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December 31, 2017

2017-12-31 (주일예배, 손인규목사님) 점점 강해지는 신앙을 하라 (삼하3:1)

이 세상의 흐름은 점점 편리하고 여유로운 삶을 추구한다. 세상은 이것을 진화 또는 발전이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하나님나라를 추구하는 우리는 이것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 몸은 편할 수 있지만 육신의 욕구가 점점 커진다. 육신의 소욕은 만족을 모르고 점점 편한 것을 찾고 점점 만족을 모르고 자극적인 것을 찾는다. 신앙하는 사람은 모두가 신앙이 좋아지길 원한다. 신앙이 좋아지는 사람도 있지만, 더 미지근하고 약해지는 사람도 많이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신앙에서 소출을 내서 하나님을 기쁘게 하길 원하신다고 하셨다. 하나님께 영광 드리길 원하시는 줄 믿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약해지는건 아닌지, 하나님 앞에 새롭게 되길 바랍니다. 다윗과 같이 점점 강해지는 신앙 하길 바래요.

1. 오래 지속되는 전쟁 (The war that lasted a long time)


사울왕이 전쟁에서 전사하며 다윗의 인생에 모든 고난이 끝난 것 같다. 다윗이 유다지파의 왕이 되고, 다른 지파는 아직 사울왕의 계보에서 왕이 되고 계속 다윗과 전쟁이 지속된다. 다윗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따라 이스라엘 전체의 왕이 될 것이다. 하지만 현재는 온전히 이뤄지지 않았다. 그 후로 7년이 더 걸렸다. 이것은 신앙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나님을 믿고 구원 받으면 모든 영적인 싸움이 끝난 것 같다. 하지만 하나님나라가 이뤄지기 전까지는 영적 전투가 아직 남아있는 것이다. 우리의 할 일은 안주할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믿음으로 달려가야 한다. (빌3:12) 바울은 이미 놀라운 능력을 받고 기적을 경험한 사람이었지만, 바울의 고백은 끝까지 하나님이 주신 것을 내것이 될 수 있도록 천국의 상급이 될 수 있도록 계속해서 달려가고 있다고 한다. but 사단의 전략은 전쟁이 끝난 것처럼 얘기하고, 우리를 자만하게 만든다. (고전10:12) 어떤 사람이 "이제 나는 훈련받을 것이 없다"고 자신만만한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이 사람은 이미 적에게 속고 있고 공격당하고 있는 것이다. 천국은 사도바울과 같이 계속 열정을 가지고 계속 오는 사람의 것이다. (마11:12)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다. 침노한다는 것은 침략한다는 것이다. 우리들을 향해서 천국을 침략하라고 말씀하신다. 가만히 앉아서 천국을 기다리라는 뜻이 아니다. 신앙의 년수가 오래된다고 해서 신앙이 좋아진다는게 아니다. 천국을 향해서 공격하길 바래요.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데 대충 하는 사람이 있나요? 천국을 침략하듯이 신앙하는 사람이 결국 천국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사단은 우리에게 믿음이 식고 첫사랑을 잃어버리도록 유혹한다. 그냥 세상의 죄에 대해서 문화의 다양성으로 만들어서 우리를 타협하게 한다. 천국은 지금도 끊임없이 공격당하고 있다. 한 쪽에서는 열방을 나가서 깜짝 놀랄만한 기적과 천국을 공격하는 엄청난 역사가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가난하고 순수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이땅에 안주할 수 없어서 천국을 계속 침노하고 있다. 내가 먼저 됐다고 안주하는 자는 결국 나중 되는 것이다. 천국을 향해서 달려가시길 바래요.

2. 점점 약해지는 사울의 집


전쟁 가운데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해진다고 말씀하신다. 사울은 이미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었다. 가장 강한 세력이 꺽여졌지만 남은 세력이 있다. 사울의 집은 인간적인 것으로 계속해서 왕이 되길 원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점점 기울어질 수 밖에 없다. 다윗을 연단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잠시 남겨두신 것일 뿐이다. (시127:1)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면 아무리 파수꾼이 지키고 있어서 그 수고가 헛된 것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면 잘 될 일도 잘 되지 않는다. 하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잘 안될 일도 잘 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열정(favor)인 것이다. 내가 수고하고 노력할 수 있지만 그 열매를 누릴 수 있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하지만 하나님을 대항하면 내가 그 복을 누릴 수 없는 것이다. 사울은 어느날 갑자기 은혜 받아서 왕이 되었다. (삼상9:2)

1)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함


왕이 되긴 했지만 하나님을 기쁨이 되기 위해서 말씀에 순종하길 거부했다.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을 받기 위함에 집중했다. 그래서 하나님의 기름부음이 사라지게 되었다. 놀랍고 감사한 일에 계속해서 그 은혜를 유지하길 바래요. 부와 명예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지금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반응과 태도가 나의 인생을 좌우하는 것을 믿길 바래요.

2) 회개의 기회를 거부함


불순종 했다고 해서 바로 심판하지 않으신다. 하지만 사울은 계속해서 죄를 짓는다. 누구나 실수는 있지만, 회개의 기회를 주실 때 돌이키길 바래요. 사울은 사람에게 인정받고 체면을 지키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하나님을 떠나는 그 길을 계속 걸어가는 것이다. 그 죄로 인해 하나님 마음이 아픈 것을 계속 보면서도 자신도 그 길을 계속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사울의 집안은 다윗의 집안과 대적하는 사람들과 함께 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멀리 있지 않았다. 하나님이 주시는 회개의 기회를 붙잡길 바래요.

3) 인격적인 관계를 거부함


사울에게도 사무엘을 붙여주셨다. 영적인 지도자를 붙여주셨단 것이다. 하지만 그 말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불순종하면서도 사울은 스스로 슬퍼하지 않았다. 사울은 하나님이 그를 돕게 하기 위해서 사람을 붙여주셨지만,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일을 하지 않았다. 사울의 눈에는 사무엘 선지자가 귀해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사울이 불숭종했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박수를 쳤다. 이것이 이 땅의 모순이다. 하나님을 거스르는 일을 해도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반드시 있다. 하나님께서 나의 주변에 믿음의 사람들을 붙여주신 것은 나의 믿음을 돕기 위해서이다. 팀과 셀에 인격적인 관계를 가지길 바래요. 문제를 오픈하고 도움을 청하길 바래요. 믿음의 사람들과 인격적인 관계를 가질 때 죄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미지근한 상태로 머물러 있다가 그냥 죽는 것이다. 뚜껑없는 미지근한 냄비에 개구리를 넣으면 개구리는 가만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불을 점점 높이면 개구리는 서서히 죽는다. 개구리는 자신이 죽는줄도 모르고 그냥 있다가 죽는 것이다.

3. 점점 강해지는 다윗의 집


다윗은 왕이 되기위해 애쓰지 않았다. 다윗은 무엇이 되는게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하는 편을 선택했다.

1) 말씀을 통한 훈련을 받아들임


다윗이 한 일은 이 한가지이다. 하나님이 주신 훈련을 부드러운 마음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왕이 되는 기름부음을 받고나니 자신을 죽이려는 일만 생겨나는 것이다. 빨리 왕이 되는것보다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다윗에게는 더 중요했던 것이다. 이것이 중요한 것이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이 영적으로는 더 강한 것이다. 다윗은 인간적으로 본다면 너무 약한 사람이다. 목동이다. 다윗은 자신을 의지하지 않았고, 하나님이 이루시는 것을 따라서 순종할 때 나아가는 것이다.

2) 회개의 기회를 받아들임


다윗이 완벽한 사람이었다면 우리같은 사람에게는 소망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것을 가진 왕이 되었을 때 죄를 지었지만, 선지자인 나단이 와서 말을 할때 다윗은 지체하지 않고 회개를 했다. 다윗은 자신의 체면을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 앞이 엎드린 것이다. 하나님이 나의 의, 자존심을 깨뜨리는 것 같다. 이런 것을 경험하게 하신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 엎드렸다. 하지만 소망이 없는 사람은 다윗이 이렇게 말할 때 사람의 말로 듣는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기지 않는다. 내 안에 있는 어둠의 세력에서 하나님 말씀을 붙잡길 바래요. 말씀을 통해서 회개를 주실 때야말로 새롭게 도약할 수 있는 기회임을 알길 바래요.

3) 인격적인 관계를 받아들임


다윗이 어려울 때 사무엘을 만나고 나단을 만난다. 그를 도와주는 영적인 멘토가 있었다. 사무엘의 말을 받아들이고, 나단이 책망할 때 받아들인 것이다. 다윗이 이렇게 할 때 다윗 주변에는 사람이 모여드는 것이다. 나 혼자 모든것을 할 수 있을 때 신앙이 강한 것 같지만 영적으로는 배울 기회가 와도 배우지 않는 아주 나약한 사람이다. 신앙은 내가 강해서 이기는 것이 아니다. 내가 약하게 될 때 내 안에 영적인 생명이 나를 강하게 하는 것이다. 나의 속사람이 강한 사람이 되길 바래요. 내 죄의 세력을 이길 수 있는 십자가의 권세가 내 안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다윗의 집과 같이 강해지는 비결이 있다면 훈련이 있어야 한다. 영성이 육성보다 더 강한 사람이 되길 바래요. 다윗이 강해졌을 때 다윗은 죄를 지었다. 반대로 광야에서 훈련 받을 때 다윗은 오히려 영이 강했다. 우리의 삶이 풍요로울수록 영적으로 강해지지 않으면 죄를 짓게 된다. 관상용 열대어를 수송하는데 아무리 좋은 환경을 만들어줘도 절반 이상이 죽고, 살아있는 것도 비실비실하다. 하지만 수조 안에 열대어의 천적인 문어를 넣어두면 잡아먹힌 몇마리를 제외하고는 모두 생생하게 살아있었다. 열대어가 살아남기 위해서 더 쌩쌩한 것이다. 마지막 때를 살면서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사람은 더 강해질 것이다. 이 세상은 점점 더 악해지지만 그것을 이기기 위해서 점점 더 강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 타협한 사람은 우리의 생명력도 잃어가는 것이다. 육신의 세력을 이기는 사람은 점점 더 강해질 것이다. 다윗의 집에 속해서 점점 강해지는 신앙을 해야할 것이다. (갈1:7) 성경은 우리에게 말하기를 십자가 외에 다른 복음은 없다고 말한다. 직분이 올라가고 신앙 년수는 올라가도 신앙이 저절로 되는게 아니다. 십자가를 잃어버리면 생명이 점점 잃어버리는 것이다. (고전15:31) 사도바울이 믿음의 삶을 살 수 있던 것은 날마다 죽는 것이 바울의 고백이다. 예언과 지식으로 절대 되지 않는다. 새로운 것을 듣는다고 변화가 있는게 아니다. 날마다 부활의 생명의 능력을 받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면서 이 땅의 나그네로 달려가길 바래요. (히10:39) 오늘 다윗의 집안과 같이 하나님 앞에 점점 강해지는 신앙 하길 바래요.

Sunday, December 24, 2017

2017-12-24 (성탄주일예배, 강국정목사님) 큰 기쁨의 소식을 전하라 (눅2:1~14)

죄를 대신 감당함으로 우리를 기쁨으로 살게해주신 아기 예수님이 태어나신 날이다. 이제까지 기쁨을 나눴는데, 그 기쁨을 전하는 우리가 될 줄 믿습니다. 우리의 죄, 너무 지긋지긋하다. 그 죄 때문에 계속해서 눌리고 어둠가운데 사망과 흑암의 그늘 안에 살 수 밖에 없다.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하다. 그 죄 때문에 자다가 깜짝 놀라서 일어날 때가 있다. but 그 죄를 감당해서 죽으시는 예수님이 태어난 줄 믿습니다. 세상은 오늘 성탄의 의미도 모른채 쇼핑센터, 백화점, 시장 등 할것 없이 북적이고 12월 초만 되면 크리스마스 장식을 교회보다 먼저 한다. 세상이 반짝반짝 하지만 그것은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서 장식하는게 아니고 자신의 육신을 채우기 위해 상업적으로 이용한다. 세상에서도 크리스마스는 왠지 누굴 만나야할 것 같고 왠지 기쁘다. (요1:11) 예수님은 죄가 없는 의인들을 위해 온게 아니고 아무도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은 것이다. 죄인들 속에 어둠이 있기 때문이다. 나의 죄를 감당하기 위해 아기예수님이 오신 것이 내게 큰 기쁨이 되길 바래요. 예수님을 더 적극적으로 영접드려서 가장 큰 기쁜 소식으로 전하는 우리가 되길 축복합니다. 우리만 그 기쁜 소식을 받고 누릴게 아니라 오늘 말씀처럼 온 백성에게 전하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어제 주일학교에서 주변 소외계층에 가서 찬양하고 노래 부를 때 너무 기뻐하는 모습을 보였다.

1. 아기예수 탄생의 기쁜 소식 (1~7)


취업, 결혼 등 많은 기쁜 소식이 있다. 하지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이 가장 큰 기쁜 소식인 줄 믿습니다.

1) 말씀의 성취 (1~7)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말씀이 성취된 기쁜 소식인 줄 믿습니다. 에덴동산에서 모든 열매를 먹을 수 있었는데 중앙에 선악과는 못먹게 하셨다. 그런데 그것을 먹고 죄를 지어서 지금까지 영원한 불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우리들이 계속해서 불순종하면서 진노를 받으면서 사는게 너무 불쌍하기에 예수그리스도를 보내겠다고 미가서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셨다. (미가5:2)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알 수 있다. 수백년 동안 미가서 선지자를 통해서 약속의 말씀을 주시고 수백년동안 지키시고 예수님을 보내신 것을 알 수 있다. 창세 전부터 하나님을 우리를 너무너무 사랑하신다. (눅1:38) 호적령이 없었으면 베들레헴에 갈 필요가 없었다. 호적을 하러 요셉과 마리아가 각각 고향으로 돌아간 것이다. 유대 베들레헴에 도착하니 해산의 때가 온 것이고, 여관방이 없었다. 그 때 마굿간을 급하게 찾아 들어간다. & 구유(말밥통)에서 태어나게 되신 것이다. 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는 10여km정도 된다. 하지만 베들레헴에서 난다고 했기에 가는 도중에 나지 않는 것이다. (마1:22) 이 모든 일은 평강을 얻게하는 것도 감사한데 약속의 말씀대로 이루기 위함인 줄 믿으시기 바래요. 하나님의 영광, 기쁨, 찬송을 올려드리면 하나님이 기뻐하실 줄 믿습니다. 말씀을 이루시는 본을 보여주신 것이다. 말씀으로 주시는 기쁨은 큰 기쁨이다. 큰 기쁨이 되는 성탄 보내길 바래요.

2) 우리 죄를 위해 구주로 나심 (11)


천국은 모든 보석으로 되어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 모든 영광을 버리시고 위엄있는 모습으로 오지 않으시고 누구나 다가갈 수 있도록 어린아기로 오셨다. 왜 연한 순과 같이 흠모할만한 모양도 없이 오셨을까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기에 이것이 큰 기쁨의 소식이라고 말씀하신다. (마1:21) 우리의 죄를 대신해 죽으실 분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죄가 없으신 분만이 우리를 위해 죄값을 치룰 수 있기에 예수님 밖에 없는 것이다. (마1:18)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했기때문에 죄가 없다. 오직 예수님의 이름만이 아버지께로 갈 수 있는 것이다. 요셉과 마리아 사이에서 동침함으로 얻은 아기가 아니라,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했기 때문에 아기예수인 것이다. 이 사실을 믿을 때 우리가 기뻐하게 되는 것이다. (눅1:31) 처녀인 마리아의 편에서는 가브리엘 천사의 말은 청천벽력과 같은 말이다. 약혼만 했는데 성령으로 주신 아기가 부담되었을 것이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는 어린 아기로 나셨지만 하나님의 아들로 나신 것이다.

2. 목자들에게 임한 기쁜 소식 (8~14)


가장 기쁜 소식을 주셨고 실제로 주셨다. 오늘날에도 가장 좋은 것을 주시되 성령을 주신다고 하신다. 다른 사람들은 성탄이라고 기쁠텐데, 왜 나에겐 기쁨이 없을까 할지 몰라도 나에게 기쁨을 주실 줄 믿습니다.

1) 먼저 목자들에게 알리심 (8~12)


베들레헴 목자들을 말한다. 풀피리를 불면서 별들을 바라보며 양을 치는 낭만적인 목자를 생각한다. but 이리떼들로부터 양떼를 지키고, 밤에는 죽지 않을까 계속 지키는 힘든 일이고 허드렛일을 하는 목자를 말하는 것이다. 어린아이가 먹고살기 위해서 부모님을 도와서 일을 하는 가난하고 상한 마음의 목자들에게 위대한 예수님의 탄생을 전해주는 것이다. 동일하게 상한 마음을 가져야 하고, 동일하게 겸손한 마음을 가지는 그 놀라운 기쁜 소식을 전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위대한 자신의 아들의 탄생을 헤롯왕에게 알리지 않았고, 동방박사에게 먼저 알려주셨다. 추후에 헤롯왕에게 알려주었는데 베들레헴의 2살 이하의 아들을 모두 죽이라고 했다.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아무 죄 없는 다른 아기들을 죽인 악한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우리 가까운 나라는 지금도 예수를 전하면 죽인다. 들의 목자들에게 아기예수가 태어난 것을 알린 것은 예수님의 탄생을 전할 것이기에 위대한 탄생을 알린 것이다. 우리들에게 기쁜 소식이 날마다 영원한 천국으로 갈 때까지 들려지길 축복합니다.

2) 목자들이 전함 (10, 17~18)


목자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셨다고 말씀하셨다. 온 백성은 우리들을 말하고, 열방의 국가들을 말한다. 오늘 성탄의 메시지가 온 열방 가운데 선포될 것을 믿음으로 선포합니다. (눅2:17~18) 예수그리스도를 전하는 천사가 될 줄 믿습니다. 놀랍게 여길 것을 믿음으로 성취되길 바래요. 천사들에게 예수님의 탄생을 듣고 전하면 목자들이 말한 것들을 선포하며 전하시길 바래요. (눅2:19) 마리아는 가브리엘을 통해 들었지만, 목자들을 통해 확증을 시켜주시고 하나님의 계시를 마음 깊이 가지고 아기를 양육하게 된 것이다. 마리아와 같이 하나님의 말을 마음에 깊이 간직하고 되새기길 바래요. (눅2:20) 예수님의 탄생을 듣고 보았던 목자들이 아기예수의 탄생을 다시 전한 것이다. 하나님꼐 영광을 돌려드리며 찬송하며 돌아간다. 본 그대로 하나님께 영광 돌려드리고 찬송을 돌려드리며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성탄, 예수그리스도의 탄생을 통해 구원을 얻었다면 그 기쁜 소식을 전하길 바래요.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표적을 보여주신다. 겸손한 예수님이 겸손할 수 없는 우리에게 날마다 오신다. 이것이 표적이다.

오늘 말씀을 생각해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하나님의 형상으로 우리를 지으시고 계속 우리를 보셔도 죄 가운데 있으니까 미가 선지자를 통해 예수님을 예언해주시고, 또 죄를 지으니까 아담으로부터 왔던 저주를 끊으시고 구원을 얻고 이 땅을 정복할 뿐만 아니라 부활생명을 주셔서 영원한 하나님나라에서 하나님과 거하며 놀라운 삶을 사는 우리로 베풀어주신 것이다.

Sunday, December 10, 2017

2017-12-10 (손인규목사님, 주일예배) 하나님이 쓰시는 적은 무리들 (사7:1~7)

우리가 살면서 사람을 잘 만나야 한다는 말을 듣는다. 누구를 만나느냐가 중요하다. 좋은 선수가 되려면 훌륭한 코치를 만나야 한다. 이미 뛰어난 전문가를 만나면 이미 반은 성공한거다. 전문가는 뭔가 다르다. 오늘 보고자 하는 것은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잘 아는 전문가는 하나님이시다. 얼마 전 주일말씀에도 세상에서 말하는 전문가들이 버린 돌 조차 머릿돌(모퉁이돌)로 쓰신다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최고의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대로 따라가면 우리 인생에 놀라운 복이 있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어떤가를 알길 원합니다. 하나님 앞에 귀하게 쓰임받는 우리가 되길 바래요.

1. 하나님이 일하시는 목적 (Purpose of God's work)

오늘 내용은 미디안이 전쟁을하기 위해 이스라엘을 공격해왔다. 바로 옆에 진을 치고 있었는데, 기드온이 말씀을 받고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모였다. (2) 아직 유대인들은 수가 적은데, 하나님은 미디안 사람에게 넘기지 않겠다고 하신 것이다. 미디안과 싸우기 위해 3만명 밖에 없었다. 인원이 너무 부족했던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다르게 말씀하신다. "아니다. 넘 많다. 그래서 사람들을 돌려보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관점은 우리와 다르다는 것을 알길 바래요. 하나님은 우리 상식과 다르다. 우리 기준에서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 결과가 좋으면 무조건 다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but 하나님은 많은 사람들로 일하지 않으신다고 하신다.

1) 영광을 받기 위함 (To be glorified)

우리는 결과가 좋으면 결과를 통해 영광받으실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우리의 생각일 뿐이다.  하나님은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이 일하시기 때문이다. 그 일보다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이 더 중요하신 것이다. 나를 자랑하고 자기 영광을 삼을 것이라고 하나님은 알고 계셨다. 내가 잘 해서 된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하나님은 알고 계셨던 것이다. 사람들 마음에는 교만한 마음이 있다는 것을 하나님은 알고 계셨던 것이다. 내가 영광 받기 위한 나의 바벨탑을 쌓고 있는 우리를 알고 계신 것이다. (창11:4) 우리의 이름을 천하에 알려야겠다는 어마어마한 성을 쌓겠다고 한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의 영광을 구하는 그 일에 함께 하지 않으신다. 어떤 모양이든지 나의 바벨탑이 있다면 무너뜨리길 바래요.

2) 시험하여 선별하심 (To test ans select)

두번의 테스트로 사람을 보낸다. 하나님은 아무나 쓰지 않으신다.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는 일에는 그 일에 합당한 사람들을 쓰셔서 일하길 원하신다. (시7:9) 하나님은 눈에 보이는 사건을 통해 드러내시는 분이다. 나에게 주신 사건들을 만날 때 나의 믿음을 드러내시길 원하신다. 내 믿음이 어디에 서있는지, 훈련의 정도, 성숙도를 나타낸다. 예수님의 능력과 권세가 나타난다. 우리의 믿음이 사건을 만나고 기회를 만나면 나타난다. 베드로는 사건을 만날 때 믿음없음이 드러나서 예수님으 3번이나 부인했다. 반면 어떤 사람은 자신의 인생을 주님께 드리는 믿음의 고백을 주님께 드리기도 한다. 나의 믿음, 인격을 주님께 드리는 기회가 되는 것이다.

2. 하나님이 거절한 많은 무리들 (The crowd whom God rejected)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거절한다. (3) 집으로 돌아가도 좋다고 편하게 얘기한게 아니다. "두려워 떠는 자는 즉시 떠나 돌아가라"고 하셨다. 강하게 돌려보내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거절한 많은 무리들은 이렇다.

1) 두려움을 가진 (Have fear)

마음이 원하지는 않지만 의무감으로 그 장소에 나왔다. 하나님보다 적들을 더 크게 보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다. 두려움을 다른 말로 하면 불신앙이라고 한다. 단순히 염려, 근심하는게 아니고 영적인 세력이고 불신앙인 것이다. 하나님을 따라가는 것이 부담된다. 내가 주님을 위해서 엄청난 것을 희생하는 것처럼 보인다. 믿음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영광이 되는 것이다. 이들은 미디안과 전쟁에 나가는 것이 무서웠다. 전쟁하러 나온게 아니고 몸을 사리는 것이다. 오히려 전쟁하려는 사람들에게 방해만 되는 것이다. 자기에게만 부정적인게 아니고 다른 사람에게까지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빨리 돌려보내라고 하나님꼐서 말씀하신 것이다. "할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더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못할 일이 없느니라"는 말씀이 나의 고백이길 바래요. 내 눈에 하나님과 세상 중에 뭐가 더 크게 보입니까? 뭐가 더 중해보입니까? 믿음이 없으면 세상에 있는 사람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하나님의 이름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정말 두려워해야 할 분은 하나님 한분밖에 없다. (이6:5)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다.

2) 육신의 소욕을 절제 못함 (Indulge into desires of flesh)

기드온이 말씀에 순종해서 물가로 내려온다. (4) 한 부류는 물을 벌컥버컥 마셨고, 다른 한 부류는 손에다 물을 떠서 좌우를 살피며 물을 홀짝홀짝 마시고 있었다. 물을 벌컥벌컥 마시는 사람을 돌려보냈다. 전쟁이라는 사명을 받고 부르심 받은 사람은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 사명을 위해서는 내가 포기해야 할 값지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목표가 없으면 방자히 행한다고 했다. (잠29:18) 육신을 절제하지 못하는 사람은 은혜를 받기는 받는데 오래가지 못한다. 가시밭에 뿌려진 씨는 세상에 양분을 다 빼앗기기 때문에 열매 맺기 힘들다. 그래서 우리가 걸어가야 할 믿음의 길은 좁은 길이라고 말씀하신다. (마7:13~14) 사람들이 원하는 길은 넓은 길이다. 남들이 다 좋아한다고 해서 그것이 다 좋은 길은 아니다. 하나님 앞에 찾는 자가 적을 지라도 하나님 앞에 생명의 길을 가길 바래요. 실제 삶에서 값지불이 없다면 공허하고 무기력하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은 우리가 값지불 할 때 이뤄지는 것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전쟁은 칼과 창으로 하는 전쟁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적인 지혜와 지식으로 하는게 아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그 일에 이성, 육신 인간적인 지혜가 있는 사람이 어떻게 성공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에는 우리의 이성이나 지혜를 뛰어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의 자아가 강하면 강할 수록 쓰임받기 힘들다. (갈5:24) 우리 안에 정과 욕심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밖음으로써 하나님의 역사에 쓰임받길 바래요.

3. 하나님이 쓰시는 적은 무리들 (A few men that God uses)

무릎을 굽히지도 않고 혀로 물을 햝고 있었다. 기드온이 가르쳐준 사람도 없었는데, 이 300명은 물을 손에 떠서 혀로 햝아 먹고 있었다. 오늘 하나님이 이들에게 (5)과 같이 표현했다. "개가 핥는 것 같이 혀로 물을 핥는 자들"이라고 표현하시면서 저 자들을 쓰겠다고 하셨다. 그 당시에도 개라는 표현은 좋지 않거나 낮추어서 쓰는 표현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쓰시고자 하는 사람들을 이렇게 표현하셨다. 신약에도 예수님은 개라는 표현을 쓰셨다. (막7:26~29) 예수님은 이 여인을 낮추시기 위해 이 말씀을 하신게 아니다. 우리가 예수님 앞에 낮아지고 깨어지며 굴복되는 순간 우리 앞에 악한게 떠나가는 것을 믿으시길 바래요. 우리가 먼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부르심과 사명을 분명하게 붙잡아야 한다. 버려진 돌가 같은 나의 인생을 회복되어야 한다. 능력이 많아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게 아니다. 하나님을 정말 사랑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할 때 거룩한 열정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딤후2:4) 하나님 앞에 위기의 때에 부름 받았다는 비전을 가지길 바래요.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비전이 분명할 수록 육신의 소욕을 절제하며 능력을 주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 앞에 살아가는 믿음의 삶은 하나님 나라에 소망이 가득하다면 하나님 나라의 상급을 위해서 절제할 수 있어야 한다. 믿음의 행위를 보이라는 것이다. 큰 일을 행하는 것만 능력이 아니다. 예수님도 십자가 위해서 사람들이 조롱할 때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으셨다. 내려 오거나 불을 내려 심판할 수 있지만 내려오지 않으셨다. 성경에서 믿음의 관계를 말할 때 다윗과 요나단을 말한다. 다윗만 아니었으면 요나단이 왕이 되었을 것이다. 인간적으로 보면 다윗때문에 자신이 왕위를 빼았았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삼상18:1) 기드온의 300용사들과 같은 마음을 가질 때 하나님께서 만나주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생각과는 정반대로 말씀하실 수도 있다.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데 쓰임받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을 구경하는 구경꾼이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는 적은 무리기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전쟁을 정말 하길 원하는 믿음이 있는 자들을 모으셨다. (눅12:32)