시 심판하시는 분이다. 인생 가운데 우리가 이 문제들을 해결하지 않고 있을 때 심판하고 계산할 때가 올 것이다. 심판이 되면 분명히 불만과 원망의 마음이 있다. "하나님이 나에게 뭘 주셨는데..." 라고 한다. (마25:24) 하나님은 심으시고 반드시 열매를 원하신다.

2. 포도원지기의 대답


회생 가능성이 없는 무화과나무에 대해서 예수님은 "하나님 이 나무 한번 살려보겠습니다. 이 무화과나무는 소망이 없지만 살려보겠습니다."라고 하나님께 매달리시는 것이다. 우리를 향해서 금년에는 우리를 살려보겠습니다. 금년에도 그대로 두셔서 살려보겠다는 애청의 마음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2가지를 하겠다고 하셨다. 이 2가지를 하면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회복될 것이라고 간청하시는 것이다.

1) 두루 파고


이 굳은 땅을 갈아엎고 기경해야 합니다. 굳어있는 땅은 아무리 좋은 양분이 들어가도 땅 속에 침투되지 못한다. 사람들은 왜 딱딱한 채로 놔두냐면 파내는건 너무 아프니까 못한다. 아프고 자존심 상해서 내 마음을 갈아엎지 못하는 것이다. (렘4:3) 묵은 땅은 놀고있는 땅을 말한다. 갈아엎지 않은 땅이다. 이런 땅은 빨리 갈아엎으라고 하신다. (겔11:19) 성령을 우리에게 주실 때 돌같이 굳어져서 내 힘으로는 도저히 빼내기 불가능한 일을 빼내실 일을 하시겠다는 것이다. 살처럼 부드러운 이런 마음을 주실 것이라는 것이다. 회개의 영이 우리에게 임할 때 돌 같은 것이 뽑힐 것이다.

2) 거름을 주리니


다시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기경할 수 있도록 거름을 준다고 하셨다. 거름이라는 것은 양분이다. 두루파는 것은 양분을 얻기 위해서 두루파는 것이다. 양분을 잘 흡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밭만 갈아엎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당근을 심었는데 거름을 안주니 고추만한 당근이 자랐다. 교회 안에서 봉사하고 일대일하고 예배드리는 것이 말씀으로 양분을 얻기 위해서이다. 이 양분이 없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고 초라한 열매만 얻을 수 있다. 교회에서 훈련만 받고 열매를 맺지 못하면 안된다. (벧전2:2) 신앙에 열매를 맺는 것은 세상에 좋아보이는 지식이 아니라 말씀을 통해서 열매맺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두루파고 거름을 주신다고 하셨다. 이것이 다시 소생 불가능한 무화과나무를 소생시키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으로 돌아갈 때 열매맺는 역사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열매 없는 무화과 나무처럼 찍어 없어질 수 밖에 없는 나무이다. 다시 열매맺는 인생으로 살 수 있는 역사를 이루겠다고 하신 것이다. 두루파고 거름 주는 회개의 역사가 있을 때 은혜의 때이다. (고후6:2) 지금 바로 이 시간, 이 때가 하나님이 두루파고 새롭게 열매맺게 하는 때임을 믿습니다. 회개, 은혜의 기회를 주실 때 사랑을 작정하고 말씀 먹길 결단할 때 그런 역사가 우리 가운데 있는 줄 믿습니다. 인간관계의 도구, 행동양식을 분석해서 심리학적으로 사람을 분석하고 치료하는 방법들이 많이 생겨난다. 좋은 것이긴 하지만, 이런것에 의지하는 것이 나타난다. 이런 것이 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오늘날의 모습니다. 죄를 회개하고 거름받으려고 하기보다는 이 세상에서 그럴듯해보이는 것이 어디 있는지 귀를 기울이게 된다. 나에게 문제가 있을 때 네이버에서 검색해서 해결책을 찾느다. 하나님보다 인터넷을 더 의지하게 된다. 이 세상의 지혜나 심리학적 해결방법을 찾고 나 자신을 그럴듯하게 포장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지식은 우리 영혼에 근본적인 치유방법이 없다. 이것은 암환자에게 감기약을 처방하는 것과 같다. 근본적인 문제는 죄이다. 이 죄 문제는 회개를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다. 예수님이 오늘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회개하지 않으면 다 망한다고 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가운데 임할 때 우리가 개혁되고 변화되서 열매맺게 될 것을 믿습니다.

Sunday, January 21, 2018

2017-01-21 (주일예배, 정의호목사님) 복있는 자의 실제 (시1:3)

사람들은 복받길 원하지만 쉽지 않다. 내 뜻대로 안되는 것이다. (잠16:9) 이계획도 세우고 저계획도 세울 수는 있지만 그것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새해 계획을 세울 수는 있지만, 그것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내가 계획한 것이 되기도 하고 안되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은 내가 계획하지 않은 것도 이뤄지는 경우도 있다. 어떤 사람은 특출난 은사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인생이 풀리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다 잘 할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하는 일마다 되는 일이 없는 것이다. 반면, 은사는 있지만 그 은사를 사용하지 않고 땅에 묻어두고 사는 사람도 있다. 모든것이 하나님께 달린 것이지, 사람의 자질이나 능력에 달린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1. 복 있는 자의 모습 (The look of the blessed)


1) 시냇가에 심은 나무 같음


나무의 상태는 그 뿌리가 어디에 심겨졌는가에 달렸다. 나무나 나무의 재질이 문제가 아니라 그 토양에 따라서 나무가 사느냐 죽느냐가 달린 것이다. 토양이 좋지 않으면 겨우겨우 살다가 열매도 맺지 못하고 죽는 것이다. 복없는 자의 삶이다. 반면 시냇가 옆에 나무는 무럭무럭 자린다. 터가 좋아서이다. 우리 인생의 기초가 어디에 뿌리내리고 있는가가 우리의 운명을 좌우하는 것이다. 그 인생이 어디에 뿌리내리고 사느냐에 따라서 그 터 때문에 초라한 인생을 살기도 하고 창성한 삶을 살기도 한다. 나무는 좋은데 뿌리내린 곳이 잘못됐기 때문에 복 없는 인생을 사는 것이다. 교회를 다녀도 말씀을 기초로 살지 않는 사람은 생기없고 축 늘어진 삶을 산다. 몸은 어디 있어도 뿌리가 어디 있느냐가 중요하다. 모든 기초는 세상에 두고 있으면서 교회 다니기 때문이다. (아모스8:11) 오늘날 이 시대에 못 먹어서 얼굴이 초췌한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밤새도록 게임하고 인터넷하느라 얼굴이 초췌한 사람이 있을 뿐이다. 세상에 뿌리, 육적인 것은 채울 수 있을지라도 피폐한 것이다. 말씀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내 인생을 시냇가에 뿌리내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그 사람의 영혼이 메마르지 않고 풍성한 이유는 말씀이 내 삶에 생명을 주기 때문이다. 내 인생의 기초를 말씀에 뿌리내리는 복있는 삶을 살길 바래요.

2) 철을 따라 열매를 맺음


나무의 존재가치는 열매를 내는데 있다. 과수원에 포도나무를 심는 목적은 열매를 위해서이다. 사막이나 메마른 땅에 심겨진 나무는 열매가 없다. 교회는 다녀도 말씀을 듣지 못하면 영적인 열매, 변화의 열매가 없는 것이다. 교회, 예배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것은 열매를 얻기위한 수단이다. so 교회 다니면 다닐수록 내 삶에 열매 맺는데 촛점 맞추길 바래요. 말씀 안에 뿌리내린 사람은 말씀으로 인해 내 안에 열매가 맺어지는 것이다. 그 때에 맞는 열매를 맺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열매로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것이다. 하나님이 필요할 때 열매를 맺는 것이 하나님의 때를 따라 사는 사람의 특징이다. 흐름에 따라가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정확하신 분이다. 때를 놓쳐서 맺은 것은 열매가 아니다. 헌신해야 하는 말씀을 줄 때 헌신하고, 자기부인하는 말씀이 선포될 때 자기부인하는 열매를 맺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말씀이 우리에게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이다. 욕심으로 살면 그것을 취해도 썩게 만든다. 현재 내가 열매를 내고있는 신앙을 하고 있는지, 말씀을 내는 열매를 그 때 냈는지 봐야한다. 그 때 내야 할 열매가 중요한 것이다. 하나님의 때를 따라 살지 않고 자기 때를 따라 살면 하나님의 열매는 없는 것이다. 자기 때를 따라 사는 것이다. 기도해야 할 때 기도해야 그 때의 열매를 맺게 하신다.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도 힘들지만, 하나님의 때에 따라서 십자가를 지게 하는 것은 힘든 것이다. 이것이 복이 있는 사람들의 실제이다. 내 스타일, 내 주관, 내 뜻에 따라 사는 뿌리를 옮기고 하나님의 때에 따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하는 복 있는 인생 살길 바래요.

3)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않음


건강한 나무는 그 잎사귀에 윤기가 난다. 그로 인해 보는 사람들도 신선한 생명력을 준다. 사람의 건강상태는 주로 얼굴에 나타난다. 건강한 사람은 혈색이 밝고 눈에 총명이 있다. 하지만 몸이 안좋은 사람은 얼굴이 다르다. 영적인 상태도 마찬가지이다. 얼굴에 영적 상태가 나타난다. 모세는 40년 동안 양치기를 했다.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서 40일 동안 Full 금식을 해서 육체는 초췌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40일 동안 말씀만 듣고 내려왔는데 얼굴에 광채가 나서 쳐다도 볼 수 없었다. 얼굴에 나타난다. 말씀이 그 안에 살아있는 사람은 그 얼굴에 하나님의 광채가 나타난다. 그게 영적 권위이다. 그 얼굴에 하나님의 영권이 있는 사람은 얼굴에서는 밝은 광채가 나타나고, 입에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의 영적 권세의 말이 나온다. 긍적적으로 사는 사람, 밝게 사는 사람은 얼굴에 그 형상이 그려진다. 내 뿌리가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서 얼굴이 달라지는 것이다. 뿌리에 달렸다. 뿌리가 늘 세상적은 것을 받아들이니 입이 교만한 말, 오만한 말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이 아닌 것에 뿌리내려 양식이 아는 것을 먹으면 그렇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이 내 영혼을 풍성하게 하는 것이다. 말씀에 뿌리내려서 항상 밝은 얼굴로 다니길 바래요.

2. 복 있는 자의 복 (Blessing of the blessed)

그가 하는 일이 다 형통 하리로다 하셨다. 형통한 사람의 특징은 하는 일 마다 다 잘 되는 것이다. 안될 것 같은 일도 잘 되고, 다른 사람이 아무리 막고 못되게 하더라도 잘 된다. (신28:6) 이게 형통한 복이다. 뭘해도 그 사람은 잘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누구 편에 서있는지에 따라서 되는 것이다. 이게 복과 저주의 모습이다. 내 문제라기 보다 하나님께 달린 문제이다. 하나님이 그 사람 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복 있는 사람 편에서 일하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의 경우에도 실수 많이 했다. 아내를 누이라고 했고, 우물만 파면 다 빼앗겼다. 잘 되는 사람은 우물을 빼앗겨도 잘 되고, 안되는 사람은 우물을 빼앗아도 안된다. 하나님 뜻에 서는 사람이 잘 되는 것이다. 롯은 자기 꾀를 따라서 소돔과 고모라로 갔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갔다. 다윗은 자기 가족에게도 인정받지 못했다. 잘 될 사람은 악인이 아무리 죽이려고 해도 잘 되고, 안되는 사람은 반대이다. 하나님은 살아계시는 것이다. 복은 하나님꼐 달린 것이다. 아무리 복 달라고 애걸해도 복 없는 사람이 있다. 하나님 편에 선 사람이 승리하는 것이다. (창39:2) 내가 핍박을 받던 억울한 일을 당하던 그게 중요한게 아니다. 하나님이 누구와 함꼐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지금 하나님을 따라 사는 염려, 두려움을 생각할 필요 없다. 그래서 의인이 핍박받고 고난당하는 것을 슬퍼할 필요가 전혀 없다.

(갈6:8) 올 한해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서 형통한 복이 무엇인지 체험해보길 바래요.

Friday, January 12, 2018

2018-01-12 (금요철야, 제임스 월튼 목사님 - 캔비신학대학) How the Holy Spirit works in our Lives

알라스카에서 태어났다. 고향 교회는 엄숙하고 전통적인 교회에서 생활했다. 어릴 때 오리건에 예수전도단(YWAM)에서 기도하는 한국 전도단을 만났다. 큰 소리로 기도하는 한국 전도단 3~4명에게 많은 impression을 느꼈다. 영광스럽게 12년간 캔비교회에서 부목사로 섬기고 있다. & 교회에서 세운 캔비신학대학에서 학장으로 섬기고 있다. 학교에서는 다음세대 리더들을 잘 양육하는데 힘쓰고 있다. 카라크리스찬스쿨과 자매결연을 맺어서 영광이다. 3명의 학생이 잘 정착하고 있다.

1. Multiculture connection

편하고 친한 사람과 어울리는 경향이 있다. international student에게는 큰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이에 반해 교회는 모든 족속을 제자 삼으라고 했는데 이 사명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하나님은 모든 민족을 사랑하시고 복주길 원하신다. 사도행전에서도 초대교회를 보면 친한 사람에게 가려는 경향이 있다. (행6:1)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장사하고 부활하신 것을 통해 복음을 전하라는 사명을 받았지만 당시에는 예루살렘 안에서만 머물러 있었다. 당시 헬라파들은 자신의 공동체인 헬라인을 떠나고 유대파로 가게 된 것이라 헬라인들에게도 소외되고 유대인들에게도 소외된 것이다. 다양한 문화권에서의 조화가 필요한 관점에서 보면 캔비신학대학과 카라크리스천스쿨의 자매결연은 좋은 것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다양성의 관점에서 좋은 일들을 함께 해나갈 것이다.

2. Evangelistic witness

복음의 증거자에 대해서 얘기해보겠습니다. (마28:18~19) 예수님께서 부활 후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주셨다. 어려워도 감당할만한 것을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제자들은 흥분해서 나가려고 했지만 예수님은 또 다른 말씀을 주셨다. (행1:4~5)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다. 이건 가야한다는 말입니까? 여기서 기다려야 한다는 말입니까? 성령이 삶 가운데 임하면 나가야 한다는 뜻이다. 이 일은 너무 엄청난 일이기 때문에 반드시 성령님의 기름부으심을 받은 후에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1) The Holy Spirit does not: make us proud

예수님의 영이 임한다는 것은 겸손함이 임한다는 뜻이다.

2) The Holy Spirit does not: get the attention

말 그대로 성령님이 임한다는 것은 성령님의 선물인 것이다.  (고전12장) 그의 것이니 우리는 거저 받는 수혜자인 것이다.

3) The Holy Spirit does help us: see with Jesus' eyes

성령이 임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예수님의 관점으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의 시각으로 바다본다는 것은 낮은 곳에서 사람들을 바라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4) The Holy Spirit does help us: give spiritual gifts

성령님이 이 상황에서도 주관하고 계신다는 것을 증거하기 위해 역사하신다. 이를 통해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심을 증거하시려는 것이다.

5) The Holy Spirit does help us: give us the right words

매일 크고 작은 일에 성령님의 역사를 증거하는 부담을 가지게 될 것이다. 성령님을 초대할 때마다 우리의 관점이 아니라 성령님의 관점에서 일을 바라보라는 것이다. 성령의 기름부으심이라는 것이 마치 대단한 사람에게만 부어진다는 의미는 아니다. 모든 믿는 자에게 동일하게 역사하신다.

3. Workplace excellence

성령의 은사가 뭐냐고 물어본다면 목사님은 다스리는 일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다. 성령의 은사에는 방언, 치유, 통찰력, 연민의 마음 등에도 생명력이 있는 것은 맞지만, 사도바울은 사도행전에서 특별히 방언과 치유의 은사를 언급한다. 우리도 이런 은사를 삶을 살길 희망합니다. (고전12:28) 다스리는 일은 내가 보이지는 않지만 내가 속한 장소와 그곳에서 성령의 역사가 항상 일어나는 것입니다. 내가 일하는 현장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감당한다고 믿습니다. 내가 일하는 곳에서 하나님을 잘 섬기고 다른 사람에게 축복을 주는 것이 현장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가 가진 은사에 대해서 소홀히 보지 마세요. 쓸모없는 것은 없습니다. 열심으로 섬기는 것이 절대로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들이 쓸모없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들이 때로는 성령님이 능력있는 역사도 부어주십니다. (출31:1~5) 사람들을 사용할 때 각각에 맡겨진 것을 사용해서 일하길 원하신다. 중요하거나 어려운 문제에 봉착하게 되면 잠깐 멈춰서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세요. 매일 현장에서 일할 때 성령님의 기름부음을 달라고 기도할 때 엄청난 복음의 전도자로 살 수 있을 겁니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일한다고 말씀하신다.

오늘 3가지에 대한 내용을 정리해보겠습니다.
Multiculture connection은 다양한 민족의 접촉을 위해 다양한 은사를 부어주십니다.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음으로 우리가 있는 곳에서 다양한 일을 감당할 줄 믿습니다.
Evangelistic witness는 우리가 복음 전도자로 나가기 전에 성령을 받아야 한다.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성령의 은사는 그분의 것이지, 우리의 것이 아니다.
Workplace excellence는 매일 우리 삶의 현장 속에서 매일 하나님을 예배하는 현장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일하는 현장에서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의 도움과 친절을 그들에게 보여줌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좋은 통로입니다.
내가 기도하는 것은 지금까지의 성령의 기름부음보다 더 많은 기름부음을 받을 것을 기도합니다.

Thank you and God bless you!

Sunday, January 7, 2018

2018-01-07 (신년예배, 정의호목사님) 복 있는 자의 결단 (시1:1)

새해를 시작할 때와 마지막에 결과가 다를 때가 있다. 그래서 계획만 세울게 아니라 먼저 해야할게 있다. 이전의 일을 정리하는 것이다. 내가 변화되지 않는 것은 이전 삶에 변화가 없어서이다. 현재의 집을 허물고 나서야 새 집을 지을 수 있다. 새 포도주, 새 삶을 맛보고 싶으면 새 삶과 맞지 않는 가죽부대를 버려야 한다. 예수님은 헌가죽부대에 새포도주를 넣으면 헌가죽부대는 터진다. 하나님은 한 사람을 새롭게 할 때 먼저 뭘 해야하는지를 모세, 아브라함 등을 통해 보여준다. 하나님은 저주의 인생에서도 새롭게 할 능력이 있다. 먼저 요구하는게 있다. "너는 먼저 고향,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라"고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것이다. 복없는 장소에서 복 없는 사람들과 함께 복 없는 삶을 산 것이다. 그 땅의 터전을 떠나게 하고 복 없는 사람과의 인간관계에서 떠나게 하고 싶은 것이다. 개혁하는 사람만이 복을 받을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다. 현재 머무는 곳을 떠나기 전까지는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내가 새 일을 시작할 때 하나님도 새 일을 시작할 것이다. 2018년이 모든 성도님들이 한번쯤은 내 인생이 점프업해서 올라가길 원한다면 견달하길 바래요.

1.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않음 (Does not walk in step with the wicked)

악인의 꾀의 내용은 대부분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하는 것이다. 옛날에는 좋았던 적이 있었는데 어찌 이렇게 되었는가를 생각해보면 된다. 직장, 사회에서 하나님이 아닌 악인의 말을 듣게 되는 것이다. 내가 누구의 말을 듣고 행하는지가 내 운명을 바꾼다. 인간적인 사람은 영적인 사람이 부담스럽다. 새로운 삶을 살길 원하면 나를 인간적, 약하게 만드는 악인을 떠나는 결단을 하길 바래요. 악인의 꾀는 뱀의 말을 듣는 것이다. 매주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으면서 악인의 말을 듣는 것이다. 내가 주로 무슨 말을 듣기에 내 삶이 이런지 생각해보세요. 교회 안에서도 하나님 말씀을 말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하나님 말씀을 대적하는 사람이 있다. 그 삶에서 떠나길 바래요. 내 인생에 악인의 꾀를 흘러보내는 물가에서 벗어나야 한다.
다윗과 사울은 모두 사무엘에게 기름부음 받았다. 하지만 다윗은 사무엘의 말을 들었지만 사울은 무당을 찾아다니면서 악인의 꾀를 찾았다가 망한 것이다.자기가 어려울 때 찾아가는 사람이 영적 실제이기 때문이다. 내가 맺고 있는 관계에서 떠날 사람은 따나고 가끼이 할 사람은 가까이 하길 바래요. (고전1:25) 악인을 쫓아오는 사람은 하나님의 지혜가 어리석어 보인다. 하지만 하나님 말씀을 거스르는 악인의 꾀는 헛된 거짓이다. 어떤 사람과 교제하면 마음이 풀어지는데, 어떤 사람하고 교제하면 5분만 지나도 가슴이 탁 막한다. 떠날 사람은 떠나고, 가까이 할 사람은 가까이 하길 바래요. 내가 그런 사람이라면 회개하고 돌이키길 바래요.

2.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않음


죄인은 하나님의 말씀에 떠나 사람의 말을 따라 가는 것을 말한다. 죄인들은 세상 살아가는 사람의 스타일이 있다. 같은 것을 통해 인갈적으로 바라보는 틀이 있다는 것이다. (엡4:22) 그 동기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가는 것이다. 그 사람에게 형성된 라이프스타일을 바꾸지 않은 것이다. 라이프스타일이 변화되지 않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대하는 틀이다. 하나님꼐 내 마음을 드리기 위해서 예배 나오면 나오는 것이 다르다. 하나님은 내 인생의 스타일을 바꿔주실 것이다. 한번의 예백 내 라이프스타일이 바뀌겠자. 기도하는 자세를 한번 봣다. 작은거 하나 포기하지 못하면서 2018년 원대한 비전을 구하면 좋지 않은 것이다. 내 맕투 하나만 바꿔도 인생이 바뀐다. 자기는 바뀌지 않으면서 교회, 셀에서 받고자 하니 안되는 것이다. 좁은 길은 어려운 것을 누구나 안다. 하지만 좁은길 끝에는 생명이 있다. 넓은 길은 떠나는 견달을 하길 바래요. 고생 된다고 그 일을 피합니까? 떠나는 기준평가가 겨후 고생입니까? 그것이 하나님과 함께하는 사람인지가 떠나고 안떠나는 길이거 최대 이슈가 그것에 좋은게 있는게 아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가는지가 기준이 되엉버렸다. 옷이 불편해도 사는 이유는 다 그 옷을 입기 때문이다. 옳지 않는 것을 어쩔 수 없이 따라가야 하는게 지금시대이다. 그래서 내가 싫더라도 따라가야 하는 시대이다. 최대의  최대의 공격이다. (갈5:16) 일할때 일하고 놀때 놀고 ㅇㅖ배드릴때 예배드리는 자가 되어야 한다. 실제적으로 공동체, 셀, 가정, 직장에서 자기 스타일대로 하면 넓은 길로 갈 수 있다. 내가 어있다. 떠날 길은 떠나길 바래요.

3.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음

오만한 사람은 자기 주제를 몰르기 때문에 오만한 것이ㅏ=잘난 사람이 ㅇㅣㅆ는 ㅁ임에는 서로 잘나서 있다. (눅14:11) 하나님이 이렇게 하신다는 것이다. 사람이 오만하게 되는 것은 죽을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낮은 자리로 내려온 것의 메시지의 핵심이다. 좋은 계획은 세우길 바래요.

편리 위주로 살면 남는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